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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31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31화

 

31화

 

 

 

 

 

 

 

 

순간.

 

“컥!”

 

“허억!”

 

“이럴 수가……. 저 도동놈…….”

 

“설마 벌써 건드렸다는…….”

 

거센 충격이 후원을 휩쓸고 담장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로 퍼져 나가며 눈덩이처럼 커졌다.

 

짜증이 난 이무환은 홱 고개를 돌리고 눈을 치켜떴다.

 

“헛소리 좀 그만하고 가보쇼!”

 

그러나 소란은 조금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남궁세가의 사람들까지 우르르 몰려왔다.

 

“무슨 일이야?”

 

“누가 감히 함부로 이곳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냐?!”

 

이무환은 남궁산산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홱, 몸을 돌렸다.

 

“들어와! 들어와서 얘기하자!”

 

남궁산산이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예, 이 대협.”

 

‘잡아야 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돼. 저 사람이라면 가능할 지도…….’

 

사람들이 이무환을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는 남궁산산을 향해 소리쳤다.

 

“꼬마 아가씨, 들어가지 마시오!”

 

“그 놈이 수상한 짓을 하면 소리를 지르시오! 우리가 구해줄 테니까!”

 

“저 악귀 같은 놈이 끝내 일을 저질렀군!”

 

대부분이 그녀를 모르는 검운장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득달같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가주에게 알려야 한다는 절대적인 사명감을 품은 채.

 

 

 

이무환이 남궁산산을 빤히 노려보며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이유가 뭐냐? 너, 여우 찜 쪄 먹을 만큼 영리하다는 거 다 안다. 삼 년 전의 장난 같은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이럴 애가 아니라는 말이지. 말해봐. 진짜 목적이 뭐야?”

 

“말씀드린 그대로예요.”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냐?”

 

“정말로…….”

 

“너, 죽을래?”

 

남궁산산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사람은 진짜로 자신을 죽이고 훌쩍 떠나고도 남을 사람이다.

 

남궁산산은 어렴풋이 이무환의 성격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눈에 힘을 주고 두어 번 깜박이자 커다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무환이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 너 뭐 해? 왜 울어? 임마, 남들이 보면 내가 너 때린 줄 알 거 아냐?”

 

“길 가는 여자 붙잡고 아무한테나 물어보세요. 이 대협처럼 말하면 안 울 여자가 어디 있는지.”

 

“얀마, 그건 그거고……. 안, 멈, 춰?”

 

남궁산산은 이무환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소매로 눈물을 쓱 훔쳤다.

 

그제야 이무환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후우, 좋아. 다그치지 않을 테니까, 이제 말해봐. 왜 그런 거냐? 내 힘이 필요하기라도 해?”

 

남궁산산은 마지막 남은 눈물마저 훔치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순히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두려울 정도.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듯했다.

 

“솔직히… 그런 마음도 없잖아 있어요.”

 

“없잖아 있는 게 아니라, 그게 다인 것 같은데 뭐.”

 

조금 전만 해도 그게 거의 다였다. 다른 이유는 아주 쪼끔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다른 이유가 제법 커졌다.

 

“우선, 이 대협이…….”

 

“잠깐! 너, 그 대협이라는 말 좀 하지 마라. 듣다 보니까 몸에서 뭐가 톡톡 튀어나오는 거 같다.”

 

“큭!”

 

남궁산산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녀는 그런 자신에게 놀라 가슴에 손을 얹었다.

 

“웃으니까 조금 낫군. 계속 말해봐. 대협이나 소협 소리 빼고.”

 

남궁산산은 잠시 망설이더니, 좋은 호칭이 생각난 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 빠가 잘생겼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혁수린처럼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자신이 봐도 남자답게 생겼다.

 

“그거야 다 아는 사실이고.”

 

“큭!”

 

남궁산산이 다시 웃더니, 조금은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라면 금천신문에게 당하고 있는 우리 집안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죠.”

 

“흠, 이제야 솔직해지는군. 그게 다야?”

 

당연히 다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남궁산산이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말한다.

 

“그것도 그렇지만, 사실 저는… 저를 통제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제야 이무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툭, 던지듯이 한마디 했다.

 

“너, 어디 아프냐?”

 

“예?”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통제할 사람이 필요한 거 아냐?”

 

화를 내야 당연했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누구도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화나는 대신 손발이 떨렸다.

 

‘정말 내 정신이 이상한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가끔 가다 스스로에게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아무리 무가의 자식이라지만, 처음으로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도 여섯 살 꼬마가.

 

‘왜 죽었을까? 바보같이 왜 당했을까? 나라면 당하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을 뿐이다. 심지어 왜 죽었는지 본다며 몰래 시신을 들춰보기도 했다.

 

그러다 나이를 먹자―그래 봐야 열네 살이었지만―가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다 바보들만 있어. 저 바보들쯤은 내가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어. 바보 멍청이들! 벌레 같은 너희들은 다 내 발바닥이나 핥아야 해!’

 

뇌리 저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그런 메아리를 듣고 나면 식은땀이 나고 몸이 떨렸다.

 

그때마다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대는 메아리를 잠재워 줄 누군가를.

 

그동안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자신의 메아리를 완벽하게 잠재우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오빠를 잡는다며, 자잘한 일을 해결한다며 사람들을 이끌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것마저 안 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그런데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랬어, 나는 정신이 이상한 여자애였던 거야.’

 

결론을 내린 남궁산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러고는 힘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정산이상자라니. 

 

아무리 그녀가 똑똑하고 냉정해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무환은 의외라는 눈으로 고개 숙인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어디, 말해봐. 어떤 식으로 미쳤는지.”

 

남궁산산이 고개를 슬쩍 쳐들었다.

 

“다요?”

 

“그래, 다. 내가 소리를 차단해서 아무도 못 들으니까, 아무 걱정 말고.”

 

해연이 놀란 남궁산산이 이무환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공을 이용해 소리를 차단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그리고 적어도 초절정 경지는 되어야만 그리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이무환이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그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더 강한 것 같아.’

 

강하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대해보니 자신의 짐작보다 더 강한 듯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말해보라니까?”

 

“예? 예. 그러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남궁산산은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다 털어놓았다.

 

다 털어놓고 나니 왜 이리 시원한지 가슴이 다 후련해졌다.

 

‘진작 털어놓았으면 좋았을 걸.’

 

그녀가 전보다 훨씬 환해진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무환이 고개를 모로 꼬고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꼬맹이가 정말로 미쳤군. 문제다, 문제야…….”

 

“푸웃! 크크크, 호호호호호!”

 

태어나 처음으로 남궁산산은 소리 내어 실컷 웃었다.

 

그때였다.

 

“험! 산산아, 안에 있느냐?!”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무환은 그 목소리가 전날 들어본 목소리임을 알고 얼굴을 와락 구겼다.

 

“환장하겠군. 끝내 네 아버지까지 왔다, 이제 어쩔래?”

 

남궁산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어쩌긴요. 사실대로 말하고 인정받으면…….”

 

“너! 네 아버지 왔다고 내가 고개 숙일 거라 생각했으면 착각이다.”

 

남궁산산이 꾸중 들은 어린아이처럼 시무룩하니 말했다.

 

“저도 알아요.”

 

“안다면서 그런 말을 해?”

 

“그럼 뭐라고 해요?”

 

문제는 그것이었다.

 

밖에 있던 사람들이 살까지 덧붙여서 말했을 테니, 어지간한 말은 통하지 않을 터였다.

 

진짜!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이무환이 검지를 뻗어 남궁산산의 코를 향해 콕콕 찔렀다.

 

“나중에 일 터지면, 다 너 때문이야!”

 

 

 

남궁현은 딸을 부르고는 초조하게 밖에 서서 방 안을 노려보았다.

 

오자마자 방문을 부수고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엄청난 기운이 방을 감싸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초절정에 도달한 고수인 그는 알아보았다. 하기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려는 것을 오히려 자신이 말려야 할 판이었다.

 

“산산이가 누군가? 걱정 말게. 아무 일 없을 테니까.”

 

그러면서.

 

그런데 아무 소리도 없다.

 

심지어 딸의 대답도.

 

‘만일 무슨 일이 있다면, 내 직접 검운장의 씨를 말려 버릴 것이다!’

 

바로 그때.

 

덜컹!

 

마침내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남궁산산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걸어나왔다.

 

“산산아…….”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숙부님들하고 오빠들까지 데리고?”

 

“음? 그거야 네가…….”

 

“오빠하고 중요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버지 때문에 이야기가 끊겼잖아요.”

 

“오, 오빠?”

 

남궁현을 비롯한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방 안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다. 남궁세가의 사람들 속에서 곰이 우는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허허헉!”

 

남궁진이었다.

 

그는 방 안에 서있는 이무환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더니, 남궁현을 향해 다급히 말했다. 

 

“아버지,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알았나 봅니다. 가시죠!”

 

“뭐야? 네놈이 제일 설쳐 놓고…….”

 

“아버지, 산산이가 어디 보통 앱니까? 걱정하실 것 없다니까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다행히 남궁산산이 남궁진을 구해주었다.

 

“둘째 오빠, 걱정 마시고 아버지하고 돌아가세요. 저는 잠시 이 오빠하고 이야기 좀 나누다 갈 테니까요.”

 

그 소리가 마치 선녀의 목소리 같았다.

 

“걱정 마라. 내가 누구냐? 음하하하. 아버지, 보세요. 걱정 말라잖아요. 가요. 숙부님도 어서…….”

 

남궁진은 떠밀다시피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러고는 그때까지도 어정쩡하니 서 있는 남궁세가의 무사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누가 엉터리 소식을 전한 거야?! 빨리들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물러가자 검운장의 사람들도 주춤대며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나철위가 돌아서기 전에 전음을 보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마시고 돌아가십쇼. 안 그래도 꼬맹이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니까.>

 

나철위가 잠시 망설이더니 한마디 더 했다.

 

<믿어도 되겠지? 설마…….>

 

‘뭐야? 저 양반이!’

 

쾅!

 

대답도 없이 이무환의 방문이 다시 닫혔다.

 

 

 

“좌우간, 못 말린다니까. 내가 저런 꼬맹이를 어떻게 할 거라고 그렇게들 걱정이야?”

 

이무환이 투덜대며 의자로 다가가자 남궁산산이 뜬금없이 물었다.

 

“언제 떠날 거예요?”

 

이무환이 털썩,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내일 잔치 끝나면 모레 아침에 떠날 거다. 왜?”

 

“검운장까지 따라가려고요.”

 

흠칫한 이무환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 검운장으로 안 가.”

 

“그럼요?”

 

“당분간 조원들과 함께 여행을 할 거야. 장강을 따라서.”

 

“우와! 재밌겠다.”

 

“재미는 무슨!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따라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남궁산산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포기한 듯 보였다. 하긴 혼자도 아니고 늑대 같은 수하들까지 데리고 여행을 간다는데, 어린 소녀가 따라간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대신 묘한 표정으로 이무환을 보며 웃기지도 않은 질문을 했다.

 

“오빠, 여자하고 잔 적 없죠?”

 

뜨끔한 이무환이 버럭 소리쳤다.

 

“이 꼬맹이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피이, 척 보면 안다구요. 그러니까 나같이 예쁜 여자와 한방에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꼬마 취급을 하죠.”

 

예쁘긴 예쁘다. 그래도 꼬마는 꼬마일 뿐.

 

자존심이 상한 이무환이 결사적으로 변명했다.

 

“그, 그래도 입술은 닦아봤어, 인마!”

 

“예? 입술을 닦아요?”

 

“그래! 옥이 입술. 내 입술로…….”

 

“푸하하하하! 깔깔깔깔!”

 

남궁산산이 배를 움켜쥐더니 바닥을 떼굴떼굴 굴렀다.

 

멋쩍어진 이무환이 다시 소리쳤다.

 

“너는 그것도 안 해봤을 거 아냐,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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