광룡기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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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8화
18화
사마성운은 부친이 항주제일로 키워낸 검운장을 절강제일로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검운장과 함께 절강의 오대세력에 속한 흑마련과 천목산장, 혈해방, 해왕십삼군도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안휘제일세력인 남궁세가와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남궁세가는 정파의 지주인 중원오대세가 중 하나가 아니던가. 그들만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절강의 누구도 검운장을 돈으로 일군 세력이라 손가락질하지 못하리라.
무인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천목검제가 얕보지도 못할 것이고, 호시탐탐 상권을 위협하던 흑마련이나 혈해방도 더 이상 검운장의 권역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남궁세가의 높은 콧대였다. 검운장이 항주제일세라 하지만, 겨우 절강오대세력 중 하나일 뿐. 남궁세가와는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
대등한 관계로 손을 잡을 그들이 아닌 것이다.
결국 그는 두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하나는 금전적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최근 남궁세가의 형편이 좋지 않다는 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십 년 전 안휘 북부에서 발호한 신생 금천신문과의 싸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큰돈을 준다 해도 자존심이 센 그들이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사마성운은 두 번째 방법을 먼저 실행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이제 열아홉인 자신의 딸을 남궁세가로 시집보내기로 한 것이다. 물론 엄청난 지참금과 함께.
잘만 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대남궁세가의 이름도 등에 업고, 딸도 멋진 남편을 얻고.
물론 자신이 대남궁세가의 자식을 사위를 얻는 것은 덤으로 쳤다.
결심을 굳힌 사마성운은 아버지인 사마추경과 의논을 하고, 허락이 떨어지자 보름 전 바로 아랫동생인 사마성한을 합비로 보냈다.
모든 일은 극비리에 진행시켰다. 만일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흑마련이나 혈해방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마침내 그로부터 답장이 온 것이다.
[남궁세가에선 연아를 둘째 남궁진과 맺어주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가주의 팔순 축하연에 연아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남궁세가의 어른들이 연아를 봤으면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 된 것처럼 보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남궁진.
바로 그 이름 때문이었다. 그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이면 남궁진이라니. 차라리 셋째 남궁민을 내세우던가 하지. 허, 거참.”
남궁진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을 그도 들었다.
-힘을 숭앙하며, 신의를 목숨같이 여기는 진정한 정파의 협사!
그것은 남궁진을 따라다니는 똘마니들이 하는 이야기고, 사람들은 그를 힘만 센 멍청이, 합비의 미친개라고 불렀다.
본성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니라면 아무리 가주의 아들이라 해도 남궁세가에서 가만 놔두었겠는가.
좋게 말하면 우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멍청이.
그는 남궁진을 그렇게 평가했다.
“끄응, 그렇다고 마다할 수도 없고…….”
문제는 바로 그점이었다. 상대가 먼저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모를까, 자신이 먼저 사람을 보내놓고 이제 와서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없던 일로 하자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상대는 바로 대남궁세가가 아닌가 말이다.
“할 수 없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연아더러 직접 결정하라고 하는 수밖에.”
그때다.
문득 편지 한 장만 달랑 던져 놓고 어디론가 가버린 사마강이 생각나자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 자식만 제대로 해줘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을 텐데. 어디 돌아왔을 때 해만 자르지 못해봐라.”
신시 초, 사마성운은 삼각 오당 오대의 대주들을 모아놓고 머리를 맞댔다.
사마하연을 호위해 남궁세가로 떠날 호위대를 선별하기 위해서였다.
겉으로는 남궁세가의 노가주인 남궁종원의 팔순잔치를 축하하러 가는 사절단에 사마하연이 섞여가는 것처럼 꾸미기로 했다.
그렇게 머리를 맞댄 지 한 시진, 어느 정도 의견이 취합되자 사마성운이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그럼 성안과 성문, 두 아우와 신검대 열 명, 금검대 스무 명을 동행시키기로 하지. 그리고 각 대의 부대주들이 대원들을 이끌 수 있도록 해주시게. 출발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할 것이니 그때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주시게들.”
“알겠습니다, 장주. 곧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부대주 두 명과 삼십 명의 일류고수, 게다가 남궁세가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진성각주 사마성안과 비찰각 부각주 사마성문.
그 정도 인원이면, 설령 갑작스런 공격을 받는다 해도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때 조용히 있던 나철위가 지나가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합비까지 가다 보면 열흘 정도 걸릴 텐데, 순찰이나 경비도 서고 연락원으로 쓸 겸 본 대도 함께 갔으면 합니다만.”
신검대주 구진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잡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긴 하겠군,”
“공연히 귀찮게 하지나 않을지 모르겠구려.”
용검대주 백궁인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듯 말했다.
그 말에 구벽당의 당주 진앙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나철위와 가깝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나철위가 무시당하자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었다.
“풍운대의 무사들 중에도 일류고수가 다수 있소이다. 결코 방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외다.”
“실력이 문제가 아니네. 일의 중요성을 생각해야지. 낭인들을 믿을 수 있겠나?”
“같은 검운장의 무사들이외다. 믿지 못할 거라면 풍운대가 존재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소?”
하지만 그들의 말다툼도 사마성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끝이 났다.
“나 대주의 말대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하면 어느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하는가?”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나철위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이십 명 정도면 되지 않겠습니까, 장주?”
“이십 명이라… 적당하군. 유사시에는 신검대와 금검대를 보조해서 싸울 수도 있을 테니까. 좋아, 그럼 그렇게 하세.”
2
석양이 질 무렵.
이무환의 십삼조가 세 번째 임무를 마치고 풍운대로 돌아오자 한초강이 부리나케 찾아왔다.
“이 조장, 대주께서 찾으시네.”
“대주께서요?”
“그래, 오는 대로 집무실로 데려오라더군. 이미 나머지 조장들은 다 모였다네.”
‘대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인데 조장들을 다 모인 거지?’
이무환은 잔뜩 궁금한 마음으로 나철위를 찾아갔다.
대주의 집무실에는 부대주 유태신을 비롯해 열한 명의 조장이 모여 있었다. 자신과 한초강마저 합세했으니 조장들 모두가 모인 셈. 그간 들은 말대로라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대주님.”
“때맞춰 왔군. 그리 앉아.”
이무환이 앉자 나철위가 입을 열었다.
“남궁세가 노가주의 팔순 잔치에 가는 사절단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
조장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된 상태인가 보군.’
이무환이 내심 궁금해 하고 있는데, 일조장인 종리혁이 미간을 좁히고 나철위에게 물었다.
“저희들만 갑니까?”
“아니다. 신검대 열 명, 금검대 이십 명이 동행한다.”
종리혁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럼 구질구질한 일은 저희가 도맡게 되겠군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몇 명이나 갑니까?”
“이십 명 정도다.”
조장들이 일제히 나철위를 응시했다.
이십 명 정도라면 이십 명이 조금 넘을 수도 있다는 말. 그럼 이 개 조면 된다. 잘하면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조장들의 시선을 받은 나철위가 말했다.
“일조에서 사조까지, 제일 강한 사람으로 네 명씩을 뽑아라. 그리고 쌍위와 이무환의 십삼조가 나와 함께 간다.”
일조에서 사조까지의 조장들은 땡감을 씹다 벌레까지 씹은 듯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반면 오조에서 십이조까지의 조장들은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무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꼭 가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직 경험도 없는데 방해나 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이조장 차복승이 재빨리 이무환의 말에 동조했다.
“그렇습니다. 이 조장은 아직 중요한 임무를 맡기에는 이릅니다.”
그러자 팔조장 송우양이 무슨 소리냐며 나섰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 조장도 이제 이 정도의 임무는 충분히 맡을 때가 되었지요.”
“그래도 이런 중요한 임무에 십삼조를 포함시킨다는 것은…….”
“이런 임무에는 실력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가야 한다, 아니다.
열두 명의 조장이 동시에 떠들어댄다. 장내가 순식간에 시장 바닥처럼 시끌벅적해졌다.
탕!
끝내 나철위가 탁자를 내려쳐 조장들의 입을 막았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 토 달지 말도록!”
번복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
일조에서 사조까지의 조장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이무환을 힐끔거렸다.
오조에서 십이조까지의 조장들은 제발 이무환이 나철위의 결정에 따라주기만 바랐다.
그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이무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평소에도 남의 생일잔치에 가면서 이렇게 많은 인원을 대동합니까? 신검대와 금검대까지 합하면 오십 명이 넘는 인원인데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는지 조장들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평상시라면 열 명 내외의 호위를 대동한다. 설령 대문파의 중요한 연회라 하더라도 이십 명 이상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데 오십 명이라니. 그것도 신검대와 금검대의 인원만도 삼십 명이나 되지 않은가.
의혹에 찬 눈길이 향하자, 나철위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직 다 밝힐 수는 없다만, 지켜야 할 사람들의 우선순위 중 첫 번째가 사마하연 낭자라는 것만 알고 있어라.”
‘사마하연?’
이무환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사마하연이라면 장주인 사마성운의 딸이다. 꽃처럼 예쁘다는 외사촌 여동생!
‘뭔가가 있다는 말이군.’
없던 흥미가 갑자기 불길처럼 일었다. 그저 단순하게 축하연에 참석하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다.
‘남궁세가가 중원의 오대세가 중 하나라 했던가? 흠, 이 기회에 구경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칠도회가 미지의 인물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긴 했지만, 확실치도 않은 일에 매달려 있을 수만도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슬슬 무창으로 갈 때도 되었고.
내심 결정을 내린 이무환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대주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순간 상반된 한숨소리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휴우…….”
“크으…….”
짙게 낀 달무리가 하늘을 수놓은 밤.
이무환은 사마추경을 찾아가 내일의 임무에 대해 털어놓았다.
“사절단의 호위 임무를 맡아 남궁세가에 갈 것 같습니다, 외조부님.”
그 말에 사마추경이 물끄러미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아직 너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지?”
“예.”
“그냥 그렇게 떠날 것이냐?”
남궁세가에 갔다가 그곳에서 무창으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짐작한 듯하다.
“아직 확실하게는 모르겠습니다만, 다시 돌아온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돌아오는 거지?”
“그럼요, 어머니 집인데요.”
사마추경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진 듯 보였다.
“잊지 말아라. 이곳이 너의 외가라는 것을. 항상 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예, 외조부님.”
“하아, 그래, 네가 가겠다면 내가 어찌 말릴 수 있겠느냐.”
“죄송합니다.”
“죄송하기는……. 그건 그렇고… 네 동생, 잘 보살펴 줘라.”
아직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동생이지만, 그 말을 들으니 매우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졌다.
‘화여경만큼이나 예쁘다고 들었는데……. 쳇, 너무 깊은 곳에 있어서 볼 수가 있어야지?’
어쨌든 예쁜 동생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잘 지켜서 남궁세가까지 데려갈 테니까요.”
“그래, 고맙구나. 아! 잠깐만 기다려라.”
조용히 미소 짓던 사마추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마추경은 침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더니, 침상 머리맡의 벽면을 어루만져 제법 큰 서랍을 하나 꺼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서랍 안을 뒤적거렸다. 마치 손자에게 뭘 줄까 고민하는 할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이게 좋겠군.”
한참 만에 서랍에서 그가 꺼낸 것은 검고 작은 가죽 주머니와 돌돌 만 양피지 뭉치였다.
그는 이무환에게 다가와 먼저 주머니를 내밀었다.
“받아라. 내가 오래전 본 장에서 운영하는 골동품점에서 가져온 것인데, 아무리 봐도 예사 물건이 아닌 것 같아서 주인을 만날 때까지 보관하고 있었던 거다.”
고리가 달린 주머니는 검은색의 가죽으로 되어 있었는데, 팔목에 찰 수 있게 끈이 달려 있었다.
이무환은 일단 주머니를 받아 들고, 고리를 푼 다음 안에 든 물건을 끄집어냈다.
‘이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