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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5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7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55화

 

55화

 

 

 

 

 

 

 

 

“헉!”

 

신곽은 급히 몸을 뒤로 꺾으며 왼발을 뒤로 뺐다.

 

하지만 뭔가가 오른발을 강타하는가 싶더니 처절한 극통이 몰려왔다.

 

빠직!

 

“크윽!”

 

그래도 자신이 누군가. 절정의 경지를 막 넘어서서 초절정에 이른 고수, 귀안신마 신곽이 바로 자신이 아니던가!

 

신곽은 이를 악물고 눈앞으로 다가온 손을 움켜쥐었다.

 

“감히 어디서!”

 

그는 자신했다.

 

언뜻 본 상대는 이제 겨우 스무 살가량의 풋내 나는 애송이였다. 자신의 귀마조를 상대하기에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비록 급하게 손을 쓰느라 육성의 공력밖에 주입하지 못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바위 정도는 가볍게 부술 수 있는 수공이 바로 귀마조였다.

 

‘손가락을 완전히 다 부숴주마!’

 

그는 그런 악독한 생각을 품은 채 애송이의 양손을 움켜쥐었다.

 

뿌드득!

 

손가락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곽의 입가로도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가 썩은 땡감을 삼킨 것처럼 변하는 데는 찰나의 시간이면 족했다.

 

“끄아악!”

 

그의 입이 쩍 벌어지며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내 손가락을 부수고 싶었겠지?”

 

애송이의 목소리가 귀청을 파고드는데도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른발은 무릎이 부서진 것 같았다.

 

게다가 빡!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왼발에서 뇌리까지 처절한 고통이 줄달음질쳤다.

 

이어서 손가락이 부서진 양손을 통해 밀려온 내력이 혈맥을 사정없이 터뜨렸다.

 

“끄으으…….”

 

신곽은 무너지는 몸을 세우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퍼억!

 

이번에는 옆구리에 애송이의 발이 틀어박혔다.

 

신곽은 갈비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다 뒤틀린 충격에 가느다란 눈을 최대한 홉떴다.

 

“꺼어어억!”

 

“아직 멀었어. 조금 더 맞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고. 당신 무공이 제법 쓸 만해서 이런 방법을 썼으니까, 그건 당신이 이해해.”

 

“이… 비, 비겁한…….”

 

“이해 못하겠다면 할 수 없지. 이해하면 그래도 덜 때리려고 했는데 말이야.”

 

뻑! 빡!

 

“컥! 끄악!”

 

이무환이 신곽의 부러진 두 손을 잡은 채 다시 신곽의 양발을 번갈아 후려 찼다.

 

뼈가 튀어나오는 것을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듯.

 

신곽의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상대는 분명 순하게 생긴 새파란 애송이였다. 홍루의 기둥서방이나 하면 딱 맞을 인상.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만 그랬다.

 

놈은 악마가 분명했다. 애송이의 탈을 쓴 악귀!

 

“이, 이 악귀 같은… 노옴…….”

 

이무환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떻게 나를 아는 거지? 당신, 나 본 적 있어? 내가 악귀라는 걸 어떻게 알아?”

 

그러면서 손에 힘을 주었다. 부러진 손가락뼈가 어긋나든 말든.

 

신곽의 몸이 덜덜 떨렸다. 몸서리쳐지는 두려움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크으, 제, 제발…….”

 

그런 신곽을 이무환이 빤히 바라보았다.

 

무저의 늪처럼 가라앉은 눈으로. 만년빙처럼 차갑게 굳은 눈으로.

 

“황보진욱을 죽일 때 기분이 좋던가?”

 

“그, 그건…….”

 

“몰랐지? 그가 왜 여자들이나 쓰는 향을 가지고 다녔는지. 아마 몇 번 몸을 씻으면 다 사라질 줄 알았겠지?”

 

퍼억!

 

“크억!”

 

이무환의 발길질에 신곽의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가 다실 구석에 처박혔다.

 

“들어와!”

 

이무환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엽상과 유군명을 필두로 영호승과 단우경과 막위와 혁수린과 종리난경이 차례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궁산산이 들어왔다.

 

“꼬맹이, 너는 왜 들어왔어?”

 

“물어볼 게 있어서요.”

 

“네가? 뭘?”

 

“삼악이 서로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해서요. 조금이라도 알면 훨씬 나을 것 같거든요.”

 

“삼악이? 흠, 그것도 그렇군. 좋아, 너도 끼어주지. 하지만 너무 심한 장면은 보지 마.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니까.”

 

시신을 보고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남궁산산이다. 그걸 모르는 이무환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물인 시신과 시신이 되는 과정은 또 달랐다.

 

될 수 있으면 심한 장면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남궁산산이 스스로도 무서워하는, 그녀 깊은 곳의 빙심을 녹이기 위해서라도.

 

그 마음을 알았는지 남궁산산이 피식피식 웃었다.

 

“알았어요, 오빠.”

 

 

 

이름은 귀안신마 신곽.

 

나이는 마흔여섯. 나이에 비해 얼굴이 겉늙어 보임.

 

지위는 잠풍련의 호법.

 

 

 

이무환이 알아낸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군명이 나서서 고문까지 했는데도, 신곽은 마지막까지 중요한 것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입을 열면 자신의 가족이 모두 죽는다며, 몸을 조각조각 떼어내 죽여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정말로 죽을 때까지 잠풍련의 핵심 인물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삼악이 암묵적인 합의하에 자신들의 구역을 정해놓고 있다는 것. 그들 중 하나가 천마교에 스며들었다는 것. 구유마도 석치상과는 약간의 거래를 하는 관계라는 것 등 전체적인 구도를 엿볼 수 있는 말을 몇 마디 해서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이무환이 원했던, 약초에 대한 일은 알아내지 못했다.

 

잠풍련의 대공자라는 사람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일이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무환은 신곽이 더 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그의 천령개를 후려쳐서 황보진욱과 똑같은 죽음을 내렸다.

 

죽은 그를 보고 유군명이 혀를 내둘렀다.

 

“지독한 자군요.”

 

“그래도 적지 않은 것을 얻었으니 헛고생은 아니었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오빠?”

 

이무환이 남궁산산을 바라보고 차갑게 웃었다.

 

“이자가 사라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놈들이 움직일 거야. 일단 놈들을 상대할 힘부터 모으고 보자고. 대가리가 나오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테니까.”

 

 

 

7

 

 

 

신곽이 귀향루 뒷마당에 묻힌 다음 날 아침.

 

마룡부 전마각에 서리가 내렸다.

 

“신 호법에게선 아직도 연락이 없나?”

 

은의인이 인상을 잔뜩 쓰며 묻자, 부복한 적의인이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대답했다.

 

“지금 성 안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습니다. 신룡부 쪽에선 어제 아침에 나갔다는데, 만 하루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젠장. 이 인간이 중요한 때에 대체 어디를 갔지?”

 

“보고받기로는, 마룡부 근처까지 가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종적이 끊겼습니다.”

 

“끄응, 할 수 없지. 저녁까지만 더 기다려 보고, 그래도 안 오면 내가 직접 사부님을 만나 뵈어야겠다.”

 

적의인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아직 수룡단의 눈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는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흥! 그깟 놈들이 주시해 봤자지. 이미 대세는 기울었어. 놈들이 버둥거린다고 바뀔 상황이 아니야. 오히려 놈들보다는 와룡부 놈들이 더 문제다. 아무래도 요즘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그들도 철저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대령주.”

 

“천룡부와 혼사가 오간다며?”

 

“금룡부의 이령주께서 좌시하지만은 않을 테니 성사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멍청한 놈. 썩어도 준치라는 것을 알고 손을 썼어야지. 무작정 윽박질러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놈들이 순순히 고개를 숙일 거라 생각했나?”

 

“이령주께서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흥! 놈은 그래서 안 된다는 거다. 하긴 나에겐 오히려 잘된 일이지.”

 

“어찌 이령주를 대령주께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은의인은 적의인의 꿀 발린 말에 냉기 서린 표정을 조금 풀었다.

 

“유흔이 없는 자리를 그대가 메워줘야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적의인의 고개가 바닥에 처박혔다.

 

“걱정 마십시오, 대령주. 속하, 적흔. 오직 대령주만을 모실 겁니다.”

 

 

 

8

 

 

 

신곽으로 인해 촉각을 곤두세운 곳은 마룡부만이 아니었다.

 

“놈들이 꽁지에 불붙은 쥐새끼처럼 사방을 들쑤시고 있습니다.”

 

“그래?”

 

“수소문하는 말을 들어보니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백의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수룡단이 한 건 한 모양이군.”

 

“얼마 전에 대주와 대원들이 몇 죽었다더니 그 복수를 한 모양입니다.”

 

“제법이군. 쉽지 않았을 텐데.”

 

황의인은 백의인의 칭찬이 진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고 흠칫 놀랐다.

 

하지만 찻잔을 놓는 사이 백의인의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 천룡부에선 뭐라던가?”

 

“일단 그렇게 하겠다고 합니다. 부주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말씀하시면 금방이라도 가져다 바칠 것입니다.”

 

“그래?”

 

백의인, 제갈무진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밝아졌다.

 

“그럼 가서 말하게. 내가 원하는 것은 한 쌍의 장갑이라고. 장갑의 이름은… 뇌정갑(雷霆匣)이네. 아마 그자들은 그걸 구석에 처박아놨을 거야.”

 

황의인, 방양고는 무심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그 장갑이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다. 하기에 단순하게 생각했다. 자신의 주인이 원하니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면 될 뿐이라고.

 

“알겠습니다, 부주.”

 

 

 

제3장. 어떤 도둑에 대한 이야기

 

 

 

 

 

 

 

1

 

 

 

구룡성은 거대한 힘의 결집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있었다.

 

이무환은 신곽을 죽인 지 닷새 만에 호연청을 만났다. 이제 반쯤은 호연청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내보여야 할 때였다.

 

“놈들의 이름은 잠풍련이라고 합니다.”

 

“잠풍련?”

 

호연청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무환이 슬며시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보충 설명을 했다.

 

“절대사천좌 중 ‘풍’의 무공을 얻은 자들이라고 하면 좀 더 확실하겠군요.”

 

호연청의 커진 눈에서 순간적으로 신광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천천히 고개를 뺀 이무환은 그제야 한 가지 사실에 대해 확신했다.

 

‘생각대로야. 호연청의 무위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하군. 그동안 자신을 숨겼다는 말인데…….’

 

자신의 능력을 숨겼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호연청은 이무환이 어떤 생각을 하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말 그들이 그 무공을 얻었단 말인가?”

 

의자에 등을 기댄 이무환이 두 번째 비수를 호연청의 뇌리에 꽂았다.

 

“저희가 알아낸 바로는… 잠풍련의 주인이 바로 혈지겁난을 일으킨 삼악 중 하나라 하더군요.”

 

호연청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잠들었던 신광도 다시 피어올랐다.

 

“확실한가?”

 

“구룡성에 오기 전, 안휘에서 정천무림맹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선 이미 알고 있더군요.”

 

“그런… 가?”

 

호연청은 떨리려는 목소리를 억지로 짓누르고는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말을 했을 때는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뭘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가?”

 

“힘을 모아주셔야겠습니다. 최대한.”

 

호연청의 입이 길게 늘어졌다.

 

만족한 웃음이었다.

 

그거야말로 자신이 바라던 바가 아닌가 말이다.

 

“걱정 말게. 나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네.”

 

 

 

2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화창하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왔다. 파랗던 하늘이 비라도 올 것처럼 회색으로 덧칠되었다. 날씨가 따뜻해서 눈은 오지 않을 듯했다.

 

이무환은 회색빛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날씨가 우중충해지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렇게 강하게만 느껴지던 아버지가 손을 떨기 시작한 것은 일 년 전부터였다.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그저 어린 아들을 그렇게 죽도록 고생시켰으니 하늘이 벌을 내려서, 아니면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가 보다 했다.

 

나이가 들면 고향을 그리워한다더니, 그래서 유난히 술도 많이 마시는 것 같았다.

 

특히 자신이 아버지를 넘어선 후부터 더 마셨다.

 

말로는 옥이 엄마의 술 빚는 솜씨가 좋아서 자꾸 술을 더 마시게 된다고 하는데,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처럼 우중충한 날이면 꼭 비룡도의 절벽 꼭대기에 앉아서 서쪽을 바라보며 술을 마셨으니까.

 

언젠가 절벽에서 내려오는 아버지의 눈빛을 정면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날 본 아버지의 눈빛에는 회한과 정리, 고뇌가 깃들어 있었다. 어린 나이라 정확히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날씨마저 우중충한 판에 아버지의 탁한 눈빛이 떠오르자 이무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이, 생각난 김에 오늘은 거기나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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