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52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52화
52화
4
마룡부 동쪽 맨 끝, 암울한 어둠에 물든 채 우뚝 서 있는 커다란 전각, 그곳이 전마각이었다.
십여 장을 훌쩍 날아간 이무환은 전마각 삼층 처마 밑으로 스며들었다.
사위는 정적에 잠겨서 귓전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한데 그것 자체가 기이했다.
밤이 늦었다지만, 아직 해시도 다 지나가지 않은 시각.
몇 명쯤은 깨어 있어야 옳았다. 방 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라도 들려야 했다. 하거늘 경비무사들의 오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토록 철저한 침묵에 잠길 이유는 하나뿐이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경비무사들조차 긴장하고 있다는 것.
결코 자연적인 것은 아니다. 항상 그런 것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조용히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말이겠지.’
이무환은 숨을 두어 번 들이쉬고는 경비무사들의 눈과 귀를 피해 전마각을 살펴보았다.
이층으로 갔다,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삼층으로 올라가서 근처에 있는 기운 중 제일 강한 기운이 뻗어 나오는 곳을 찾았다.
전마각과 처마를 맞댄 체 이층 회랑이 이어져 있는 유마각 쪽에서 강한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일순간, 이무환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전마각에서 사라진 그의 모습이 유마각 이층 처마 밑에 나타났다.
쉰 살가량의 중년인이 가늘게 찢어진 눈을 찌푸리고 눈을 든 것은 근 이각가량이 지나서였다.
“이상하군.”
회의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닙니까?”
“그게 묘하네. 정확하게 말하기가 애매해.”
천천히 고개를 젓는 중년인의 가늘게 찢어진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때 나직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잘 보시오. 그래도 신 호법은 묵령운의 상흔을 본 적이 있다 하지 않았소?”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은의인이었다.
중년인은 급히 찌푸린 눈살을 풀고 고개를 숙였다.
“상흔은 비슷합니다만… 부패 부위의 상태가 조금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상흔 자체는 너무 비슷해서…….”
은의인이 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묵령운이 맞다는 거요, 아니라는 거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코끝을 타고 흘러내리자 중년인이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그는 반반의 확률을 조금 높여 말했다.
“칠 할 정도는 묵령운인데, 아닐 확률도 삼 할 정도 됩니다, 대령주.”
“그럼 거의 묵령운이라고 봐야겠군. 안 그렇소?”
우길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강호 경험이 풍부한 중년인이 그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게… 그렇습니다, 대령주.”
“좋소. 그럼 사부님께 그렇게 보고하도록 하겠소.”
중년인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제야 대령주의 의중을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실패를 묵령운에 떠넘기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진흙탕에 떨어진 떡이었다. 닦는다고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는 틀린 상황.
“알겠습니다.”
그제야 은의인이 표정을 풀고 다시 물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최근 놈들이 이 근처에 나타난 적이 있소, 신 호법?”
“아직 보고 받지 못했습니다. 다만 사우(死雨)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놈들은 천마교 때문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텐데?”
“두 달 전쯤의 일인데, 아직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흠, 그럼 이곳으로 손을 뻗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는 말이군.”
“충분히 가능합니다.”
은의인은 뒷짐 진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중년인과 회의인은 은의인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반 각이 지났을 때다. 은의인이 차갑게 굳은 눈으로 말했다.
“석치상을 한번 이용해 봐야겠소.”
중년인의 가느다란 눈이 커졌다.
“구유마도를 말입니까? 그가 움직이겠습니까?”
“우리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하면 그도 마다하지만은 않을 거요. 그는 악양 땅을 꽤나 욕심내고 있으니까.”
“그 말씀은……?”
“정 뭐하면, 그에게 악양 일대를 넘길 수도 있다는 말이오.”
은의인의 입술이 길게 늘어졌다. 새파란 살기가 두 눈에서 번들거렸다.
‘잠시 맡기고, 나중에 다시 뺐으면 되니까.’
그때였다. 은의인이 홱 고개를 쳐들더니 차갑게 소리쳤다.
“웬 쥐새끼냐!”
이무환은 자신의 발에 올라온 쥐를 바라보았다.
놈이 겁도 없이 냄새를 킁킁 맡더니 자신의 혁피화를 물어뜯는다.
<저리 안 가!>
이무환은 난생처음 쥐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고개를 내둘러대던 쥐가 말을 못 알아듣고 다시 엄지발가락을 향해 주둥이를 내밀었다.
동시였다. 아래쪽에서 차가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쥐새끼! 조금밖에 못 들었는데!’
이무환은 재빨리 엄지발가락을 물기 직전인 쥐새끼를 털어내고는, 엎드린 채 반 자가량 떠올라 수평으로 이 장을 날아갔다.
회의인은 은의인의 눈길을 따라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툭, 드르르륵!
뭔가가 지하의 천장 위로 달려간다.
회의인의 손을 뻗었다 싶은 순간, 비도 한 자루가 천장을 뚫었다.
쉭! 찍!
진짜 쥐새끼의 비명이 울렸다.
하지만 은의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회의인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이 장가량 떨어진 곳을 향해 우수를 쫙 펼쳤다.
동시에 다섯 줄기 회오리바람이 천장으로 솟구쳤다.
이무환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운이 날아들자 재빨리 몸을 뒤집었다.
다섯 줄기의 지력이 천장을 뚫고 솟구치는가 싶더니, 쇠처럼 단단한 대들보에 숭숭 구멍이 뚫렸다.
‘제법이군.’
이무환은 감탄을 하면서도 한 번 더 몸을 뒤집어 건너편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쾅!
동시에 천장이 뚫리며 비수를 든 회의인이 천장 위로 올라왔다. 이무환의 일 장 앞이었다.
피하기에는 늦은 상황.
이무환은 회의인을 향해 좌수를 내려쳤다.
피할 수 없다면 부수고 나가는 길밖에 없다. 막는 것은 무엇이든.
회의인이 커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데도 이무환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땅!
좌수가 회의인의 비수를 그대로 튕겨냄과 동시, 우수에서 시퍼런 벼락 두 줄기가 번쩍였다.
팔성의 내력이 담긴 천광뇌공지(天光雷控指)!
피하기에는 거리가 너무나 가까웠다.
“컥!”
짧은 단말마와 함께 회의인의 이마가 뻥 뚫렸다.
이무환은 자신을 본 회의인이 죽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자,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들어온 들창으로 몸을 날렸다.
콰광!
뒤에서 연속적인 굉음과 함께 천장이 산산이 부서졌다.
“놈을 잡아! 죽여!”
은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악에 바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무환은 잡혀줄 생각도, 죽어줄 생각도 없었다.
‘아버지도 못 잡는 나를 잡겠다고? 미친놈!’
들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이무환은 경비들이 달려오는 소리에 즉시 삼층 지붕으로 올라갔다.
와장창!
놈이 들창문을 부수며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살풀이는 다음에 만나서 하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전마각 삼층 전각을 잡아 돈 이무환은 곧바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한 마리 야조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룡부를 빠져나온 이무환이 다루로 돌아가자, 엽상이 다가와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금룡부에서 두 사람이 갈라졌습니다.”
“흐흥! 금룡부 사람이 아니었나? 어디로 갔지?”
“서북쪽으로 갔습니다. 지금 서쪽을 맡고 있던 황보 대주가 미행을 하고 있습니다.”
서북쪽이라면 두 곳이다. 도룡부와 신룡부.
“너무 가까이 붙지는 않았겠지?”
“네 사람이 교대로 오가며 미행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밤이라 해도 쉽게 눈치 채지는 못할 겁니다.”
엽상이 자신 있게 말했다.
이무환은 그런 엽상을 지그시 쳐다보고는, 눈을 들어 종리난경을 바라보았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나?”
종리난경이 고운 아미를 찌푸리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우리가 가늠하기 힘든 절정고수입니다. 더구나 시간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누군가가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놈이 눈치 챘다고 보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무환이 그것 보라는 듯 엽상을 향해 말했다.
“종리 대주의 말이 맞아. 만에 하나의 경우도 놓쳐서는 안 돼. 이번 일의 핵심이 바로 그거야. 쯔쯔쯔, 그렇게 말했는데도 무조건 확신을 하다니.”
엽상이 푹 고개를 숙였다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지금 유 대주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럼 저도 지원을…….”
“눈치 채지 못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그자가 눈치 챘다면 늦었어.”
“예?”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가보자고.”
5
중년인은 가늘게 찢어진 눈을 힐끔거리면 진한 살소를 지었다.
‘수룡단인가? 철저하군. 하마터면 모를 뻔했어.’
그는 신룡부의 정문이 십여 장 앞에 보이자 살짝 방향을 틀었다. 아주 자연스러워서 누구도 그가 고의로 방향을 틀었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었다.
‘뒤에 두 놈, 옆에 두 놈, 네 놈인가? 아니지 한 놈 더 있는 것 같은데, 어떤 놈이지?’
앞에서, 옆에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뜻 보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놈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눈동자.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동자가 반드시 자신을 한 번씩 주시하는데, 바로 그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다.
미미하지만 자신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감히 나 귀안신마의 눈을 속이려 하다니. 흐흐흐, 생각 같아서는 다 잡아 죽이고 싶지만, 명이 있어 참는다.’
이곳은 구룡성. 상대가 수룡단이라면 더욱 죽여서는 안 되었다.
귀안신마 신곽은 살소를 깊이 감추고 신룡부의 담장을 잡아 돌았다.
제2장. 향수를 가지고 다니는 남자
1
다루를 나선 이무환 일행은 서남쪽에 위치한 창룡부를 돌아갔다. 그 위쪽이 신룡부, 더 위가 도룡부였다.
이무환과 엽상과 종리난경이 이 장가량의 거리를 두고 창룡부의 담장을 돌아가는데, 영호승과 단우경이 빠르게 다가왔다.
“상황은?”
이무환의 질문에 영호승이 친구와 이야기하듯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친구와 할 이야기가 아니었다.
“신룡부를 지나쳐 도룡부 쪽으로 갔습니다.
“처음부터 그곳으로 갔나?”
“신룡부 쪽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쳤다고 합니다.”
“지나쳤다? 흠, 역시 눈치 챈 건가?”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엽상과 종리난경이 다가왔다.
“실패한 겁니까?”
엽상의 나직한 질문에 이무환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빛이 제법 밝았다.
“별수 없군. 막고 푸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뭔가가 걸리겠지.”
네 사람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이무환이 홱 몸을 돌렸다.
“놈이 아무리 간덩이가 부었어도 황보 대주가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손을 쓰지는 않을 거야. 그들은 그들대로 놔두고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이자고. 눈발, 앞장 서.”
“예? 어디로……?”
“어디긴? 마룡부로 가는 거지. 거기서 방금 사건이 벌어졌잖아? 그러니 사건을 조사하러 가잔 말이야. 감찰부인 수룡단이 사건을 조사한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
그제야 이무환의 말뜻을 눈치 챈 엽상이 눈을 빛냈다.
“아! 알겠습니다, 총대주.”
“이제부터 지휘자는 엽 대주야. 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그냥 수룡구대의 대원이란 말이다. 아! 그리고 종리 대주는 유 대주를 찾아서 마룡부 밖을 감시해. 또 움직이는 자가 있을지 모르니까. 딴에 자기 머리를 과신하는 물고기들이 꼭 나중에 움직이는 버릇이 있거든.”
“예? 예, 총대주.”
엽상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에는 이무환 때문에 주눅이 들어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수룡구대를 사 년간 이끌어온 전문가였다.
보일 듯 말 듯 씩 웃은 엽상이 이무환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며 몸을 돌렸다.
비록 일시적이지만 이제는 자신이 대장이었다.
“따라오게, 절대 천방지축 악귀처럼 경거망동하지 말고.”
뒤를 따라가는 이무환의 두 눈동자가 가운데로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