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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4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4화

 

14화

 

 

 

 

 

 

 

 

“예?”

 

영호승 등 네 사람이 동시에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흑도 무리와 돈 거래를 한다고? 

 

하지만 이무환은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대홍루의 일을 마무리 짓고 찾아가 보자고.”

 

갑자기 엄습하는 불안감. 

 

네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머리를 미미하게 흔들었다.

 

이 엉뚱한 조장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그러는 걸까?

 

가랑비처럼 스며든 불안감이 네 사람의 가슴을 축축이 적실 즈음.

 

두두두두!

 

마차 한 대가 대로 저편에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햇살 때문인지 마차를 이끄는 말들의 갈기가 기름을 칠한 것처럼 번들거리고, 붉은 용이 지붕 위에 멋지게 내려앉은 화려한 마차였다.

 

이무환은 이맛살을 찌푸린 채 옆으로 비켜섰다. 마차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다섯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그때였다.

 

흔들리는 주렴 사이로 마차 안의 광경이 슬쩍 보였다.

 

순간 이무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물… 이다!’

 

마차 안에는 두 명의 중년인과 한 명의 여인이 앉아 있었는데, 연녹색 궁장을 입고 머리에 기다란 봉황잠을 꽂은 채 수심에 잠긴 여인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듯했다. 마치 화공이 정성을 다해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용화문의 마차가 왜 저렇게 급하게 달려가는 거지?”

 

그때 영호승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이무환이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는 마차야?”

 

“용화문의 마차입니다.”

 

용화문이라면 항주의 다섯 세력 중 하나다. 검운장 이전의 항주제일세력.

 

그러나 이무환에게 중요한 것은 용화문이 아니었다.

 

“안에 겁나게 예쁜 여자가 타고 있던데.”

 

이무환의 말에 영호승이 눈빛을 반짝였다.

 

“혹시 기다란 봉황잠을 꽂고 있지 않았습니까?”

 

“멋쟁이도 봤어?”

 

“소문을 들었지요. 용화선자에 대한 소문은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무환이 눈을 흘겼다. 왠지 그 말을 하면서 목소리가 떨려나오는 영호승이다.

 

“모르는 사람이 없기는. 나는 모르잖아?”

 

“그거야 조장이 너무 아는 게 없어서 그런 것이죠.”

 

“…….”

 

‘헉!’

 

‘흡!’

 

단우경과 막위와 혁수린이 영호승의 용기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무환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그럼 멋쟁이는 항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겠군. 그렇지?”

 

“적어도 조장보다는 많이 알 겁니다.”

 

이상할 정도로 지지 않으려 하는 영호승이다.

 

사실이 그러니 뭐라 할 수도 없는 일. 이무환은 콧방귀를 뀌고 다른 것에 대해 물었다.

 

“킁,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용화선자의 이름이 뭐지?”

 

“화여경이라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만일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려 한다면 포기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

 

“그녀는 임자가 있는 몸이니까요.”

 

“그게 누군데?”

 

영호승이 한 자 한 자 힘을 주어 말했다.

 

“절정공자(絶頂公子) 위지호천.”

 

단우경 등이 움찔하며 슬며시 고개를 돌린다. 그들도 알고 있다는 말.

 

이무환이 다시 물었다.

 

“그놈… 세?”

 

혁수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중원오신룡 중 하난데…… 정말 모르십니까?”

 

이무환이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중원오신룡? 훗, 용이 다 얼어 죽었는가 보네. 별게 다 용용거리게.”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다섯 명의 후기지수를 칭하는 말이죠. 아마 그들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중원에서 조장님밖에 없을 겁니다.”

 

“흥! 그들이 오신룡이라면, 나는 용을 부리는 천제(天帝)다.”

 

네 명의 조원은 눈동자만 돌려 이무환을 흘겨보았다.

 

이무환이 강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네 사람이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무환이 중원오신룡보다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이무환의 나이가 스무 살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오신룡과 같은 나이대인 오륙 년 후에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짐작할 뿐.

 

‘천제보다는 천괴(天怪)가 낫겠네.’

 

영호승은 가까스로 목에 걸린 말을 삼키고 나직이 말했다. 타이르듯이.

 

“나중에 그들을 만나면 신중하게 상대해야 합니다. 성질대로 하지 마시고 말이죠.”

 

이무환이 물끄러미 영호승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진정이 담긴 눈빛이다. 그들이 그만큼 강하다는 말.

 

‘하긴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알겠어? 나도 내 능력을 제대로 모르는데. 좌우간, 까짓 거 나중에 붙어보면 알겠지!’

 

어쨌든 자신을 걱정하는 영호승의 눈빛에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 이무환은 밝은 표정으로 버럭 소리쳤다.

 

“뭘 봐? 가자고!”

 

그러고는 홱 몸을 돌려 대홍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순간 이무환의 등을 바라보는 영호승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대홍루의 내부는 항주의 주루답게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이무환이 촌놈처럼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가자 점소이가 다가왔다. 그러다 이무환의 가슴에 쓰인 ‘풍운’이라는 글자를 보더니 즉시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이무환은 코를 킁킁거리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여기 음식 맛있나?”

 

점소이가 잠시 멍하니 이무환을 바라보더니 웃음을 참고 말했다.

 

“그거야 당연합지요. 항주에서 제일은 아니더라도 손가락 안에는 들어갑니다요.”

 

“그래? 혹시 말이야, 상산에 가봤어? 성하루라는 곳 알아?”

 

“예?”

 

“모르면 말고.”

 

이무환의 입에서 또 무슨 엉뚱한 말이 나올지 모르는 일. 재빨리 혁수린이 나섰다.

 

“총관은?”

 

“아 예,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조장님, 가시지요.”

 

혁수린과 영호승이 억지로 이무환을 재촉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점소이가 뒤에 대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저런 촌놈이 어떻게 풍운대의 조장이 된 거지?”

 

발딱 고개를 들고 이층을 바라보던 이무환이 그 말을 들었는지 멈칫했다. 

 

흠칫한 영호승이 즉시 나철위의 말을 상기시켰다.

 

“대주께서 조용히 다녀오라고 했지 않습니까?”

 

“누가 뭐랬어? 그냥 점소이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나중에 물어보십시오. 우선은 임무가 먼저 아닙니까?”

 

“하긴, 물어본다고 해도 알지 못할 것 같은데…….”

 

“예?”

 

의아해하는 영호승은 바라보지도 않고 이무환은 이층을 쓸어보았다.

 

조금 전 아래를 내려다보던 눈길이 하나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대단한 고수 같았는데…….’

 

절대 나철위나 사마추경에 비해 뒤지는 자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자에게서 왠지 괴이하고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누군데 그런 기운을 지녔지?’

 

그 시각.

 

대홍루를 나선 흑의인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는 놈이군. 누구지? 검운장에 저런 놈이 있었나?’

 

눈이 마주친 것은 찰나였다. 그 찰나의 순간에 그는 숨을 멈췄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몰랐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결코 그가 잘생겨서는 아니었다. 그냥, 그냥 마음에 걸렸다.

 

오히려 그래서 더 기분이 이상했다.

 

‘어떤 놈인지 한번 알아보라고 해야겠어. 감히 나 광유의 숨을 멈추게 하다니.’

 

 

 

이무환은 옆머리를 긁적이며 내실로 들어갔다.

 

내실에는 두 개의 상자를 앞에 두고 볼이 통통한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대홍루의 총관, 임자수였다.

 

임자수는 다섯 사람만 왔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무환과 십삼조를 처음 본 그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이무환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임무에 나선 놈이 팔짱을 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모호한 표정으로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조금 덜 떨어진 놈 같군.’

 

나름대로 판단을 내린 그가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호시탐탐 은자를 노리는 놈들이 하나둘이 아닌데, 믿고 맡겨도 되겠나? 보아하니 처음 임무를 맡고 나온 대원 같은데……. 에잉, 도대체 풍운대가 요즘 왜 이래? 이런 초보 떨거지 삼류들에게 어떻게 거금을 맡기라는 거지?”

 

슬쩍 고개를 든 이무환이 간단하게 말했다.

 

“못 믿겠으면 당신이 직접 하든지.”

 

“뭐?”

 

임자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어이가 없는지 그는 한참만에야 삿대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너 이 새끼,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따위 말버릇이야?”

 

당연히 그런 말에 꿈쩍할 이무환이 아니었다.

 

“손가락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부러지면 책임 못 지거든요.”

 

“뭐, 뭐야?”

 

“전에 어떤 놈이 손가락 내밀었다 부러진 적이 있었죠, 아마?”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결국 영호승이 나서서 임자수를 말려야만 했다.

 

“우린 임무를 맡기 위해 왔지, 총관님의 잔소리를 들으려고 온 게 아닙니다. 좀 참으시지요.”

 

“어쭈? 이것들이 정말! 너희 몇 조야? 조장이 누구야?”

 

그때까지도 이무환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바람에 가슴의 하얀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임자수로선 당연히 나이 어린 이무환이 조장일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임자수를 향해 영호승이 넌지시 말했다.

 

“혹시 소문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는 새로 생긴 십삼조의 대원들입니다.”

 

“십삼조고 나발이고…….”

 

방방 떠서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임자수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십… 삼조? 악귀의… 그 십삼조?”

 

그제야 영호승이 눈짓으로 팔짱을 푼 이무환을 가리켰다.

 

“저분이 바로 십삼조의 조장님이십니다.”

 

“헉!”

 

임자수의 심장이 격렬하게 고동쳤다.

 

그도 소문을 들었다.

 

풍운대가 한 사람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고 했다. 그에 의해 풍운대의 조장들 다수가 바닥을 기고, 대원들 수십 명이 몸져누워 방에서 나오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풍운대에는 몇 날 며칠 동안 살얼음 같은 긴장이 흘렀다고 했다.

 

오죽하면 철검대원들조차 얼마 전부터 풍운대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악귀 이무환.

 

요 며칠, 대홍루에 들린 풍운대와 철검대 무사들이 그 이름을 안주 삼아 술을 물 마시듯이 했으니, 총관인 그가 모를 수가 없었다.

 

“네가… 다, 당신이… 이무환?”

 

임자수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누르고 더듬거리며 물었다.

 

이무환이 그런 임자수의 눈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어떻게 할거요? 맡길 거요, 말 거요? 그냥 가요?”

 

 

 

잠시 후.

 

은자가 든 상자는 막위와 단우경이 들고, 이무환과 영호승과 혁수린이 두 사람을 에워싼 형태로 대홍루를 나섰다.

 

이무환은 흐뭇한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손에는 임자수가 죄송하다며 넌지시 찔러준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무게로 봐서 은자 열 냥은 될 듯했다.

 

풍운대원들의 보수가 은자 열다섯 냥이니, 열 냥은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우리 일 끝나고 나면 맛있는 거 사먹자고.”

 

“칠도회는 언제 찾아갈 겁니까?”

 

“밥 먹고.”

 

 

 

2

 

 

 

항주의 황금 중 반이 쌓여 있다는 곳. 금안전장은 항주의 다섯 세력 가운데 가장 역사가 긴 금안방(金雁幇)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돈이 흐르는 곳에는 정보가 고이게 마련. 그들의 축적된 정보와 수백 년간 쌓인 경험은 항주는 물론 절강제일이었다. 때문에 검운장조차 그들을 인정해 상호 협조의 관계를 유지하고, 작은 돈은 그들에게 맡길 정도였다.

 

대홍루를 나선 십삼조는 곧바로 금안전장으로 향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다섯 개의 다리를 건너고, 네 번가량 길을 꺾자 금안전장의 황금빛 기와가 보였다.

 

한데 금안전장을 마주한 대로에 들어섰을 때였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던 이무환의 눈이 커졌다.

 

“어? 저 마차는?”

 

금안전장의 정문 옆에 마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용화문의 마차였다. 요물이라 생각될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 화여경이 타고 있었던 마차.

 

“저들도 금안전장에 맡길 것이 있어서 왔나?”

 

“전장이 꼭 돈을 맡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돈을 빌려주기도 하지요.”

 

영호승의 말에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맡아주기만 해서는 이문이 남지 않을 것이었다.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야 이문이 남겠지.

 

“그럼 빌리러 왔을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 말에 영호승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이무환이 그런 영호승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해봐.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그냥 들은 말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글쎄, 그게 뭐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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