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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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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광룡기 23화

 

23화

 

 

 

 

 

 

 

 

“끄아아아악!”

 

지옥 밑바닥에서나 들려올 법한 처참한 비명.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지고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당장 쳐들어가서 어떤 놈이 감히 칠도회를 건드리는지 낯짝이라도 봐야 했지만, 알 수 없는 예감이 그의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독사눈은 갈라진 뒷문의 틈으로 안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름끼치는 광경이 보였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 여기저기 흩어진 팔다리, 뒹굴어 다니는 부서진 머리통, 머리가 없는 몸뚱이. 그리고 더욱 낮은 곳을 향해 흘러가는 시뻘건 핏물.

 

지옥! 

 

만복루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 그는 눈을 두어 번 깜박이고 다시 문틈에 눈을 가져다 댔다.

 

바로 그때 어렴풋이 말소리가 들려왔다.

 

흑비파, 동패.

 

독사눈은 불꼬챙이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황급히 눈을 떼고, 엄지발가락에 최대한 힘을 주고 뒤로 물러났다. 행여나 몸 떨리는 소리가 적에게 들릴까 봐 이를 악물고 외줄을 타듯이 뒷걸음질을 쳤다.

 

더 이상은 엄지발가락만으로 걸을 수가 없을 때까지 물러선 그는, 만복루와 이십여 장의 거리가 되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쳤다.

 

그게 벌써 일각째다.

 

독사눈은 달리면서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악귀를 찾아야 해. 악귀라면 저 마귀새끼를 찢어죽일 수 있을 거야. 분명히! 크흐흑. 사팔뜨기야, 칼자국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걱정 마! 내가 오늘 번 돈을 다 갖다 바쳐서라도 악귀에게 부탁할 테니까! 너희도 알지? 악귀가 얼마나 지독한지!”

 

악귀가 어디로 갔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이제부터 알아보면 되었다. 돈은 귀신도 부리는 법이니까.

 

독사눈은 눈물을 쓱 닦아내고 검운장이 보이자 천천히 걸음을 늦췄다.

 

 

 

2

 

 

 

이틀째.

 

비가 멈춘 하늘은 옅은 구름만이 끼어 있을 뿐이었다.

 

석양이 옆은 구름을 붉게 채색할 무렵, 매림(梅林)에 도착한 일행은 부상자들을 치료할 겸 작은 객잔을 하나 통째로 빌리고 하루를 쉬어 가기로 했다.

 

사망자가 열, 중상자가 그 이상 되었다. 전력의 절반이 무너진 지금 상태. 남은 사람들이라도 기운을 회복해야 했다. 

 

어스름이 밀려들 즈음, 마당에 서있던 이무환은 마차에서 나오는 사마하연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처럼 멀리 떨어져 있을 필요가 없었다. 이제 풍운대만 경비를 서지 않는다. 금검대의 무사들도 자청해서 경비를 선다. 덕분에 이무환은 가까운 거리에서 사마하연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예쁘다. 쟤가 내 동생이란 말이지?’

 

바로 그때다.

 

사마하연이 눈을 돌리더니 이무환을 바라보고 빙긋 웃었다.

 

“이 소협도 쉬셔야죠.”

 

이무환은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그런데 그의 말을 끊고 사마성문이 나직이 말했다.

 

“다른 사람 걱정 말고 너부터 쉬어라. 악귀가 달리 악귀겠느냐?”

 

속삭이듯이 말했지만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크게 들렸다.

 

‘염병, 외숙부만 아니면 그냥!’

 

그래도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사마하연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일 장 앞까지 다가온 사마하연의 목소리가 더욱 감미롭게 귓전을 간질였다.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 진작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하, 하!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나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그런데… 왜 악귀라고 하는 거죠? 제가 봐서는 절대 그렇게 불릴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당연하지! 남들이 이 오빠를 시샘해서 괜히 그러는 거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했던가? 역시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동생뿐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아직 나를 잘 몰라서 그럴 뿐이라오.”

 

그때였다. 사마성문이 다시 재를 뿌렸다.

 

“잘 모르기는. 그만큼 엉큼하고 악독하게 구니까 그렇지. 크음! 그만 들어가자, 하연아.”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바라보는 눈길도 그리 곱지가 않다.

 

이무환은 그런 사마성문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담담히 말했다.

 

“그만 들어가서 쉬시지요, 낭자.”

 

사마하연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예, 이 소협도 그만 가서 쉬세요. 피곤하실 텐데.”

 

‘그래, 예쁜 동생아.’

 

이무환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대체 저 인간이 왜 나를 못 잡아먹어 환장한 표정이지? 혹시 나에 대해 뭘 안 것 아냐? 아니면 개똥에 얼굴 처박은 사마충 때문에? 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건 절대 모를 텐데? 이상하네…….’

 

 

 

다음 날 아침.

 

사마성안이 간부들을 소집했다.

 

“중상자는 이곳에 놔두고 갈 생각이네. 놈들도 전면전을 원치 않는 이상, 중상자들을 공격하지는 않을 테니까.”

 

국지전은 전에도 있었다. 새삼스런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국지전과 전면전은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흑마련도, 검운장도.

 

“그리고 이제부터가 중요하네. 안휘에 들어온 이상 금천신문의 적극적인 공격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 호위 형태를 바꿀 생각이네.”

 

사마성안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대주가 전체를 지휘해 주시게.”

 

“그러지요.”

 

신검대까지 동원된 호위대에서 풍운대가 지휘권을 맡는 경우는 처음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무환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나철위뿐이었으니까.

 

“전면은 신검대, 좌우를 금검대와 풍운대, 후면을 풍운대의 십삼조가 맡아주게.”

 

사람들이 힐끔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은 고심에 잠긴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간간이 들리는 숨소리가 마치 코 고는 소리처럼 들렸다.

 

기이하게 생각한 사마성문이 이무환을 불렀다.

 

“이 조장!”

 

이무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소리 지른 사람이 무색할 정도로 반짝이는 눈빛이었다.

 

“저 귀 안 먹었습니다.”

 

‘분명 졸고 있는 것 같았는데…….’

 

사마성문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고는, 조는 눈빛이 아닌 듯하자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허엄! 자네 임무가 그만큼 막중하니 신중하게 움직이라는 말이네.”

 

“제 걱정 마시고, 다른 분들이나……. 드르릉.”

 

“……?”

 

“설마… 눈 뜨고……?”

 

“회의나 진행하시라니까……. 드르르, 푸우…….”

 

여전히 또릿또릿한 눈빛이다. 말도 하고.

 

그런데 들릴 듯 말 듯 작긴 해도, 숨소리는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이 코를 고는 듯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어찌 알까. 물고기처럼 눈 뜨고 잘 수 있는 사람이 이무환이란 것을. 양심신공처럼 자신의 정신을 둘로 나누어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이무환이라는 것을.

 

그걸 알 리 없는 사마성문이 고함을 질렀다.

 

“자네, 지금 장난하나?!”

 

결국 이무환의 정신 중 하나마저 깨어났다.

 

“아함!”

 

이무환은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다 말고 움찔했다.

 

사마성문이 날 세운 작살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이무환은 아무것도 없는 이 사이만 손톱으로 깔짝거리며 쩝쩝거렸다. 사마성문이야 엉덩이를 의자에서 들썩거리던가 말던가.

 

“쩝쩝, 이틀간 한숨도 못 잤더니……. 제 걱정 마시라니까요. 다 듣고 있으니까.”

 

지난 이틀 동안 밤새 사마추경이 준 양피지를 연구했다.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그 재미에 빠져 밤새는 줄도 몰랐다.

 

덕분에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지만, 너무 집중해서 연구하다 보니 정신적인 피로감이 느껴져 조금 졸렸던 것뿐이었다.

 

물론 회의가 지루했던 게 더 큰 이유였지만.

 

부르르, 몸을 떤 사마성문은 뒤를 그에게 맡긴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만일… 뒤가 뚫리면 그 책임은 자네가 져야 하네. 알겠나?!”

 

“거참, 쓸데없는 걱정 다 하시네. 어떤 놈이고, 뒤로 다가오는 놈은 후회하게 된다니까요?”

 

 

 

3

 

 

 

쾅!

 

삼십대의 중반의 장한이 탁자를 내려치고 홱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떤 놈입니까? 그놈이 어떤 놈인데, 열다섯이 가서 모조리 당하고 둘만 돌아온 겁니까?”

 

문하겸과 여조문이 고개를 숙였다. 직접적인 상급자는 아니지만 상대는 자신들보다 상위 문파에서 파견된 자. 배가 아파도 하는 수 없었다.

 

“면목이 없소, 령주.”

 

“지금 그런 말을 할 땝니까? 남궁세가에 검운장의 자금이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서 그럽니까?”

 

“정보가 조금만 더 있었어도 그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외다. 이제 겨우 새파란 애송이가 그렇게 강할 줄은…….”

 

문하겸의 말에 령주라 불린 자가 한광을 번뜩였다.

 

“지금 내 책임을 따지자는 겁니까?”

 

“그럴 리가? 다만 조금 더 정보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일 뿐이외다.”

 

“흥! 내 이럴 줄 알고 처음부터 총방의 힘을 동원하자 했거늘.”

 

문하겸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했소이다. 말을 조심하시구려, 오령주.”

 

그 말에 오령주란 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맡은 일이나 똑바로 하시지 그럽니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문하겸과 여조문이 묵묵히 입술만 씹고 가만히 있자 오령주라는 자가 말했다.

 

“일류 이상의 고수들로 몇 명이나 모을 수 있겠습니까?”

 

“이틀이면 쓸 만한 아이들을 스무 명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이오.”

 

“어차피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 내가 직접 나설 겁니다. 두 분은 수하들을 이끌고 지원이나 해주시오.”

 

“오령주가 직접 말이오?”

 

“그렇습니다. 당신들은 앞을 공격해서 호위대들이 마차에서 멀어지게 하세요. 그럼 내가 뒤를 쳐서 그 계집을 죽일 테니까.

 

‘빌어먹을 늙은이들, 검운장도 어쩌지 못하면서 무슨 안휘를 차지한다고…….’

 

 

 

4

 

 

 

닷새째.

 

쌍교에서 작은 강을 건너자 사위가 온통 갈대숲이다. 드문드문 보이는 야산도 그리 높지 않아서 갈대의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일 뿐이다.

 

장강이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천만다행으로 첫날을 빼고는 적의 공격이 없었다. 덕분에 부상자들의 몸이 어느 정도 나아지자 늦춰진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이대로 아무 일도 없이 합비에 도착했으면 하는 것만이 모두의 염원이었다. 지난 나흘간의 상황으로 봐서 그렇게 될 것도 같았다.

 

검운장 사람들은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갈대숲이 우거진 강가를 따라 장강을 향해 올라갔다.

 

이무환은 처음 보는 광대한 갈대숲에 넋이 반쯤 나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들어와 엉켰다 풀어진다.

 

마치 자신의 몸이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기분.

 

쫙 펼친 손가락 사이를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바람을 따라 그의 손가락도 갈대처럼 움직인다.

 

나른한 느낌. 자신의 몸이 바람 속에 녹아든 것만 같다.

 

‘정말 멋지군.’

 

기분이 한껏 좋아진 이무환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흥얼거리며 마차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십삼조원들은 그가 흥얼거리는 소리가 무척 궁금했다. 운율이 있는 걸 보면 노래 같은데 처음 듣는 소리였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영호승이 물었다.

 

“조장님, 그게 무슨 노랩니까?”

 

“상아하고 비아가 부르던 노래야.”

 

이무환의 대답에 영호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상아와 비아가 누굽니까?”

 

“누구? 크크크,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아니면?

 

이제는 단우경과 막위와 혁수린마저 이상하다는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아니면 혹시 또 다른 악귀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런 눈빛이었다.

 

“걔네들은 물속에서 살지. 아주 예뻐.”

 

“그럼… 물고기란 말입니까?”

 

설마, 하는 표정으로 혁수린이 물었다.

 

“돌고래야.”

 

네 사람 다 돌고래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래가 뭔지는 안다.

 

산더미처럼 크다는 물고기. 큰 것은 집보다도 크다 했다.

 

한데 그런 고기가 노래를 부른다고?

 

네 명의 십삼조원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보듯 이무환을 응시했다.

 

“정말이라니까? 거기다 장대도 있고, 빨래판도 있어. 걔네들은 노래를 못 부르지.”

 

장대는 뭐고, 빨래판은 또 뭐란 말인가?

 

미친놈 바라보듯 하든 말든, 이무환은 나른한 눈빛으로 비룡도에서의 생활을 더듬었다.

 

‘거기서는 이런저런 걱정할 것 없이 즐기면서 살면 되었는데…….’

 

그런데 이놈의 강호라는 세상은 왜 이렇게 쓸데없이 싸움질이나 한단 말인가.

 

어머니 집안의 일만 아니라면, 동생 일만 아니라면, 나중에 아버지의 부탁까지 들어줘야 하는 일만 아니라면! 훌훌 털고 다시 비룡도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면 가끔씩 옥이의 입술도 닦아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쩝, 돌아갈 때쯤 되면 옥이의 가슴도 더 커져 있겠지? 너무 커지면 보기에 안 좋을지도 모르는데…….’

 

바람에 머릿결을 날리는 옥이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살포시 감긴 눈의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입을 반쯤 벌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옥이의 모습이.

 

몽롱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는 이무환의 눈이 반쯤 감겼다.

 

‘저번에 옥화루에서 보니까 이상한 그림이 몇 개 있던데, 나중에 그대로 해봐?’

 

괴기한 웃음이 슬며시 이무환의 입가를 따라 번졌다.

 

그때였다. 문득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기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응?”

 

동시에 눈앞에 있던 옥이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이무환은 싸늘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눈을 치켜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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