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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3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33화

 

33화

 

 

 

 

 

 

 

 

‘이게 뭔 일이래! 정말 큰일 났군!’

 

이무환은 정신없이 머리를 굴려 난관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보았다.

 

당장 생각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거짓을 섞어 사마하연으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드는 수밖에.

 

“험, 고향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요. 옥이라고, 돌아가면 함께 살기로 했는데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소.”

 

“……예.”

 

기운이 빠진 듯 힘없는 대답이다.

 

이무환은 그런 사마하연이 안쓰러웠지만, 이를 악물고 한마디 더했다.

 

“아버지도 그녀를 좋아해서, 내가 돌아가면 바로 혼인 날짜를 잡을 것 같소.”

 

“그랬… 군요.”

 

사마하연의 입에서 모기 날아다니는 소리만큼이나 작은 목소리가 억지로 새어 나왔다.

 

그냥 ‘내가 네 오빠다!’라고 말할까?

 

아니다. 지금 그 말을 들으면 더 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칫하면 족제비 같은 외숙부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챌 수도 있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 사실을 밝히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이무환은 더 이상 있어봐야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마무리를 했다.

 

“사실 노가주께서 따로 불러 소저의 안전을 부탁했소. 그 때문에 최대한 가까이에서 소저를 지켰소. 하나 대충 일이 마무리된 것 같으니 모레 아침에 먼저 떠나야 할 것 같소.”

 

사마하연이 발딱 고개를 들었다.

 

“모레요? 그렇게 빨리……?”

 

가늘게 떨리는 눈빛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이무환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리고 혹시나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거든 노가주께 물어보도록 하시오. 아마 잘 알려주실 거요.”

 

“할아버지가요?”

 

사마하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무환에 대해 잘 아시는 걸까?

 

바로 그때, 별원의 안쪽 전각 문이 열리더니 사마성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하연이 아니더냐? 누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냐?”

 

이무환이 고개를 돌림과 동시 사마성문도 이무환을 알아보았다.

 

“자네는 이 조장이 아닌가? 자네가 왜 이곳에 들어온 것인가?”

 

“수하들 수련을 시키고 돌아가다 이상이 없나 하고 와봤습니다.”

 

사마성문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더는 추궁을 하지 않고 쌀쌀맞게 말하며 손을 저었다.

 

“별걱정 다하는군. 이곳이 어딘가? 쓸데없는 걱정 말고 돌아가게나.”

 

‘헹! 걱정 마쇼. 그러잖아도 가려던 참이니까.’

 

이무환도 족제비의 얼굴을 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쉬십시오, 소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는 이무환의 입에서 소리 없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우, 십 년 감수했네.’

 

 

 

제4장. 광룡대(狂龍隊)! 어때?

 

 

 

 

 

 

 

1

 

 

 

쪽빛으로 물든 하늘, 머리카락을 희롱하고 스쳐 가는 바람이 시원하다.

 

겨울이 되었는데도 유난히 따뜻한 날씨. 기분 좋은 햇살을 받으며 여섯 남자가 한 여자를 따라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이무환과 십삼조원 넷, 그리고 엽상.

 

선두는 머리를 두 가닥으로 묶은 남궁산산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커다란 보따리를 메고 남궁세가를 나왔다.

 

보따리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제법 무겁게 보이는데도 그녀는 조금도 인상을 찡그리지 않고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보고만 있기가 그런지 혁수린이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소저, 이리 주시오. 내가 들고 가겠소.”

 

“소호루의 향단이처럼 미끈한 오빠는 오빠 몸이나 걱정하세요.”

 

이어 막위가 나섰다.

 

“내가 도와주겠소. 아무래도 힘쓰는 것은 내가 낫지 않겠소?”

 

하지만 남궁산산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차라리 산적에게 맡기지…….”

 

이후로 누구도 그녀에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제일 혼란을 느낀 사람은 엽상이었다.

 

그는 아직 남궁산산에 대해 몰랐다. 갑자기 약속 장소가 소호의 호숫가로 변경되더니, 이무환이 네 명의 수하와 나이 어린 소녀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곧장 합비를 출발한 것이다.

 

합비를 출발한 지 이각이 지나서야 엽상이 이무환에게 물었다.

 

“저 소저를 어디까지 데려갈 생각이시오?”

 

“훗. 소저는 무슨, 그냥 꼬맹입니다.”

 

“호위 임무라도 맡은 것이오?”

 

‘에혀, 그러면 얼마나 좋겠수.’

 

이무환이 바람에 흔들리듯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일 년 동안만 데리고 다니라고 부탁합디다.”

 

“일 년?! 대체 누가 저런 연약한 소저를 험한 강호에……?”

 

이무환이 엽상의 말을 끊고 짧게 말했다.

 

“남궁세가에서요.”

 

그러고는 엽상을 흘겨보았다.

 

‘연약한 소녀는 절대 아니거든? 저 큰 보따리를 메고 폴짝거리고 가는 거 안 보여?’

 

엽상이 눈을 크게 떴다.

 

“남궁세가? 그럼……?”

 

“남궁산산. 가주의 막내딸이죠.”

 

엽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소녀가 빙심소혜, 소혜공녀 남궁산산이라고?’

 

대놓고 소문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합비를 오가는 사람치고 남궁산산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여섯 살 때부터 별호가 붙어 소혜공녀라 불린 소녀. 열 살이 넘어서는 너무 냉철한 그녀를 보고 빙심소혜라 불렀다.

 

물론 ‘빙심’이라고 불린 데는 다른 이유도 있지만, 엽상도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위험하지 않겠소? 노리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누가 저 꼬맹이를 남궁산산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엽 형도 몰랐지 않습니까?”

 

하긴 그랬다. 합비를 십여 번 다닌 자신도 알아보지 못했다. 하물며 직접 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남궁산산이 늑대 같은 남자들하고 여행을 할 거라 누가 생각이나 할까.

 

물론 엽상이 모르는 것도 있었다.

 

빙심소혜 남궁산산은 이제 자주 봤던 사람도 몰라볼 만큼 달라져 있었다. 얼어붙은 눈이 녹고 녹색 풀이 돋아난 들판처럼.

 

이무환은 그래서 또 걱정이 태산 같았다.

 

“나는 그것보다, 저 꼬맹이가 무슨 엉뚱한 짓을 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이무환의 눈꼬리가 축 처질 때였다.

 

“오빠! 우리 저 배 타고 가요!”

 

남궁산산이 돌아서서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저 멀리 장하포구가 보였는데, 그곳에 제법 큰 상선이 정박해 있었다.

 

엽상이 그 배에 대해 아는 듯했다.

 

“만경방(萬鯨幇)의 배군요.”

 

“만경방? 뭐 하는 자들입니까?”

 

“장강과 수로를 오르내리며 상단을 운영하는 자들이오. 안경에 총단이 있는데, 장강의 상단 중 세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큰 대상단이지요.”

 

“저들이 장강으로 내려갑니까?”

 

“가긴 하는데, 바로 갈지, 아니면 하루 이틀 머물렀다 갈지 확실한 것은 모르겠소.”

 

“흠. 일단 가서 물어봅시다.”

 

원래는 장강까지 내려가 배를 타려 했는데, 바로 출발하기만 한다면 이곳에서 배를 타고 가는 편이 나았다.

 

 

 

상선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더 컸다.

 

길이가 십오 장이나 되어서 어지간한 군선과 맞먹을 정도였는데, 구조를 보니 화물과 사람을 동시에 실어 나르는 듯했다.

 

장강에 대해 해박한 엽상이 선원들을 부리고 있는 털북숭이를 향해 다가갔다. 제법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이 배의 선장은 아니어도 중간 책임자는 되는 듯했다.

 

“언제 출발하는 거요?”

 

털북숭이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더니, 상대가 무사임을 알아보고 즉시 눈에 준 힘을 풀었다.

 

“오늘 오후, 신시(申時:오후3시~5시) 정(正)에 출발할 겁니다.”

 

“주로 어디 어디를 거쳐 갑니까?”

 

“무위(无爲), 동릉(銅陵), 지주(池州), 추양(秋陽)을 거쳐 안경(安慶)까지 갑니다.”

 

생각대로 안경으로 가는 배다. 인시라면 두어 시진 정도 남았다는 말.

 

이무환이 결정을 내렸다.

 

“안경까지 얼마요?”

 

털북숭이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일인당 은자 두 냥은 주셔야 합니다.”

 

엽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 냥 닷 푼이면 충분한데 무슨 두 냥이란 말이오? 내가 장강을 한두 번 다녀본 줄 아시오?”

 

선원은 한참 동안 엽상을 바라보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이다. 대신 더 깎으면 안 됩…….”

 

“한 냥 두 푼.”

 

이무환이 툭, 끼어들었다.

 

그러고는 그 이상은 죽어도 못 준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돈이 없소.”

 

털북숭이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끄응, 두 푼이라도 더 주시오.”

 

그때다.

 

“한 냥만 해요.”

 

남궁산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털북숭이는 차마 화는 못 내고 남궁산산을 노려보기만 했다.

 

“미안하지만… 절대 그렇게는 못하오.”

 

“북동풍이 불어서 그리 힘도 안 들고 더 빠르게 갈 수 있잖아요. 아마 여름에 비하면 시간이 훨씬 단축될 걸요? 더구나 겨울이라 사람도 별로 타지 않을 텐데……. 뭐, 안 되면 다른 배를 탈게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단숨에 말을 끝낸 남궁산산이 털북숭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쉬울 것 하나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끝내 털북숭이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정말… 더는 안 됩니다. 선원들 수당도 줘야 하니까.”

 

“걱정 말아요. 제가 뭐 그렇게 깍쟁인 줄 알아요?”

 

빙그레 웃는 남궁산산을 보고 졌다는 듯 털북숭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신시 정에 출발할 것이니, 일단 선수금을 내시오. 안 오면 그냥 출발할 것이니 그리들 아시고.”

 

“고마워요, 털보 아저씨.”

 

“끄응…….”

 

털북숭이가 돌아서자 남궁산산이 이무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 사람당 두 푼씩. 여섯이니까 한 냥 두 푼. 그럼 제건 제가 안 내도 되겠죠, 오빠?”

 

“그, 그래.”

 

이무환과 엽상, 십삼조의 네 사람은 멍하니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이라 해서 헤프게 돈을 쓸 줄 알았는데 정반대였다.

 

더구나 말 몇 마디로 뱃삯을 반이나 깎다니.

 

소문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진짜 여우가 따로 없었다. 

 

악귀보다 더 짠 여우.

 

이무환은 그런 남궁산산을 보고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살림은 잘하겠군.’

 

 

 

일행은 일단 객잔으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끝낸 후 엽차를 놓고 한 시진 이상을 보낸 그들은 미시가 넘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객잔을 나섰다.

 

그런데 객잔을 나온 일행이 포구로 걸어가는데 저만치 햇살 아래 앉아서 얻은 음식을 먹고 있는 거지가 보였다.

 

겁에 질린 듯 매우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며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는데, 거적을 둘러써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거지가 갑자기 깨진 바가지를 홱 내던지더니 이무환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응?”

 

이무환이 눈살을 찌푸리고 거지를 바라보았다.

 

“무슨 짓이냐?!”

 

영호승이 재빨리 이무환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거지는 멈추지 않고 곧바로 그들 앞까지 다가왔다.

 

그때 이무환이 소리쳤다.

 

“비켜봐, 멋쟁이!”

 

흠칫한 영호승이 반사적으로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동시에 달려온 거지가 철퍼덕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사람들은 당연히 거지의 입에서 한 푼 달라는 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거지는 뜻밖에도 울음을 터트렸다.

 

“크허엉! 악귀대형!”

 

“거적 벗어봐!”

 

거지가 재빨리 거적을 벗어 던졌다.

 

엉클어진 머리가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가 누군지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작고 치켜 올라간 눈. 독사눈이었다.

 

이무환은 달려오는 거지의 눈을 보고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본 것이다.

 

“독사눈, 네가 여기에 웬일이지? 언제부터 업종을 바꾼 거야?”

 

“으허헝! 그게 아니고요!”

 

“안이고 밖이고, 말해봐. 어떻게 된 거야? 항주에 있어야 할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심상치 않았다. 흑도의 건달들은 어지간하면 자신들의 구역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벗어나면 다른 패거리들에게 맞아 죽을지 모르니까.

 

그런데 절강도 아니고 합비까지 왔다. 절대 단순한 일로 왔을 리가 없었다.

 

“다 죽었습니다요, 악귀대형! 칼자국도 죽고, 사팔뜨기도 죽고, 만복루의 동생들이 마귀 같은 놈에게 팔다리가 잘리고 머리가 잘려서 다 죽었습니다요! 저는 죽어라 도망쳤는데, 대형이 합비에 갔다는 말을 듣고 쫓아왔습니다요!”

 

아니나 다를까, 쏟아내듯 내뱉는 독사눈의 말에 이무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떤 놈이지? 어떤 놈이……. 가만? 혹시, 그놈?”

 

“그놈이 그랬습니다요. 그 마귀! 악귀대형께서 찾던 그 마귀가! 갈기갈기 찢어서 개밥으로 던져 줘도 시원찮을 그 악마 같은 놈이!”

 

분노로 눈이 벌게진 독사눈을 바라보고 이무환이 차갑게 말했다.

 

“일단 따라와. 물어볼 게 많으니까.”

 

 

 

“씻어.”

 

독사눈은 이무환의 명령에 두말 않고 소호의 찬물에 뛰어들었다.

 

그럭저럭 몸을 씻고 옷까지 빨고 나오자 이무환이 가볍게 손을 저어서 독사눈의 옷을 대충 말렸다.

 

뿌연 김이 뭉클거리며 독사눈의 몸을 덮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삼매진화로 천천히 옷을 말리는 거야 일류고수만 되어도 대부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의 옷을, 그것도 짧은 순간에 말리는 이무환의 공력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엽상조차 경악한 눈으로 이무환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무환은 사람들의 눈이 밖으로 툭 튀어나오든 말든 독사눈만 바라보았다.

 

“찾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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