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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41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2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41화

 

41화

 

 

 

 

 

 

 

 

“으헉!”

 

기겁한 적의인은 날아드는 묵빛 원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크억!”

 

철벽에 부딪친 것처럼 뒤로 튕겨나간 적의인은 서너 바퀴를 구른 다음에야 몸을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무환은 허공을 선회하는 묵린도를 움켜쥐고 적의인 위로 떨어져 내렸다.

 

퍽퍽!

 

그는 적의인 앞에 내려서자마자 상대의 견정혈과 아혈을 향해 검지와 중지를 튕겼다.

 

몸을 일으키던 적의인이 벼락 맞은 고목처럼 굳어버렸다.

 

“이제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을 거야.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나직하면서도 고저가 없는 목소리.

 

지옥의 사자 같은 이무환의 목소리에 적의인의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어디서 이런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이무환은 도를 집어넣고 검지를 튕겨 적의인의 입을 벌렸다. 수뇌라 해도 객잔의 흑의인들처럼 극독을 입에 물고 있을지 몰랐다.

 

“내 말이 맞으면 눈을 두 번, 틀리면 한 번만 깜박여. 안 그러면 이빨을 하나하나 다 뽑아버릴 거거든. 독약이 어떤 거야?”

 

이무환은 갈대 하나를 꺾어 적의인의 입 안에 집어넣었다.

 

“이거야?”

 

망설이던 적의인이 눈을 한 번 깜박였다.

 

“그럼 이거야?”

 

역시 한 번이다.

 

그렇게 십여 개를 짚어가던 갈대가 오른쪽 어금니를 지날 때다. 적의인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두 번 깜박였다.

 

이무환은 진기가 흘러 강철 젓가락처럼 변한 갈대로 적의인의 어금니를 긁어냈다.

 

툭, 보통 이보다 조금 더 누런 이가 쉽게 뽑혀 나왔다.

 

이무환은 안쪽을 더 살펴보고는 독약이 든 이와 비슷한 이가 보이지 않자 다시 물었다.

 

“이게 다야?”

 

모든 걸 포기한 듯 적의인이 눈을 두 번 깜박였다.

 

그제야 이무환은 일단 아혈을 먼저 풀어주었다.

 

“혀를 깨물고 싶거든 포기해. 그럴 만한 힘도 없을 테지만, 내가 짜증내면 당신만 괴로워지거든. 일을 다 보고 나면 깨끗하게 숨통을 끊어줄 테니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거짓이 아니다. 이무환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더 심한 고통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표정.

 

적의인, 적혈삼마 중 대마 구중산은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 뭐 이런 놈이 있단 말인가. 

 

두려움을 참지 못한 그가 먼저 물었다.

 

“뭘… 알고 싶은 거냐?”

 

이무환이 잘 생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을 던졌다.

 

“먼저 하나, 당신 구룡성의 사람이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모순이 있는 대답. 그런데도 이무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게 물었다.

 

“구룡성에 속해는 있지만 구룡성의 사람은 아니다, 이 말이야?”

 

“그렇다고 볼 수도…….”

 

“마룡이야, 신룡이야? 어디에 속해 있지?”

 

움찔한 구중산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대답을 망설이자, 이무환이 들고 있던 갈대로 허벅지를 푹 찔렀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서.

 

“대답하기 싫어?”

 

“크읍!”

 

신음을 토해낸 구중산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마… 룡부.”

 

“흠, 그럼 마룡부의 주인이 삼악 중 하나라는 말인가?”

 

구중산이 몸을 격렬하게 떨며 눈을 부릅떴다.

 

이무환이 이어 물었다.

 

“그가 잠풍(潛風)의 주인인가?”

 

구중산의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고, 부릅뜬 눈이 튀어나올 듯이 불거졌다.

 

대답이 늦어지자 이무환의 발길질이 구중산의 옆구리를 빠르게 가격했다.

 

수혼각참(睡魂覺慘)의 수법.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숨을 두어 번 쉴 시간이 지나자 구중산의 몸이 덜덜덜 떨렸다.

 

“끄어어……. 그, 그, 제, 제, 발…….”

 

처절한 고통으로 버무려진 목소리가 단절되어 새어 나왔다.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툭 튀어나왔다.

 

퍽!

 

이무환이 다시 가볍게 그의 옆구리를 찼다. 그제야 떨림을 멈춘 구중산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그건 아니… 따로 있는 걸로 알고 있소…….”

 

“둘이 다르다, 이 말이지? 그럼 마룡부주와 잠풍의 주인과의 관계에 대해 아는 게 있나?”

 

담담한 목소리. 악랄하고도 독한 손속.

 

구중산은 정신적으로 완전히 이무환 앞에 무너졌다. 말투부터가 달라졌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오. 명령만 받아 움직여서…….”

 

어차피 한 번에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단순한 자들이었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 남들의 눈을 속이지 못했을 테니까.

 

“좋아, 그럼 다른 것을 묻지. 표물을 왜 뺏었지?”

 

 

 

적의인을 처리하고 돌아오는 데 반 시진가량 걸렸다.

 

객잔은 완전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흑의인의 시신들은 밖으로 내가서 땅에 묻고, 표사들과 황산검문의 제자들 시신은 한쪽 방에 안치된 상태였다.

 

이무환이 돌아오자 진세를 풀고 나와서 광룡대의 부상을 돕던 남궁산산이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참담한 주위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오빠, 다 처리했어요?”

 

“그래, 둘 다 강가에 묻어버렸다.”

 

“잘했어요. 아마 상황을 정확히 알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 상당한 혼란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요.”

 

자신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적의인들을 쫓아가 죽인 것이기도 했다. 물론 정보도 얻을 겸.

 

“몸들은 어때?”

 

이무환이 부상 부위를 천으로 감싼 채 앉아 있는 광룡대원들을 바라보았다.

 

“막 형이 조금 많이 다치긴 했는데, 움직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무환은 영호승의 말에 막위를 바라보았다.

 

천으로 감싼 막위의 어깨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팔마저 어느 한도 이상은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막위에 비하면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영호승과 단우경과 혁수린도 옷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엽상만이 상처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들이 각자 두세 명씩 처리한 덕에 싸움이 빨리 끝났다 해도, 이무환은 그들의 부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별 볼일 없는 놈들 상대하면서 그런 부상을 입다니. 만일 빨간 옷을 입은 놈들과 붙었으면 죽었을 거 아냐?”

 

엽상을 제외한 네 사람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전보다 강해진 것은 분명했다. 그것도 배 이상 강해졌다. 하지만 이무환이 바라는 경지는 아직도 요원했다.

 

이무환은 그들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내공.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공력이었다.

 

“내일부터는 심법을 집중적으로 수련해.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도, 싸울 때도, 잠잘 때도 그것만 생각해. 물론 초연십이식을 익히는 것도 소홀히 하지 말고.”

 

“예, 대주.”

 

문제는 그들이 익힌 내공심법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대문파가 가진 힘은 그들이 가진 뛰어난 심법에서 출발한다.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심법이 있기에 대문파를 이루고, 일세를 풍미하는 절세고수를 일대에 몇 명씩 배출시키는 것이다.

 

대문파들이 심법과 무공 구결을 철저히 관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뛰어난 심법을 익히지 않고도 고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들이 뛰어난 심법을 얻었다면 보다 더 높은 경지의 무공을 익혔을 게 분명했다.

 

하기에 뛰어난 심법을 얻는다는 것은 그 어떤 무공을 얻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대문파의 제자도 아니고, 일세를 풍미한 절세고수의 제자도 아닌 네 사람이 그렇게 뛰어난 심법을 익혔을 리가 없었다.

 

괜찮은 가문의 자식인 영호승조차 그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나은 심법을 익혔을 뿐.

 

이무환은 무지 아까워하면서, 정말 어쩔 수 없이 내놓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침 내가 알고 있는 심법이 하나 있는데, 적어줄 테니까 그걸 익혀. 처음에는 운용 방법이 달라서 어색할 테지만, 죽어라 익히면 지금 익힌 것들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야.”

 

네 사람의 고개가 번쩍 쳐들렸다. 네 쌍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옆에서 남궁산산이 슬며시 물었다.

 

“어떤 심법이야, 오빠?”

 

“관천일연(觀天一延)이라는 심법이야. 그게 초연십이식을 익힌 저 네 사람과 제일 잘 융화될 것 같거든.”

 

남궁산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관천일연? 설마 백여 년 전 천마교와 삼 년 전쟁 끝에 멸문당한 남창 관천검문의 심법 말이야?”

 

이무환이 시큰둥하니 말했다.

 

“맞아, 뭐, 망한 문파의 심법이라고 해서 싫은 사람은 익히지 않아도 돼.”

 

네 사람이 합창하듯이 소리쳤다.

 

“아닙니다, 대주!”

 

“죽어라고 익히겠습니다!”

 

“제가 전부터 소원하던 심법이 바로 그겁니다!”

 

“관천일연! 우와, 이름도 멋지군요!”

 

네 사람이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본다. 이제 와서 주지 않는다고 하면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이다.

 

이무환은 여전히 아깝다는 표정을 지은 채 네 사람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만일 석 달이 지났는데도 오늘같이 하찮은 놈들에게 부상당하면, 그땐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이무환과 비무하며 매일 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오는 네 사람이 아닌가. 나중 일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걱정 마십시오, 대주!”

 

“때려 죽여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침울하던 방 안 분위기가 한순간에 뜨거워졌다.

 

 

 

전상휘가 유소경과 함께 이무환을 찾아온 것은 축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광룡 대원들과 남궁산산을 내보내고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들어가도 되겠소?”

 

이미 자신이 잠을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투. 이무환은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아마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터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굳은 표정을 지은 채 이무환의 맞은편에 앉았다.

 

“도움을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하오.”

 

앉자마자 전상휘가 전과 달리 예를 다해 말했다.

 

“별말씀을. 거래하기로 했으니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름대로 겸허히 말하는 이무환을 유소경이 쏘아보았다.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어요.”

 

왠지 까칠한 말투다. 이무환도 그대로 답했다.

 

“물어보쇼.”

 

“엽 소협과 막 소협이 저희들을 찾아왔는데, 혹시 저들이 쳐들어올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조금은.”

 

“그런데 왜 좀 더 미리 말씀하지 않으신 거죠?”

 

약간은 추궁하는 듯한 말투. 이무환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는 나직이 말했다.

 

“그랬으면 저들이 그냥 돌아갔을 거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두 분도 내 앞에 앉아 있지 못하게 되었을 거요.”

 

“무슨 말이죠? 상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상세히 설명할 것도 없었다.

 

“우리만 빼고 다 죽을 테니까.”

 

유소경의 눈매가 치켜 올라갔다.

 

“본 문의 제자들이 다 죽었을 거라는 말인가요? 왜요?”

 

“더 강한 자들이, 더 완벽한 계획을 세워서 쳤을 텐데, 그랬다면 우리도 살기 바빠서 당신들을 도와줄 수 없게 되었을 거요. 우리 없이 당신들 힘만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야 할 말이 없소만.”

 

너희들 힘만으로는 절대 살아날 수 없을 거라는 말이다.

 

발끈한 유소경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흥, 그때쯤이면 공 사형과 합류한 상황일 거예요. 그러면 충분히…….”

 

그때 이무환이 툭 던지듯이 물었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뭐로 보장하는 거요?”

 

순간, 침묵이 방 안을 질식시킬 듯이 짓눌렀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전상휘가 강렬한 눈빛을 발하며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앞에 있는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한참이 지나서 전상휘의 입이 열렸다.

 

“이 대주의 정확한 말뜻을 알고 싶소.”

 

찻잔을 내려놓은 이무환이 말했다. 길게 할 것도 없었다.

 

“설마 그들이 우리만 공격했을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전상휘의 입이 다시 닫혔다.

 

유소경은 반쯤 입을 벌린 채 이무환을 주시했다.

 

“그럼… 공 사형도……?”

 

당연히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데 너무 참담한 상황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무환의 말이 옳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

 

전상휘는 이를 악물고 이무환에게 물었다.

 

“아직… 우리 거래는 유효하오?”

 

이무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번 한 약속을 쉽게 뒤집는 사람이 아니오. 단!”

 

말미를 강하게 내려쳐 끊은 그가 전상휘와 유소경을 차례대로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삼 할이 사 할이 되었소.”

 

상황이 정말 그렇다면, 사 할이 아니라 오 할이라도 감지덕지다.

 

황산검문의 명예가 걸린 일. 물러설 마음이 없는 그에겐 이무환의 도움이 절실했다.

 

‘사형 쪽의 상황이라도 알아야 돼!’

 

다시 한번 이를 악문 전상휘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도와만 주신다면, 사 할이 아니라 오 할이라도 드리겠소.”

 

이무환의 입가로 가느다란 미소가 번졌다. 

 

이럴 때 사양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인심 쓰는 척 사양하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다면야 저도 좋지요.”

 

 

 

2

 

 

 

화창한 아침 햇살이 유난히 눈부신 겨울날.

 

햇살을 등에 진 전서구 한 마리가 삼층 전각의 작은 창문 안으로 날아들었다.

 

일각이 지나기도 전, 세 개의 반지를 낀 손 하나가 모이를 먹고 있는 비둘기를 움켜쥐고 다리에서 전서통을 떼어냈다.

 

손의 주인은 통에서 전서를 빼내고는, 칼날 같은 햇빛이 두 쪽으로 갈라놓은 탁자에 앉아 느긋이 서신을 펼쳤다.

 

와락!

 

전서가 구겨지면 그의 손 안에서 가루로 변해 흩날렸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준수한 그의 얼굴이 귀면상처럼 일그러졌다.

 

전서의 내용은 간단했다.

 

 

 

[적혈삼마를 비롯한 이조가 회귀하지 않았음. 전원 행방불명된 것으로 사료됨. 지시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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