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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38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0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38화

 

38화

 

 

 

 

 

 

 

 

유소경이 안으로 들어서는 남궁산산을 보고는 재빨리 말렸다.

 

“너는 밖에서 기다리렴.”

 

“괜찮아요, 언니. 저도 오빠와 함께 들어갈 거예요.”

 

“걱정 마시오. 그 꼬맹이도 봐야 하니까.”

 

“예?”

 

“그 꼬맹이가 제법 아는 게 많거든.”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유소경이 더 말릴 틈도 없이 남궁산산이 이무환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남궁산산을 다시 말리려던 유소경은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냥 놔두었다.

 

 

 

하체만 겨우 가려진 네 구의 시신은 부패를 막기 위해서 목탄 가루가 뿌려진 관에 들어 있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시신의 부패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진 않았다.

 

그렇다 해도 시신에서 나는 냄새가 고소할 리는 없었다. 고소하기는커녕 시취(尸臭)가 코를 찔러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관 앞으로 다가간 이무환이 품속에서 무사건을 꺼내 남궁산산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코를 둘러라. 좀 덜할 거야.”

 

“제 걱정은 마시고, 오빠는 시신이나 제가 원하는 위치로 놓아주세요.”

 

“그래? 알았다.”

 

유소경의 첫 느낌은 황당함이었다.

 

어린 소녀가 시신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의외인데, 이무환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지 않는가.

 

게다가 마치 어린 소녀가 직접 상흔을 살필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미리 말을 들었던 전상휘조차 흠칫하며 급히 입을 열었다.

 

“잘못하면 시신을 상할 수도 있네. 조심해서…….”

 

엽상이 전상휘의 옷깃을 슬며시 잡아당겼다.

 

“일단 놔두시지요, 전 대협.”

 

“무슨 말인가?”

 

“대주께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겁니다.”

 

“방법?”

 

전상휘가 이마를 좁힐 때다. 이무환이 가볍게 손을 휘둘러 시신의 몸에 뿌려진 목탄 가루를 걷어냈다.

 

동시에 남궁산산이 고개를 내밀고는 전면의 상처를 세세히 훑어보았다.

 

두 사람이 상흔을 살피기 시작하자 전상휘와 유소경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막대기로 쿡쿡 쑤시고, 상처를 살짝 벌려보고, 밀듯이 상처를 쓸어내며 눈을 바짝 대고 쳐다보던 남궁산산이 허리를 세우고 말했다.

 

“오빠, 뒤집어줘요.”

 

전상휘가 다시 손을 내밀며 급박하게 입을 열었다.

 

“조심…….”

 

하지만 그는 한마디도 다 뱉어내지 못하고 몸이 굳어버렸다.

 

갑자기 시신이 허공으로 붕 떠오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무환이 손을 가볍게 뒤집자 시신이 자연스럽게 뒤집어졌다.

 

가공할 허공섭물!

 

어느 정도 예상한 엽상조차 눈에 힘이 들어갔다.

 

하물며 전상휘와 유소경은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 어떻게……?!’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볼만한 게 있냐?”

 

공력소모가 많은 허공섭물을 펼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몇 가지 특이한 상흔이 있어요. 다른 것도 살펴보고 말할게요.”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자신도 나름대로 두어 가지 이상한 상흔을 발견했다. 그런데 남궁산산은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본 듯했다.

 

“다른 것도 들어봐요, 오빠.”

 

“알았다. 그런데 같이 들어 올릴까?”

 

“아뇨. 오빠도 힘드실 텐데, 그냥 하나씩 들어요.”

 

“둘 정도는 괜찮아.”

 

순간 전상휘의 굳은 듯 뻗어 있던 손이 툭 떨어졌다.

 

‘뭐, 뭐? 시신 두 구를 같이 들어? 대체 저놈 정체가 뭐야? 지위가 높은 놈 자식이라 영약을 퍼먹고 공력만 높은 것 아냐?’

 

억지 생각이란 걸 모를 그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다.

 

반로환동한 전대고수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저렇게 공력이 높을 수가 있단 말인가!

 

 

 

다섯 사람이 제각에서 나온 것은 이각가량이 흘러서였다.

 

밖으로 나온 다섯 사람의 표정은 모두가 제각각이었다.

 

“흠, 이제야 좀 살겠군. 역시 시체 냄새는 맡을 게 못 된다니까. 어떻게 생선 썩는 냄새보다 더한 거야?”

 

“그래도 겨울이라 다행이에요. 여름이었으면 꽤나 독했을 텐데.”

 

꽤나 독했을 거라고?

 

아마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남궁산산을 보고 엽상과 전상휘와 유소경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어진 두 사람의 말에 질려 있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여름에 배가 터진 시신을 만져 본 적이 있는데, 속이 울렁거려서 혼났거든요.”

 

“쯔읍, 꼬맹이가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시집 못 간다니까.”

 

“걱정 말아요. 오빠에게 가면 되니까.”

 

“나는 꼬맹이는 싫어.”

 

“몇 년만 지나면 가슴도 커지고, 엉덩이도 커진다니까요?”

 

그 오빠에 그 동생이다.

 

전상휘와 유소경은 앞서 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만 멍하니 지켜보았다.

 

 

 

전청에 간단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표국의 대표두 세 명과 황산검문의 제자 몇. 그리고 영호승 등도 함께 자리에 앉아 이무환과 남궁산산이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홀짝, 차를 마신 이무환이 물었다.

 

“어디 말해봐라. 뭘 봤지?”

 

남궁산산이 명가의 여식답게 얌전히 차를 한 모금 삼키고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시신의 가슴에 난 상흔은 셋인데, 그중 하나가 이상해요.”

 

“젖꼭지를 가르고 지나간 것?”

 

이무환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에 유소경의 얼굴이 은근히 붉어졌다.

 

그러나 남궁산산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오빠도 봤군요?”

 

“한 번에 난 상처처럼 보이지만, 세 번의 칼질에 의한 상처지. 어떤 무공인지 알겠냐?”

 

남궁산산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단천쾌(斷天快). 호북 쾌도문의 삼대절기 중 하나.”

 

그러자 엽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도룡부의 삼대당주 중 한 사람이 쾌도문의 이단아, 쾌혈마도인데…….”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엽상을 향했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엽상이 흠칫 입을 다물었다.

 

이무환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남궁산산을 재촉했다.

 

“좋아, 그럼 나머지 것도 말해봐라.”

 

“목 뒤쪽, 대추혈에서 천주혈까지 쓸듯이 지나간 상처도 봤죠?”

 

“그래. 아마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단번에 당했겠더군.”

 

“사휴(死休) 소동곽의 귀살비검에 당한 상처예요.”

 

문득 의문이 떠오른 전상휘가 물었다.

 

“꼬마 소저, 소동곽이 직접 나섰단 말인가?”

 

남궁산산이 전상휘를 쏘아보았다.

 

“귀살비검에 당했다고 했지, 소동곽이 직접 손을 썼다고는 안 했어요. 그리고 저는 꼬마 소저가 아니에요. 저를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오빠뿐이에요.”

 

어찌나 냉랭한지 일순간 전상휘가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무환이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우리 이쁜 꼬맹이, 다른 것도 말해봐라. 그게 다는 아니겠지?”

 

남궁산산의 표정에 다시 봄바람이 불었다.

 

“예, 오빠. 물론이죠.”

 

그 후로도 남궁산산은 네 구의 시신에서 찾아낸 여섯 개의 특별한 상흔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중 두 개는 이무환도 미처 모르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남궁산산도 또 다른 두 개의 상흔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상해요. 그 두 개의 상흔은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얼핏 보면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절대 평범한 상흔이 아니거든요.”

 

남궁산산은 입을 삐죽이며 약이 오른 소녀처럼 말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오빠, 혹시 아는 거 없어요?”

 

이무환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과장되게 웃었다.

 

“음하하라! 내가 누구냐? 물론 알지!”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이무환에게 쏠렸다.

 

심지어 이무환을 한량처럼 취급하던 전상휘조차 잔뜩 기대감을 품고 눈을 빛냈다.

 

“뭐예요? 어떤 무공에 당한 거예요? 그 무공을 쓴 사람이 누군지도 알아요?”

 

남궁산산이 몇 개의 질문을 묶어 한꺼번에 던졌다.

 

그러자 이무환이 말했다.

 

“나중에 알려주마.”

 

순간 탱탱하던 방광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후우.”

 

“좌우간…….”

 

“정말 대주만 아니면…….”

 

그런데 남궁산산만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아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인가요?”

 

역시 똑똑한 아이다. 너무 똑똑해서 병이 날 정도로.

 

이무환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미리 알면…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위험해져. 진짜야.”

 

이무환이 유난히 음울한 목소리로 말해서인가. 그 말만으로도 사람들은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대체 어떤 무공이기에 그 무공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위험해진단 말인가.

 

그때 표국의 대표두 중 한 사람이 노성을 내질렀다.

 

“알면서 말하지 않겠다니.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이무환이 그를 바라보았다.

 

“위험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십니까? 죽고 싶으면 직접 알아보시죠.”

 

“뭐야?!”

 

대표두, 강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검이라도 뽑아 들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전상휘가 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정말 검을 뽑고 달려들었을지도 몰랐다.

 

“앉으시오, 강 형.”

 

“전 아우!”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들입니다. 다행히 모르고 있던 것을 몇 가지 알아냈으니 그걸로 만족합시다. 더구나 나중에 알려준다지 않습니까?”

 

나이야 강상이 서너 살 많지만, 황산십검 중 한 사람인 전상휘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철컥!

 

그는 세 치쯤 검을 뽑았다가 다시 검을 소리 나도록 꽂고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광룡대원들이 여전히 분기를 못 참고 있는 강상을 바라보았다.

 

‘겁도 없이 악귀대주에게 덤비려 하다니. 당신, 오늘 운 좋은 줄 아쇼.’

 

왠지 아쉬워하는 눈빛으로 강상을 바라보던 영호승이 이무환에게 물었다.

 

“저… 대주, 그럼 그 무공이 구룡성에서 나온 것은 확실합니까?”

 

이무환이 영호승을 째려보았다.

 

“나중에 알려준다고 했잖아. 지금 나 시험하는 거야?”

 

“아, 아닙니다, 대주.”

 

결국 이무환은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그 일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모든 힘을 동원해서 우리를 죽이려 할 거다. 협상은 그걸로 끝나고, 피와 죽음만이 남을 뿐이지.’

 

어쩌면 이미 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제6장. 전설(傳說)의 꼬리를 잡다

 

 

 

 

 

 

 

1

 

 

 

“사건이 벌어진 것은 이레 전이오. 표행은 수로를 통해 성택(星澤)까지 간 후 육로를 탔는데, 황사(黃沙)에 도착하기 직전 적의 급습을 받았다고 하오.”

 

사건에 대한 설명은 길을 가던 중에 표국의 대표두라는 자가 직접 했다.

 

성택에서 황사까지는 백여 리. 목적지인 함령과의 중간 지점이라 했다.

 

일행은 일단 황사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무환 일행은 사건이 벌어진 지점을 조사하기 위해서였고, 전상휘를 비롯한 황산검문의 제자들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산십검 중 셋째 절양검 공은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상휘는 전처럼 이무환을 말리지 않았다.

 

시신의 상흔을 조사하며 보여준 능력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 이무환이 황사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시 표행을 하던 사람들이 다 죽었다던데, 구룡성이 그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무환이 묻자 대표두인 송각이 대답했다.

 

“마침 강호명숙 한 분이 근처를 지나던 중이었소. 표행을 도와주려던 그분은 상대가 너무 강하자 중상을 입은 몸으로 도주했는데, 부상이 너무 심해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돌아가시고 말았소.”

 

형산의 장로, 비원산인(臂猿山人).

 

그는 죽기 직전 의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부상이 워낙 심해 몇 마디 말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당시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의원은 날이 밝자마자 그가 남긴 말을 전하기 위해 풍강표국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비원산인이 남긴 말을 그대로 풍강표국에 전했다.

 

 

 

“표물을 턴 도적들은 구룡성의 무사들이었소.”

 

 

 

죽어가던 자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터.

 

더구나 그 일이 벌어지기 며칠 전부터 이상한 첩보가 전해지고 있었다. 구룡성이 표행을 노린다는, 그때만 해도 어이없는 첩보였다.

 

풍강표국은 즉시 황산검문에 서신을 보내고, 암암리에 그 사건에 대해 조사했다.

 

그렇게 며칠 사이 몇 가지 정보가 더 들어왔다. 정보가 말해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사건의 범인이 구룡성의 무사들이라는 것!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그래서 이렇듯 조심스럽게 조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일단 증거를 모으는 것이 관건이군요.”

 

“당장은 그렇소.”

 

문제는 증거를 내밀었을 때, 구룡성이 어떻게 나오느냐 하는 것이었다.

 

황산검문과 풍강표국의 가장 큰 고민은 거기에 있었다.

 

증거를 내놓으면 구룡성이 순순히 시인하고 고개를 숙인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날아가던 기러기가 끼룩끼룩 웃을 것이다.

 

‘위선과 욕망에 물든 자들은 절대 자신의 가슴이 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이무환은 묵묵히 걸음을 옮기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쪽 하늘이 누렇게 물들어가는 시각. 대기가 유난히 탁하게 느껴진다.

 

육감을 자극하며 은은히 밀려드는 괴이하고 불길한 기운!

 

결코 자연의 기운이 아니다.

 

간질거리는 느낌. 솜털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 속에서 이질적인 기의 유동이 느껴진다.

 

이무환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좋아,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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