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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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61화
61화
이미 이무환의 명이 떨어진 터, 엽상이 내친김에 사실을 다 까발렸다.
“구룡성의 장로라는 분께서, 혈지겁난을 일으킨 삼악이 절대사천좌의 무공을 얻어서 결성한 잠풍련을 진정 모르신단 말입니까?”
그의 말은 금룡부 간부들에게 천둥벼락보다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오죽하면 장시경이 말을 더듬을까.
“그, 그게… 무슨…….”
“모르시면 가만히 계시기 바랍니다. 반도를 다 잡아들일 때까지.”
한편, 이무환은 엽상이 장시경과 말싸움을 하는 사이, 금룡전에서 나온 자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수룡단에 초상이 있는 자는 여덟. 다른 둘은 초상에 없던 자들이었다.
금룡부주 금화산은 보이지도 않았고.
또한 금룡부의 진짜 고수들이라 할 수 있는 장로와 호법 열셋 중 나온 자는 기껏 넷. 나머지 아홉은 얼굴도 내밀지 않은 상태였다.
‘흥! 수룡단이 반도를 잡으러왔다고 하니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겠다는 건가?’
어쨌든 상관없었다. 더 시끄러워지면 기어 나오겠지.
이무환은 없는 자들에게 대해서는 신경을 끄고, 나온 자들 중 몇을 주시했다.
자신이 원했던 반응을 보인 자들. 그들은 모두 넷이었다.
<눈발, 저들 중 우측 끝에 서있는 자와 그자의 좌측으로 둘 건너뛴 곳에 서있는 자를 알아?>
이무환의 전음에 엽상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절정의 무공을 지닌 자들이다. 그런데도 엽상마저 모른다면, 신곽처럼 이름을 알리지 않고 스며들어 있는 자일 확률이 높았다.
이무환은 즉시 영호승에게 전음을 보냈다.
<멋쟁이, 우측 끝에 있는 쥐새끼 같은 놈하고, 그 옆쪽 둘 건너에 말대가리보다 낯짝이 더 긴 놈 있지?>
영호승은 힐끔 눈만 돌려 그곳을 바라보았다.
풍운대의 소지공보다 더 완벽하게 쥐처럼 생긴 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머리는 말보다 작을지 몰라도 얼굴은 말보다 더 길어 보이는 자가 서있었다.
영호승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대답했다.
“예, 총대주.”
“놈들이 움직이면 넷이서 맡아. 하나에 둘이 달라붙어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정 막기 힘들면 죽여도 돼.”
조금은 이상한 말이다.
하지만 초연십이식을 익힌 네 사람이기에 말이 되었다. 상대는 그들보다 강하지만, 그들이 죽이고자 한다면 상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그때.
와장창!
이층 창문이 부서지며 한 사람이 뛰어내렸다.
금사당주인 금적태세 양화중이었다.
그의 발이 땅에 닫기도 전, 엽상이 설홍을 빼 들고 몸을 날렸다.
“어림없는 짓!”
단숨에 엽상의 신형이 양화중을 덮쳐 갔다. 동시에 설홍에서 한 자 길이의 검강이 쭉 뻗었다.
“헛!”
“검강?”
그 광경을 본 금룡부의 수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수룡단의 일개 대주가 절정 경지에 도달해야만 익힐 수 있다는 검강을 펼치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엽상이 처음부터 검강을 펼친 효과는 작지 않았다.
탐탁지 않게 수룡대를 바라보던 금룡부의 무사들 몸이 굳어버렸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양화중을 구하려던 자들도 순간적으로 머뭇거렸다.
그사이 엽상의 설홍이 양화중을 압박했다.
쩌저저정!
단 삼 초가 지나기도 전에 양화중이 한쪽 구석으로 몰렸다.
양화중을 쫓던 수룡대가 일제히 밖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금룡부의 무사들 뒤쪽에서 이십여 명의 무사가 튀어나왔다.
“양 당주를 구하라!”
동시에 금룡전에서 나온 자들 중 넷이 슬그머니 움직였다.
“아무리 수룡단이라도 그렇지, 어찌 이리 막돼먹게 행동한단 말이냐! 우리 금룡부가 그리도 우습게 보인단 말이냐?”
이무환이 주시하던 자들도 있었고, 아닌 자들도 있었다.
“잠깐 멈추…….”
장시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리려 하더니, 이미 늦었음을 알고 반쯤 든 손을 내렸다.
그때 이무환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주시하고 있던 쥐상의 중년인과 말상의 중년인이 슬쩍 뒤로 빠지는 게 보였다.
“시작해.”
이무환의 명령이 떨어지자 영호승 등이 금룡전 쪽을 향해 움직였다.
네 사람이 빠르게 다가가자 장시경이 눈매를 좁혔다.
동시에 이무환의 전음이 장시경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노인 양반, 반도로 몰리고 싶지 않으면 막지 마쇼!>
어찌나 크게 울리는지 골이 다 멍멍하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장시경은 눈을 부릅뜨고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저놈이 정말 자신에게 전음을 보낸 놈일까? 단순한 전음으로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한 놈이 정말 저놈일까?
눈빛이 한순간에 서너 번이나 바뀐 장시경을 향해 이무환이 다시 전음을 보냈다.
<다른 사람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쇼. 그들을 살리고 싶으면.>
장시경이 이를 악다물었다. 틀림없이 같은 놈이었다.
그때 좌우에 있던 두 명의 장로가 앞으로 나섰다. 장시경은 앞으로 나서려는 두 사람을 일단 말리고 봤다.
“그냥 놔두게. 곧 진실이 가려질 테니.”
두 사람은 의아해하면서도 나서던 걸음을 멈췄다.
그 틈에 영호승과 단우경이 쥐상의 중년인을 향해 몸을 날리고, 막위와 혁수린이 말상의 중년인을 덮쳐 갔다.
이무환은 싸늘히 굳은 눈으로 장시경을 노려보면서 허공을 향해 가볍게 손을 튕겼다.
펑!
폭죽 하나가 삼 장 허공에서 터지며 붉은 불꽃이 퍼졌다.
그 직후, 수십 명이 금룡부의 담장을 넘어서 한순간에 십여 장 이상을 날아왔다.
그들은 두어 번의 도약으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까지 날아들더니 수룡대를 공격하는 금룡부의 무사들을 공격했다.
“우리는 구룡수호단이다! 반도가 아닌 자들은 뒤로 빠져라!”
삼십대에서부터 사십대 중반의 나이.
절정의 무공. 냉혹한 손속.
총원 오십 명의 구룡수호단.
그들이 나서자 싸움은 빠르게 진정되었다.
그들은 강했고, 손을 씀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수룡대원들을 공격하던 금룡부의 무사들 중 대부분이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또한 금룡전에서 나온 네 명의 간부 중 세 사람도 그들 중 다섯의 합공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단 한 명만이 일찍 물러나서 살았을 뿐.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반 각.
이무환은 구룡수호단의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법인데? 호연청이 닦달할 만해. 저런 사람들을 놔두고 구경만 하고 있으려니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겠어?’
그런데 이상했다. 상황이 마무리되도록 부주인 금화산과 아홉 명의 장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일이 조금 싱겁게 끝났지만,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때였다.
“으악!”
“크억!”
거의 동시에 두 마디 비명이 들렸다.
영호승 등이 있는 곳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입가의 피를 쓱 닦은 영호승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게 보였다.
단우경은 상대의 옷자락에 자신의 칼을 슥슥 닦고 옆에다 침을 퉤, 뱉었다. 침에 덩어리진 피가 섞여 있었다.
막위는 씩씩거리며 도끼를 들었다가 상대가 죽었음을 알고 몸을 홱 돌렸다. 그리고 혁수린은 꼬챙이검을 말상의 중년인 목에서 빼내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다리가 떨리는 걸 보니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듯했다.
어쨌든 본인들보다 월등히 강한 고수를 죽인 상황.
장내를 정리하던 구룡수호단은 그들을 바라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무환은 흐뭇한 마음이면서도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짐짓 눈을 부라렸다.
“그런 자를 죽이면서 부상을 입어? 지금까지 뭐 한 거야? 쌍칼, 칼만 두 자루면 뭐 해? 꼬챙이, 다리가 그렇게 후들거려서야 따라다닐 수 있겠어?”
단우경과 혁수린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죄송합니다, 대주.”
“죄송하면 내일부터 더 죽어라고 수련해. 유월까지 내 마음에 들 정도로 강해지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진짜 지옥훈련을 할 거니까.”
“예…….”
이무환은 찔끔한 네 사람을 스쳐 엽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스쳐 가며 그가 말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았어.”
힐끔, 이무환의 등을 바라보는 네 사람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이무환은 엽상이 앞에 꿇려놓은 양화중을 바라보았다.
“도종택은?”
“죽었습니다.”
이무환이 눈살을 찌푸리자 한쪽에 서 있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도종택은 워낙 강경하게 반항해서 어쩔 수 없이 죽였네.”
각진 턱에 굵은 얼굴선을 지닌 거한이었다.
구룡수호단을 이끄는 세 명의 수장 중 하나. 좌부단주인 검룡부의 백장청이 바로 그였다.
이무환은 고개를 살짝 들어 백장청을 주시했다.
“어쩔 수 없이 죽였다 했습니까?”
“놈이 생각지도 못했던 기이한 무공을 쓰더군. 그 무공에 두 사람이 부상을 입었네.”
‘제길, 그가 진짜였군. 멍청하게 지금 그걸 잘했다고 떠벌리는 거야?’
이무환이 고개를 돌리며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그가 죽었으니, 그로 인해서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몇 명 더 죽겠군.”
백장청이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무환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침중한 표정으로 서 있는 장시경을 바라보며 전음으로 물었다.
<난리가 났는데도 부주께선 보이지 않으시는군요. 어디 계신 겁니까?>
<그걸 알고 온 것이 아닌가?>
알고 왔다?
<무슨 말입니까?>
장시경이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주님의 연공이 끝나려면 아직 이각은 더 남았네.>
‘연공? 그럼 지금 금룡왕 금화산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이야?’
대체 어떤 무공을 익히기에 이 난리가 났는데도 나오지를 못하는 걸까?
이무환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부주님을 뵙고 싶은데, 말씀 좀 전해주시겠습니까?”
장시경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 자네들이 온 것에 대해 소상히 보고를 올리겠네. 하지만 부주님을 지금 뵙겠다는 것만은 허락할 수 없네.”
“잠깐이면 됩니다만.”
“부주님께 어떤 권한이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젠장할 일이다.
당연히 안다. 아홉 명의 구룡부주에게는 면책권이 있어 어떤 죄를 지어도 함부로 문책할 수 없다는 것을. 문책하기 위해선 적어도 여섯 명 이상의 부주들 연판장이 필요하다는 것도.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도 모른다 하면 조사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무환이 개똥같은 법 때문에 부아가 치밀어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기이한 눈으로 이무환을 슬쩍 바라보고 엽상에게 물었다.
“계속 이곳에 있을 건가?”
이무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사십대 초반의 나이, 청수한 얼굴에 서리가 낀 것 같은 차가운 눈빛.
그가 바로 구룡수호단의 단주이며 검룡부의 숨겨진 고수, 북리웅이었다.
이무환이 바라보자 북리웅이 말을 이었다.
“나는 한 곳을 더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아네만.”
‘나도 아네, 이 양반아! 단지 수족만 치는 것보다 대가리를 잡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참고 기다리는 거지!’
이무환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차피 금룡부주 금화산을 만나기도 그른 상황.
그가 엽상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렸다는 듯 엽상이 명을 내렸다.
“죄인들을 압송해! 철수한다!”
2
아닌 밤중에 벼락이 떨어졌다. 겉으로는 조용한 와중에 구룡성이 발칵 뒤집혔다.
마룡부 전마각에서 적흔이 부복한 채 보고를 올렸다.
“……결국 금룡부를 움직이던 본 련의 사람 중 제법 많은 수가 죽거나 잡혀갔습니다.”
이를 악문 은의인의 눈에서 혈광이 맴돌았다.
최근 들어서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래서 더 분노가 치밀었다.
“놈들은 움직임은?”
“일단 생포한 자들을 수룡단의 형옥으로 압송하고 있다 합니다.”
“이놈들이……! 한번 해보자,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