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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37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4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37화

 

37화

 

 

 

 

 

 

 

 

듣는 사람의 기분이 상할 정도로 냉정하면서도 분명한 질문.

 

전상휘가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아야 하네. 적어도 그 일에 연루된 자들은 처단되어야 한단 말이지.”

 

“흠,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그걸로 끝낼 겁니까?”

 

전상휘의 굳은 눈이 이무환을 직시했다.

 

“이십여 명이 죽었네. 표물도 잃었고. 당연히 배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이무환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정했다는 듯 엽상을 돌아다보았다.

 

“이 할 정도면 어떨까?”

 

“예?”

 

엽상과 전상휘가 의아한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배상금의 이 할 정도면 우리가 받을 대가로 충분하지 않겠어?”

 

‘크으, 정말 철저하군!’

 

그제야 이무환의 말뜻을 이해한 엽상은 신음을 억지로 삼켰다.

 

“흠, 일단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게 문제겠군.”

 

배상을 많이 받아내지 못해서 안달한다. 자신이 앞으로 몸담을 구룡성에서.

 

잘못했으면 그에 합당한 배상을 하는 거야 당연한 일인데도 이무환에게 그 말을 들으니 뭐가 옳은지 헷갈렸다.

 

대체 저 사람 머릿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엽상은 갑자기 그 점이 궁금해졌다.

 

그때 전상휘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가를 논하는 것도 모든 일을 제대로 끝마쳤을 때의 이야기 아니겠나?”

 

“그거야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안 그래, 꼬맹아?”

 

“물론이죠, 오빠.”

 

“네 생각은 어때? 이 할이면 적당하겠지?”

 

“좀 약하긴 하지만, 오빠가 그리 생각했다면 할 수 없죠. 어쨌든 잘하면 여행 경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는데요?”

 

“어디 경비뿐이겠어? 잘하면 옥이하고 살 집을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얼마나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네가 생각할 때 얼마 정도 받아야 좋을 거 같냐?”

 

“표행비의 열 배인 금 천 냥은 받아야겠죠.”

 

“흠, 그럼 금 이백 냥이군. 그 정도면 제법 큰 집을 지을 수 있겠는데?”

 

대충 휘둘러도 손바닥이 짝짝 잘도 맞는 두 사람이다.

 

전상휘는 자신이 왜 이곳에 앉아 있는지, 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안으로 들어왔는지 후회가 되었다.

 

엽상에게 도움을 청하려던 생각조차 되돌리고 싶었다.

 

‘괜히 말을 꺼내서…….’

 

그런 전상휘의 뱃속을 열어봤는지 이무환이 나직이 말했다.

 

“만일 구룡성이 관여되어 있다면 황산검문은 그 일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해결할 수 있지요.”

 

‘네까짓 게 무슨 수로?’

 

전상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꾹 눌러 삼키고 엽상을 바라보았다.

 

더 있어봐야 성질만 나빠질 것 같았다.

 

“이만 돌아가야 할 것 같네. 지금까지의 일은 못 들은 것으로 하고 잊어버리게나.”

 

엽상은 전상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원하신다면…….”

 

하지만 이무환은 두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엽상, 마룡이나 금룡 쪽에서 누군가가 함령 쪽으로 움직인 적이 있는지 알아봐. 그 정도는 알 수 있지?”

 

“예? 예, 대주.”

 

“에 또… 표국이 운송할 정도의 양이라면 그게 얼마나 귀한 것이든 무창의 약방으로 흘러나온 것이 조금은 있을 거야. 당시에 갑자기 누가 주웠다며 가져온 귀한 약초가 있는지 무창의 약방을 수소문해 봐. 뭐 구룡성에서 주웠다면 더 확실하겠지만, 아니라도 상관없어.”

 

“그러죠… 대주.”

 

엽상이 엉겁결에 대답하는데 남궁산산이 재빨리 박자를 맞췄다.

 

“표국이 잃어버렸다는 약초가 뭔지, 어디에 쓰는 건지 알아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거예요.”

 

“그거야 기본이고. 설마 그 정도도 모르겠어? 어때, 할 수 있겠지, 엽상?”

 

엽상의 표정이 어느새 신중하게 굳어졌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겁니다.”

 

“함께 움직이던 사람들 있다며? 그들을 최대한 움직여 봐. 얼마나 신속하게 알아내느냐에 따라 사건의 실마리가 빨리 풀릴 테니까.”

 

“그렇게 하죠, 대주.”

 

그러는 사이, 반쯤 일어섰던 전상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가 뚫어지게 바라보자 이무환이 말했다.

 

“이제 삼 할로 올라갔습니다.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마세요. 저도 귀찮은 것은 무지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정말… 범인을 밝힐 수 있겠나?”

 

“거참, 아직 불도 안 피웠는데 벌써 젓가락 들고 달려들면 어떡합니까? 거, 되게 성질 급한 양반이네.”

 

전상휘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표정 같아서는 한 대 후려 패고 싶은 마음인 듯했다.

 

그때였다. 남궁산산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오빠, 일단 죽은 사람들의 상처를 먼저 봐야 할 것 같아요.”

 

“상흔을 보고 구룡성의 무공인가 알아보려고? 그러려면 많은 무공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네가 알 수 있겠어?”

 

“천 가지 정도는 상흔을 보고 어떤 무공에 당했는지 알 수 있어요. 시신이 썩어 문드러지지만 않았다면요.”

 

엽상과 영호승 등이 남궁산산을 바라보고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그런 표정을 지은 채.

 

그러나 이무환은 대단하다며 당장 머리라도 쓰다듬을 것처럼 남궁산산을 칭찬했다.

 

“호, 그래? 우리 꼬맹이가 잘하면 밥값 좀 하겠는데?”

 

전상휘는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누르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원…….’

 

어쨌든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범인을 밝히고 배상을 받으면 대가를 주면 되는 것이고, 밝히지 못하고 헛물만 켜면 주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상대는 구룡성이 아닌가. 설비검 엽상과 제법 한 수가 있어 보이는 네 명의 무사가 도와주기만 해도 일곱 사람의 경비는 충분히 빠질 듯했다.

 

이무환과 남궁산산이야 가끔 괜찮은 생각이 있을 때나 입을 열고, 평소 때는 조용히만 있어주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좋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구강까지 함께 가기로 하세.”

 

 

 

2

 

 

 

안경에 내리자마자 사람을 만난다며 엽상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을 빼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나날이었다.

 

일행은 엽상이 돌아오자 배를 바꿔 타고 구강으로 향했다.

 

그렇게 사흘, 구강에서 내린 이무환은 잔뜩 짜증이 난 표정으로 배를 바라보았다.

 

“며칠간 배만 탔더니 몸이 다 근질거리는군. 이제 어지간하면 걸어가야겠어.”

 

이무환이 투덜대고 있는데 전상휘를 따라가던 엽상이 불렀다.

 

“대주, 빨리 따라오십시오.”

 

그제야 이무환은 남궁산산과 함께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가자, 꼬맹아.”

 

할일 없는 한량의 걸음걸이. 딱 그 모습이다. 게다가 남궁산산이 커다란 보따리를 직접 메고 간다.

 

그걸 본 전상휘는 눈곱만큼 남았던 이무환에 대한 좋은 인상을 모조리 장강에 버려버렸다.

 

‘어린 여자 아이에게 보따리를 들게 하다니. 인정도 없으면서 입만 산 놈! 도대체 어느 문파에 있는 놈이지? 엽상이 꼼짝 못하는 걸로 봐서 지위가 높은 놈의 자식인 게 분명한 것 같은데…….’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그제만 해도 분명히 엽상의 눈이 한쪽만 멍들었었는데……?’

 

오늘 보니 약하지만 양쪽 다 멍이 들어 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구강포구에서 표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십여 리를 가자 커다란 장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이 바로 황산검문의 제자가 운영한다는 풍강표국이었다.

 

이무환은 전상휘와 황산검문의 제자들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십여 명의 표사, 쟁자수들이 오가다 말고 들어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안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전 사형!”

 

여인이었다. 검을 멘 여인.

 

이십대 중반가량의 그녀는 키가 컸다. 옅은 노란색 경장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들꽃 위를 노니는 노랑나비 같았다.

 

“이쁘다.”

 

누군가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이무환은 슬쩍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막위가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 것처럼 멍하니 달려오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가 좀 크잖아. 너보다 큰 것 같은데?”

 

단우경이 슬쩍 걸고 넘어졌다. 그래도 막위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난 키 큰 여자가 좋아. 저 서호처럼 큰 눈 좀 봐.”

 

여인은 키만 큰 것이 아니었다. 눈도 컸다.

 

그녀는 뒤쪽에서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는 막위는 본 척도 하지 않고 곧장 전상휘를 향해 달려왔다.

 

“내일쯤 도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마침 동풍이 불어서 빨리 왔다. 그래, 다른 사람들은?”

 

“공 사형은 미리 표국 사람들과 함께 출발했어요. 저와 사제 둘만 남아서 전 사형을 기다렸죠.”

 

“그래? 우리도 그럼 준비되는 대로 출발해야겠구나.”

 

“준비는 다 해놨어요.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죠? 본 문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데.”

 

전상휘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냥 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우리를 도와줄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인만큼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부탁했다.”

 

키가 큰 여인, 유소경의 눈이 이무환 일행을 향했다.

 

전상휘가 엽상을 소개했다. 그나마 그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들어봤는지 모르겠다만, 저쪽에 있는 사람이 설비검 엽상이다. 뛰어난 사람이지.”

 

“아! 저도 들어봤어요.”

 

“나머지 사람들은… 나중에 저절로 알게 될 거다. 다만 도와주는 대가로 거래한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공 사형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해 주마.”

 

“대가요?”

 

유소경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도와주면서 대가를 운운했다는 것에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녀의 마음을 읽은 전상휘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물론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었을 때 이야기지. 좌우간 준비가 되었으면 바로 출발하자.”

 

“예, 그래요.”

 

그때였다.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어간 이무환이 툭 던지듯이 말했다.

 

“시신이 여기 없습니까?”

 

이무환의 말뜻을 깨달은 전상휘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소경이 먼저 이무환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죠?”

 

“시신에 난 상흔을 좀 봤으면 싶은데.”

 

“상흔? 그건 이미 저희 사형과 몇몇 분이 다 살펴봤는데…….”

 

그녀가 의아해하자 전상휘가 말했다.

 

“공 사형과 다른 사람들이 살펴봤다면 더 볼 필요가 없을 것 같네만.”

 

이무환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들이 아는 것과 우리가 아는 게 다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꼭 봐야만 하겠나?”

 

“우리가 본다고 한 번 죽은 사람이 두 번 죽는 것도 아닐 테고, 봐야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잡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다. 문제는 말투다.

 

전상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이무환을 쏘아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거래고 나발이고 이 자리에서 끝내고 싶었다. 아마 엽상만 없었으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었다.

 

‘어디 보고 나서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기만 해봐라.’

 

“좋아, 보여주지. 유 사매, 시신들이 어디에 있지?”

 

“사형?”

 

“이 사람들이 상흔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하니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정을 모르는 유소경은 의아한 와중에도 전상휘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채 이무환 일행을 바라보았다.

 

“따라와요.”

 

순간 막위의 입에서 침이 뚝 떨어졌다.

 

‘어쩌면 저렇게 인상을 예쁘게 쓸 수 있을까.’

 

 

 

시신은 모두 네 구. 표행의 수뇌부들 시신만이 표국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시신이 있는 제각에는 다섯 사람만 들어갔다.

 

전상휘와 유소경이 앞장서고, 이무환과 남궁산산, 엽상이 뒤따라갔다.

 

이무환이 마지막으로 남궁산산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괜찮겠냐?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말해.>

 

남궁산산이 피식 웃었다. 왠지 아픔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괜찮아요. 제가 그랬잖아요. 저도 제가 무서워질 때가 있다고요. 시신을 어릴 때부터 보고, 나름대로 조사한다고 만져 봤어요. 그냥 일이라 생각하면 되니까 너무 염려 말아요, 오빠.>

 

이무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남궁산산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가 긴 만큼 남궁세가에는 강호인들의 무공 흔적에 대한 것을 적어놓은 책이 수백 권이나 되었다. 그중에는 최근 강호 고수들의 무공에 대한 것도 있었다.

 

남과 잘 어울리지 않았던 남궁산산은 그 책을 다 읽고, 죽은 무사들의 상흔을 알아맞히는 걸 놀이로 삼았다고 했다. 

 

심지어 강호 고수들의 싸움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백 리 떨어진 곳까지 달려갔다고도 한다.

 

하긴 그녀가 새로 만든 책만도 이십 권이 넘는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당금 강호에서 상흔에 대해 가장 정통한 사람. 

 

어쩌면 그 사람이 바로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의 남궁산산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무환은 다시 한번 말려볼까 했지만, 억지로 못하게 한다고 해서 남궁산산의 병적인 성격이 고쳐질 것 같지도 않았다.

 

‘조금씩, 천천히 고쳐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래서인가? 이무환은 남궁산산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좋아,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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