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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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40화
40화
지켜보던 자들도 수하들이 죽으면 나타나지 않을 수 없겠지.
‘일단 숫자부터 줄여야겠어.’
이무환은 흑의인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가 흑의인들의 뒤로 날아 내린 순간.
쾅! 쾅! 쾅!
세 번에 걸친 광음이 터지더니 흑의인 셋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훌훌 날아갔다.
“멋쟁이! 그대들은 우측을 쳐!”
이무환이 소리치자, 기회만 보고 있던 영호승 등이 우측을 공격했다.
두 곳의 방위가 이무환과 광룡대에 의해 막히자 황산검문의 제자들도 숨통이 트였다.
“전력을 다해서 놈들을 공격해라!”
황산검문의 제자들은 역공을 펼치며 흑의인들을 몰아붙였다.
순식간에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악에 바친 황산검문 제자들의 검은 평소 때보다 훨씬 더 살기가 강했다.
그때 십여 명이 안개와 함께 담을 넘어서 밀려들었다.
적의인 셋과 흑의인 아홉, 모두 열둘이었다. 그 중 적의인들이 적의 수뇌인 듯했다.
‘흐흥! 마침내 들어왔군!’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상황은 처음보다 더욱 악화되었다.
황산검문 제자들이 그들을 막다가 순식간에 서너 명이 가슴이 뚫리고 목이 반쯤 잘린 채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무환은 눈앞을 훑고 지나가는 칼을 좌수로 잡고 흑의인의 가슴에 일장을 때려 넣었다.
쾅!
가슴이 움푹 함몰된 흑의인이 입을 떡 벌린 채 뒤로 훌훌 날아갔다.
이무환은 그 반탄력을 이용해서 새로 들어온 자들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그의 목표는 핏물에 담근 것처럼 시뻘건 적의를 입고 있는 세 중년인이었다. 하나하나가 절정의 실력을 지닌 고수들.
그들이 손을 쓰자 황산검문의 제자들이 힘도 못 쓴 채 꺼꾸러지고 있었다.
전상휘조차 이삼 초를 감당치 못하고 연신 뒤로 밀렸다.
그들을 중심으로 핏빛 바람이 불었다. 안개조차 핏빛으로 물들고 살기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이무환은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는 적의인 하나를 향해 좌수를 뻗었다.
“뭐 먹을 게 있다고 찾아와!”
청광이 그의 손바닥에서 번쩍였다.
적의인도 황급히 손을 휘두르며 이무환의 장력에 맞섰다.
콰앙!
두 사람의 장력이 정면으로 부딪치자 적의인이 눈을 부릅뜬 채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이, 이놈이!”
자존심이 상한 듯 적의인은 붉은 기가 도는 장검을 뽑아 들고 이무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사이, 이무환은 또 다른 적의인을 향해 일장을 후려쳤다.
쿠궁!
정면으로 부딪친 두 사람의 기운이 바닥으로 깔리며 쫙 퍼져 나갔다.
이무환은 그 힘을 이용해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그때였다. 두 적의인의 몸 주위로 거센 핏빛 안개가 일어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강력한 적을 대하고 당황한 듯했다.
‘그래! 너희들의 본색을 드러내 봐!’
이무환은 삼 장 허공에 뜬 채 쌍장을 신경질적으로 뿌렸다.
칠성의 공력이 실린 천광뇌벽(天光雷壁)이었다.
찰나였다. 이무환의 쌍장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뭉치는 듯싶더니, 번쩍! 시퍼런 벼락이 적의인을 향해 떨어졌다.
“보통 놈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서 막아!”
동시에 두 적의인을 둘러싸고 있던 핏빛 운무가 이무환을 향해 회오리치며 치솟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이무환은 만족해하며 천광뇌벽에 천광뇌령(天光雷靈)의 힘마저 더했다.
시퍼런 벼락과 회오리치던 핏빛 운무가 부딪친 순간.
쩌저저적! 콰광!
굉렬한 충돌음과 함께 핏빛 운무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크윽!”
“커억!”
두 적의인이 신음을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회칠을 한듯 창백한 얼굴, 입가로 진득한 피가 흘러나오는 그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반면에 이무환은 다시 허공으로 떠올라 사방을 쓸어보았다.
충돌의 여파가 황산검문의 제자들과 흑의인들의 싸움까지 휘감은 상태였다.
흑의인들도, 황산검문의 제자들도 거센 충격에 휘말려 사방으로 튕겨져 드넓은 정원의 여기저기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중에 들어온 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뒤로 물러나서 이를 악물고 허공만 노려봤다.
그 와중에도 충격의 여파에 휩쓸리지 않고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광룡대원들이었다.
그들은 조금 전의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히려 눈에 불을 켜고 흑의인들을 공격했다.
이무환에게 매일같이 맞으며 초연십이식을 익힌 그들이었다.
초인적인 정신력. 그것이 본 실력을 떠나 그들로 하여금 몇 배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엽상의 검은 밤이라서 그런지 더욱 위력을 뿜어냈다.
그의 검이 허공에 검화를 뿌릴 때마다 눈발이 날리는 듯했다. 결코 전상휘에 못지않은, 어떻게 보면 전상휘보다 강하게 보였다.
상황이 변하는 것은 일순간이었다.
광룡대원의 몸을 사리지 않는 공격에 흑의인들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삽시간에 흑의인 대여섯 명이 쓰러진다.
이무환은 두 적의인을 향해 곧바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그들만 제거하면 될 듯했다.
“어디 다시 한번 해볼까?”
동시에 이무환의 쌍장에서 다시 시퍼런 벼락이 쏟아졌다.
그때였다. 전상휘를 몰아치던 키가 작은 적의인이 검을 돌려 이무환을 향해 날아왔다.
“내가 막을 테니 빠져나가라!”
일갈을 내지른 그가 시뻘건 검기를 앞세우고 이무환의 장력으로 뛰어들었다.
쩌저저정! 콰과광!
다섯 자의 거리를 두고 붉고 푸른 기운이 충돌했다.
이무환이 적의인 둘을 죽이기 위해 펼친 공격이었다. 단 한 번의 충돌이었지만, 그 충격은 키 작은 적의인의 내부를 휘저어 버렸다.
“크으윽!”
주르륵 물러선 키 작은 적의인의 입에서 참담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악다문 입가에서 주르륵 흘러나오는 선홍빛 선혈.
극심한 내상을 입은 키 작은 적의인이 이를 악물고 목을 쥐어짜 소리쳤다.
“빨리 가! 가서 이자에 대해 알려!”
그러고는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리고 이무환을 향해 달려들었다. 반쯤은 검강의 형태로 변한 붉은 검기를 앞세운 채.
자칫하면 자신의 힘을 역이용해 도망갈지도 모르는 일. 이무환은 그 자리에서 공격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적의인을 향해 마주 쇄도했다.
“흥! 확실하게 죽여주지!”
그 틈에 두 명의 적의인이 담을 넘었다.
이무환은 코앞까지 다가온 적의인의 검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일순간 청광이 번쩍였다. 이무환은 두 손을 엇갈리며 휘저어서 천지를 뒤집었다.
후우웅!
찰나였다. 건곤(乾坤)이 바뀌며 적의인의 강기 서린 검이 허공으로 밀려났다.
“헉!”
적의인이 충혈된 눈을 부릅뜬 순간, 이무환은 방향이 바뀐 검신을 지나 적의인의 우수 팔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 반사적으로 뻗어오는 상대의 좌수마저 쇠갈고리 같은 시퍼런 손가락으로 움켜쥐었다.
우두둑!
적의인의 두 팔이 수수깡처럼 부러지며 꺾이는가 싶더니, 이무환의 우족이 벼락처럼 적의인의 텅 빈 가슴에 꽂혔다.
퍽!
강력한 통천각(通天脚)!
이무환의 발이 심장과 등뼈를 부숴 버린 채 뒤쪽으로 밀려 나왔다.
우드득!
“푸헉!”
적의인이 쩍 벌어진 입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삼 장 밖으로 날아가 담장에 틀어박혔다.
볼 것도 없이 즉사였다.
이무환은 그를 날려버린 직후, 황산검문의 제자들과 광룡대를 몰아치는 흑의인들을 덮쳤다.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게 해!”
그때까지 황산검문의 제자 열여덟 중 살아 있는 자는 열. 그나마도 셋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광룡대가 고군분투하며 그들을 막지 않았다면 서넛은 더 죽었을 것이었다.
그에 반해 남은 흑의인들은 열다섯. 그들은 이무환이 달려들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물러섰다.
혼자서 적혈삼마를 꼬리에 불붙은 쥐새끼처럼 만들어버린 이무환을 그들이 어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작정을 한 이무환의 무자비한 공격은 그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내주지 않았다.
더구나 광룡대를 비롯해 전상휘와 황산검문의 제자들도 이를 갈며 그들을 막았다.
콰과과광!
이무환의 폭풍처럼 휘도는 공격이 흑의인들을 휩쓸었다.
“크억!”
“켁!”
“끄어어억!”
폭음과 비명이 어우러지며 순식간에 칠팔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다섯 명의 흑의인이 시커먼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동시에 그들의 몸에 광룡대와 황산검문 제자들의 무기가 박혀들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바닥에 쓰러졌던 자들도 부들부들 떨며 피를 토해냈다.
“이런 젠장!”
이무환이 노성을 내지르며 흑의인들 중 하나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흑의인은 손 쓸 틈도 없이 시커먼 피를 뿜어내며 눈을 까뒤집었다.
눈살을 찌푸린 이무환이 목을 놓고 일어섰다.
“지독한 독이군.”
근처에 있던 혁수린이 절룩거리며 다가왔다.
“자결한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이무환은 짧게 대답하고 즉시 몸을 날렸다.
“이곳을 정리하고 기다려. 두 놈을 처리하고 올 테니까.”
사람들이 그를 바라봤을 때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찰나간에 이무환의 목소리가 까마득히 멀어졌다.
그제야 전상휘가 이를 갈며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형제들의 시신을 정리하고 부상자들을 옮겨라! 어서!”
이가 부서지도록 악다문 입가에는 핏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한편 이무환은 안개를 헤치며 날듯이 달렸다.
그는 두 적의인을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그들이 돌아가면 자신에 대한 것이 상세히 알려질 터. 입을 막아야 했다. 어차피 머지않아서 알려질 일이긴 하지만, 단 며칠이라도 숨길 수 있다면 숨기는 것이 나았다.
하루 이틀의 차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것이다.
다행이라면 도망친 자들이 극심한 내상을 입어서 멀리가지는 못했을 거라는 점이었다.
‘북쪽으로 가던 길을 쉽게 바꾸지는 않을 거다.’
설마 자신이 쫓아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을 테니까.
게다가 안개가 자욱한 강가의 갈대숲은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은신처였다.
놈들이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뿌연 안개가 가라앉아 마른 갈대가 축축이 젖어 있었다.
잠든 바람이 가끔씩 떨어댈 때마다 갈댓잎이 몸을 부비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안개에 가려 달도 보이지 않는 밤. 멀리서 물새 날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깨며 들려왔다.
이무환은 젖은 갈대 머리를 밟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자연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법이지.’
생각대로 적의인들은 멀리가지 못했다.
그들은 갈대가 자신들을 감춰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가에는 갈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새도 있고, 밤새도 있고, 짐승들도 밤이 되면 물가로 내려온다.
그들은 인간의 침입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무환은 굳이 신경을 곤두세운 채 적의인들의 기운을 탐색하며 쫓을 필요도 없었다. 대자연의 짐승들이 침입자에 대한 정보를 일러주고 있었다.
일 보에 십여 장. 이무환은 안개를 일직선으로 가르며 나아가다 갑자기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의 신형이 한 마리 물새처럼 갈대 위 오 장 상공을 쏘아진 살처럼 날아갔다.
이십여 장 앞, 뿌연 안개로 뒤덮인 갈대숲이 갈라진다.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던 기운이 움직인다.
상대는 아직 바람과 자신을 일치시킬 만한 능력을 얻지 못한 상태. 기껏해야 껍데기만 조금 얻은 정도인 듯했다.
그렇다면 절대 자신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무환은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두 번을 도약하자 그들과의 거리가 삽시간에 십 장 안으로 줄어들었다.
스릉!
주위의 어둠보다 더 검은 도신이 묵린을 드러냈다.
그 소리에 힘겹게 갈대숲을 가르며 달리던 두 적의인이 대경해서 고개를 돌렸다.
“허억! 놈이다!”
“갈라져!”
한 줄기로 갈라지던 갈대숲이 두 갈래로 퍼졌다.
그와 동시, 갈대를 발로 차낸 이무환의 신형이 튕기듯이 쏘아졌다. 그의 우수에 들린 묵린도가 허공을 길게 내려치는 순간!
쩌억!
안개와 갈대가 동시에 갈라지고, 묵빛 유성우가 한밤의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가공할 광경에 눈을 부릅뜬 우측으로 달리던 빼빼 마른 적의인이 발악을 하듯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가 막기에는 안개를 갈가리 찢어발기며 떨어져 내리는 묵린우가 너무나 사나웠다.
“크어억!”
묵린우가 적의인의 몸을 휩쓸고 지나가자 안개 속에서 검은 분수가 솟구쳤다.
동시였다. 좌측의 갈대가 갈라지며 검 한 자루가 날아들었다.
좌측의 적의인이 도주를 포기하고 달려든 것이다.
“죽어라!”
붉은 검강이 피를 머금은 늑대의 이빨처럼 달려들자, 이무환은 보지도 않고 좌측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쾅!
“흡!”
일도에 붉은 검강이 편린처럼 부서지고, 적의인의 몸이 갈대숲 속으로 날아갔다.
이무환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빼빼 마른 적의인을 바라보았다. 적의인은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지옥의 문턱에 발을 디딘 상태.
‘더 손을 쓸 것도 없겠군.’
이무환은 허공으로 둥실 떠올라서 숲 속으로 튕겨진 마지막 적의인을 향해 날아갔다.
그 틈에 안간힘을 다해 도망친 적의인과의 거리는 십오 장 정도로 벌어져 있었다.
이무환은 우수의 도를 높이 쳐들고는 전면을 향해 내던졌다.
휘이잉!
묵린도가 커다란 원반처럼 빠르게 휘돌며 전방의 갈대숲을 휩쓸었다.
촤촤촤촤!
이무환과 적의인 사이가 일직선으로 뻥 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