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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3화

 

13화

 

 

 

 

 

 

 

 

이무환은 연못을 향해 손을 저었다.

 

순간 촤악! 물이 튀면서 물고기 두 마리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사마추경은 허공에 떠서 입만 뻥긋거리는 물고기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똑같이 하라면 자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무환은 이제 스무 살의 청년이 아닌가.

 

이무환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된 사마추경은 들뜬 기분에 웃음마저 나왔다.

 

“허허허, 대단하구나. 정말 네가 내 손자 맞는 거냐?”

 

“제 어머니가 사마 성에 은 자 이름을 쓰셨다는데, 그런 딸이 없다면 아닐 수도 있겠죠.”

 

오랜 세월,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고 살아온 노인답게 호들갑을 떨며 반기지는 않았지만, 기뻐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무환도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다행히 조금 전까지의 우울함은 거의 다 사라진 것 같다. 말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기마저 도는 얼굴. 이십 년 만에 딸의 소식을 가지고 돌아온 손자를 보고 기뻐하는 노인. 그게 사마추경의 현 모습이었다.

 

 

 

“당분간 풍운대에 있을 겁니다.”

 

“왜? 내가 말해서 괜찮은 별원을 하나 비워보마.”

 

“아닙니다. 지금은 그곳이 편합니다. 그리고 저… 아직은 저에 대해서 다른 분들께 알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외조부님. 괜히 저 때문에 소란이 이는 것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외조부’라는 말에 사마추경의 눈 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무환이 뭘 걱정하는지 그가 왜 모를까.

 

자식들 대부분은 이무환의 아버지를 용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무환을 쫓아내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또한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시기하는 손자도 있을 것이고.

 

사마추경은 단 하나 있는 외손자가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쫓겨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절대로!

 

“그래? 알았다. 내 당분간은 모른 체하마.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너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 마라. 그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해라. 내가 뭐든 해줄 테니까.”

 

이무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전호 아저씨에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속으로 뜨끔한 사마추경이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킁, 그놈 혼 좀 내려고 했더니.”

 

“그분 잘못은 없어요. 제가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녀석, 힘들게 살아온 놈이 어찌 그리 마음이 순한 것이냐? 에혀, 다른 손자 놈들도 다 너처럼 얌전했으면 좋으련만. 어떤 놈은 개똥에 얼굴을 처박지를 않나…….”

 

풍운대의 무사들이 들었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버지가 들었으면 뭐라 했을까?

 

이무환은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외조부님도 그렇게 보이죠? 그런데 아버지는 왜 저만 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지 모르겠어요.’

 

 

 

이무환은 식사를 하며 전호에게 외조부를 만난 사실을 말했다.

 

전호는 입에서 음식파편이 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방 잘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진작 그랬어야지! 정말 잘했다, 잘했어!”

 

“아마 외조부님도 전 숙부님을 뭐라고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다 말씀드렸거든요.”

 

“그래? 어이쿠! 그러고 보니 큰일 날 뻔했구나. 하하하하!”

 

비록 친혈육은 아니지만, 이무환은 털털하고 단순하면서도 남의 기쁨을 자신의 기쁨처럼 여기는 전호가 진짜 숙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버지도 좋아했던 거겠지.’

 

그렇게 전호와 즐거운 식사를 마친 이무환은 석양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검정당을 나섰다.

 

풍운대로 가는 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이 넓은 땅에 혼자가 아니라는 걸 생각하자 기분이 새로웠다.

 

외조부, 숙부.

 

단순한 단어인데도 그 속에 만감이 들어 있는 듯했다.

 

언젠가는 형, 동생도 생기겠지.

 

‘형보다는 동생이 나은데. 그것도 여동생이. 가만? 사마하연이라고 했던가? 무지 예쁘다고 하던데.’

 

무려, 예쁜 여동생이다.

 

게다가 성격도 좋다고 했다.

 

별원에서 잘 나오지 않아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떠나기 전에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몰래 보고 떠나지 뭐.

 

‘우흐흐, 만나면 뭐라고 할까? 내가 네 오빠다? 아니면 오빠라고 불러다오? 크크크, 멋진 오빠가 옆에 있다는 걸 알아다오, 하연아!’

 

생각만 해도 몸이 붕 뜰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풍운대까지 날아서 가고 싶을 정도였다.

 

이무환이 한껏 즐거워진 기분을 만끽하며 검신각 옆을 지날 때였다. 문득 석양이 지는 서쪽의 높은 나무 위에 누군가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응? 누워 있어?’

 

검운장 요지의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되고도 남거늘,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누워 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그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는다. 보지 못한 것인지, 그게 그의 임무인지는 몰라도.

 

이무환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 위에 누워서 수행할 임무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보슈!”

 

그냥 지나치기도 그렇고, 일단 나무 가까이 가서 누워 있는 괴한을 불러보았다.

 

그런데 고개만 슬쩍 틀더니 다시 원위치하는 것이 아닌가.

 

평범한 옷차림, 가슴에 끌어안고 있는 한 자루 검도 평범해 보였다.

 

“거기 있으면 높은 사람들이 지랄한단 말이오. 그만 내려오지 그러슈?”

 

괴한이 이번에는 한참 이무환을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참지 않는 이무환이다.

 

이무환은 냅다 나무를 걷어찼다.

 

떵!

 

우르르르…….

 

지진이라도 난 듯 아름드리나무가 부르르 떨며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흔들렸다.

 

겨우 붙어 있던 낙엽들이 함박눈처럼 떨어졌다.

 

그제야 괴한이 반응을 보였다. 그는 깜짝 놀라 자신이 누워 있던 굵은 나뭇가지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이무환은 자신의 이 장 앞에 내려선 그를 보고 훈계하듯이 말했다.

 

“높은 사람들이 지랄 떨면 아래 있는 사람만 피곤해지는 법이우. 그러니 어지간하면 잠은 방에 가서 자도록 하시구랴.”

 

찰나간에 괴한의 표정이 서너 번은 변했다.

 

찡그렸다,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이마를 좁혔다 하더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웃기는 놈이군.”

 

“놈?”

 

이무환의 눈도 가늘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일단 한 대 패고 물어보는 게 나을 듯했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아 한 번 더 참았다.

 

“나, 풍운대의 조장인데, 당신 누구요?”

 

괴한이 대답했다.

 

“나, 사마강이다.”

 

이무환이 움찔했다.

 

사마강. 가주인 사마성운의 장남.

 

‘젠장, 난 또 일반 무사인 줄 알았지.’

 

옷차림만 보면 영락없이 말단 무사인데 가주의 장남이란다. 다음대의 가주가 될 일순위 후보.

 

물론 상대가 가주의 장남이라고 해서 기가 죽을 이무환이 아니었다. 문제는 사마강이 나이 스물아홉으로, 외사촌형들 중 제일 큰 형이라는 점이었다.

 

“그런데 왜 거기 누워서 자고 있는 거요?”

 

조금 말을 조심했다. 나중에 꼬치꼬치 문제 삼으면 귀찮아질 테니까. 

 

“오늘따라 석양이 좋을 것 같아서 올라가 있었다. 내일 아침 해까지 볼 생각이었지.”

 

이무환이 힐끔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이 조금 붉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좋긴 좋군. 근데 석양이 좋으면 다른 곳에서 볼 것이지, 왜 하필 나무 위에서 보는 거요?”

 

“낙조(落照)를 검에 담아보고 싶었거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도 베어보고 싶고.”

 

‘어쭈? 말은 제법?’

 

말뿐이 아니었다. 내공도 제법 깊어 보이고, 고요히 가라앉은 눈도 깊어 보였다.

 

사마충과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

 

조금 엉뚱한 면이 있지만, 이무환은 그런 사마강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무환이 불쑥 말했다.

 

“그럼 바닷가로 가지 그러쇼. 석양은 몰라도, 아마 아침 해는 이곳보다 훨씬 나을 거요.”

 

“바닷가?”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이무환에게 물었다.

 

“잘 아는 곳이 있나? 이 부근 말고 말이야.”

 

아는 곳이야 있다. 장한도도 있고, 비룡도도 있고.

 

하지만 이무환은 다른 곳을 추천했다.

 

“상산으로 가보슈.”

 

“상산?”

 

“아침 해가 진짜 멋지죠. 특히 성하루라는 곳의 음식이 끝내주는데……. 쩝, 나도 가서 먹고 싶군.”

 

말끝에 침까지 삼켜가며 중얼거리는 이무환이다.

 

사마강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점차 눈빛이 굳어졌다. 

 

뒤늦게야 이무환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인지한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 알면서도 별반 놀라는 기색이 없고, 툭툭 던지는 말투도 여전했다. 

 

그리고 조금 전의 일.

 

가볍게 찬 일각에 아름드리나무가 비명을 질렀었다. 나무에 귀를 대고 있던 자신은 분명히 들었다. 나무의 결이 일제히 어긋나며 질러대던 고통에 찬 비명을!

 

그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이름이 뭔가?”

 

“이무환.”

 

“설마… 자네가 악귀?”

 

‘제기랄, 벌써 그렇게 소문이 났나?’

 

순간이었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은 사마강의 우수가 검을 잡아갔다.

 

너무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살기도 없어서 그냥 손을 옆으로 휘젓는 듯했다.

 

이무환은 사마강이 검을 잡아 뽑자 마주 걸음을 내딛으며 좌수로 원을 그리고 우수를 앞으로 내밀었다.

 

두 사람의 간격이 일순간에 다섯 자 거리로 좁혀졌다.

 

찰나, 사마강의 검이 반쯤 뽑히다 멈췄다.

 

후우웅!

 

두 사람 주위의 낙엽이 허공으로 휘말려 올라갔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후우, 그 양반, 성질도 급하네.’

 

이무환은 사마강의 검병(劍柄) 끝을 우수 검지로 누르고 나직이 말했다.

 

“위험한 짓은 하지 맙시다. 시끄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사마강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검을 뽑지도 못하고 막혔다. 

 

다 뽑았다 해도 이길 수 없다는 뜻. 절강삼수(絶江三秀) 중 하나인 자신의 검이 꺾였다는 말이다.

 

중도에 잘린 기운이 몸속에서 요동치다 가라앉고 나서야 사마강은 겨우 침음을 흘렸다.

 

“으음, 미처 몰랐군. 내가 이렇게 약했다니…….”

 

보통 사람과는 다른 결론을 내리는 사마강이다.

 

이무환이 그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 나름이죠. 제가 좀 강하거든요.”

 

사마강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뜩였다.

 

그는 한참 동안 이무환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검을 검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래도 상산이라는 곳에 가봐야겠군. 그곳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베고 나면 자네를 찾아가지.”

 

“찾아올 필요는 없고, 그냥 이곳에 있으쇼. 그럼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이곳을 떠난다는 말인가?”

 

“귀하가 아침 해를 자를 때쯤이면 없을지도 모르죠.”

 

“음, 그럼 최대한 빨리 베어버려야겠군. 먼저 가겠네.”

 

그 말을 끝으로 사마강이 홱 몸을 돌렸다.

 

이무환은 그의 몸이 조금 전보다 커진 것처럼 느껴졌다.

 

‘검운장은 구룡성처럼 쉽게 흔들리지는 않겠는 걸?’

 

이무환도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날 밤, 절강삼수 중 한 사람인 낙일공자 사마강은 서신 한 장만 달랑 던져놓고 검운장을 떠나갔다.

 

 

 

아침 해를 베고 나서 돌아오겠습니다.

 

 

 

제6장. 수하를 위해서

 

 

 

 

 

 

 

1

 

 

 

첫 번째 임무가 떨어진 것은 검운장에 온 지 십팔 일 만이었다.

 

진시 말. 아침을 먹자마자 나철위가 이무환을 불렀다.

 

“대홍루에 가서 호위를 해줘야겠네.”

 

풍운대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검운장 산하 사업장에서 벌어들인 금전을 전장까지 호위하는 것이다.

 

나머지 사대는 아주 큰 금액이 아니면 그러한 임무를 맡지 않았다.

 

“대주, 임무를 마치고 잠시 개인적인 일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너무 무리하며 돌아다니지는 말게.”

 

“제가 뭐 말썽이나 피우고 다니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하, 하, 하. 걱정 마십쇼. 조용히 할 일만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저번 철검대 오청학과의 일처럼 말인가?”

 

“음? 그자가 뭐라 했습니까?”

 

“말은 하지 않았네만, 철검대의 대주가 묻더군. 혹시 들은 말 없냐고.”

 

“하하. 난 또, 남자새끼가 속 좁게 토라진 줄 알았죠. 걱정 마십쇼. 별일 없었으니까요. 그냥 서로 좋게, 좋게 이야기만 나눴을 뿐입니다.”

 

이무환의 대답에 나철위는 괜히 불안해졌다.

 

‘임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걸 그랬나?’

 

그사이 이무환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섰다.

 

“그럼,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겠습니다.”

 

 

 

대홍루의 위치는 영호승 등이 알고 있어서 이무환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다섯 개의 다리를 건너고 수로를 따라 일각가량을 걷자, 저만치 마차 네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대로가 나타났다. 대홍루가 있다는 서문대로였다.

 

일행이 서문대로로 접어들 즈음,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던 이무환이 지나가듯이 물었다.

 

“혹시 ‘칠’ 자가 쓰인 칼을 차고 다니는 놈들에 대해 아는 거 있어?”

 

갑작스런 질문에 영호승이 힐끔 눈을 돌렸다.

 

“칠도회(七刀會) 말입니까? 놈들은 흑도 무리들인데, 왜 그놈들을 찾으시는 겁니까?”

 

“받을 돈이 조금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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