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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5화

 

15화

 

 

 

 

 

 

 

 

“용화문은 상단을 운영하는데, 해상무역을 주로 하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동쪽으로 갔던 배 두 척이 침몰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래?”

 

이야기를 나누며 전장으로 들어가자 금안장의 서기들이 풍운대의 복장을 알아보고 이무환 일행을 내실 쪽으로 안내했다.

 

이무환은 안으로 들어가며 재빨리 사방을 훑어보았다.

 

화여경 일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 깊은 내실에 있는 듯했다.

 

쿵!

 

단우경과 막위가 상자를 내려놓자 묵직한 소리가 내실을 울렸다. 동시에 금안전장의 서기 두 사람이 달려들더니 빠르게 상자 안의 은자와 전표를 계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액수 확인이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서명을 받고 있는데 더 깊은 곳의 내실 문이 열리더니 네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풍만한 몸집의 중년인과 두 명의 중년 무사. 그리고 봄날 화려하게 피어난 목련처럼 아름다운 화여경.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든 이무환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영호승의 몸이 기이할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미풍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가늘게 흔들리는 눈빛. 뭔가 극심한 격동을 참는 듯 보였다.

 

‘응? 왜 저러지? 멋쟁이가 저 여자를 아나?’

 

그사이 화여경 일행이 그들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로 그때다. 지나간 듯싶었던 화여경이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왜 그러느냐?”

 

눈매가 칼처럼 가느다란 갈의중년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하지만 화여경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몸을 돌린 채 서 있는 영호승의 등을 빤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눕힌 그녀가 앵두처럼 붉은 입술을 벌려 호치를 드러냈다.

 

“저…….”

 

영호승은 몸을 돌리지 않고 이무환을 재촉했다.

 

“조장님, 빨리 일을 마치고 가셔야죠.”

 

“어? 어, 그래야지.”

 

이무환은 느닷없는 상황에 영호승과 화여경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화여경이 마저 입을 열었다.

 

“혹시… 승 오라버니……?”

 

이무환이 눈을 크게 뜨고 영호승에게 물었다.

 

“저 여자가 멋쟁이 이름을 아는데? 자네도 알아?”

 

영호승이 원망어린 눈빛으로 이무환에게 사정했다.

 

“저 먼저 가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이무환은 단칼에 영호승의 부탁을 외면했다.

 

“안 돼.”

 

“조장님!”

 

“뭔지 모르지만, 풀 게 있으면 풀어. 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뜻밖이었는지 영호승이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이를 갈았다.

 

“세 살 때부터 혼자 아파하는 사람을 봐왔는데 말이지, 옆에서 보는 것도 더럽게 지겹더라고. 그러니까 멋쟁이는 그렇게 살지 마.”

 

“조장…….”

 

“풀 수 없을 것 같으면, 아예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던지.”

 

“하지만…….”

 

“후우… 젠장,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스무 살 먹은 놈이 꼭 영감처럼…….”

 

이무환은 자신이 생각해 봐도 한심한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화여경을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더 예뻤다.

 

“이보쇼, 우리 멋쟁이대원을 잘 아쇼?”

 

화여경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 예…….”

 

“그럼 이야기 나눠보쇼. 그리고…….”

 

이무환은 벙 찐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중년 무사를 쳐다보았다.

 

“당신들은 잠깐 나하고 함께 나가서 이야기 좀 합시다.”

 

어이가 없는지, 막 영호승에게 뭐라 하려던 갈의중년인이 입을 반쯤 벌린 채 굳어버렸다.

 

“나와 보라니까요?”

 

이무환의 재촉에 갈의중년인의 코가 분노로 벌렁거렸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그러나 이무환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아아, 여기서 시끄럽게 해봐야 폐만 되지 않겠수.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니까요?”

 

그때 조용히 있던 백의중년인이 성큼 걸음을 옮겼다.

 

“좋아, 나가지. 앞장서게.”

 

미처 생각지 못했는지 갈의중년인이 백의중년인을 바라보았다.

 

“형님?!”

 

“어차피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우도 알지 않는가? 저 검운장의 젊은이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알고 싶군.”

 

그러고는 영호승을 바라보았다.

 

“너무 달라져서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군. 어쨌든 영호 가문과의 옛일을 생각해서 시간을 주긴 한다만, 길게는 줄 수 없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일, 깨끗이 마무리 짓는 것이 너를 위해서도 나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둘째 어르신.”

 

순순히 일이 풀리는 것 같자 이무환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 시원시원한 양반이군. 자, 갑시다!”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화여경도, 영호승도, 막위와 단우경과 혁수린도. 그리고 금안전장의 대총관인 금태성도 멍하니 몸을 돌린 이무환의 등을 쳐다만 보았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휘적휘적 걸어가더니 힘차게 문을 열었다.

 

“뭐 해? 다 끝났으면 당신들도 나와!”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막위와 단우경과 혁수린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금태성도 엉겁결에 두 명의 서기를 데리고 그들을 따라 나갔다.

 

그렇게 내실에 두 사람만이 남자 영호승의 눈이 화여경을 향했다.

 

“오랜만이다. 팔 년 만인가?”

 

“정말… 승 오라버니였군요.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어요.”

 

“그냥 지나가지 그랬느냐.”

 

“그럴 수 없다는 걸 오라버니가 더 잘 알잖아요?”

 

“이미 모든 것을 잊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하지만… 비록 태중혼약이라고 해도 오라버니와는…….”

 

화여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얀 목련에 붉은 물이 든 것처럼 영롱하게 아름다웠다.

 

영호승은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지그시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태중혼약은 집안 어른들이 한 것이다. 그리고 집안 어른들이 그 약속을 깼으니 그 또한 없는 일로 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그냥 남매처럼 지내는 것도 괜찮지 싶다. 그래도 먼 친척뻘은 되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위지호천과 혼인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나와 비교할 수도 없이 대단한 사람이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망설인 영호승이 말을 이었다.

 

“으음……. 그리고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위지호천에게 안 좋은 버릇이 있다. 그것만 조심한다면 별 문제 없을 것이다.”

 

“저도… 들었어요.”

 

‘그래? 하지만 네가 들은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한 것은… 나중에 말해주마.’

 

왜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닌 위지호천이란 말인가.

 

한때 친구였던 그하고의 혼인만은 절대로 반대하고 싶다. 누구보다 자신이 그를 잘 아니까.

 

하지만 자신이 그에 대한 것을 밝힌다고 혼사가 깨질까?

 

천만에! 오히려 질투에 눈먼 치졸한 인간으로 비웃음만 살 게 분명하다. 게다가 용화문의 다급한 상황으로 봐서는, 그런 이유로 혼사가 깨질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후우, 구차하게 굴지 말고 진즉 항주를 떠났어야 했는데…….”

 

차라리 둘이 도망치면 어떨까 하는 것도 생각해 봤었다.

 

그러나 화여경이 몰래 떠나면, 용화문은 위지 가문의 분노에 망할 수밖에 없을 터. 화여경은 가족들의 불행을 빤히 알고도 자신과 도망칠 여인이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시도조차 못하고 지켜만 본 지 이 년, 가슴에 진 멍울만 더 커진 자신이 아니던가.

 

‘그랬으면 이렇게 마주 서서 네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영호승은 가슴이 하얗게 타 들어갔다. 입을 여는데 입안에서 재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랬으면 이렇게 마주치지 않았을 텐데. 괜히 신경 쓰게 한 것 같아 미안하구나.”

 

끝내 화여경의 눈에 진주 같은 이슬이 맺혔다. 그녀도 영호승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털어낼 수 없는 어깨의 짐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아니에요. 미안한 건 저예요. 정말 미안해요, 오라버니.”

 

영호승의 눈빛도 파르르 떨렸다.

 

“앞으로 태중혼약에 대해선 더 이상 말하지 말자. 조금 전 우리 조장 말 들었지? 그 사람 말대로 풀 수 없으면 깨끗이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화여경의 슬픔에 찬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정말 재미있는 분이더군요. 어떻게 보면 순진해 보이기도 하고요.”

 

화여경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열기가 느껴진다.

 

‘수, 순진? 조장이?’

 

영호승은 착잡한 와중에도 어이가 없어 목이 콱 막혔다. 그렇다고 강력히 부정하기에는 처해진 상황이 어정쩡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지. 아마… 곧 너도 저 사람의 이름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될 것이다.”

 

성격이 얼마나 괴팍한지, 손 씀씀이가 얼마나 지독한지!

 

‘그때가 되면 순진하다는 생각을 구만 리 너머로 버리게 될 거다.’

 

그때다. 언뜻 엉뚱한 생각이 드는 영호승이었다.

 

‘조장이 위지호천을 이길 수 있을까? 만일 이길 수 있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절정에 도달했다.

 

한순간 영호승이 어느 때보다 가라앉은 눈으로 화여경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 하자.”

 

“하세요, 오라버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들어드릴게요.”

 

여인으로 쉽지 않은 대답을 하는 화여경의 눈에 어떤 열망이 떠올랐다.

 

그녀를 향해 영호승이 말했다.

 

“내년 봄의 혼사를 겨울로 미뤄라.”

 

“예?”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부탁에 화여경의 눈이 커졌다.

 

그런 화여경을 향한 영호승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힘이 들어갔다.

 

“때로는, 세월이 진실을 말해줄 때도 있는 법이니까.”

 

 

 

한편 이무환은 천천히 걸어서 금안전장의 넓은 마당 한가운데 서더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징그럽게 맑군.”

 

사람들이 자신의 뒤를 따라 방을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무환은 천천히 고개를 내리고 내실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백의중년인과 갈의중년인이 먼저 나오고 있었다.

 

“할 이야기가 뭔지 듣고 싶군.”

 

갈의중년인이 다가오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무환이 풀썩 웃었다.

 

“아니, 나이 드신 분들이 그렇게 눈치도 없습니까? 저 두 사람,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자리 좀 만들어주면 어디가 덧납니까?”

 

“뭐, 뭐라?”

 

“뭐 내가 우리 조원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말이죠. 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니까요?”

 

“이, 이런 건방진 놈이! 네가 지금 검운장을 믿고 나를 놀리겠다는 거냐?!”

 

갈의중년인, 화중명의 분노가 고스란히 이무환을 향했다.

 

하지만 이무환은 태연히 백의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일, 저 사람이 검운장의 대주나 당주가 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백의중년인의 눈에서 이채가 번뜩였다.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는 흐르는 강물을 되돌릴 수 없네.”

 

“흠…….”

 

이무환은 발밑의 자갈을 톡톡 찼다. 비룡도에서 나름 고민을 할 때의 버릇대로. 그러다 돌이 없자 땅을 콕콕 찍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화중명이 눈을 치켜뜨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자신을 마당의 자갈처럼 무시한다 생각한 듯했다.

 

“정말 맞아야 정신을 차릴 놈이로구나!”

 

이무환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거참, 생각할 때 가만 놔두면 어디에 뿔이라도 납니까?”

 

“뭐, 뭐라고? 이, 이놈이 그래도!”

 

더는 못 참겠는지 화중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한 걸음에 이 장의 거리를 좁힌 그가 우수를 쫙 펼쳐 뻗었다.

 

이무환은 빤히 쳐다보다가, 화중명의 손바닥이 석 자 앞에 다다랐을 때서야 느닷없이 좌수를 들어 화중명의 손바닥을 냅다 후려쳤다.

 

팡!

 

대기가 바람이 꽉 찬 돼지 방광에 바늘을 갖다 댄 것처럼 터지며 귀청을 울렸다.

 

“흡!”

 

헛바람을 들이키며 주르륵 물러선 화중명은 부릅뜬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이 저릿해서 팔꿈치까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 가슴이 울렁거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다시 덤빌 수도 없었다.

 

이무환이 장난처럼 후려친 일장에는 그가 막아낼 수 없는 거력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물러선 그를 향해 이무환이 말했다.

 

“더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 봐준 거요. 다음에는 봐주지 않을 거요. 명심하쇼.”

 

고저 없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드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끝날 즈음에는 머릿속이 울렁거렸다. 

 

안색이 창백해진 화중명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백의중년인, 화중인이 침중한 표정으로 나섰다.

 

그라 해서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동생의 표정만 보고도 뭔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용화문의 부문주인 화중인이라 하네. 자네가 이 일에 꼭 나설 이유라도 있나?”

 

“내 수하의 일이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풍운대 일개 조장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일지 모르는데도?”

 

“그거야 당신들 판단이지요. 당신들의 판단을 나에게 강요하지는 마십시오.”

 

화중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름이 뭔가?”

 

“이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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