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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3화

 

3화

 

 

 

 

 

 

 

 

그런데 그가 막 사자탄에 뛰어들려고 했을 때였다.

 

문득 아들의 아래쪽에서 하얀 뭔가가 소용돌이와 함께 휘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사자탄에 산다는 괴물인가 싶었다.

 

스릉!

 

이충량은 허리의 칼을 빼 들고는 괴물이 소용돌이를 따라 돌다 자신 쪽으로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뛰어들더라도 괴물부터 처치하지 않으면 위험만 더할 뿐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곧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괴물이 아니었다. 매끈한 주둥이를 가진 그것은 뜻밖에도 하얀 줄이 그어진 돌고래였다.

 

“어?”

 

이충량이 눈을 휘둥그렇게 뜬 순간, 금방이라도 소용돌이 가운데로 빨려들 것 같던 아들의 몸이 쑥, 위로 올라왔다.

 

돌고래가 아들의 엉덩이를 받쳐 위로 들어 올린 것이다.

 

돌고래의 주둥이를 꼭 잡은 아들도 놀랐다기보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는 굳이 자신이 물의 흐름에 대해 가르칠 필요가 없어졌다.

 

아들은 매일같이 돌고래와 함께 놀았는데, 최소한 물에 대해선 돌고래가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지.’

 

이충량은 피식 웃으며 절벽 아래쪽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뱀장어새끼가 보이지 않는군.’

 

아들의 친구 중에는 길이가 칠 장이나 되는 바다뱀도 있었다. 심해에나 산다는 그놈이 어떻게 아들의 친구가 된 건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아들에게 얼마나 많은 바다의 친구들이 있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다만 아들이 해가 다르게 강해지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바다의 친구들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물론 섬 뒤쪽 절벽 밑의 삼도 영향을 미쳤을 테지만, 그보다는 바다 속의 비밀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 후에 사자탄에서 만년금구의 내단 같은 거라도 얻은 모양인데……. 미리 알았으면 내가 더 신경 써서 약효를 최대한 끌어올렸을 거 아냐? 자식,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뭐, 말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크게 서운한 것은 없었다. 다만 조금, 아주 조금 야속할 뿐이었다.

 

‘자식, 두 개 얻었으면 나도 하나 주지.’

 

좌우간 이충량은 아들이 탄 배가 정한도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도 한참 동안이나 그곳을 떠날 줄 몰랐다.

 

갑자기 마음이 텅 빈 듯 허전해졌다. 바닷바람이 몸을 뚫고 그대로 지나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부드럽게 대해줄걸.’

 

하지만 그러한 마음도 잠시, 이충량은 하늘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뭐, 잘 지내겠지. 나도 진짜 실력을 제대로 알 수 없을 만큼 강한 아이니까.’

 

그때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이 아버지!”

 

이충량의 얼굴에 핀 웃음꽂이 더욱 밝아졌다.

 

고개를 돌리자 어촌에 사는 여인이라 하기엔 얼굴이 고운 삼십대 후반의 미부가 절벽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옥이 어멈, 여기요!”

 

발그레한 얼굴로 다가온 여인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환이 갔어요?”

 

“제까짓 게 안 가고 배길 수 있겠소?”

 

“당신 몸에 대해선 이야기했고요? 환이가 삼 년 안에는 돌아와야 할 텐데.”

 

“막중한 일을 하기 위해 떠나가는 애한테 쓸데없이 그런 이야기 뭐 하러 하겠소? 어차피 낫지도 못할 병인데.”

 

“그래도 나중에 사실을 알면 괴로워할지 모르잖아요.”

 

이충량은 손을 뻗어 옥이 엄마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너무 걱정 마시구려.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아이니까. 들어갑시다.”

 

그러자 이충량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옥이 엄마가 물었다.

 

“저… 그런데 우리 사이에 대해 이야기는 했어요?”

 

순간 이충량은 옥이 엄마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이해할 거요. 다아아!”

 

그래서 밖으로 내보낸 것이 아닌가!

 

‘강호에 나가서 옥이보다 예쁜 여자들을 본다면, 놈도 생각이 달라지겠지.’

 

 

 

3

 

 

 

이무환은 타고 온 조각배를 선착장 구석에 정박시켰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아버지가 가지러 올 터였다.

 

함께 왔던 돌고래, 상아와 비아는 이미 어디론가 모습을 감춘 후였다.

 

“환 오빠!”

 

문득 선착장 끄트머리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볼 것도 없었다.

 

정한도의 꽃, 은선옥. 옥이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아직 섬을 나오려면 열흘은 더 있어야 할 텐데?”

 

이무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됐다. 근데…… 오늘은 선창에서 노는 사람이 별로 없네? 고기 잡으러 나갔나?”

 

옥이가 피식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강구 오빠 패거리들이 있었는데, 비룡도에서 배가 오는 거 보고 다 도망갔어요.”

 

“자식들, 겁은 많아가지고…….”

 

“피이, 백 명도 넘는 해적들을 전부 물귀신으로 만든 오빠를 무서워하지 않으면 누구를 무서워하겠어요?”

 

“임마, 그거야 놈들은 해적들이니까 그랬지. 내가 뭐, 섬사람들에게까지 독하게 손을 쓸 사람이냐?”

 

옥이가 절대 못 믿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게……!”

 

이무환은 그런 옥이를 향해 눈을 한 번 부라리고는 평소와 달리 한숨까지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에휴, 일단 좀 걷자. 할 말이 있으니까.”

 

 

 

선착장 우측으로는 좁고 기다란 백사장이 백색 비단 띠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무환은 십팔 세 꽃다운 소녀 옥이와 터벅터벅 백사장을 거닐었다. 그의 입이 열린 것은 백사장의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나, 떠난다.”

 

갑작스런 말에 옥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 혼자? 비룡도를?”

 

“응. 아버지의 집안에 일이 생겼다나 봐.”

 

“오빠더러 뭘 어쩌라는 거지? 그럼, 아저씨는?”

 

“아버지가 몸이 안 좋아서, 할 수 없이 내가 가는 거야.”

 

“어제 보니까 괜찮던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시무룩해 있던 옥이가 물었다.

 

“그럼 언제 오는 거야?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

 

“안 오긴? 아마 일 년이면 될 거야. 아무리 대륙이 넓다 해도 내가 마음먹고 달리면 하루에 천 리도 더 가는데 뭐.”

 

“오빠, 나도 함께 가면 안 될까? 나 놔두고 가는 게 걱정되지도 않아?”

 

발딱 고개를 쳐든 옥이가 간절한 눈으로 물었다.

 

아버지에게 이것저것 잡다한 무공을 배운 옥이다. 정한도의 장정들 중 옥이를 욕심냈다가 거꾸로 옥이에게 두들겨 맞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 만큼 옥이의 안전은 걱정될 것이 없었다. 적어도 정한도에서는.

 

그러나 강호는 다르다. 아버지 같은 고수도 죽어라 도망쳐야만 했던 곳이 바로 강호인 것이다.

 

비록 그것이 이십 년 전 일이고, 아버지가 약했을 때의 일이라지만, 그렇다 해도 그때의 아버지가 현재의 옥이보다 열 배는 강했다.

 

“안 돼. 강호는 굉장히 위험한 곳이거든.”

 

“피이,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하도 말해서 천하가 다 내 머릿속에 있는데 뭐.”

 

“아! 오빠하고 함께 다니면 좋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뜬 목소리다.

 

걸음을 멈춘 이무환은 물끄러미 옥이를 바라보았다.

 

옥이의 커다란 눈이 진주처럼 맑아 보인다.

 

연분홍빛 입술이 분꽃처럼 화사하다.

 

뽀얀 뺨이 발그레하니 달아올라 복숭아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옥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무환은 심장이 쿵쿵거리며 귀청을 울렸다.

 

“오, 오빠, 왜 그래?”

 

발그레한 얼굴로 더듬더듬 입을 여는 옥이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유난히 기다란 속눈썹도 덩달아 떨렸다.

 

“오늘도 내 입술에 뭐 묻었어?”

 

뭔가 기대감에 부푼 표정을 하고 있는 옥이의 입 안에서 새큼한 과일향이 나는 것 같다.

 

“쪼금…….”

 

“오빠가… 또 닦아주려고?”

 

이무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어.”

 

“알았… 어. 그럼… 닦아…… 죠.”

 

 

 

 

제2장. 상산(象山)의 성하루

 

 

 

 

 

 

 

1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난 것은, 구룡성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닌 지 삼 년이 지나 항주에 머물 때였다.

 

몸을 숨기기 위해 이름을 감춘 채 항주제일장 검운장에 몸을 의탁했는데, 어머니는 바로 그곳의 외동딸이었다.

 

아버지 말로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나이답지 않게 묵직한 태도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고 했다. 물론 다 믿지는 않지만.

 

그런데 아버지가 검운장에 몸을 의탁한 지 일 년, 검운장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검운장주 사마추경에게 알려진 것이다.

 

사마추경은 두 사람의 관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근본도 모르는 외톨이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제는, 어머니가 당시 임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노발대발한 외조부 사마추경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검을 뽑아 드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물론 어머니까지 죽이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정말 죽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임신한 어머니와 함께 야반도주를 감행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도망자가 된 지 석 달, 상산에서 자신이 태어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신의 세 살 생일을 이틀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 당시 절강의 바닷가를 휩쓴 역병이 어머니까지 덮쳐 버린 것이다.

 

그렇게 어이없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어머니를 묻은 지 백 일 후, 자신을 데리고 전설의 섬을 찾아 정한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십칠 년, 이제 혼자서 어머니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어머니…….’

 

부드럽던 어머니의 품이 너무도 그립다.

 

왠지 오늘따라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다.

 

 

 

‘그때는 파도치는 바다가 굉장히 무섭게 느껴졌었는데…….’

 

철썩! 처얼썩!

 

뱃전에 부딪쳐 부서진 파도가 바람에 흩날려 얼굴을 때린다.

 

시월의 바닷바람에 섞인 물기가 창끝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시원하다.

 

선수에 앉은 이무환은 점점 작아지는 비룡도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부서진 파도의 파편이 얼굴을 두들기는데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세월 한번 빠르군.’

 

비룡도에 들어간 이후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수련하다가 죽기 직전에 이른 적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아 다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허리를 밧줄로 묶어서 소용돌이 속에 집어넣기도 했었지.’

 

다섯 살 때였다. 물의 흐름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며 아버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을 사자탄의 소용돌이에 던져 넣었다.

 

그때 칡넝쿨로 만든 밧줄이 끊어졌는데, 만일 돌고래 두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더니 여섯 살 때는 비룡도의 험악한 절벽에서 갈매기들의 알을 가져오게 하고, 일곱 살이 되자 죽창 한 자루를 주고는 물고기를 잡게 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치는 곳에서 말이다.

 

여덟 살 때부터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눈을 뜨면 아버지가 절벽 위로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태양의 기운을 가슴에 담으라는, 막 잠에서 깬 갈매기도 웃어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면, 해가 지고 자정이 될 때까지 한시도 쉴 수가 없었다.

 

‘두들겨 맞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지.’

 

간단히 말해, 처절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열한 살 때 섬 뒤쪽 절벽 밑에서 발견한 삼을 도라지 먹듯 캐먹지 않았다면 몸이 견디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그때만 해도 사람들이 모두 자신처럼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열두 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정한도로 나가기 전까지는.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인도였던 비룡도에서 아버지와 단둘이서만 살았었으니까.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세상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너무도 살벌한 곳이라 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은 웃고, 울고, 힘들게 일하는 듯하면서도 즐겁게 놀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몇 시진씩 물에 젖은 목도(木刀)를 휘두르지도 않았고, 백 근이나 나가는 돌을 등에 지고 두 시진을 견디지 못한다고 두들겨 맞지도 않았다.

 

자신은 어린 나이에도 충격에서 한참 동안 헤어나지 못했다. 죽어도 비룡도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옥이를 만났다. 자기보다 두 살 적은 옥이를.

 

그리고 처음으로 알았다. 세상이 생각보다 즐겁고 재미난 곳이라는 것을.

 

옥이 생각이 나자 이무환의 눈이 게슴츠레하니 가늘어졌다.

 

‘흠, 전보다 가슴도 더 커진 것 같고, 입에서 나는 냄새도 더 좋아진 것 같고……. 같이 살자고 할까?’

 

자신의 입술로 옥이의 입술을 닦아준 게 두 번째다.

 

입 안에 뭐가 들었나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이제 정한도의 누구도 옥이가 비룡도의 미친 용, 이무환의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같이 산다고 감히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돌아오면 말해봐야지.’

 

이무환이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때였다. 뭔가가 배 옆으로 쏜살처럼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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