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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3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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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광룡기 36화

 

36화

 

 

 

 

 

 

 

 

그거야 그렇다.

 

그런데 그 좋은 이름 다 놔두고, 왜 하필 미친 룡, 광룡대(狂龍隊)란 말인가.

 

구룡성의 아홉 마리 용 이름을 제외하고도, 옥룡대도 있고, 백룡대도 있고, 황룡대도 있고 얼마든지 있는데.

 

하지만 이무환은 그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다 들어와 봐! 멋진 이름이 새로 정해졌으니까.”

 

멋지기는, 광룡대가 뭐가 멋있어?

 

엽상은 불만이 많았지만, 어차피 따르기로 한 이상 대놓고 불만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방으로 들어온 십삼조의 조원들은 그와 생각이 달랐다.

 

“멋진데요? 조장님 성격에도 딱 맞고 말이지요.”

 

“그렇지?”

 

“물론이죠. 악귀의 악룡대보다야 백번 낫죠 뭐.”

 

거기다 남궁산산까지.

 

“과연 오빠다운 작명이야.”

 

“하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그런데, 엽 형, 왜 그렇게 불편한 표정이오? 광룡대라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듭니까?”

 

엽상은 왠지 속은 것 같았다.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으로 봤었다. 그러다 어젯밤의 일을 겪으면서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래도 약간의 과격한 성격, 그 정도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았다.

 

옆에서 말하지 않는가. 성격에 딱 맞다고. 악귀의 악룡대보다 낫다고.

 

결국 이무환이 약간은 미쳤고, 악귀라 불린다는 말. 장하포구에서 거지가 불렀던 악귀대형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설마 잡아먹지는 않겠지.’

 

이미 엎질러진 물. 엽상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정하죠, 대.주!”

 

그때 남궁산산이 물었다.

 

“그런데 오빠, 정말 구룡성에 가는 거야?”

 

진기로 감싸 듣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이야기한 내용만 빼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제 함께 가야 할 사람들, 이들도 알아야 했다.

 

“왜, 싫어?”

 

“아니, 나는 오빠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아.”

 

“뒷간도?”

 

“…….”

 

잔뜩 기대에 차 있던 십삼조원들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후우. 정말…….”

 

“앞날이……. 하아…….”

 

“그럼 그렇지.”

 

고개 숙인 엽상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시간을 일각만, 아니, 반 각만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5장. 표행 강탈사건

 

 

 

 

 

 

 

1

 

 

 

 

 

여행은 순조로웠다.

 

도도히 흐르는 장강은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장쾌했다.

 

동릉을 지나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다행히 바람이 동풍이어서 속도도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루 정도만 더 가면 안경에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그사이 엽상은 구룡성의 상황에 대해서 이무환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충량에게 들었던 말과는 다른 것이 많았다. 세월이 흐른 만큼 구룡성의 상황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구룡성의 중추였던 셋이 몰락하고, 그중에서도 지난 백 년간 구룡 중 최강이었던 천룡 이가는 전력이 맨 하위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현재는 신룡과 마룡이 구룡성의 패권을 놓고 팽팽히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천룡 이가를 밀어낸 자들인가?”

 

“신룡과 마룡, 금룡, 도룡이 합세했지요. 저희는 그들 중 마룡과 금룡의 세력을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와룡과 철룡은 중립을 지키고, 검룡과 창룡이 천룡을 지지했다가 함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격변의 시기. 구룡성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 놓여 있었다.

 

오죽하면 아직 성주 이임식도 못한 채 병상에 누운 이건천의 상황만 지켜보고 있을까.

 

‘생각보다 더 복잡하군.’

 

그렇다고 해도 겁날 것은 없었다. 차라리 서로가 견제해서 권력의 향방이 안개처럼 흐릿한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래야 세력이 없는 자신이 움직이기가 편할 테니까.

 

 

 

석양이 장강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즈음, 배가 포구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지주(池州)였다.

 

배는 지주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해가 떠오르자 물건을 실었다. 그리고 진시 말 무렵에서야 출발을 알렸다.

 

한데 배가 막 출발하려 할 때였다.

 

“잠깐 기다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열여섯 명의 손님이 더 배에 올랐다. 모두가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단숨에 배 위로 뛰어오르더니 침중한 표정으로 배 안을 훑어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그들 중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장한이 엽상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엽상도 그를 알아보고 이무환에게 말했다.

 

“저들은 황산검문의 사람들입니다. 가운데 키가 큰 자가 황산십검 중 여섯째, 등운검(騰雲劍) 전상휘지요.”

 

황산검문(黃山劍門).

 

오악조차 굽어본다는 중원제일의 명산, 황산.

 

북으로는 구화산을 머리에 이고, 동서남북으로 수백 리를 뻗어 있는 황산에는 수많은 도관과 불사가 있었는데, 무예를 수련하는 문파도 수십이나 되었다.

 

황산검문은 그렇게 황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수십 문파의 종주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구대문파에 속하지는 않지만, 어느 누구도 황산검문을 구대문파의 아래로 취급하지 않았다. 특히 황산검문의 정심한 검법은 무림의 일절로 손색이 없어, 오대검파라 불리는 무당, 화산, 청성, 점창, 종남조차 인정할 정도였다.

 

다만 내공심법과 여타 무공이 구대문파에 비해 다양하지 못하고 그 깊이가 조금 뒤질 뿐이었다.

 

황산십검은 그런 황산검문 제자들의 대표격인 검사로, 황산검문이 십 년에 한 번씩 시행하는 비검회에서 십위 이내에 뽑힌 자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운 이름이었다.

 

비검회(比劍會)는 서른이 넘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제자나 장로들의 추천이 있는 사람만이 참가할 수 있었는데, 전상휘는 나이 서른하나였던 사 년 전 당당히 황산십검의 이름을 차지한 절정의 검사였다.

 

그가 십검 중 육검이라는 것은, 나이가 여섯 번째라는 것이지 실력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엽상이 그를 만난 것은 이 년 전. 그때도 배 위에서 만났는데 오늘 또다시 배 위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게 누구신가? 설비검 엽 노제가 아닌가?”

 

그가 이무환 일행이 있는 선실로 다가왔다.

 

엽상도 자리에서 일어나 선실을 나가며 마주 인사를 했다. 머리를 살짝 돌린 채.

 

“전 대협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자네야말로 웬일인가?”

 

어물거리며 말을 돌린 전상휘다. 이전에 만났던 전상휘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어젯밤 이무환에게 맞아 푸르스름하게 멍든 자신의 눈두덩 때문은 아닌 듯했다.

 

상대가 숨기려 하는데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는 일. 엽상은 일단 자신의 일부터 간단하게 사실대로 말했다.

 

“안경을 지나서 좀 더 올라갈 생각입니다.”

 

“그래?”

 

전상휘의 눈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계속 배를 타고?”

 

“당분간 그럴 것 같습니다.”

 

“바쁜가?”

 

“예?”

 

“바쁘지 않다면 도움을 청할 일이 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글쎄요. 그건 제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확답을 해드릴 수 없군요.”

 

전상휘의 눈이 빠르게 선실 안을 훑었다.

 

조금 전에 엽상과 나란히 앉아 있던 약관의 청년과 어린 소녀, 그리고 무사 넷이 전부였다. 아무리 봐도 엽상의 윗사람으로 짐작되는 고수는 없었다.

 

“아쉽군. 자네라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때였다.

 

“엽 형, 무슨 이야긴지 들어나 보자고.”

 

그 말에 전상휘가 다시 선실을 바라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약관의 청년이었다. 그런데 엽상을 마치 아랫사람 부르듯 하지를 않는가.

 

아니나 다를까, 엽상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주.”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표정이었다.

 

“일단 말씀해 보시지요, 전 대협.”

 

전상휘는 놀라움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 하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아주게나.”

 

비록 단 한 번의 만남이었고 이틀간의 동행이 전부지만, 전상휘와 엽상은 상대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할 때는 그만큼 일이 가볍지 않다는 의미였다.

 

엽상도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다른 사람들도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힐끔 선실을 바라본 전상휘가 들릴 듯 말 듯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본 문의 제자가 운영하는 표국에서 표행을 하던 표사들이 몰살당한 사건이 벌어졌네.”

 

“아니, 누가 감히 황산검문의 제자가 운영하는 표국의 표행을 털었단 말입니까?”

 

“그게 문제네. 구강에서 함령으로 가던 표행이었는데, 아무래도 구룡성이 개입한 것 같네.”

 

점점 작아지던 목소리에서 구룡성의 이름이 나온 순간, 엽상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휘둥그레졌다.

 

“예? 대체 어떤 표물이기에 그들이 표행을 건든단 말입니까?”

 

“음, 표국에서 전한 소식에 의하면, 그 표물에 이상한 점이 많더군. 그저 귀한 약초라고 했는데, 표행의 대가가 무려 금 백 냥이나 되었다고 하네.”

 

“금 백 냥이나요?”

 

엽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무환 등도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전상휘의 말을 경청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약초를 운반하는데 표행비가 금 백 냥이나 한단 말인가?

 

어차피 꺼낸 말이다.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는 일. 전상휘는 이무환 등을 힐끔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표국에선 앵화도 아니고 그들의 말대로 일반 약초처럼 보여서 표행을 수락했다는데, 이러한 일이 일어난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단순한 약초는 아니었지 싶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룡성이 일개 표국의 표행을 건드리다니. 조금 이상하군요.”

 

“그래서 본 문에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끔 신중하게 그 일을 다루고 있네. 이미 삼검 공 사형이 그곳에 제자들을 이끌고 가 있는데, 지원을 요청해서 내가 직접 이대제자들을 이끌고 나온 것이야. 사실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내가 자네를 믿기 때문일세.”

 

“하면 제가 어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알지 모르겠네만, 본 문은 구룡성과 그리 친하지를 않네. 더구나 검만 익혀온 우리가 그 일을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물론 본 문과 친한 사람 중 경험이 많은 사람을 찾자면 없는 것은 아니네만,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판이라서 그런 사람을 구하기에 시간이 없네.”

 

엽상은 어렴풋이 전상휘가 바라는 바를 알 것도 같았다.

 

“제가 다리를 놓아주기를 바라는 겁니까?”

 

“자네에겐 강호의 친구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구룡성에 아는 사람 없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좀 낫겠는데 말이야.”

 

전상휘는 엽상이 구룡성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전상휘뿐만이 아니라, 강호인 중에서 엽상의 정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다.

 

엽상은 전상휘의 말에 이마를 찌푸렸다.

 

황산검문은 구룡성이 표행을 약탈했다고 확신을 하는 듯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왕왕 뜻밖의 일이 벌어지곤 했다. 강호에선 절대적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구룡성은 예전의 구룡성이 아니지 않는가.

 

엽상은 대답을 미루고 선실 안의 이무환을 돌아다보았다.

 

이무환은 엽상이 고개를 돌리자 먼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함령이 무창과 얼마나 떨어져 있지?”

 

“무창 남쪽으로 사백 리 정도 됩니다.”

 

“그럼 얼마 걸리지 않겠군.”

 

“함령에서 무창까지 장강을 타고 내려간다면 하루 반 정도 걸릴 겁니다.”

 

어차피 가던 길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구나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구룡성이 얽혀 있는 일이 아닌가.

 

‘뭔가 몰라도 구린 냄새가 나. 아주 고약한 냄새가.’

 

표행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이 생각해도 금 백 냥은 지나칠 정도로 많은 표행비였다. 표물이 약재라는 것도 그렇고.

 

지나치기에는 께름칙한 구석이 너무 많았다.

 

‘잘하면 구룡성에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괜찮은 구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뭐, 덤이 생기면 더 좋고.’

 

재빨리 생각을 정리한 이무환이 엽상을 향해 말했다.

 

“엽상, 그럼 그분 좀 이리 오시라고 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게.”

 

“알겠습니다, 대주.”

 

전상휘는 일단 제자들을 선실에 들어가 있으라 하고 이무환의 선실로 들어왔다.

 

“전상휘라고 하네.”

 

“이무환입니다.”

 

이무환이 부드럽고 조용하게 마주 인사를 하자, 그 모습을 본 엽상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이전에 영호승 등이 지었던 표정의 의미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랬던 거였어. 속지 말라는……. 크크큭!’

 

엽상이야 속으로 고소를 짓든 소리 내어 광소를 터뜨리든, 이무환은 부드럽게 인사를 하고 전상휘에게 물었다.

 

“범인이 정말 구룡성 사람들이라면 복수를 하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달리 원하는 거라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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