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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5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56화

 

56화

 

 

 

 

 

 

 

 

구룡성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당장은 잠풍련의 세력도에 대한 것만 파악하며 지내고 있는 상황.

 

덕분에 백지였던 잠풍련의 세력도에 제법 많은 선이 그어졌다. 자신과 남궁산산의 판단에 의하면, 적의 이삼 할 정도는 파악이 된 듯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움직이기에는 적의 수뇌부가 너무 깊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들이 드러나기 전에는 이쪽도 움직임을 자제해야 했다.

 

호연청이 천룡부와 창룡부와 검룡부의 수뇌들과 밀담을 나누며 나름대로 힘을 결집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삼룡의 수뇌들 역시 적이 확연히 드러나기 전에는 쉽게 힘을 보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인즉 언제든 상대가 드러나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그곳을, 천룡부를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이무환은 칼을 한쪽에 빼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남궁산산이 따라나섰다.

 

“너는 왜?”

 

“심심해서.”

 

아수라지옥을 가더라도 따라가겠다는 표정이다.

 

“쪼끄만 게, 그냥 혼자 놀면 되지.”

 

“피이, 오빠가 없으면 재미도 없잖아요?”

 

생각해 보니 꼬맹이를 데려가도 괜찮을 것 같다.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있지 않을까? 꼬맹이의 잔머리가 필요할지도 모르고.

 

“좋아, 그럼 따라와.”

 

남궁산산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방을 나서자 영호승을 비롯한 광룡대원들이 보였다.

 

옷이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호연청이 장난으로 말하듯 ‘광룡대의 옷값이 장난이 아니라네.’라고 하더니 이해할 만했다.

 

게다가 종리난경조차 여기저기 옷이 찢어져서 속살이 살짝살짝 비치고 있었다. 보나마나 엽상은 인상이 그만큼 찢어져 있을 것이고.

 

엽상을 떠올린 이무환의 얼굴에 엷은 웃음이 번졌다.

 

‘크크크, 종리난경이 원한 거니까 이해하라고.’

 

이무환이 실실거리며 앞장서고, 남궁산산이 뒤를 따른다.

 

광룡대원들은 궁금한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저 악귀대주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나가는 거지?

 

 

 

3

 

 

 

천룡부는 구룡성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백여 년간 구룡성의 일인자로 군림한 그들은 항상 하늘이었다. 그런데 절대적인 그들의 위치가 다섯 달 전에 무너졌다.

 

신룡부와 마룡부가 차기 구룡성의 지배자에 대한 세습을 반대한 것이다.

 

하늘에 대한 반기.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전쟁이었다.

 

강호에선 구룡성의 내전이란 말로 간단히 치부되고 말았지만, 그 전쟁의 여파는 강호 전체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신룡부와 마룡부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실권을 쥐고, 구룡성의 전권을 쥐고 흔들다시피 했던 천룡부와 검룡부는 숨을 죽인 채 전전긍긍했다.

 

오죽했으면 드나드는 사람도 없고, 정문을 지키는 위사조차 없을까.

 

‘빌어먹을, 꼴 좋군.’ 

 

이무환은 위사 하나 없는 조용한 정문을 보니 짜증이 더해졌다.

 

“이 꼴이 되었는데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야?”

 

남궁산산이 고개를 쳐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오빠, 천룡부와 원한 진 거라도 있어요?”

 

이무환은 남궁산산의 머리를 때리려다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렸다.

 

“원한은, 그냥 악연이지. 에휴…….”

 

그때다.

 

“웬 놈이냐?!”

 

누군가가 정문을 나서면서 이무환을 향해 소리쳤다.

 

이무환은 목이 아픈 사람처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고리눈을 뜨고 자신을 쳐다보는 자가 보였다.

 

젊은 놈이었다.

 

잘해야 스물서넛?

 

물론 그 나이라면 자신보다는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놈’이라 부르는 놈에게 곱게 대꾸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놈은 누구쇼?”

 

상대는 잠시 혼란을 겪는 듯했다. 그러다 이무환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눈과 목에 힘을 주었다.

 

힐끔 남궁산산을 쳐다보는 것이, 만일 예쁘장한 남궁산산이 없었다면 당장 손부터 날렸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이창환이라 한다. 네놈은 누군데 감히 이곳에서 얼쩡거리는 것이냐?”

 

이무환이 고개를 숙였다.

 

기가 죽어서?

 

천만의 말씀이었다.

 

‘환’ 자 항렬인 것을 보니 자신의 사촌 형제다.

 

나이가 많아 보이니 형이라는 말. 반가워야 하는데 은근히 짜증이 난 것이다.

 

‘제기랄, 진작 이놈의 집안 내력을 먼저 알아놨어야 하는데.’

 

어쩌면 자신이 억지로 피했다고 봐야 했다. 

 

그저 조부 뻘 되는 분들과 ‘충’ 자 항렬인 백부와 숙부들 이름만 알아놓고, 수십 명에 달하는 형제들의 이름은 건성으로 쳐다보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눈앞에 있는 이창환이라는 자가 누구의 자식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비켜서기도 어정쩡한 상황. 이무환은 고개를 들고 품속에서 수룡패를 꺼내 내밀었다.

 

“수룡단에서 왔소. 좀 들어갔으면 좋겠는데.”

 

이창환이 흠칫한 표정으로 이무환의 손에 들린 수룡패와 이무환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최근의 수룡단은 전과 같이 잠자는 미꾸라지가 아니었다.

 

기지개를 켠 잠룡이었다.

 

더구나 천룡부에겐 마지막 숨줄과도 같았다.

 

대주 이상에게만 지급된다는 수룡패를 본 이창환은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봤다.

 

“험, 진작 말하지 그랬나? 들어가 보게나.”

 

이무환은 수룡패를 품속에 집어넣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이런 것들만 있으니 이 꼴이 되지.’

 

그때 안에서 몇 사람이 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모두 다섯. 중간에 선 사람은 비단 보자기로 싼 물건을 받쳐 들고 있었다. 누구에겐가 귀한 물건을 진상하러 가는 자세였다.

 

이무환은 힐끔 천룡전 쪽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이창환을 바라보았다.

 

“저건 뭐요?”

 

평소라면 코웃음 치든지, 아니면 건방지다며 한 소리하고 말았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수룡단의 대주 급 인물이라는 것을 안 이창환은 자랑하듯이 입을 열었다.

 

“내 장인어른께 드릴 선물일세.”

 

“장인? 어떤 분이시기에 천룡부에서 선물을 바친단 말입니까?”

 

“하하하, 아직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군. 잘 듣게나. 내 장인 될 분이 바로 와룡부의 주인이신 제갈 어르신일세.”

 

‘와룡부? 그럼 제갈무진?’

 

이무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천룡부의 선물을 들고 나오는 일행을 쳐다보았다.

 

그사이 선물을 든 사람들이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한 사람이 이무환의 눈에 들어왔다.

 

선물을 든 자 뒤에 걸어가는 깨끗한 황의를 입고 있는 중년인. 수룡단의 문서고에 그림으로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귀유(鬼儒) 방양고? 놀랍군. 와룡부의 이인자가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천룡부의 선물이 가볍지 않다는 것인데…….’

 

이무환은 앞서 가는 자가 받쳐 든 선물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무환은 자신의 느낌을 절대 무시하지 않았다.

 

‘와룡부라……. 그러잖아도 찾아봐야 할 곳이었는데,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 같군.’

 

“오빠, 왜 그래요?”

 

이무환의 눈에서 삼색광이 번들거리는데, 남궁산산이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그제야 이무환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거대한 전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니야. 가자, 배고프지?”

 

“조금요.”

 

“가서 밥 남은 거 있으면 좀 달라고 하자.”

 

“크크큭!”

 

어이가 없는지 소리 죽여 웃는 남궁산산이다. 하지만 이무환의 가슴은 선물을 든 자들이 멀어질수록 싸늘히 식었다.

 

그리고 이십여 보.

 

이무환이 다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다.

 

“겁나게 크군. 돈깨나 들었겠는데?”

 

천룡부와 나머지 팔부 사이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대표적인 건물인 천룡전의 크기였다.

 

구룡성의 중심으로, 구룡성의 모든 대소사가 결정되는 곳이 천룡전이다 보니 그 크기가 남달랐다.

 

당연히 대전 내부도 엄청나게 넓었다. 수백 명이 늘어서도 될 만한 크기였다.

 

이무환이 남궁산산과 천룡전의 앞에 도착했을 때는 막 천룡전의 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누군지 신분을 밝혀라.”

 

문 앞에 서 있던 자들 중 하나가 이무환을 향해 삼 보를 걸어오더니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이무환은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부터 신경이 쓰이던 자였다.

 

삼십대 중반의 나이. 강철을 두드려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인상.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선물을 든 와룡부의 사람들이 나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있었는데, 결코 단순한 경비무사는 아니었다.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가 단순한 무사일 리는 없을 테니까.

 

“수룡단의 무환이오.”

 

이무환은 자신의 성은 쏙 빼고 이름만 말했다. 그러면서 수룡패를 꺼내 보였다.

 

남궁산산이 빙글빙글 웃으며 그런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강철처럼 보이는 무사가 이무환의 손에 들린 패와 이무환과 남궁산산을 번갈아 보더니 불쑥 물었다.

 

“무씨인가?”

 

문득 이무환의 뇌리 속에서 한 사람의 초상이 떠올랐다.

 

천룡전의 마지막 문지기라는, 어떤 자는 천룡부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부르는 철사자(鐵獅子) 무설강, 눈앞에 있는 자는 바로 그였다.

 

천룡 이건천이 양자처럼 키워 자신의 진정한 무공을 전해주었다는 소문마저 전해지는 자.

 

‘젠장, 심장도 쇠로 만들어져 있다는 작자잖아?’

 

하지만 이무환은 조금도 표를 내지 않고 조용히 웃었다.

 

“원래는 다른 성이 있는데, 내가 무씨를 좋아해서 무씨 성을 가끔 쓰고 있지요.”

 

무씨를 좋아한다는데 어쩔 건가.

 

무설강은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실쭉 입을 비틀었다.

 

“미친놈이군. 무씨를 좋아하다니.”

 

말투는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닌지 이어지는 말에 아주 약간의 온기가 어렸다.

 

“그래, 무슨 일로 온 건가?”

 

“일상적인 조사차 왔는데…….”

 

말을 길게 끈 이무환이 뒤를 돌아다보았다. 선물을 든 자들 일행은 이미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조금 전에 들으니 와룡부에 선물을 전하러 간다고 하던데.”

 

무설강의 표정이 철판을 찌그러뜨린 듯 구겨졌다.

 

“곧 알게 될 거네. 본성 전체에 공표될 일이니까.”

 

뭔가가 단단히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이무환은 그런 무설강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선물이기에 와룡부의 작은 너구리가 직접 온 겁니까?”

 

그 질문에 무설강의 눈이 조금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눈과 눈썹이 제법 남자답게 선이 굵어 멋져 보였다.

 

‘흠, 이자, 괜찮은데?’

 

그때 참지 못한 무설강이 짧게 웃었다.

 

“작은 너구리? 크큭, 방가를 그렇게 부르는 놈은 처음 보는군.”

 

하지만 그도 잠깐. 무설강이 정문 쪽을 바라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네.”

 

이무환도 당장 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잠시 안에 들어가 어르신께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만.”

 

“어느 분을 만나고자 하는가?”

 

무설강이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되돌아가 물었다.

 

이무환이 담담하게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천룡지주, 구룡무제 이건천 어르신을 뵙고자 합니다.”

 

순간 무설강의 눈빛이 갈색으로 변했다.

 

진짜 철사자의 눈이었다.

 

이무환도 지지 않고 무설강의 눈을 직시했다.

 

사자탄의 소용돌이도 어쩔 수 없는 눈이다. 이충량도 반의반 각을 버티지 못하는 눈빛이다.

 

벼락이 깃든 듯, 폭풍이 몰아치는 듯, 광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종내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는 눈빛.

 

결국 철사자의 쇠로 된 듯한 표정도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자네……!”

 

이무환이 무설강의 말을 끊었다.

 

“잠시만 뵈었으면 합니다만.”

 

무설강이 두어 번 눈을 깜박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침 다른 어르신들은 건천전에 가 계시네. 하지만 큰어르신께서 승낙하지 않으시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네.”

 

“그분께서 의양이 없으시다면야 전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설강은 옆구리의 철검을 한 번 굳게 쥐더니 몸을 돌렸다.

 

“따라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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