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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5화

 

5화

 

 

 

 

 

 

 

 

이무환이 다시 물었다. 용아는 힐끔 주방을 바라보고는, 여인이 보이지 않자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엄마가 장사를 시작한 지 사흘도 안 돼서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어요. 검운장에서 세운 태화루보다 더 맛있다고요. 근데 검운장의 공자가 놀러 왔다가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나 봐요. 분타나 다름없는 상천문에게 넌지시 명을 내렸대요. 우리집을 문 닫게 만들라고 말이죠.”

 

검운장이라는 말에 이무환의 눈 깊은 곳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항주에 있다는 그 검운장?”

 

“맞아요.”

 

“상천문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나온 자들이 너와 네 엄마에게 행패를 부렸냐?”

 

용아가 씩 웃으며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려고 했죠. 그런데 다행히 천태산의 도장 할아버지가 와 있어서 그럴 수가 없게 되었죠.”

 

“천태산의 도장 할아버지?”

 

“예, 천태산에 영정사에 계시는 분인데, 전부터 어머니와 잘 아시는 분이에요. 무공이 겁나게 강한 분이죠. 그분이 ‘한 번만 더 힘으로 성하루를 넘본다면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고 한마디 하니까 다시는 오지 않았어요.”

 

용아가 그 말을 하면서 어깨에 힘을 줬다.

 

어쩌면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여태 자신 옆에 붙어 있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무환은 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하며 계속 말을 걸었다.

 

“흠… 그러니까, 상천문인가 뭔가 하는 곳이 천태산의 도장 할아버지 때문에 힘으로는 괴롭히지 못하고, 대신 손님들을 이곳에 가지 못하게 한다, 이 말이지?”

 

“바로 그겁니다.”

 

“세냐?”

 

“예?”

 

“그 작자들이 강하냐고.”

 

이무환의 짧은 물음에 용아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도장 할아버지에게는 꼼짝 못하지만, 이 일대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해요.”

 

“그런데 검운장하고는 무슨 관계지? 검운장은 항주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천문주가 원래 검운장의 향주였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상산에 있는 검운장의 재산을 상천문이 관리하죠.”

 

“그럼, 검운장이 문젠가?”

 

“뭐, 그렇다고 봐야죠.”

 

“그래?”

 

이무환은 어머니의 집안인 검운장으로 인해 죄없는 사람들이 핍박받는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힘 좀 있다고 자기 힘만 믿고 죄도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놈들이 싫다.”

 

“저도 그래요.”

 

“그리고 별로 강하지도 않으면서 알량한 힘으로 자기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는 놈은 더 싫어하지.”

 

용아의 눈이 반짝였다.

 

“칼을 찬 것 보니까, 아저씨도 무공을 익힌 것 같은데……?”

 

이무환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그래. 익혔다.”

 

“얼마나 강해요?”

 

“아직 강호의 무사들과 싸워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몰라. 그래도 남에게 지지 않을 만큼은 될 거다. 아버지가 그랬으니까.”

 

해적들을 단체로 두들겨 팬 적은 있지만, 그들과 강호의 고수들을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도 용아의 눈이 어떤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그럼 상천문의 무사들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글쎄, 이길 수 있을걸?”

 

이무환의 대답에 용아가 품 깊은 곳에서 꼬깃꼬깃 접은 유지를 꺼내 펼쳤다.

 

“이거, 제 보물이거든요? 이거 드릴 테니까, 저희를 좀 지켜주시면 안 돼요?”

 

아무리 많은 걸 보고 자랐다고 해도,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이무환의 입가로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강호에 청부를 맡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지금 네가 나에게 청부하는 거냐? 그걸 주고?”

 

용아가 고개를 툭 떨구었다.

 

“엄마랑 천태산에 갔다가 동굴 속에서 얻은 건데, 지금은 이것밖에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반드시 제대로 된 청부금을 드릴게요.”

 

유지에 싸인 것은 어린아이 손바닥 절반만 한 반쪽짜리 옥패였다.

 

용이 제법 섬세하게 음각되어 있었는데, 색이 탁해서 그리 값어치가 나갈 것 같지는 않았다.

 

“흠, 어디 보자. 옥의 재질은 몰라도, 그림이 제법 멋지구나! 마음에 드는 걸?”

 

“그럼… 청부를 받아주는 거예요?”

 

“오래는 안 되고, 상황이 끝날 때까지 있어주마.”

 

순간 용아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아참! 따라오세요. 제가 아저씨 주무실 방을 가르쳐 드릴게요.”

 

용아는 가게의 문을 닫은 이후에도 이무환의 방에서 졸릴 때까지 있다가 갔다.

 

어떻게 된 게, 그 시간 동안 용아가 알려준 강호에 대한 지식이 아버지가 틈만 나면 떠들어대던 것보다 많았다.

 

 

 

3

 

 

 

그날 저녁.

 

온 누리를 하얗게 물들인 창백한 달빛을 머리에 이고서 한 사람이 성하루를 나섰다. 이무환이었다.

 

성하루를 나선 이무환은 용아에게 들은 말을 더듬어 상산의 동쪽에 있는 커다란 장원을 씩씩거리며 찾아갔다.

 

‘어머니 집안의 이름을 욕되게 하다니. 내 이놈들을!’

 

아침에 갈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화가 나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반 각 후. 장원의 정문 앞에 도착한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문을 걷어찼다.

 

쾅!

 

커다란 문짝이 발길질 한 번에 안쪽으로 날아갔다.

 

“웨, 웬 놈이냐?”

 

당황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이무환이 안으로 십여 걸음 들어갔을 때서야 안쪽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무환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퍽! 빡!

 

짧은 격타음이 울림과 동시, 십여 명의 무사가 사방으로 날아가고, 몰려나오던 자들이 파도가 갈라지듯 쫘악 갈라졌다.

 

“당신은 누, 누구요? 누군데 이곳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요?”

 

개중에 제법 지위가 높아 보이는 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무환은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버럭 인상을 썼다.

 

“행패? 그것도 괜찮겠군. 문주를 만나기 전에 진짜 행패가 무엇인지부터 알려줘야겠어.”

 

그러고는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서 굵기가 한 자쯤 되는 기둥을 붙잡고 마른 보릿대 잡아 뽑듯 뽑아냈다.

 

우르릉!

 

기둥이 통째로 뽑혀 나가자 커다란 건물이 내려앉을 듯이 흔들렸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기둥을 휘두르며 몰려든 수십 명의 무사 사이로 뛰어들었다.

 

“행패가 뭔지 확실히 알려주지!”

 

휘이이잉!

 

열다섯 자의 거대한 기둥이 목봉처럼 휘둘러졌다.

 

폭풍 같은 기세!

 

절정의 고수가 아닌 한, 검이나 도로 막는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한 상황이다.

 

와르르르! 콰과광!

 

건물도 무너지고, 돌을 쌓아 만든 담도 무너졌다.

 

휘이잉!

 

퍼버버벅!

 

대경한 무사들이 기둥을 피하기 위해 한여름 메뚜기처럼 폴짝거리며 뛰어올랐다.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납작 엎드린 무사들 위를 폭풍이 쓸고 지나간다.

 

“저, 저, 저럴 수가!”

 

“피, 피, 피해! 미친놈이다!”

 

“으악!”

 

“케엑!”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기둥을 십여 번 휘두르자 벽에 달라붙은 몇 명만이 서 있을 뿐이다.

 

휘잉! 휘이잉!

 

이무환은 두어 번 더 기둥을 휘두르고는, 꼿꼿이 세워 바로 옆에다 내리꽂았다.

 

쿠웅!

 

기둥이 두 자 깊이로 박히면서 지진이 난 듯 땅이 흔들리고, 그걸 본 무사들의 간은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들어 콩알만 해졌다.

 

이무환은 기둥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좋은 말로 할 때 여기 주인 나오라고 해. 아니면… 이 기둥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이마에다 도장을 찍어버릴 테니까.”

 

조금 전에 말을 걸었던 자가 벌떡 일어섰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소협! 바로 문주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며 일어난 먼지가 가라앉기도 전이었다.

 

한 사람이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왔다. 눈처럼 하얀 비단옷에 울긋불긋 멋지게 장식된 검을 들고.

 

그가 바로 상천문의 문주, 상산검호 위대경이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이오?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다고…….”

 

“원한?”

 

이무환의 몸이 기둥에서 떨어졌다 싶은 순간!

 

퍽!

 

“컥!”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발길질에 위대경의 몸이 휭 날아갔다.

 

이무환은 날아가는 위대경을 따라가면서 그의 멱살을 잡아 땅바닥에 내던졌다.

 

쾅!

 

“허윽!”

 

데굴데굴 굴러간 위대경이 안간힘을 다해 반쯤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이무환이 자신의 방문 목적을 말했다.

 

“나, 성하루의 보표로 고용된 사람인데, 간단히 말하겠수. 앞으로 쓸데없는 짓 하지 마쇼.”

 

“성… 하루?”

 

“내가 급한 볼일 때문에 항주를 가는데, 만일 오늘 이후로 한 번만 더 손님을 가로막았단 말이 들리면…….”

 

이무환은 말을 길게 끌며 기둥을 뽑아냈다.

 

대경해서 뒤로 주르륵 물러서는 사람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든다.

 

하지만 이무환은 그들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둥을 든 채 삼 장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순간이었다.

 

휘이이잉!

 

기둥이 반쯤 무너진 건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앙!

 

굉음이 어둠을 뒤흔들고, 먼지구름이 창백한 달빛을 가리며 하늘 높이 피어올랐다.

 

그 사이로 천천히 내려선 이무환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나는 귀찮은 것을 아주 싫어하니까 명심하쇼. 나를 귀찮게 하면… 부러진 다리를 끌고 이곳에서 농사나 지어야 할 거요. 주춧돌도 남지 않을 테니까.”

 

위대경은 덜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거, 걱정 마십시오, 소협. 다시는… 다시는 성하루를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할 수 있으면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줘도 괜찮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그리고 한 번만 더 검운장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면, 내 다시 돌아와서 십 년간 풀뿌리도 안 나게 만들 테니 그리 아쇼.”

 

말을 맺는 이무환의 눈에서 묵광이 일렁였다.

 

위대경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소, 소협.”

 

 

 

4

 

 

 

해는 전날과 다름없이 동쪽에서 떠올랐다.

 

하지만 세상은 하룻밤 사이에 전날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특히 용아에게는.

 

“아저씨!”

 

용아는 이무환이 자는 구석방으로 달려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잠자고 일어났더니 상산이 섬으로 변한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 볼을 꼬집어봐도 분명한 일이어서 한참 동안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아저씨!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아세요? 상천문의 무사들이 아침부터 뭐라고 하고 다니는지 아세요?”

 

용아는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자신이 듣고 온 소문을 정신없이 떠들어댔다.

 

“앞으로 성하루의 장사를 방해하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는데요. 웃기죠? 어제만 해도 성하루에 가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는다고 했는데 말이에요.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그죠?”

 

하지만 방 안에서는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용아는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슬그머니 방문을 잡아당기는 용아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덜컹.

 

방문이 힘없이 열리자 용아는 방 안으로 고개를 밀어 넣었다.

 

그런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방 안을 바라보는 용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씨이……. 도망갔잖아? 겁쟁이!”

 

 

 

용아가 ‘겁쟁이’라 소리치며 울먹거리던 그 시각.

 

이무환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대충 흥얼거리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옥이 입술에 뭐가 묻었을까. 깨알일까, 뒷산의 산딸기즙일까……. 손가락으로 콕, 입술로 싸악, 깜짝 놀란 옥이가 눈을 감네. 루루루루……. 옥이 가슴에는 뭐가 들었을까……. 휘이, 휘이…….”

 

커다란 산이 옆으로 흐른다.

 

오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천태산이란다. 용아가 말했던 도사 할아버지가 산다는 그 천태산.

 

문득 이무환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떠올랐다.

 

“용아 녀석, 방에 없는 걸 보고 겁나서 도망갔다고 안 할지 모르겠네? 훗, 어쨌든 강호에 나오자마자 좋은 일 했으니 하늘이 복을 왕창 내려줄 거야!”

 

상천문을 나온 그 길로 상산을 떠났다. 아침이 되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였다.

 

상천문의 일이 소문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몰려드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될 테니까.

 

아쉬운 건 그 맛있는 아침을 먹지도 못하고 떠나왔다는 것이었다.

 

돈까지 미리 줬는데 요리를 먹지 못하고 그냥 오다니.

 

“쩝, 할 수 없지. 원래 잠룡은 구름 속으로 숨어서 다닌다고 하잖아?”

 

고개를 돌리자 천태산의 완만한 구릉이 눈에 들어왔다. 구릉에 펼쳐진 끝없는 차밭이 녹색 뭉게구름처럼 보였다.

 

용아의 말에 의하면, 항주까지 닷새 거리라 했다. 닷새 후면 어머니가 살던 곳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머니 집안에 대해 생각하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제때 식사나 하시는지 모르겠군.’

 

 

 

* * *

 

 

 

이무환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던 그 시각.

 

이충량은 한 상 가득 차린 채 점심 식사를 했다. 정한도로 나가 옥이 엄마를 데려왔는데, 옥이 엄마가 이것저것을 가져와 상을 차린 것이다.

 

“이것도 드셔보세요, 아……!”

 

“아! 우적우적, 흠, 그것 달콤 쌉싸래하니 괜찮구려.”

 

“희한하게 가을인데도 절벽 밑에 새싹이 났지 뭐예요? 그래서 뜯어왔죠.”

 

이충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이 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뜯어온 것을.

 

“호, 혹시… 뿌리까지 뽑지는 않았소?”

 

“뿌리는 놔뒀어요. 그래야 내년에 또 뜯어먹죠.”

 

‘휴우…….’

 

이충량의 얼굴에서 걱정이 사라지고 웃음이 떠올랐다.

 

“잘했소. 나중에라도 절대 뿌리는 뽑지 말고 싹만 뜯구려.”

 

“알았으니 걱정 마시고 좀 더 드세요. 여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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