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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59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6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59화

 

59화

 

 

 

 

 

 

 

 

홍옥지는 맺힘과 동시 천장을 뚫고 앞으로 쏘아졌다.

 

뽁.

 

그 소리는 극히 미미해서 거의 들리지 않았다.

 

쥐새끼가 혁피화를 물어뜯는 소리보다도 작았으니까.

 

그럼에도 앉아 있던 두 호위무사의 눈이 번쩍 뜨이고, 고개가 위로 들렸다.

 

그러나 누군가가 침입했을 거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상황. 게다가 홍옥지의 속도는 번개가 무색할 정도로 빨랐다.

 

눈앞이 붉게 변했다 싶은 순간, 홍옥지가 그들의 마혈을 두드렸다.

 

퍽퍽!

 

뒤이어 발출된 두 줄기의 지력이 이번에는 수혈에 깊게 꽂혔다.

 

눈을 부릅뜬 두 명의 호위무사는 단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무환은 두 명의 호위무사가 고개를 늘어뜨리자, 자신의 홍옥지로 인해 생긴 천장의 구멍을 잘 다듬었다. 나선형으로 빙빙 돌며 뚫린 것처럼.

 

‘흠, 이 정도면 거의 비슷한 것 같군.’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이무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세상이 온통 백색이었다.

 

벽도, 천장도, 휘장도, 탁자도, 의자도. 심지어 벽에 새겨진 용마저도.

 

“완전 미친놈 아냐?”

 

당장 그런 말부터 나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루도 못살 것 같은 방.

 

백색 방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한 터였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은 방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갈무진의 정신 상태를 감정하는 것도 아니었고.

 

이무환은 사방을 둘러보며 가장 의심이 가는 곳부터 차근차근 벽을 훑었다.

 

시간이 없었다.

 

언제, 누가 들이닥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최대한 빨리 뇌정갑을 찾아야 했다.

 

일각… 이각…….

 

이무환의 담담하던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지독한 인간. 도대체 어디다 숨겨놓은 거야?’

 

자신의 감각은 여전히 뇌정갑이 이곳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각을 믿고 싶었다.

 

천룡부에서 손 위에 받쳐 든 함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다시 손끝으로 전체를 훑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가 오른쪽 휘장 뒤쪽을 손끝으로 탐색하고 있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응? 뭐지?’

 

그 느낌은 손끝에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무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백룡이 새겨진 벽을 바라보았다.

 

느낌의 정체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백룡의 눈.

 

분명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는 하얀 백색이었다. 그런데 구석진 측면에서 바라보자 두 가지 색이 겹쳐서 나타났다.

 

결코 탁자 위에 놓인 팔뚝 굵기의 촛불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무환은 한 걸음에 백룡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 눈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우수로 백룡의 눈을 돌려보았다.

 

순간, 이무환의 입가로 기다란 웃음이 번졌다.

 

눈이 돌아가며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스르르르…….

 

동시에 소리가 거의 나지 않으면서 백룡 아래쪽의 바닥이 천천히 열렸다.

 

 

 

벌떡!

 

상체를 일으킨 제갈무진의 두 눈이 홉떠졌다.

 

“여보, 왜 그래요?”

 

부인이 옆에서 팔을 잡으며 묻는데도 그는 굳은 얼굴을 펴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벽에 걸려 있던 종이 짧게 울렸다.

 

딸랑.

 

제갈무진은 부인의 손을 홱 뿌리치고 침상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몸을 날렸다.

 

“밖에 누구 없느냐?”

 

그가 소리치자 곧바로 답이 들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부주. 위사장 양안요이옵니다.”

 

제갈무진이 평소의 진중함을 잃고 문을 거칠게 열며 소리쳤다.

 

“즉시 백룡전으로 가서 그곳의 상황을 확인해라!”

 

“예, 부주!”

 

“그리고 방양고를 찾아와라!”

 

 

 

뇌정갑이 든 함을 꺼낸 이무환은 기이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무엇 때문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일단 함을 열고 안에서 뇌정갑을 꺼냈다.

 

역시 기대대로였다. 뇌정갑을 손에 쥔 순간 기이한 감각이 짜르르 전신을 치달렸다.

 

“그래, 너도 주인을 알아보는구나.”

 

이무환은 뇌정갑을 품속에 넣고, 품 안에서 낡은 장갑을 꺼내 함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함을 원상태로 바닥의 구멍 안에 놓았다.

 

순간이었다. 또다시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이무환은 함을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

 

찰나, 이무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여우가?”

 

함을 놓은 바닥에서 미미한 울림이 있었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튕겨진 듯한 느낌.

 

이무환은 급히 함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함 옆에 있던 작은 책자를 집어 들었다.

 

적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묵향이 배어 있는 책자였다.

 

굳이 볼 것도 없었다. 비밀스럽게 보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결코 평범한 책자는 아닐 테니까.

 

‘이건 덤으로 가져가마. 보물들을 가져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라고. 나는 그렇게 욕심 많은 도둑이 아니거든?’

 

이무환은 백룡의 눈을 돌려서 바닥의 구멍을 닫고 즉시 밖으로 나갔다.

 

제갈무진은 안에 있는 물건부터 확인할 것이 분명했다.

 

그냥 나가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터. 그 정도 차이면 생사를 가늠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통로로 나가자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 같았다.

 

이무환은 자신이 내려온 천장으로 올라가서 상태를 완벽하게 복구시켰다. 구멍은 그대로 놔둔 채.

 

동시에 커다란 목소리가 전각 안에 울려 퍼졌다.

 

“오 위장! 문 위장!”

 

이무환은 그 목소리의 여운이 가라앉기 전에 빠르게 천장 안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는 걸 보면 기관장치는 해제되었을 게 분명했다.

 

 

 

잠시 후, 제갈무진은 넋이 빠진 눈으로 함을 바라보았다.

 

낡은 장갑이 보였다. 얼마나 험하게 썼는지 여기저기 찢기고 땀으로 절은 장갑이.

 

자신이 점심 무렵에 보았던 뇌정갑은 죽어도 아니었다.

 

“크큭, 크하하하! 어떤 놈이 감히!”

 

광소와 노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광소를 뚝 그친 제갈무진은 천천히 머리를 숙여 자신의 비고를 내려다봤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은 제갈무진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비고 안에 있는 보물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뇌정갑을 빼고는 다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진기한 보물도 아니고, 천고의 비급도 아닌 작은 책자만 없을 뿐.

 

“어떤… 빌어먹을 놈이……. 가져갈 게 없어서 내 일기를…….”

 

 

 

3

 

 

 

진눈깨비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이제는 제법 쌓여서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이무환은 서너 번의 도약 만에 광룡대로 돌아와서는, 남이 볼세라 재빨리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이무환의 몸이 얼어붙었다.

 

“이… 꼬맹이가……!”

 

침상 위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숨소리의 주인공은 남궁산산.

 

그녀가 이불을 걷어찬 채 자고 있다.

 

벗어서 대충 의자 위에 던져 놓은 겉옷이야 별 상관없었다. 다시 입혀서 보내면 될 테니까.

 

문제는 잠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치마가 반쯤 말려 올라간 바람에 눈처럼 하얀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웃옷은 벌어져서 가슴이 대충 다 보였고.

 

새끼손톱보다 작은 연분홍…… 까지.

 

촛불이 꺼져 있는 것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남궁산산의 백옥 같은 살결이 촛불보다 훨씬 밝게 느껴졌다.

 

‘미치겠군! 아주 작정을 했군, 작정을 했어.’

 

이무환은 일단 두건을 풀고 회색 경장을 벗었다.

 

뚜벅, 뚜벅…….

 

문득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제풀에 놀란 이무환은 급히 자신의 청삼을 걸쳤다. 반쯤 걸치지도 않았는데 영호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대주, 계십니까? 여쭤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어? 어, 잠깐만…….”

 

이무환은 옷을 걸치며 급히 이불로 남궁산산의 몸을 가렸다.

 

그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쾅! 다시 닫혔다.

 

“죄, 죄송합니다, 총대주!”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순간 잠에서 깬 남궁산산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잠 안 주무실 거예요?”

 

유난히 큰 목소리였다. 밖에서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4

 

 

 

“나는 여우가 정말 싫다!”

 

이무환이 노려보며 하는 말에도 남궁산산은 빙긋빙긋 웃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벌써 이틀째.

 

사람들의 눈길이 바뀌지 않는다. 아예 이제는 기정사실처럼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오빠, 이거 드세요.”

 

남궁산산이 종리난경에게 특별히 부탁해 구했다는 차를 따라 이무환 앞으로 내밀었다.

 

“마시긴 마시는데, 그렇다고 내 생각이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너는 그냥 꼬맹이일 뿐이야.”

 

“에이, 가슴까지 봤으면서.”

 

“내가 보고 싶어서 봤냐?”

 

이무환이 빽 소리를 지를 때다.

 

“너무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총대주.”

 

방 앞을 지나가던 엽상이 한 소리했다.

 

‘저게……!’

 

아마 종리난경이 곧이어 한마디 하지 않았다면 당장 나가서 수련을 하자고 했을 터였다.

 

“엽 대주, 너무 그렇게 총대주님 괴롭히지 마. 그러잖아도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줘서 부담스러우실 텐데.”

 

“내가 뭐라고 했어? 그냥 그렇다는 거지.”

 

이무환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멀어지자 남궁산산을 꼬나보았다.

 

순간 남궁산산이 바짝 다가서더니 나직이 말했다.

 

“오빠는 복 받은 거라구요. 세상에 저 같은 여자가 어디 흔한 줄 알아요?”

 

“시.끄.러!”

 

“피이, 하여간…….”

 

입술을 삐죽 내민 남궁산산이 흘낏 이무환의 품속을 쳐다보았다.

 

“근데 오빠, 뇌정갑이 대체 어떻게 생긴 거예요? 좀 보면 안 돼요?”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심란해서 뇌정갑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다. 당연히 와룡부에서 가져온 책에 대한 것도.

 

이무환은 품속에서 뇌정갑을 꺼내 앞으로 툭 던졌다.

 

“보려면 봐. 보는 건 안 말리니까.”

 

남궁산산은 매미날개처럼 얇은 데다 은은히 푸른빛마저 감도는 반투명한 뇌정갑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슬쩍 손에 끼어봤다.

 

“어때, 생각보다 부드럽지?”

 

대답 대신 남궁산산의 입에서 외마디 외침이 터졌다.

 

“어멋!”

 

장갑을 황급히 벗은 남궁산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무환이 의아해하는 눈으로 남궁산산과 뇌정갑을 번갈아봤다.

 

“왜 그래?”

 

“이걸 끼니 기분이 이상해요.”

 

“뭐야? 무슨 기분이 이상해?”

 

남궁산산이 슬그머니 얼굴을 붉혔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짜릿했어요. 아이…….”

 

“짜릿? 요 쪼끄만 한 게…….”

 

 

 

5

 

 

 

와룡부의 일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심처가 털렸다는 것을 누가 알리고 싶을까.

 

그 대신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침입자가 남긴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쾅!

 

“이놈들이……!”

 

제갈무진이 분노에 찬 얼굴로 탁자를 내려쳤다.

 

방양고는 제갈무진의 분노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제갈무진이 표정을 가라앉히고 방양고에게 물었다.

 

“자네 생각을 말해보게.”

 

그제야 방양고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좀 더 깊은 조사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그래서 더 혼란스럽습니다. 그들은 결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닙니다. 지금 상황에서 저희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걸 모를 제갈무진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분노를 토해낼 곳이 필요했을 뿐.

 

“으음, 그럼 다른 곳일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봅니다.”

 

“어디를 염두에 두고 있나?”

 

방양고가 신중하게 답했다.

 

“그 무공을 알고 있는 곳. 그들을 알고 있는 곳. 그들을 모함해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곳. 그 정도를 중심으로 조사하다 보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갈무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천룡부라고 보나?”

 

“그곳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그럼 최소한 한 곳은 줄었군. 좋아, 보름의 시간을 주겠네. 자네 역량껏 알아보게.”

 

“알겠습니다, 부주.”

 

 

 

방양고가 나가고도 제갈무진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가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나직이 누군가를 불렀다.

 

“걸아, 안으로 들어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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