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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3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35화

 

35화

 

 

 

 

 

 

 

 

똑똑!

 

“들어가도 돼요?”

 

남궁산산의 목소리.

 

잠시 망설이던 엽상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들어오시오.”

 

남궁산산은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탁자 위에 놓인 검을 집어 들었다. 

 

전이었다면 자신의 검을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엽상은 남궁산산이 검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아! 정말 좋은 검이에요.”

 

설홍을 한 자쯤 뺀 남궁산산이 감탄하며 말했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 그렇지, 한때 천하를 떨어 울렸던 검이라오.”

 

“주인이 어때서요? 제가 보기에는 잘 어울리는데요.”

 

엽상이 쓰디쓴 약을 억지로 삼킨 사람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 검의 주인은 오늘 밤에 죽었다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가슴이 짓물러 터지는 기분. 참담한 자괴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엽상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런 엽상을 향해 남궁산산이 말했다.

 

“그럼 저를 따라와 보세요. 제가 재미있는 걸 보여 드릴게요.”

 

“낭자를?”

 

“어서요.”

 

엽상이 머뭇거리자 남궁산산이 차갑게 굳은 표정을 지었다.

 

“죽었다면서요? 그런 분이 뭐가 또 두려워서 그렇게 망설여요?”

 

뜻밖의 냉랭한 말투에 엽상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남궁산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후회하지는 않을 테니 어서 와보세요.”

 

 

 

송림이 가까워질수록 괴이한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북을 두드리는 소리. 땅을 스치는 소리.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 그 끝에선 여지없이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퍽!

 

스스슥!

 

“이크!”

 

“허억!”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엽상의 걸음이 빨라졌다. 앞서가는 남궁산산의 느린 걸음을 재촉하고 싶은 마음이 일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걸음을 멈춘 엽상은 입을 반쯤 벌리고 남궁산산의 어깨너머로 앞을 바라보았다.

 

풍운대의 십삼조원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천으로 눈을 가린 네 사람의 모습은 참담해 보일 지경이었다.

 

한두 번 겨우 몸을 피하면, 다음에는 여지없이 이무환의 손발이 그들의 몸을 두들겼다.

 

몸이 들썩거릴 정도니 결코 약한 타격은 아닐 터. 그런데도 억눌린 신음을 삼키며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난 듯 네 사람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옷은 흙투성이가 되어 본래의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때 남궁산산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한 시진 정도 되었을 거예요.”

 

한 시진? 저렇게 구타에 가깝게 얻어맞으면서 한 시진을 버티고 있다고?

 

엽상은 진저리를 쳤다.

 

과연 자신이라면 견딜 수 있을까?

 

그사이에도 네 사람이 다시 한번 이무환의 공격에 땅을 굴렀다.

 

남궁산산이 말을 이었다.

 

“아마 반 시진 정도는 더 있어야 끝날 거예요. 전에 세가에 머물 때도 그랬거든요.”

 

엽상이 질린 안색으로 물었다.

 

“왜? 왜 저러는 거요?”

 

“강해지기 위해서 그런데요. 말로는 많이 좋아졌다고 해요. 전에는 곧잘 죽기 직전까지 몰렸는데, 그래도 이제는 조금 견딜 수 있다고 했어요.”

 

문득 이무환을 공격하는 네 사람의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일정한 식도 없고 형도 없다.

 

구질구질한 동작이 일체 배제된 채 최단 거리를 찌르고 베어간다.

 

그것도 눈을 가린 채. 마치 앞이 보이는 사람들처럼.

 

엽상은 멍하니 굳어버린 석상이 되어서 미친 자들이나 할 법한 다섯 사람의 수련을 지켜보았다.

 

그때만큼은 남의 수련을 지켜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렇게 또 반 시진.

 

“헉, 헉, 헉!”

 

“헥! 헥! 오늘은 그래도 기절하지는…….”

 

이무환이 공격을 멈추자 네 사람은 혼신을 다해서 몸을 일으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을 향해 이무환이 말했다.

 

“먼 길을 가야 하니까 봐준 거야. 봐줄 때 열심히 해. 벌써 며칠짼데 기본식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거야?”

 

봐주었다고?

 

엽상은 자신이 당사자라도 된 것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자신도 저 대열에 동참할 것 같았다. 죽어버린 마음을 되살릴 수 있다면, 강해질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을 듯했다.

 

그때 이무환이 고개를 돌리더니 씨익 웃었다.

 

“엽 형도 하고 싶으면 내일부터 함께 나와요. 대신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동료들의 공격이 언제 자신에게 향할지 모르거든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이무환이 아니다. 말투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꼭 악동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자신을 십여 초 만에 기절시킨 사람. 이무환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죽을 각오를 하라고? 훗, 이미 한 번 죽은 사람이거늘…….’

 

못할 것은 또 뭔가?

 

“까짓 거, 한번 해보지요.”

 

 

 

새벽의 어스름이 밀려들 즈음, 엽상이 이무환을 찾아왔다.

 

“이충량 어른과 무슨 관계요?”

 

엽상은 질문을 던지고는, ‘다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 하는 눈빛으로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엽상을 빤히 마주 보고 입을 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선사의 유지를 어길 수는 없잖소?”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지요. 좋은 쪽입니까, 나쁜 쪽입니까?”

 

“적어도 나쁜 쪽은 아니오. 이 형이 적설이라는 이름을 안다면 그 이유도 알 거라 생각하오만.”

 

물론 이무환도 알고 있었다.

 

적설이라는 이름은 무설검객 단유창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이 그가 펼친 무공을 보고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아는 사람이 몇 명밖에 없었다.

 

사실 무설검객 단유창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조금 묘한 구석이 있었다.

 

구룡성에 있을 당시 아버지가 마음을 준 세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단유창이었다.

 

외톨이처럼 지내던 아버지는, 역시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려 홀로 지내기를 좋아하는 그를 형이라 불렀다고 했다. 

 

나이가 열세 살이나 차이 났지만, 형제가 없던 단유창은 아버지를 친동생처럼 대했고.

 

그런데 아버지가 천룡비고에서 금서를 가지고 나와 도망쳤으니, 구룡성의 감찰부인 수룡단의 단주였던 단유창으로서는 고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관계로 인해서, 아버지를 추적하던 구룡성의 추적대가 아버지를 찾지 못한 것일지도 몰랐다.

 

단유창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

 

문제는, 단유창이 죽은 지금 엽상도 과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언뜻 봐선 그럴 것 같지만, 사람의 속을 누가 알겠는가.

 

“만일 이충량이라는 분이 있는 곳을 내가 알려준다면 엽 형은 어떻게 할 겁니까?”

 

“당연히… 만나러 갈 겁니다. 물어볼 것이 있으니까요.”

 

“물어볼 것?”

 

“그렇소. 그분이 가져간 물건이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았는지, 그걸 알아야 하오.”

 

“그 이유에 대해 알았으면 싶은데.”

 

엽상이 이무환을 쏘아보았다.

 

심증은 확실했다. 다만 확실한 관계를 밝히지 않아 정확하게 알지 못할 뿐이었다.

 

부자간일 가능성이 가장 크긴 하지만, 사촌 간일 수도, 성이 같은 제자일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수없이 엽상은 마지막 패를 던졌다.

 

“확실한 관계를 알기 전에는 말할 수 없소.”

 

이무환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알지 않는 게 나을 겁니다. 알면 다칠지도 모르거든요. 만에 하나 최후의 순간이 닥칠 경우, 엽 형이 나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지요.”

 

엽상은 백회혈에 번개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가고자 하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닌 구룡성이다. 아홉 마리의 용이 웅크리고 있는 천하삼대세력의 하나.

 

그곳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모르는 일. 

 

이무환이 이충량과 가까운 사이고, 만에 하나 구룡성의 수뇌들이 이무환의 정체에 대해 눈치 챘을 경우, 절대 조용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또한 이무환과 함께 움직인 사람들에게도 뭔가 조치가 취해질 터. 이무환은 그 점을 생각하고 확실한 답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엽상의 눈빛이 격렬히 떨렸다.

 

이제 약관의 나이. 한데 무공도, 심기도 자신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엽상은 뭔가를 감추려 했던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후우, 좋소. 그럼 말해 드리리다.”

 

정색한 엽상은 천천히 적설의 말을 옮겼다.

 

“십여 년 전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구룡성에 스며들기 시작했소.”

 

그 말에 이무환의 표정도 굳어졌다. 나철위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그들은 암암리에 세력을 넓히고 구룡성의 힘을 잠식해 들어왔는데…….”

 

엽상의 설명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묵묵히 엽상의 말을 듣고 있던 이무환이 불쑥 물었다.

 

“그들이 전설의 무공을 사용했습니까?”

 

엽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해서 사부님께서는 수룡단의 모든 힘을 동원해 그들에 대해 탐색했지요. 한데… 다 파악하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반격을 가해왔소. 결국 사부님과 몇몇 분이 당신들의 목숨을 내던져서 그들의 반격을 차단했고, 덕분에 완벽히 막지는 못했지만 몇 년이라는 시간은 벌 수 있었소.”

 

“결국 최근의 내분이 그들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란 말이군요.”

 

“이 형의 말이 맞소. 그들이 마침내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오. 다행히 구룡성의 힘이 너무 커서 단번에 그들 손에 들어가지는 않았소만, 지금 상황이 일이 년만 지속되어도 구룡성은 완전히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오.”

 

“혹시 그들이 익힌 무공이 이충량이라는 분이 가져간 금서의 무공과 같은 종류가 아닌가 해서 확인을 하려 한 것이었나요?”

 

“그것도 이유 중 하나요. 어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

 

아마 이충량이 구룡성을 노리고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닌가 하는 것도 의심했을 것이다.

 

금서의 무공에 대해 확실히 모르는 이상은 충분히 가능한 추리였다.

 

이무환이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일 이충량이라는 분이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엽상이 이를 지그시 깨물고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서, 전설의 무공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구룡의 진정한 힘도 결코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하고 있소. 정작 문제는… 마룡에 대항할 천룡이 없다는 것이오. 엽 모와 뜻을 같이하는 몇몇 분이 계시는데, 우리는 이충량이라는 분이 신비의 무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그분께 천룡이 되어주기를 부탁할 생각이었소.”

 

아버지에게 천룡이 되어주기를 부탁해?

 

웃기는 소리!

 

이무환은 대소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형제나 다름없는 사람들끼리 다투는 게 싫어 구룡성을 떠난 아버지다. 천룡이 되어달라면 비룡도를 나오기는커녕 어디로 도망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더구나 그 생각은 엽상과 몇몇 사람만의 생각일 뿐, 아버지의 사촌 형제들은 아버지가 나타나면 잡아먹으려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나설 아버지가 절대로 아니었다.

 

비록 사촌형제들을 도와주라며 자신을 내보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왜 그리 다급하게 자신을 내보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그분은 몸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생각은 포기하십시오.”

 

엽상은 물끄러미 이무환을 바라보다 눈빛을 강렬히 빛냈다.

 

“그럼… 이 형이…….”

 

“잠깐!”

 

이무환이 재빨리 엽상의 입을 막았다.

 

“미리 말하는데, 구룡성에 가긴 갑니다. 그리고 그곳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아버지의 말도 있으니 도와주긴 한다.

 

하지만 간섭을 받는다던가,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말아먹든, 구워먹든, 삶아먹든, 뒤집어 엎어버리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거기에 예외는 없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어쩌면 엽 형의 생각과 달리 움직일지 모릅니다. 제가 좀 단순해서 귀찮은 것을 싫어하거든요. 상황이 복잡하다 싶으면, 일일이 정리하느니 차라리 확 갈아엎는 쪽을 택할 겁니다. 구룡성을 쌍룡성(雙龍城)으로 만들 수도, 무룡성(無龍城)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엽상은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려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구룡성에 대해 이무환처럼 말하는 사람이 천하에 또 누가 있을까.

 

갈아엎는다?

 

구룡성을 쌍룡성으로, 무룡성으로 만들어 버린다?

 

듣기만 해도 이상하리만큼 통쾌했다.

 

심장이 벌떡거리고 뜨겁게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때 이무환이 망치로 내려치듯 말했다.

 

“결정은 엽 형이 하십시오. 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그냥 상부상조만 할 것인지.”

 

순간 엽상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엽상이 이 공자와 함께…….”

 

“아! 젠장!”

 

난데없는 이무환의 고함에 엽상이 말을 멈추고 고개를 슬쩍 쳐들었다.

 

“나는 공자니, 뭐니 그런 말 싫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조장이라고 불러요.”

 

엽상이 다시 맹세를 했다.

 

“엽상이 이무환 조장을 따라 생사를 함께할 것을 하늘 앞에 맹세하겠소이다!”

 

그런데 이무환이 또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제 검운장의 풍운대가 아니니 새 이름을 만들어야겠어.”

 

엽상은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것처럼 보여 맹세를 너무 서둘러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든 말든,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이무환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렇지! 광룡대! 어때? 구룡성에 들어가서 활동하려면 아무래도 ‘용’ 자가 들어가는 게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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