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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5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26화

 

26화 

 

 

 

 

 

 

제1장. 나철위, 정체를 드러내다

 

 

 

 

 

1

 

 

 

태양에 반사된 강물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검운장의 사람들을 태운 배는 작지 않은 크기인데도 도도히 흐르는 장강에 비하니 풀잎 하나가 떠가는 듯했다.

 

반 시진, 장강을 건너자 엽상이 먼저 배에서 내려 떠나갔다. 일행은 그에 대한 신경을 끄고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마차가 떠나기 직전 이무환이 마차의 앞을 막아섰다.

 

사마성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가?”

 

“각주님, 이왕 이렇게 된 거, 남궁세가에 가는 목적이나 제대로 압시다.”

 

사마성안이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 사마성문이 나서서 매몰차게 잘랐다.

 

“비밀이네.”

 

이무환이 사마성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안다고 달라질 거 있겠습니까? 보아하니 혼인 때문인 거 같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마성문을 주시했다. 그들의 싸늘히 식은 눈빛에서 한광이 뿜어졌다.

 

동료들이 벌써 십여 명이나 죽었다. 정확한 임무도 모른 채. 게다가 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 적어도 왜 적들이 악착같이 달려드는지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금검대의 두 조장만큼은 조금도 궁금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이무환은 그게 더 화가 났다.

 

“어떤 조장은 아는데, 누구는 모른다? 이거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목소리가 살짝 올라가자 사마성안이 고갯짓을 했다.

 

마지못한 듯 사마성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차피 이삼 일이면 알 걸 왜들 그리 서두르는지 모르겠군.”

 

“단지 명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간 동료들이 벌써 십수 명입니다. 거동하기 힘들 정도로 부상을 입은 사람이 반 가까이나 되고요. 기왕이면 알고 싸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미 허락이 떨어진 상황. 하는 수 없다 생각했는지 사마성문이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혼인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반은 알고 있는 거나 다름없네. 사실이 그러니까.”

 

그다음부터는 빤한 내용이었다. 생각했던 것처럼 절강의 타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남궁세가와 정략적인 혼인을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 나온 이름 하나였다.

 

남궁진.

 

이무환은 그가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무환은 그것만으로도 남궁진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은 그렇게만 알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니까. 그것 때문에 하연이가 직접 가는 거고 말이야.”

 

사마성문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그 말만 하고 출발을 알렸다.

 

“나 대주, 출발합시다!”

 

이무환도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조용히 뒤로 처져서 십삼조원들과 마차를 따라가기만 했다.

 

남궁진에 대한 소문을 듣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십삼조의 조원들도 모두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물론 좋은 소문은 아니었다.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광포하다고 하더군요.”

 

“합비의 건달들에게 대형이라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미치면 앞뒤를 안 가린다고 합니다. 합비의 미친개라고, 조장님과 성질이 비슷…….”

 

흠칫, 막위는 무심코 말을 잇다가 대경해 입을 닫았다.

 

‘이, 이런, 내가 무슨 말을…….’

 

다행히 이무환은 그 말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소문을 들을수록 화가 났다.

 

그런 자에게 예쁜 동생을 넘겨야 하다니!

 

친아들이 맞든 아니든 그건 별 상관없었다. 신분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니까.

 

건달들에게 대형이라 불리든 동생이라 불리든 그것도 상관없었다. 항주의 칠도회에서도 자신을 대형이라 부르는 사람이 반도 넘으니까. 악귀대형 말이다.

 

문제는 그가 합비의 미친개로 불린다는 것이다.

 

미친개라니. 그만큼 성격이 광포하다는 말이 아닌가!

 

또한 성격이 광포하다는 것, 그것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감히, 감히! 자신의 여동생을 때려?!

 

이무환은 아직 만나지도 않은 남궁진이 사마하연을 눈앞에서 때리는 상상을 하고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쌍칼!”

 

“헛! 예! 조장!”

 

“내가 부드럽게 말하니까, 속이 울렁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보던데, 앞으로는 어지간하면 그냥 살던 대로 살 생각이야. 아무래도 그게 낫겠지?”

 

단우경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뒤통수로 꽂히는 동료들의 눈길이 바늘 끝처럼 느껴졌다.

 

“그, 그게…….”

 

“나이 어린놈이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몰라도, 세상이 그렇더라고. 변화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면 좀 좋아? 왜 자꾸 사람을 독하게 만들려고 그러는 줄 모르겠어.”

 

끝내 세 쌍의 바늘이 뇌 속으로 파고들자 단우경의 이마에 삐질삐질 땀이 맺혔다.

 

그때 이무환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며칠 사이에 직접 손에 피를 묻힐 것 같아. 아주 진하게 말이야.”

 

‘크윽!’

 

단우경이 숨도 못 쉬고 딱딱하게 굳어버림과 동시, 이무환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흥! 남궁진이란 놈이 어떤 놈인가는 몰라도, 완전히 개조를 해버리겠어!’

 

 

 

2

 

 

 

붉게 물든 하늘이 검게 타 들어갈 즈음, 일행은 심항(沈巷)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이무환은 밤이 깊어 해시가 넘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외떨어져 있는 나철위의 방을 찾아갔다.

 

“앉게.”

 

아무도 없었다. 혼자만 부른 듯했다.

 

‘무슨 일이지?’

 

이무환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자 나철위가 직접 차를 따라줬다.

 

‘차라는 것이, 마실수록 입에 짝짝 달라붙는단 말이야.’

 

묵묵히 비운 찻잔이 바닥을 드러내자 이무환은 스스로 차를 더 따랐다. 그제야 나철위가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많을 것 같네만.”

 

뜬금없는 말이다. 이번 일에 대한 궁금증을 말하는 것은 아닐 터.

 

이무환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조금 그렇습니다.”

 

나철위도 다시 찻잔을 채우더니 단숨에 비웠다. 그러고는 이무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가 풍운대에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네.”

 

이무환은 두 번째 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잔이 좀 크면 더 좋을 텐데.’

 

이무환이 헛생각을 하는 동안 나철위가 말을 이었다.

 

“아니, 검운장에 있는 이유라고 해야겠지.”

 

묘한 뜻이 담긴 말이다.

 

이무환은 찻잔을 입술에 대고 눈만 쳐들었다.

 

나철위가 말을 이었다.

 

“우선 내 진짜 신분부터 밝히지.”

 

진짜 신분? 이무환은 차를 마시면서 눈만 치켜뜨고 나철위를 바라보았다.

 

나철위가 무겁고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무환의 치켜뜬 눈을 노려보면서.

 

“나는 정천무림맹의 사대총령 중 동안총령주(東岸總令主)라네.”

 

이무환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찻잔을 내려놓은 이무환의 입에서 느릿하니 비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검운장의 사람이 아니라, 정천무림맹이라는 곳의 첩자라는 건가요?”

 

“첩자라는 말은 좀 그렇군.”

 

“정체를 숨기고 들어와 있다면 그게 첩자 아닙니까?”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어감이 좋지 않을 뿐. 하지만 나철위가 그런 말을 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르신의 허락을 받고 있었으니 첩자는 아니네.”

 

“어르신?”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노장주님 말씀인가요?”

 

“그렇다네. 그분의 허락을 받았지. 그래서 자네를 이렇게 만난 것이기도 하고.”

 

이무환의 눈이 서서히 가늘어졌다.

 

“설마, 그 말은……?”

 

“떠나기 전에 어르신께 들었네. 그분이 자네 외조부님이라는…….”

 

“아아, 정말로!”

 

갑자기 이무환이 발끈해 소리치자 나철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푹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버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외조부님도 잘난 외손자를 가만 놔두지 않으시네. 어휴… 잘나도 탈이라니까.”

 

나철위가 눈 사이를 좁히고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자화자찬하는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뭐 이런 놈이 있어? 그런 눈빛으로.

 

그때 이무환이 번쩍 고개를 쳐들고 물었다.

 

“그래, 뭐랍디까? 나에게 뭐 바라는 거라도 있습니까?”

 

‘허, 이거 참.’

 

처음으로 나철위의 입가에 고소가 떠올랐다.

 

단번에 대화의 주도권이 이무환에게 넘어가 버렸다.

 

차근차근 설득해서 자신의 일을 돕게 만들려고 했더니, 이제는 먼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판이다. 그 차이는 작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노력은 해볼 일이었다.

 

“내가 왜 검운장에 십 년 넘게 있었는지 아나?”

 

“그거야 대주님 사정이죠. 본론을 말해보라니까요?”

 

“십여 년 전에 수상한 무리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이 절강과 강소 쪽으로 숨어들었네.”

 

“정천무림맹이라면 천하삼대세력 중 하나고, 구대문파와 오대세가가 연합한 곳이라던데, 그런 정천무림맹이 신경을 써야 할 정도로 강한 자들입니까?”

 

“그때만 해도 확실하지 않았지.”

 

“그래도 뭔가가 있으니까 대주님이 십 년 넘게 항주에 처박혀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것도 신분을 감추고 말이죠.”

 

‘그놈 말하는 꼴 하고는. 처박혀가 뭐야, 처박혀가?’

 

속으로야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상대의 말을 꼬투리 잡아 다그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현재 아쉬운 건 자신이었으니까.

 

꾹 참은 나철위는 일단 질문에 먼저 대답했다.

 

“이유는 간단하네. 그들에게 많은 무림 명숙들이 죽었는데, 죽은 사람들 중 세 사람의 상흔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발견되었지.”

 

이무환이 나철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전설의 무공이라도 발견되었나 보죠?”

 

나철위도 이무환을 뚫어지게 마주 보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런 질문을 담아서.

 

“너무 그렇게 보지 마쇼. 눈 빠지니까.”

 

“어떻게 알았나? 중요한 이야기니 얼렁뚱땅 빠져나갈 생각은 말게.”

 

차갑게 굳은 눈빛의 나철위를 향해 이무환이 얼굴을 디밀었다.

 

“나무 막대기 들고 칼쌈하는 애들한테 물어보쇼. 정천무림맹의 사대령주 중 한 사람이 십 년 동안 몸을 숨기고 상대하려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아마 열이면 아홉은 이렇게 대답할 거요. 천마교! 구룡성! 그것도 아니면…… 전설!”

 

나철위의 눈빛이 단번에 흔들렸다.

 

기회를 잡았다 생각하고 몰아붙이려 했는데 이무환이 미꾸라지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쓸데없는 의심은 집어치우고 다음 이야기나 해보시죠.”

 

입맛을 다신 나철위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설명을 이어갔다.

 

“음, 좌우간, 그걸 발견한 우리는 흔적을 쫓기 시작했네.”

 

“그런데 그들이 절강과 강소로 들어갔단 말이군요.”

 

“그렇다네.”

 

“그래서 대주님이 항주에 틀어박혔고 말이죠.”

 

“그래.”

 

“이제 그자들에 대한 단서를 찾았나 보군요.”

 

나철위가 눈을 부릅뜨고 버럭 소리쳤다.

 

“맞아! 자네 말이 다 맞으니까, 내 말 좀 더 들어보게!”

 

끝내 나철위의 부동심이 흔들렸다.

 

반면에 이무환은 느긋이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하세요. 누가 말렸습니까? 참나…….”

 

마침내 나철위가 세 번째 차를 따랐다.

 

벌컥벌컥, 나철위는 단숨에 차를 마셔버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후우…….”

 

그러고는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자네와 싸웠던 자가 그들의 무리 중 하나인 것 같네.”

 

“하나가 아니라 다섯이었죠. 졸개들까지.”

 

“그들이 금천신문과 함께 나타난 것이 의외이긴 한데, 내가 볼 때는 강소 쪽에서 온 것 같네.”

 

“증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금천신문에는 그런 자가 없어. 그리고 그자가 펼친 무공 중 하나가 언뜻 눈에 익어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보기에는 남경 천강문의 칠산보(七散步) 같았네.”

 

“그 정도로 확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물론 더 조사해 봐야겠지.”

 

“그럼 절강에는 수상한 자들이 없을까요?”

 

나철위의 눈썹이 다시 꿈틀거렸다.

 

“없지는 않을 거네. 그리고 질문은 자네가 아니라 내가…….”

 

하지만 소용없었다. 나철위는 이무환의 다음 말에 목이 굳어버렸다.

 

“없지는 않는 게 아니고, 있습니다. 그것도 항주에. 뭐, 주력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아나?”

 

“항주에 십 년이 넘게 있었다면서요?”

 

“물론이네. 올해로 십삼 년…….”

 

“대체 그동안 뭘 한 겁니까?

 

“그야 절강 일대에 대해 철저히 조사를…….”

 

“항주는 조사했습니까? 대충했죠? 그렇죠?”

 

초창기 이삼 년의 집중적인 조사 이후로 항주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한 것이 사실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 했거늘!

 

나철위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하자 이무환이 계속 다그쳤다.

 

“검운장을 비롯한 오대세력이 워낙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으니 걱정없다 생각했죠? 그렇죠?”

 

나철위의 검어 보이는 얼굴이 더욱 시커멓게 변했다.

 

“그, 그게 말이네…….”

 

이무환이 여전히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얼마 전에 수상한 자를 발견했습니다. 괴이한 기운을 지녔더군요. 알아보려고 했더니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어요. 밖으로 나간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이제는 주도권이 아니라, 목뼈 부러진 참새가 된 나철위다.

 

“어떻게 생긴 자인지, 초상(肖像)을 그려줄 수 있나?”

 

이무환이 간단하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칠도회에 사람을 보내보세요. 제가 그들에게 그자의 행적을 찾아보라 했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찾았을지도 모르겠군요.”

 

나철위가 홱 고개를 돌려 방문을 향해 말했다.

 

“진강.”

 

“예, 대주.”

 

“들었지? 네가 직접 가봐라.”

 

밖을 지키던 쌍위 중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게 느껴지자, 이무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힘이 빠져 있는 나철위를 바라보았다.

 

“아마 당장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요. 대신 다른 사실을 알려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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