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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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7화
7화
동시에 쇠망치로 후려친 듯한 충격이 복부를 강타했다.
퍽! 퍽!
허공에 한 자가량 붕 뜬 두 사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입만 쩍 벌렸다.
이무환은 칼자국이 놓친 칼을 허공섭물로 거두어들이고는 독사눈마저 부러진 손가락을 잡아당겨 앞에 내던지고 타작을 시작했다.
이 년 전, 정한도에 들이닥쳤던 해적들을 패듯이.
“어디 대답해 보라니까요? 맞아요, 틀려요?!”
퍽! 퍼벅!
이무환은 묵린도를 칼집째 휘둘러져 세 사람의 몸을 골고루 어루만졌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그런데 묘했다. 세 사람은 몸만 떨 뿐 신음 한마디 흘리지 않았다.
그들이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목구멍까지 치밀고 올라온 신음을, 비명을 항주가 떠나가라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찌나 빠르고 교묘하게 두들겨 패는지 소리 지를 틈도 없었고, 처절한 고통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려서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이무환의 타작은 멈추지 않았다.
퍼벅! 퍽! 퍽!
얼마나 지났을까. 이무환이 잠시 손을 멈췄다.
“어때요? 이제 생각이 납니까? 백 냥입니까, 백 문입니까?”
그제야 부들부들 떨며 몸을 세운 세 사람의 입에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끄어어……. 고, 고, 공자님!”
“제, 제발 용서를……! 크윽…….”
“흐으으으, 마, 맞습니다요, 백 냥!”
십여 년 동안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을 당연한 듯이 겪으며 살아온 이무환이 아닌가.
칠도회의 말썽쟁이 삼사(三詐)가 겪는 고통은 그에게 고통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당연히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을 수밖에.
오히려 입가에는 웃음마저 감돌았다.
세 사람은 그 모습에 더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온몸을 떨었다.
“좋습니다. 이제야 기억이 나는가 보군요. 그럼 백 냥을 줘야죠?”
“지, 지금은 열 냥밖에 없는…….”
빡!
묵린도가 칼자국의 옆머리를 후려쳤다.
이무환은 눈이 뒤집힌 채 팩 쓰러진 칼자국은 쳐다보지도 않고 독사눈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독사눈이 사흘 굶은 강아지처럼 가련한 눈으로 이무환을 올려다보았다.
“저도 이, 이십 냥밖에…….”
“그래요? 그럼 칠십 냥이 부족하군요. 그럼 당신은?”
사팔뜨기가 부르르 몸을 떨고는, 눈동자를 최대한 한곳으로 모아 대답했다. 잘하면 자신만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저는 삼십 냥 있습니다요!”
이무환의 이마에 세 줄기 주름이 그어졌다.
세 사람의 간도 그만큼 오그라들었다.
그때 활불의 은혜와 같은 말 몇 마디가 이무환의 입에서 떨어졌다.
“합이 육십 냥이라……. 할 수 없죠. 그거라도 받는 수밖에. 일단 품속에 있는 거 다 내놓아봐요.”
세 사람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지더니, 자신들의 전 재산을 꺼내놓았다.
이무환은 그들이 꺼내놓은 것 중 세 개의 작은 주머니만 끌어당겼다.
“용아가 그러더군요. 나처럼 순진해 보이는 사람은 항주에 가면 조심해야 한다고. 사기꾼들이 노릴지 모른다면서 말이지요.”
순진? 이 악귀 같은 놈이?
용아가 누군지 알 것도 없었다. 그놈은 눈이 삔 놈이 분명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세 사람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요, 공자님!”
“공자님처럼 순.진.한. 분은 정말 사기꾼들을 조심해야 합니다요!”
“그럼요! 항주에 사기꾼들이 어디 한두 놈입니까?”
이무환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군요. 내 특별히 생각해서 사십 냥은 다음에 받기로 하지요.”
“다, 다음에… 요?”
독사눈이 뱁새눈이 되어 물었다.
이무환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빙긋 웃었다.
“계산은 정확해야지. 안 그렇습니까?”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당분간 항주에서 지낼 것 같으니까, 며칠 내로 찾아가지.”
“……!”
세 사람은 떨리는 몸을 억지로 참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말투가 반말로 변한 것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때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세 사람이 꺼내놓은 것 중 한 가지 물건이 눈에 뜨였다.
그것은 사(四) 자가 새겨진 네 치 길이에 세 치 넓이의 육각 동패였는데, 둘레에 새겨진 회오리 문양이 무척 정교했다.
“저건 뭐지?”
독사눈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내놓은 것을 바라보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재빨리 그것을 집어 들려고 했다.
샥!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무환의 손이 그것을 끌어당겼다.
이무환은 허공섭물로 끌어당긴 동패를 뒤집어 봤다. 뒤쪽에도 글자가 적혀 있었다.
“풍(風)?”
“고, 공자님! 그것은 별것이 아닙니다요.”
“글쎄, 별것 아닌 이게 뭐냐니까?”
질문을 던진 이무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금 전에 두들겨 팰 때와 같은 표정.
독사눈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얻은 것인데…….”
“훔치던가 뺏었겠지 뭐.”
“…예, 다 죽어가던 소매치기 한 놈한테 뺏은 것인데…….”
사흘 전이었다. 독사눈은 소변을 보기 위해 으슥한 곳을 찾던 중 정신없이 도망치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평소 가끔 봤던 소매치기 놈이었다.
소매치기가 도망칠 일이 뭐가 있을까.
한 건 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는 벽에 바짝 붙어 숨어 있다가 소매치기가 다가오자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냅다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그러고는 소매치기의 품속을 뒤져 묵직한 비단 주머니를 꺼내자마자 재빨리 골목을 벗어났다.
동패는 그 비단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이었다. 백오십 냥의 은자와 함께.
곧바로 집으로 가 그것을 봤을 때만 해도 독사눈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은자 백오십 냥이면 며칠 술값으로 충분했으니까. 계집까지, 그것도 자신이 그동안 눈독을 들였던 월화를 옆구리에 끼고!
문제는 이틀이 지난 어제 아침에 벌어졌다. 자신이 비단 주머니를 뺏은 소매치기는 흑비파에 속해 있었는데, 바로 그 흑비파 일당 사십 명이 모두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목이 잘리거나 부러진 채.
처음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깔려 몸부림치던 월화의 코 먹은 신음 소리가 하루가 지나도록 귀에 쟁쟁했으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흑비파 일당이 목 잘려 죽기 전, 누군가가 비단 주머니를 훔친 소매치기에 대한 것을 수소문하고 다녔다고 한다.
불길한 느낌이 든 독사눈은 집으로 돌아가 숨겨놓았던 비단 주머니를 꺼내 태워 없애고 남아 있던 은자만 빼내 쓸 만큼만 놔두고 구석에 숨겼다.
그리고 동패를 땅에 파묻으려다가 그것도 안심이 안 돼서 전당강에 던져 버릴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집을 나서자마자 두 명의 친구를 만나고, 전당강으로 가던 중에 어수룩해 보이는 이무환이 보인 것이다.
‘안 돼! 저것이 나한테 있었다는 게 밝혀지면 나도 목이 잘려 죽을 거야!’
독사눈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대로 다 말할 수는 없었다.
목이 잘려 죽기는 더 싫었다.
‘악귀 같은 놈! 돈만 챙기고 그냥 갈 것이지!’
바로 그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차라리 동패가 저 악귀 같은 놈의 손에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 만일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모든 것을 저 악귀에게 떠넘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어차피 저 욕심 많은 악귀는 돌려주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작정을 한 듯 입술을 깨문 독사눈이 말했다.
“공자님께서 정 원하신다면… 그것을 공자님께 드리겠습니다.”
이무환은 동패를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그것마저 품속에 집어넣었다.
“흠, 독사처럼 생긴 눈깔과 달리 마음이 넓군.”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에 독사눈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환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바로 그때였다. 칼자국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 그 칼은……?”
“아! 이거?”
이무환이 깜박 잊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품속에서 은두를 하나 꺼내 그들 앞에 던졌다.
“내가 다시 산 걸로 하지 뭐.”
“예? 그럼 백 냥을 주셔야…….”
“무슨 소리지? 당신들은 이 칼을 동전 백 문도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니 그 정도면 계산을 치르고도 남을 것 같은데?”
“하지만 공자님은 백 냥을 받아야 한다고…….”
“그거야 내가 보는 값어치는 백 냥이니 당신들에게 백 냥을 받은 거고, 당신들이 보는 값어치는 철전 백 문이니 나는 백 문만 내면 되는 거지. 하하하하! 이래봬도 내가 계산은 정확하다고. 안 그.렇.습.니.까?”
존대로 변한 마지막 말에선 서리가 내리는 것 같았다.
힘을 준 눈과 마주치니 자신의 독사눈이 참새눈보다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다.
세 사람은 후닥닥 고개를 숙이고, 멍하니 바닥에 떨어진 은자를 바라보았다.
그나마도 은두는 반절로 쪼개진 반 냥짜리였다.
도둑놈! 사기꾼! 날강도 같은 새끼!
어떤 씨발 놈이 저 악귀를 털자고 한 거야!!
목구멍 속에서 그 소리가 맴돌았지만, 성질 한번 부린 대가로 맞아 죽고 싶지는 않았다.
“마, 맞습니다요, 공자.”
“그러믄입죠, 아주 정확한 계산입니다요!”
이무환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골목을 나섰다.
항주에 온 첫날부터 돈을 바치는 사람들을 만났으니 어찌 기분이 안 좋을까.
‘저런 놈들만 있으면 금방 부자 되겠군!’
3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흐트러진 머리에 빛바랜 청의를 입은 청년이 십일월의 햇살을 가슴에 안고 검운장의 정문 앞에 나타났다.
칠도삼사로부터 은자 육십 냥과 동패 하나를 항주 입성의 선물(?)로 받아 챙긴 이무환이었다.
그는 곧장 정문으로 걸어가면서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 정문 위의 현판을 바라보았다.
가로 삼 장, 세로 일 장의 거대한 현판에는 용사비등한 글씨체로 세 개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검운장(劍雲莊).
‘현판 하나 겁나게 크군.’
현판만 큰 것이 아니었다. 장원의 담은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도 않았다. 느낌으로는 비룡도보다 더 넓을 것 같았다.
‘대체 여기에 몇 명이나 사는 걸까?’
항주제일장!
그 이름은 그냥 멋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제길, 아버지는 왜 이런 곳에 사는 어머니를 꼬여서 그렇게 고생시킨 거야?!’
은근히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어머니가 고생하시다 병을 얻어 돌아가신 게 전부 아버지 탓만 같았다.
‘에혀, 어머니도 참, 아버지 어디가 좋아서…….’
“정지!”
이무환이 조금의 멈칫거림도 없이 정문에 접근하자 수문위사가 황급히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서 온 누군가?”
수문위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허름한 차림의 청년이 너무도 태연하게 다가오는 게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이무환은 눈을 내려 수문위사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떠날 즈음에는 전호라는 사람이 수문위사로 있었다고 했다. 쾌활한 성격에 어느 정도 의리도 있고, 조금은 융통성도 있는 사람.
아버지는 그와 친구처럼 지냈었다고 했다.
‘그가 지금도 있을까?’
이무환은 문득 그의 존재가 궁금해졌다.
“나는 이무환이라 하오만, 혹시 전호라는 사람이 지금도 있소?”
수문위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무환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전 향주님을 잘 아시오?”
향주?
재빨리 아버지의 말을 더듬어봤다. 향주라면 커다란 부서에서 갈라진 일부분을 맡고 있는 수장을 말함이었다. 검운장에는 그런 향주가 이삼십 명은 된다 했다.
‘흠, 그분이 향주로 진급했나? 잘됐군.’
어쨌건 그가 있다는 것, 그것도 향주라는 것은 좋은 징조였다. 최소한 문지기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분을 좀 만나고 싶소만?”
수문위사가 잠시 망설일 때였다.
“유가야, 무슨 일인데 그래?”
유가라 불린 수문위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전 향주님을 찾아왔나 봐.”
“전 향주? 아! 검정당의 전호 향주님?”
빼빼 마른 몸에 주독이 오른 듯 코가 붉은 무사가 이무환의 위아래를 잽싸게 훑어보고는 고개를 쳐들었다.
“무슨 일로 그분을 찾으시는 건가?”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그렇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가 붉은 무사의 목에 힘이 들어갔다. 얍삽하니 눈을 돌리는 것이 뭔가를 바라는 눈치였다.
“험, 바빠서 만나주시려나 모르겠군.”
“이십 년 전에 떠난 양 씨 성을 가진 사람 때문에 왔다고 전해주시오.”
이무환은 담담히 말하면서 반 냥짜리 은자 하나를 내밀었다.
코가 붉은 무사는 재빨리 은자를 낚아채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 맛에 문지기를 하는 거지.’
“하하하, 자네는 운도 좋구먼. 조금 전에 들어오신 것을 봤네. 내 바로 가서 말씀드리지.”
이무환은 용아에게 배운 바를 써먹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말보다도 빠른 게 돈이라 하더니……. 용아 그 녀석은 쪼그만 놈이 별걸 다 안다니까.’
반 각도 되지 않아서 코가 붉은 수문위사가 덩치 큰 중년인과 함께 나타났다.
이무환은 굳이 묻지 않고도 그가 전호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버지 말대로 덩치가 크군.’
그가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때다. 가까이 다가온 전호가 탐색하듯이 이무환을 살펴보았다.
“자네가 나를 찾아왔다고? 양씨 때문에 왔다는데……?”
걸걸한 음성에서 진한 의혹과 어떤 기대감이 묻어 나온다.
이무환은 좌우를 둘러보고 빙긋이 웃었다.
“이곳에서 이야기하기는 좀 그렇군요. 무척 중요한 이야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