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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11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2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11화

 

11화

 

 

 

 

 

 

 

 

차복승이 교육시킨다고 한 지 일각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빠박!

 

한 바퀴 바닥을 뒹군 차복승이 벌떡 일어섰다.

 

“우측으로 굴렀으면 두 번째 공격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이무환이 중얼거리며 한 걸음 내딛고는 주먹을 뻗었다. 

 

바람을 가른 주먹이 조금 전과 비슷한 방향으로 휘어지며 차복승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차복승은 재빨리 우측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복승의 몸이 허공으로 한 자가량 떠올랐다.

 

“컥! 이 비겁한…….”

 

“세상은 생각대로 흐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더구나 남의 말을 믿고 함부로 움직이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도 하고 말이죠.”

 

이무환이 또 중얼거리며 다가가자 차복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섰다.

 

“헉, 헉! 이, 이제 그만…….”

 

이무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은데, 조금 더 하지 그럽니까?”

 

차복승이 부르르 몸을 떨며 있는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돼, 됐네. 그 정도면 충분히…….”

 

“그럼… 여기서 끝내면 나중에 서운해질지도 모르니까, 서너 가지만 더 배워보고 끝내죠.”

 

문을 빠끔히 열고 지켜보던 풍운대원들이 진저리를 쳤다.

 

‘진짜 악귀 같은 놈이다!’

 

 

 

3

 

 

 

풍운대에 십삼조가 급조되었다. 그리고 이무환이 십삼조의 조장으로 임명되었다.

 

조원은 달랑 이무환 혼자였다.

 

나철위가 이무환을 십삼조의 조장으로 임명하는 자리에서 말했다.

 

“아직 대원들에 대해 잘 모를 테니 시간을 두고 살펴서 조원을 뽑아보게.”

 

자신이 속한 조에 배속되지 않은 것만도 어딘가.

 

풍운대원들은 나철위의 탁월한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무환이 십삼조의 조장으로 임명된 지 사흘. 풍운대가 완전히 변해 버렸다.

 

할일 없이 마당에 나와 햇볕 아래 앉아서 시시덕거리던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초강도 더 이상 개미 싸움을 즐기지 않았고, 소지공도 풀피리를 불지 않았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가 나오지 못하게 막아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마당에 나와 있다가 이무환에게 걸리면 이무환이 조원을 뽑는다는 명목으로 비무를 하자고 했는데, 땅바닥을 서너 번 구르기 전에는 이무환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사흘이 지나자 사람들은 아예 마당에 나오려 하지를 않았다. 이무환이 불러도 못 들은 척 방 안으로 들어갔다.

 

희희낙락하던 풍운대에 썰렁한 바람만 불어대자 참다못한 조장들 몇이 나철위에게 이무환을 내보낼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나철위는 이무환의 만행(?)에 대해 일체 관여하지 않고, 조장들에게 이무환을 쫓아낼 수 있는 방법만 알려주었다.

 

“정 내보내고 싶으면 실력으로 쫓아내게나.”

 

하나마나 한 말에 조장들은 더 이상 이무환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미친개는 그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

 

대신 그 말로 위안을 삼았다.

 

 

 

풍운대에 찬바람이 분 지 닷새.

 

덜컹!

 

이무환이 방을 나가자 오가던 사람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어떻게 하든 그와의 만남을 피하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였다.

 

한데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방에서 나오는 자들도 있었다.

 

모두 네 명.

 

키가 크고 무표정한 얼굴에 철검 한 자루를 움켜쥐고 있는 자가 일조의 영호승. 

 

덩치가 크고 통나무처럼 단단해 보이는 몸에 도끼를 든 자가 사조의 막위. 

 

빼빼 마른 몸에 눈빛이 칼날 같으면서 두 자루 칼을 쓰는 자가 육조의 단우경. 

 

계집처럼 예쁘장한 얼굴에 꼬챙이 같은 검을 쓰는 자는 십조의 혁수린.

 

그들만은 다른 자들과 달리 이무환을 피하지 않았다. 매일 먼지가 나도록 두들겨 맞으면서도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언뜻 그들을 보는 이무환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영호승.

 

나이 스물여섯. 소주 태생. 해남검파의 영향을 받은 파랑검객 전추산의 제자. 일류 하급의 무위.

 

단우경.

 

나이 스물여섯. 상주 태생. 비마쌍도 양화수의 제자. 일류 하급의 무위.

 

막위.

 

나이 스물다섯. 금화 태생. 자신은 스물여섯이라고 박박 우김. 악도부 종철의 제자. 일류 하급의 무위.

 

혁수린.

 

나이 스물셋. 호주 태생. 수양검 장문기의 제자. 이류 상급의 무위.

 

 

 

십삼조의 조장으로 임명된 그날, 이무환은 그들의 신상명세를 먼저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다음 날 아침부터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그들도 자신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좀 놔두면 안 되겠소?”

 

영호승은 잔뜩 무게까지 잡고 그렇게 말했다.

 

이무환은 당연히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자존심을 슬슬 긁어서 끝내 그로 하여금 손을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검을 빼 들고 달려드는 그를 단 십 초 만에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작신 두들겨 패버렸다.

 

그다음부터는 수월했다.

 

단우경과 막위와 혁수린도 소문을 들었는지,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느니 그냥 싸우겠다며 순순히 무기를 들었다.

 

이무환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십 초씩만 공격해서 그들의 얼굴을 땅바닥에 눕혔다.

 

그때부터였다. 네 사람은 이를 악물고 이무환에게 도전했다.

 

그렇게 닷새. 이무환은 네 사람과 각각 대여섯 번씩 손을 나누어봤다.

 

그가 손을 나누어본 바에 따르면, 네 사람의 실력은 생각대로 조장들 밑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장들보다도 강했다. 단지 조장이 되는 것이 귀찮아서 일개 조원으로 있을 뿐.

 

“어째 오늘은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군.”

 

이무환의 말에 영호승이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항상 지란 법은 없지 않겠소, 이 조장?”

 

“흠, 그렇게 굳어 있어서야 어디 십 초나 제대로 받아내겠어?”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 오늘은 만만치 않을 거요.”

 

이무환이 씩 웃었다.

 

“좋아, 그럼 우리 내기할까?”

 

영호승을 비롯한 네 사람이 움찔하며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풍운대원들치고 첫날의 내기에 대한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날 이후, 내기라는 말은 거의 금지어가 되다시피 했으니까.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다 생각했는지 영호승이 물었다.

 

“어떤 내기를 하자는 말이오?”

 

“네 명이 합공해서 나에게 지면, 내 수하가 되는 거지.”

 

영호승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세 사람의 몸에서도 싸늘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지금까지는 일대일로 비무를 했다. 덕분에 매일 쥐어 터졌다.

 

하지만 네 사람이 합공을 한다면… 운이 좋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존심?

 

웃기는 소리!

 

이무환은 자존심으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네 사람이 합공을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사람. 그게 며칠간 겪어본 이무환에 대한 결론이었다.

 

영호승이 뒤를 돌아다보았다. 네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천천히 네 사람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차피 합공하고도 진다면 수하가 되어도 할 말이 없는 일.

 

“좋소. 그렇게 하겠소.”

 

이무환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번졌다.

 

이들 네 명만 수하로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다른 수하를 받아들일 필요도 없었다. 많아봐야 귀찮기만 하니까.

 

사실 강제로 호명해서 수하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마음에 없는 복종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지, 꼭 두들겨 패는 것이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남이야 믿든 말든.

 

“그럼 시작해 볼까?”

 

이무환이 두 손을 털듯이 아래로 내려쳤다.

 

순간 이무환의 전신에서 해일 같은 기운이 밀려 나왔다.

 

쏴아아아!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듯 영호승을 비롯한 네 사람의 표정이 벌레라도 씹은 듯 와락 일그러졌다.

 

‘제기랄! 여태까지 진짜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말이잖아?’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영호승이 먼저 검을 빼 들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모두 전력을 다해서 공격해!”

 

영호승의 검은 남해검파의 검을 기반으로 발전한 쾌검이었다.

 

하지만 이무환의 손은 그의 검보다 빨랐다. 게다가 일수 일권에 실린 힘은 결코 영호승이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쩌저저정!

 

삼 초가 지나기도 전에 영호승의 검이 뒤로 밀려났다.

 

그 틈을 뚫고 단우경의 칼이 스며들었다.

 

따당!

 

찰나, 어느새 빼 들었는지, 도집째 허리에서 빠져나온 이무환의 묵도가 단우경의 칼을 비껴 쳐내며 도신을 거슬러 올라갔다.

 

“늦어! 더 빨리! 적어도 세 번의 변화는 더 얽혀야 상대가 속지!”

 

묵린도가 단숨에 팔까지 올라가자 막위가 커다란 도끼를 휘두르며 뒤에서 덮쳤다.

 

“여기도 있어!”

 

휘잉!

 

십여 개로 늘어난 도끼가 사방을 제어한 채 이무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이었다. 이무환의 신형이 안개가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허억!”

 

빤히 보고 있는 중에 이무환이 갑자기 사라지자 막위의 눈이 커졌다.

 

이무환은 수류보를 펼쳐 막위의 뒤로 돌아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발을 휘돌려 찼다. 피할 틈도 없이 막위의 옆구리에 이무환의 뒤꿈치가 틀어박혔다.

 

퍽!

 

“크윽!”

 

짧은 신음을 흘린 막위가 바닥을 뒹굴었다.

 

동시에 기회를 노리고 있던 혁수린이 뾰족한 꼬챙이 같은 검을 내밀어 이무환의 측면을 공격했다.

 

이무환은 묵린도를 내밀어 혁수린의 꼬챙이 같은 검을 휘감았다.

 

회룡탄의 도세.

 

혁수린의 꼬챙이 같은 검이 소용돌이에 말려든 풀잎처럼 방향을 잃고 옆으로 밀려나자,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이무환의 좌수가 혁수린의 가슴에 닿았다 떨어졌다.

 

혁수린은 입술을 깨물고 뒤로 물러났다. 가슴을 내려다보자 가슴의 옷자락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완벽한 패배.

 

그사이 단우경이 도를 움켜쥔 손을 늘어뜨린 채 힘없이 물러선다.

 

그리고 다시 삼 초, 마침내 영호승마저 목에 닿은 이무환의 칼을 내려다보며 패배를 시인했다.

 

“우리가… 졌소.”

 

“그럼 십삼조의 조원이 되는 거지?”

 

“물론… 이오.”

 

그런데 기이했다. 패배한 사람들의 얼굴이 그다지 어둡지가 않았다. 차라리 잘되었다 생각한 듯 후련해 보이는 표정.

 

그들을 향해 이무환이 나직이 말했다.

 

“더 강해져야 돼. 나는 말이야, 약해 빠진 수하는 원치 않거든.”

 

영호승이 입술을 씹었다.

 

“얼마나 강해져야 한단 말이오?”

 

“일 년 안에 절정의 경지에 도달했으면 좋겠는데.”

 

“…….”

 

한참 만에 영호승의 입이 열렸다.

 

“이거 한 가지만은 분명하군요. 우리가 미친 조장을 만났다는 거 말이오.”

 

이무환이 씨익 웃었다.

 

“그럼 그대들도 미쳐 봐.”

 

무엇에든 미치지 않고서는 강해질 수 없으니까!

 

 

 

 

제5장. 빨간 물고기

 

 

 

 

 

 

 

1

 

 

 

이무환은 영호승을 비롯한 네 사람을 수하로 거둔 뒤부터 더 이상 풍운대의 대원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풍운대원들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해서 마당을 지나다녔다.

 

한데 며칠이 지나도록 정말로 이무환이 아무도 건드리지 않고 지내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열흘이 지난 오늘은 손을 들어 인사까지!

 

“밥들 먹었어?”

 

그제야 사람들은 정말로 풍운대에 봄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 예. 조금 있다가……. 그런데 이 조장님, 어디 가시려고요?”

 

“숙부님 좀 만나고 오려고.”

 

“아, 예. 그럼 다녀오십시오, 조장님!”

 

이무환은,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풍운대원들의 열망에 찬 표정을 뒤로한 채 풍운대를 나섰다. 오랜만에 전호를 만나 점심을 함께 먹기 위해서였다.

 

 

 

한 번 지나온 길. 찾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 이무환은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느긋이 걸었다.

 

바쁠 것도 없었고, 눈치 볼 것도 없었다.

 

파란 무복의 가슴에 새겨진 풍운(風雲)이라는 두 글자는 그의 신분과도 같았다. 더구나 글자의 색이 하얀 것은 조장이란 말.

 

“아! 날씨 좋다!”

 

이무환은 따뜻한 햇살을 가슴에 안고 유유히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던 시비들 중 몇이 자신을 알아보고 몽롱한 눈으로 말을 걸지 않았다면, 가끔씩 다른 대의 무사들이 거들먹거리며 시비조로 건들지만 않았다면, 귀찮아서 그들을 피해가려 하지만 않았다면 그대로 전호의 거처에 도착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풍운대를 나선 지 반의반 각이 되기도 전이었다.

 

“이봐! 혹시 자네가 풍운대의 꼴통이라는 이무환 아닌가?”

 

가슴에 ‘철검’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옷을 입은 자 셋이 자신을 가로막더니, 한 놈이 은근슬쩍 신경을 건들었다. 글씨가 자신처럼 하얀 걸로 봐서 철검대의 조장인 듯했다.

 

‘언제 봤다고 꼴통이야?’

 

“그러는 댁은 누구요?”

 

당연히 이무환의 말투가 곱게 나오지 않았다.

 

철검대의 조장으로 보이는 자가 같잖다는 듯 피식 웃으며 이무환을 째려보았다.

 

“나는 철검대의 오조장인 오청학이라 하네. 그런데 한가한가 보군, 뒷짐까지 지고 걸어가는 것을 보니. 어디 나들이라도 가나?”

 

“남이야 콩콩 강시처럼 뛰어서 가든, 꽥꽥대며 오리걸음으로 가든 댁이 무슨 상관이오?”

 

“호오, 우리 철검대가 순찰 담당이라는 걸 몰랐나? 이거 문제군. 풍운대에서 그런 것도 알려주지 않던가?”

 

“킁, 어쨌든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되는 일이니 나는 그만 가보겠소.”

 

“아아, 그냥 가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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