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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8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1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28화

 

28화

 

 

 

 

 

 

 

 

고개를 돌리자 구석진 곳에서 여인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네 청년 중 셋이 벌떡벌떡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청년 하나는 뒤로 몸을 기댄 채 싱글싱글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고.

 

네 명의 청년은 하나같이 덩치가 컸다. 술을 많이 마신 듯 얼굴이 불콰해진 그들의 코에서 성난 소처럼 콧김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들 중 맨 앞에서 오던, 덩치가 제일 큰 자가 황소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놓으라 하지 않았더냐!”

 

“내가 왜 놓아야 하지?”

 

“우리 대형께서 놓으라 했으니까!”

 

“못 놓겠다면?”

 

“뭐야? 못 놔? 감히 대남궁세가의 작은 아가씨 손을 잡고 놓지 않겠다고?”

 

‘남궁세가? 작은 아가씨?’

 

이무환이 이마를 찌푸릴 때다. 뜻밖에도 소녀가 오히려 그들을 향해 빽 고함을 질렀다.

 

“꺼져! 누가 너희들더러 나서라고 그랬어?”

 

“작은 아가씨!”

 

“내 손이 부러져도 너희들은 나서지 마!”

 

“하지만…….”

 

“말도 하지 마! 너희들 도움 받고 싶지 않으니까!”

 

황소 같은 덩치의 청년은 조그마한 소녀에게 꼼짝도 못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많이 봐왔다는 듯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구경만 했다.

 

이제는 거꾸로 이무환이 고민을 했다.

 

‘팔목을 그냥 똑 부러뜨리고 놓아줘? 그 정도면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까? 아니면 울고불고 사정할 때까지 놔둬?’

 

그때 갑자기 소녀가 입술을 씹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나 이제부터… 이 사람 포로야. 구하려면 오빠더러 구하라고 해.”

 

“작은 아가씨?”

 

“빨리 가서 말 안 해? 빨리 가!”

 

“예? 예…….”

 

덩치 큰 청년이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구석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 달려갔다.

 

이무환은 물끄러미 소녀를 바라보았다. 자꾸 일이 커지는 것 같아 귀찮아졌다.

 

“귀찮아지는 건 싫은데.”

 

이무환이 중얼거리자 소녀가 코웃음 치며 조금 전의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흥! 놓지 마! 이제 내가 싫어!”

 

“후우, 그냥 팔목만 부러뜨리고 놓아줄 걸 그랬나?”

 

“…뭐?”

 

그렇게나 빽빽거리던 소녀가 멍하니 이무환을 올려다보았다. 이무환은 잔뜩 귀찮다는 표정으로 소녀의 두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빨리 잘못했다고 해라. 하지 않으면 귀찮아도 울고불고 오줌을 쌀 때까지 안 놓아줄 거다.”

 

말을 하는 와중에도 심해 저 밑바닥처럼 일말의 흔들림이 없는 눈빛이다.

 

사람이라면 절대 저런 눈빛을 보일 수가 없다.

 

뭔가가 스멀거리며 등을 기어오르는 기분.

 

정말이다. 이 사람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소녀, 남궁산산은 그제야 이무환이 두려워졌다.

 

‘정말이야, 이 사람은 정말 내 손을 부러뜨릴 거야. 아니면…….’

 

남궁세가에서 그녀는 특별했다.

 

꼭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현이 늦은 나이인 마흔에 그녀를 낳아 특별히 예뻐해서만은 아니었다. 남궁세가의 노가주인 남궁종원이 품 안에 두고 놓으려하지 않아서만도 아니었다.

 

그녀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 열넷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혜지(慧智)가 뛰어났다.

 

소혜공녀 남궁산산. 남궁세가의 작은 꾀주머니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눈빛만 보고도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는 능력까지도.

 

그런 그녀가 봤을 때 이무환은 무섭고, 두렵고, 절대 쉽게 상대해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

 

게다가 잡힌 손의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공력도 얕지 않은데 손가락, 발가락 하나 꼼지락거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말.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말까지 하고 있었다. 초절정의 무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

 

‘남궁세가의 이름으로는 이 사람의 뜻을 꺾을 수 없을지 몰라.’

 

문제는… 그만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는 것이다.

 

‘나 어떡해…….’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멍청한 오빠가 거들먹거리며 다가온다.

 

“내가 놓으라 하지 않았나?”

 

남궁산산은 흘낏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이던 청년의 입가로 희미한 미소가 스쳐 떠오르는 게 보였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웃음.

 

그걸 보는 순간, 남궁산산은 소름이 돋았다.

 

‘아, 안 돼, 오빠! 오지 마!’

 

그때 이무환이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물었다.

 

“저 사람, 네 오빠 이름이 남궁진이냐?”

 

대답은 남궁진이 가슴을 탕탕 치며 했다.

 

“맞다! 내가 바로 남궁진이다, 애송아!”

 

아예 무덤을 파라, 파!

 

남궁산산은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았다.

 

‘멍청한 오빠야! 그냥 도망가!’

 

“그래? 한 가지 수고는 덜었군. 아주 잘되었어.”

 

무슨 뜻일까?

 

수십 줄기 뇌전이 남궁산산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더니, 어느 곳에서 딱 멎었다.

 

‘한 가지라면 뭔지 모를 목적이 또 있다는 뜻. 오빠는 그중 하나일 뿐이야! 맙소사!’

 

그녀가 덜덜 떨자, 이무환은 다시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묘한 생각이 들었다.

 

꼭 손을 잡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꼬마 계집아이가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영호승이 설명해 주던 남궁세가의 식구들 중에서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꼬맹아, 네가 남궁산산이냐?”

 

남궁산산은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꼬맹이라는 말을 이무환이 계속하는데도 화를 내지 못했다.

 

혹시 또 다른 목적이 바로 나 아닐까? 그런 생각에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속도 모르고 남궁진이 말했다.

 

“맞다. 그 아이가 바로 내 사랑스런 동생, 빙심소혜 남궁산산이지! 이제야 너는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았나 보구나. 감히 내 동생을 건드리다니!”

 

바보! 멍청이! 매운 고추를 콧속에다 쑤셔 넣어야 정신을 차릴 머저리 오빠!

 

그녀는 안간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이대로 있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 그게요…….”

 

이무환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너는 똑똑한 아이니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이 바뀔 것인지 잘 알 거다. 나도 귀찮으니까, 선택은 네가 해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이다.

 

팔목이 부러지고 풀려나든, 잘못했음을 시인하고 고개를 숙이든지.

 

아니면 울고불고 오줌을 쌀 때까지 정말로 풀어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혜지가 뛰어나도, 그녀는 열네 살 소녀였다.

 

억지로 입술을 여는데 달달 떨렸다.

 

“죄, 죄, 죄송…….”

 

이무환이 말을 교정해 주었다.

 

“잘못했습니다.”

 

“자, 잘못해, 했습니… 다.”

 

“다음부턴 말을 조심하겠습니다.”

 

“다, 다……. 흑흑, 다음부턴…….”

 

“다시! 우는 소리가 나면 또 다시 시킬 것이다.”

 

“다, 다, 다음부턴… 말을 조심… 하겠습니다.”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쇠로 된 인형, 빙심소혜, 소혜공녀 남궁산산이 운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고요한 가운데, 남궁산산의 눈물 떨어지는 소리가 드넓은 소호대루에 울려 퍼졌다.

 

이무환은 천천히 남궁산산의 주먹을 놓아주었다. 주먹이 풀려나자 남궁산산이 철푸덕,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무환이 주저앉은 남궁산산에게 나직이 말했다.

 

“지금 바로 손을 주물러서 혈맥을 풀어라. 아니면 다시는 예쁜 손을 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린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재빨리 남궁산산을 에워쌌다.

 

그리고 그들 중 몇 사람은 분노의 검을 뽑아 들었다.

 

챙챙!

 

“네놈이 감히!”

 

“멈춰!”

 

그때 남궁산산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고는 멈칫한 무사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죽고 싶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있어!”

 

그녀의 수호대는 절대 그녀의 명령을 어기지 않는다. 설사 자존심 상하는 명령이라도. 그래야만이 그녀를 지킬 수 있으니까.

 

이무환은 무사들이 남궁산산을 에워싸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자,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손을 주무르는 남궁산산에게서 눈을 돌려 남궁진을 바라보았다.

 

“잠깐 나하고 이야기 좀 하지.”

 

멍하니 남궁산산을 바라보고 있던 남궁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

 

“침 닦고 따라와.”

 

쓰윽, 남궁진은 소매로 침을 닦고 험악한 눈으로 이무환을 직시했다. 그제야 정신이 든 그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너 이 자식, 어디서 내 동생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남궁산산이 절규하듯 소리를 질렀다.

 

“오빠아아!”

 

“조금만 기다려라, 산산아. 내 이 자식을…….”

 

“멍청아! 제발 입 좀 다물어!”

 

“산산아……?”

 

“제발, 제발 입 좀 다물란 말이야! 나는 오빠가 죽는 거 보고 싶지 않아! 엉엉엉!”

 

“그, 그게……. 산산아…….”

 

“딱, 한 번만 부탁할게, 응? 제발 입 좀 다물고, 그 사람과 잘 이야기해 봐. 제바알!”

 

남궁진이 다른 것은 몰라도 남궁산산의 능력만큼은 안다.

 

동생의 머리는 감히 자신이 머리카락 하나만큼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물론 사람 보는 능력도.

 

그런 동생이 울면서 죽기 싫으면 입을 다물라고 한다. 처음 듣는 ‘부탁’이라는 말까지 해가면서.

 

그 말인즉, 눈앞의 공자 나부랭이처럼 생긴 놈을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남궁세가의 젊은 층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인 자신이!

 

이가 부스러지도록 악다문 남궁진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무환의 눈빛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산산이가 잘못 봤을 거야. 아직 어린놈이잖아?’

 

남궁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남궁산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따라가지.”

 

‘개자식! 목을 자르고, 심장을 갈라서 죽여 버리겠다!’

 

저벅, 저벅.

 

몸을 돌린 이무환이 계단을 내려가자 사람들이 쫙 갈라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이무환이 말했다.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해, 꼬맹아. 난 두 번 봐주지 않거든. 알았지?”

 

“…예.”

 

 

 

소호는 소호대루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차갑게 쏟아지는 달빛을 벗 삼아 백여 장을 걸어가자 잔잔하게 가라앉은 소호가 검은 침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무환은 혼자 밤길을 걷는 사람처럼 한가로이 호숫가를 걸었다.

 

뒤에 남궁진이, 그리고 그 뒤 십여 장 거리를 두고 남궁진의 똘마니들이 따라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없는 사람 취급했다.

 

성질 급한 남궁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그제야 이무환이 걸음을 멈췄다.

 

몸을 돌린 그가 남궁진의 뒤를 따라오는 똘마니들을 바라보았다.

 

“두 번 용서는 없다고 했는데 못 들었나 보군.”

 

“개자식. 어차피 죽을 놈이 별걸 다 따지는군!”

 

이무환의 눈빛이 달빛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긴, 죽어도 슬퍼해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상관없겠군.”

 

“흥! 그래, 네놈은 죽어도 누가 슬퍼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더 갈 필요도 없이 이제 그만 죽어줘야겠다.”

 

“그전에 한 가지 묻지.”

 

“전이고 뒤고. 목이나 길게 내밀어라, 개자식아!”

 

남궁진의 커다란 목소리가 호숫가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남궁진이 등 뒤의 커다란 검을 뽑아 들었다.

 

챙!

 

무려 넉 자에 달하는 대검이었다.

 

커다란 체격에 넉 자의 대검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궁진의 살기등등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 이무환이 태연히 물었다.

 

“사마하연과 혼인하기로 했다는데, 그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지?”

 

분노로 한껏 달아올라 있던 남궁진이 버럭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냐!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그냥 궁금해서 그러니까, 네 생각만 말해봐.”

 

“하! 왜? 그 계집이 네 계집이라도 되느냐? 차라리 기루의 계집이 낫지, 이 어르신은 그딴 풋내나는 계집은 싫다!”

 

머릿속에 확! 불이 붙는 듯했다.

 

‘저걸 그냥! 토막 내서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려?’

 

심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도 이무환은 참을 인(忍) 자 세 번을 속으로 외치며 한 번 더 참았다.

 

‘인, 인, 인! 좋아, 대신 세 배는 더 때려주마!’

 

이무환이 고저 없는 음성으로 나직이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그때까지도 상황을 파악 못한 남궁진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댔다.

 

“내 물건이 좀 크거든? 아마 그 계집은 나를 감당하지 못할걸?”

 

남궁진의 말에 뒤따라온 똘마니들이 낄낄거린다.

 

“아마 살려달라고 싹싹 빌 겁니다, 대형!”

 

“그전에 몸무게에 눌려서 숨이 막혀 죽을 걸?”

 

더 이상은 참을 인 백 번도 이무환의 분노를 막지 못했다.

 

이무환이 성큼 한 걸음을 내딛었다.

 

남궁진이 움찔하는 순간 이무환의 신형이 흐릿하니 사라졌다.

 

동시였다.

 

빠바박!

 

나란히 서 있던 똘마니들 셋이 거의 동시에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오면 후회한다고 했을 텐데?”

 

이무환은 세 똘마니를 공깃돌처럼 띄워놓고 회풍각으로 휘돌려 찼다.

 

남궁진이 소리치며 달려들기도 전에 수십 번의 발길질이 세 똘마니의 몸을 골고루 두들겼다.

 

퍼버버벅!

 

“컥! 켁! 커억!”

 

“멈추지 못해?!”

 

똘마니들이 얻어터지자 남궁진이 검을 들고 이무환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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