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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5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53화

 

53화

 

 

 

 

 

 

 

 

엽상이 이끄는 수룡구대가 마룡부에 들어가려 하자 몇 사람이 막아섰다.

 

“무슨 일이오?”

 

엽상이 어깨를 펴고 눈에 힘을 주었다.

 

“무슨 일이긴! 나는 수룡단의 수룡구대주 엽상이다. 이곳에 누군가가 침입해서 소란이 일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해서 단주의 명으로 조사하러 왔으니 적극적인 협조를 바라겠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보고를…….”

 

“그러다 침입자가 도망이라도 가면 그대가 책임질 건가? 감히 수룡단의 조사를 그대가 막겠다는 건가?”

 

일개 경비무사가 엽상의 기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감찰부인 수룡단의 대주가 아닌가.

 

머뭇거리는 사이 수룡구대의 대원 두 사람이 경비무사를 밀치고 앞으로 나갔다.

 

그 뒤를 엽상이 따라가고, 영호승과 단우경과 막위와 혁수린이 따라갔다.

 

이무환은 맨 뒤로 처져서 상황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마룡부의 무사 삼십여 명이 밖으로 나와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엽상의 수룡구대가 무사들의 눈길을 받으며 전마각 앞으로 다가갈 때였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이냐?”

 

유마각의 문이 덜컹 열리더니 두 사람이 나왔다.

 

“수룡구대의 대주 엽상이라 하오.”

 

“그런데?”

 

엽상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꺾어졌다. 이무환에게 당하며 커진 것은 오기와 간덩이밖에 없었다.

 

“뭐? 그런데? 당신은 누군데 조사하러 나온 사람에게 그따위로 말을 하는 거지?”

 

“뭐야? 수룡단의 일개 대주 따위가 감히!”

 

수개월을 밖에서만 지낸 엽상이다. 게다가 임무를 맡으면 거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게 수룡단의 사람들이다.

 

마룡부의 비마당주 육전호는 엽상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엽상은 육전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알고도 소리쳤다.

 

“수룡단의 행사를 막으면 어떤 형벌을 받는지 모르지는 않겠지? 정말 막을 생각인가?”

 

엽상이 조금도 지지 않고 소리치자, 육전호의 옆에 서 있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송치열이라 하네. 자네, 말이 너무 심하군. 우리가 언제 수룡단의 행사를 막겠다고 했나? 대체 왜 이 시간에 와서 소란스럽게 하는지 그걸 물은 것뿐이네.”

 

그제야 엽상도 말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뉘신가 했더니, 송 당주셨군요.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육전호에겐 막무가내로 대들더니 자신에겐 공손히 대한다. 송치열로서는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험. 그래, 무슨 일인가?”

 

“조금 전에 마룡부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들리고 소란이 일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해서 단주님의 명으로 그걸 조사하러 온 것입니다.”

 

“소란? 비명? 무슨 말인가?”

 

그때였다. 영호승이 능청스럽게 유마각의 처마 쪽 부서진 들창문을 가리켰다.

 

“대주님, 저곳이 완전히 부서져 있습니다. 속하가 조사해 볼까요?”

 

“올라가 봐라.”

 

“잠깐!”

 

영호승이 몸을 날리려 하자 송치열이 다급히 말렸다.

 

“그곳은 어제부터 부서져 있던 곳이네. 미처 고치지 못해서 내일 고치려고 놔두었지.”

 

엽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요? 좌우간 유마각 안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각주께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만.”

 

“각주께선 지금 주무시네. 설마 이런 사소한 일로 각주의 잠을 깨울 생각은 아니겠지?”

 

엽상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사건을 조사하러 왔는데, 잠을 깨울 수 없으니 조사를 미루라는 말씀입니까?”

 

“그게 아니라…….”

 

이번에는 혁수린이 외마디 경악성을 발하더니 갑자기 몸을 날렸다.

 

“어? 저건!”

 

누가 막을 새도 없었다.

 

“멈춰!”

 

뒤늦게 마룡부의 무사 셋이 몸을 날렸지만, 이미 혁수린은 유마각의 이층 처마에 다다라 있었다.

 

“대주, 이곳에 비수가 꽂혀 있습니다! 그리고 안쪽의 천장이 여기저기 부서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혁수린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정말로 길이 한 자가량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회의인의 손에서 튕겨진 비수였다.

 

사실 그가 먼저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이무환의 전음이 없었다면, 이무환의 지시가 없었다면 볼 수도, 행동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혁수린이 소란의 증거를 찾아내자, 혁수린의 뒤를 따라간 무사들은 손을 쓰지도 못하고 명령만 기다렸다.

 

엽상이 고개를 홱 돌려 송치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나 보군요. 안을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송 당주.”

 

힘으로라도 밀고 들어가겠다는 말투.

 

송치열은 가소로웠지만 무작정 막을 수만도 없었다.

 

그 대신 육전호가 막 걸음을 옮기는 엽상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수룡단이라 해도 이곳은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순간 엽상이 걸음을 멈추지 않고 손을 뻗었다.

 

“비켜!”

 

육전호도 손을 뻗으며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어림없는 소리!”

 

일시지간, 두 사람의 손바닥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퍽!

 

동시에 엽상이 한 걸음 물러서고, 육전호가 세 걸음을 물러섰다.

 

경악한 육전호가 몸을 바로 잡기도 전. 엽상이 다시 앞으로 나서며 설홍을 빼들었다.

 

“정말 수룡단의 행사를 막겠다는 거요!”

 

육전호를 향한 설홍의 끝에서 새하얀 검기가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찰나, 하얀 광채가 한 자가량 쭉 뻗더니 불빛에 반짝거렸다.

 

“거, 검기성형, 아니, 검강인가?”

 

옆에서 바라보던 송치열이 두 눈을 부릅떴다.

 

엽상이 차가운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설홍을 거두며 냉랭히 말했다.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육 당주!”

 

완벽히 기세에서 눌린 육전호가 창백한 안색으로 엽상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유마각 안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을 안으로 들여라.”

 

 

 

이무환은 태연히 안쪽을 쓸어 보았다.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년인이 보였다. 조금 전 목소리의 주인인 듯했다.

 

그의 옆에는 무사 넷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천장에서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탐색해 봐도 근처에서 그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둘 중 하나였다. 건물 어딘가에 깊숙이 웅크리고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거나, 아니면 이곳에 없다는 말이었다.

 

이무환은 중년인을 향해 다가가는 엽상에게 전음을 보냈다.

 

<근처에는 없다. 대충 둘러보는 척하면서 이층과 삼층으로 올라가 보자.>

 

전음이 끝남과 동시, 엽상이 중년인, 유마각주 유령마존(幽靈魔尊) 설무근에게 포권을 취했다.

 

각주와 당주는 그 신분이 천양지차. 아무리 간덩이가 부은 엽상이라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일어난 사건인지라 경황이 없다 보니 그만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해하네. 수룡단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다만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었으면 하네. 우리 역시 난데없이 침입을 받아서 무슨 일인지 당최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네.”

 

“알겠습니다, 각주.”

 

“한데… 꽤 빨리 왔구먼. 침입자가 도망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구룡제일 마룡부에 침입한 자가 있다는데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설무근의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어깨에 힘도 들어갔고.

 

고개를 든 엽상이 뒤를 향해 명을 내렸다.

 

“거기, 거기, 그리고 너! 너희들은 즉시 이층으로 올라가서 상황을 살펴봐라. 나도 곧 올라가겠다.”

 

엽상이 강하게 ‘너!’라고 손가락으로 콕 찔러 지명한 사람은 이무환이었다.

 

이무환은 한마디 해주려다 꾹 참고 고개를 숙였다.

 

“예, 대주.”

 

‘두고 보자, 눈발. 치사하게…….’

 

 

 

바닥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유흔의 관도, 회의인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구멍 뚫린 천장과 들보에 난 구멍은 금방 메울 수가 없는 상처였다.

 

이무환은 천장으로 올라가서 들보에 난 구멍을 살펴보았다.

 

빙빙 회오리처럼 돌며 깨끗하게 뚫린 다섯 개의 구멍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회륜풍(回輪風)인가?’

 

바람의 무공, ‘풍(風)’의 다섯 가지 절기 중 하나.

 

그걸 바라보는 이무환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자신이 사자탄에서 익힌 무공 중 회룡탄이 남기는 흔적과 비슷했다. 크기만 다를 뿐.

 

‘잘하면 흉내 낼 수 있겠는데?’

 

이무환이 아래쪽을 향해 말했다.

 

“멋…… 영호 대원, 촛불 하나 들고 올라와 봐.”

 

영호승이 촛불을 하나 들고 위로 올라왔다.

 

이무환은 촛불을 들이대고 구멍을 하나하나 세세히 살펴보았다. 휘감은 방향과 구멍의 크기 등 흔적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무슨 흔적입니까?”

 

“‘풍’의 흔적이야. 잘 봐둬.”

 

영호승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절대사천좌의 무공 흔적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아직 멀었나?”

 

그때 밑에서 송치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무환은 영호승에게 눈짓을 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싸운 흔적이 있긴 합니다만,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주.”

 

이무환의 능청스런 말에 엽상이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삼층으로 가자.”

 

삼층은 거의 이상이 없었다. 그곳에도 이무환이 찾던 기운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갔다는 말이군. 전마각인가?’

 

만일 그가 전마각이나 다른 곳으로 갔다면, 마룡부 전체에 그들의 힘이 스며 있다는 뜻이었다. 또한 마룡부의 힘을 그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마룡부주 혁성화는 저들을 어디까지 들여놓은 것일까?

 

혹시 모든 걸 넘겨준 것은 아닐까?

 

이무환의 입가로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차라리 놈들이 완전히 장악했다면 일하기가 편할 텐데…….’

 

다 때려부수면 되니까.

 

 

 

수룡구대는 이각이 넘도록 유마각을 살펴본 후 밖으로 나갔다.

 

은의인은 그들이 마룡부에서 나가는 것을 전마각 삼층의 밀실에서 내려다봤다.

 

밤중에 소란스런 소리가 울렸으니 그냥 지나가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예상보다 빠른 반응이었다.

 

“옮기길 잘했군요. 수룡단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다행히 단순 침입으로 판단하고 물러갔네.”

 

설무근의 말에 은의인이 눈을 좁혔다.

 

뭔가가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부주께서도 이 일을 알고 계시겠지요?”

 

“아실 거네. 그래 봐야 상관하지 않을 테지만.”

 

그럴 것이다. 마룡의 주인, 적혈마신(赤血魔神) 혁성화는 이미 뿔도 발톱도 다 빠진 노룡에 불과했으니까.

 

“다른 분들은 마음을 결정했는지 모르겠군요. 사부님께서 직접 나서시기 전에 이곳의 일을 마무리 짓고 싶은데 말입니다.”

 

“서너 명이 미적거리고 있네만, 곧 결정을 할 거네. 어차피 강호는 강한 자의 세상이 아닌가?”

 

 

 

2

 

 

 

한편 황보진욱은 자신이 지휘한 미행이 들켰다는 것을 알고 이를 악물었다.

 

나름대로 철저히 움직였다 생각했는데, 겨우 한 사람의 눈을 속이지 못해 들키다니.

 

“놈이 도룡부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되었지?”

 

“이각 정도 되었습니다.”

 

“이각이라……. 좋아, 멀리 떨어져서 이각을 더 기다려 본다. 그래도 나오지 않으면 돌아간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그자가 도룡부에 들어간 지 일각가량이 지나도 나오지 않을 경우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실패한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나니 돌아갈 수가 없었다.

 

미련이라면 미련이었다. 자신의 실수를 확인해 보고 싶은 미련. 그 미련이 그의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일각이 지나고, 황보진욱이 포기하기 위해 수하들을 부르려 할 즈음, 수하 중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그의 곁을 스쳐가며 전음을 보냈다.

 

<놈이 도룡부를 나왔습니다.>

 

순간 황보진욱의 눈이 번들거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의 움켜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실패는 한 번으로 족했다. 두 번의 실패는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

 

황보진욱은 이십여 장 떨어진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하에게 수화로 신호를 보냈다.

 

‘놈을 쫓는다!’

 

그러고는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고, 어슬렁거리며 담장 그늘 밑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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