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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4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7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46화

 

46화

 

 

 

 

 

 

 

 

남궁산산과 영호승 등도 성문 쪽을 주시했다.

 

여인은 위풍당당한 호위무사 이십여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무환이 그런 감탄을 할 만큼 대단한 미모였다.

 

백옥처럼 빛나는 하얀 피부에 은은한 홍조, 알맞은 비율로 자리한 눈과 코, 그리고 잘 익은 앵두처럼 붉은 입술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게다가 굴곡이 완연한 늘씬한 몸매를 타고 흘러내려 박처럼 둥근 엉덩이 위에서 출렁이는 먹처럼 검은 머리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얼굴에, 몸매에, 화려한 치장까지.

 

항주제일을 다투는 화여경과 사마하연조차 그녀의 옆에 서면 빛이 바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저 여자가 구룡삼화(九龍三花) 중 하나인 주화빈이란 말이지?”

 

엽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대주.”

 

“우리 옥이보다는 못해도 정말 이쁘네.”

 

광룡대원들의 가슴에서 희망이 조금, 아주 조금 솟아났다. 최소한 여자에게 눈멀어서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남궁산산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옥이 언니 말고는 누구도 안 돼, 오빠.’

 

 

 

2

 

 

 

구룡성의 정규 무사는 약 오천. 열두 개 지부에 이천, 구룡성 내에는 삼 천 정도가 거주했다.

 

물론 구룡성에는 정규 무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룡성의 정규 무사가 되기 위해 와 있는 일반 무사만도 오천이 넘어서, 실제로 구룡성 안에 있는 무사는 일만에 가까웠다.

 

거기에 일반 사람들까지 합할 경우, 구룡성 내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총 이만이 넘었다.

 

구룡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내성에는 구룡부와 삼단에 속한 정규 무사들이 기거했다. 그리고 나머지 일반 무사들과 양민들은 외성에 거주했다.

 

외성은 일반 성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객잔이 있고, 주루가 있고, 물건을 사고파는 장도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외성이라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패가 있어야 하고, 확실한 신분이 있어야만 들여보내 주었다.

 

 

 

엽상이 패 하나를 슬쩍 보이자 무사들이 허리를 빳빳이 세우고 재빨리 앞을 비켜주었다.

 

“가세.”

 

광룡대원들은 엽상을 따라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무환과 남궁산산은 맨 뒤에 처져서 그들을 따라갔다.

 

“정지!”

 

그런데 무사들이 이무환과 남궁산산을 가로막았다. 약간 거리를 두었더니 엽상과 같은 일행이 아니라 생각한 듯했다.

 

“호패를 보이고, 방문 목적을 말하도록!”

 

제법 날카로운 인상의 무사가 눈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이무환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하고 내 동생은 저 사람…….”

 

“누구 말이냐? 저기 어디 네 아버지라도 있단 말이냐?”

 

막 몸을 돌리던 엽상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저 멍청한 놈이 왜 하필 그 말을!’

 

아니나 다를까, 이무환이 날카로운 인상의 무사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움찔한 경비무사가 잔뜩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뭐, 뭐야? 네놈이 감히 대항이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누가 저런 놈을 위사로 세운 거야?’

 

엽상이 급히 손을 들었다.

 

“이봐!”

 

거의 동시.

 

“무슨 일이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성문 밖에서 터져 나왔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무사가 대경해 허리를 굽혔다.

 

“오셨습니까, 종리 대주!”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본 주화빈에 못지않은 멋진 몸매의 여인이었다.

 

치장을 전혀 안 한데다 털털한 옷을 입고 검을 차서인지, 언뜻 보면 남잔지 여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녀는 허리를 펴는 경비무사와 이무환, 남궁산산을 번갈아 보고는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이냐니까? 곧 날이 질 텐데, 왜 빨리 처리하지 않고 소란인가?”

 

“여기 두 남매가 호패도 보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방문 목적을 묻던 참이었습니다.”

 

종리 대주라는 여인이 이무환을 쏘아보았다.

 

그러다 무엇 때문인지 홱 고개를 돌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냥 내보내!”

 

이무환이 이마를 찌푸리며 턱을 쳐들었다.

 

“이봐, 여자! 내가 왜 나가야 하지?”

 

종리 대주, 종리난경이 눈을 치켜떴다.

 

“뭐? 여자?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내가 말해줄까? 보아하니 동생 같은데, 저 큰 보따리를 자그마한 여동생한테 맡기는 놈은 구룡성에 들어올 자격이 없어! 그래서 내보내는 거야! 알겠나!”

 

“모르겠다!”

 

대뜸 튀어나온 이무환의 말에 종리난경이 멀뚱히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남자 새끼가 창피하지도 않아?”

 

“내가 왜 창피한 건데? 이 보따리는 나도 못 들어. 알아? 내 동생이 죽어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는단 말이다.”

 

“뭐야?”

 

“생각해 봐. 여자, 너라면 네 속옷을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남자에게 들게 하겠어?”

 

“그…….”

 

“얼굴은 그럭저럭 받쳐 주는데, 머릿속이 영…….”

 

종리난경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칠면조처럼 변했다.

 

남궁산산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 말했다.

 

“정말이에요. 이 보따리는 집을 나와서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았어요. 오빠도 예외는 아니에요.”

 

“정말이냐?”

 

“예, 물론이죠. 조금 전에 오빠 말대로 맡길 수 없는 사연이 있거든요.”

 

“그, 그래?”

 

종리난경은 겨우 표정을 가다듬고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뭐가 어째? 내 이 자식을!’

 

“그래도 당신은 안 돼! 호패도 보이지 않고, 방문 목적도 말하지 않았다면서?”

 

“아, 젠장. 그건 저자가…….”

 

이무환의 눈이 경비무사를 향했다.

 

엽상이 더 늦기 전에 나섰다. 더 놔두면 정말로 성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쫓겨날지 몰랐다.

 

“오랜만이군, 종리 대주!”

 

종리난경이 홱 고개를 돌려 엽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휘둥그레진 눈이 잘게 떨리더니, 순식간에 평정을 찾았다.

 

“이게 누구셔? 엽 대주 아냐?”

 

엽상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저 사람부터 들여보내 줬으면 싶은데.”

 

엽상에게 다가가던 종리난경이 손을 들고는 엄지손가락을 어깨너머로 넘기며 뒤를 가리켰다.

 

“저 사람? 저 어벙한 놈?”

 

‘크억!’

 

속으로 신음을 토한 엽상이 벌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일행이거든.”

 

“그래? 아니, 어쩌다 천하의 엽 대주께서 저런 어벙하고 못생긴 놈을 수하로 두셨수?”

 

엽상이 힐끔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뛰쳐나가려는 것을 남궁산산이 가까스로 붙잡고 있었다.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 일단 보내주지 그러나.”

 

“킁! 뭐, 엽 대주께서 정 그렇게 사정하신다면야……. 대신 술 한잔 사야 돼?”

 

“그래, 걱정 마라.”

 

만족한 듯 종리난경이 뒤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 이봐! 그 덜 떨어진 놈, 들여보내!”

 

그제야 이무환이 남궁산산과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렇게 대여섯 걸음, 종리난경의 곁을 스쳐 가던 이무환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쁜이, 나중에 보자고.”

 

 

 

3

 

 

 

감찰부인 수룡단(守龍團)은 구룡성 내성 중앙의 천룡부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여섯 개의 건물에 들어선 수룡단의 총인원은 모두 이백서른한 명. 때론 그보다 조금 많고, 때로는 그보다 조금씩 적기도 했는데, 다른 곳과 달리 수룡단은 열 명씩 이십 대로 이루어져 철저히 대 단위로 움직였다.

 

엽상은 그중 수룡구대의 대주였다.

 

 

 

일행은 엽상을 따라 수룡구대의 숙소인 네 번째 건물로 갔다.

 

수룡단의 사람들은 일이 년씩 외부에서 지낼 때가 허다했다. 하기에 몇 년이 지나도 방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지 않고 비워놓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엽상이 구룡성을 떠난 것은 일 년 삼 개월 전. 방은 그가 떠날 때 그대로였다.

 

“대주라며? 수하들은 없나?”

 

“제가 맡은 수룡구대의 대원은 본래 열 명이 정상인데, 지금은 일곱 명만 있습니다. 현재는 모두 외지 근무를 하고 있지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들어와서 한 달이나 보름 정도 있다 다시 근무를 나가는 게 일상적인 생활입니다. 하지만 안경에서 연락을 취했으니 며칠 사이에 모두 들어올 겁니다.”

 

“이건 분명히 알아둬, 눈발. 나는 내가 믿는 사람만 믿어. 그들이라 해도 완전히 믿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허락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 나에 대해서 깊숙이 말하지 마.”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천룡 쪽의 사람들이 나를 알면 그걸로 끝장이란 것만 알아둬.”

 

엽상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역시……?”

 

이무환이 검지를 들어 엽상의 코를 가리켰다.

 

“미리 넘겨짚지 마라니까?”

 

“예, 대주.”

 

일단은 비어 있는 방을 사용하기로 했다.

 

방 하나에 두 사람씩, 그리고 이무환과 남궁산산만 따로 방을 내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무환은 엽상과 함께 수룡단의 현 단주인 추풍만리검(追風萬里劍) 호연청을 만났다.

 

 

 

호연청은 단유창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단유창이 뭘 염려하고 있었는지, 뭘 하려고 했는지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엽상에게 시키기 힘든 일은 호연청에게 맡길 정도였다.

 

하기에 단유창은 죽기 전 마지막 유언으로 호연청에게 수룡단을 부탁했고, 천룡은 힘이 남아 있을 때 그의 뜻을 들어주었다.

 

사룡의 반대가 거셌지만, 다른 것은 빼앗겨도 수룡단만큼은 지키고자 한 단유창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렇게 수룡단주가 된 호연청은 나이 쉰여섯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게 보였다.

 

호연청은 엽상과 들어선 이무환을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엽상이 보낸 전서를 통해 이무환에 대한 단편적인 말을 들은 터였다.

 

조금은 건방지고, 제법 강하고, 아주 제멋대로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보였다.

 

‘흠, 저 애송이가 구룡성에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다만 그가 모르는 사항이 몇 가지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엽상이 그에게 전서를 보낸 건 장강의 안경에서였으니까.

 

“오느라 수고했네.”

 

“단주를 뵙습니다!”

 

“그래, 저 젊은이가 이무환이라는 친군가?”

 

“예, 단주.”

 

그때까지도 이무환은 고개를 뻣뻣이 든 것으로도 모자라 뒷짐까지 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엽상의 서신에 적힌 것보다 더 건방져 보였다.

 

“자네가 이무환인가?”

 

“단주님은 두 번씩 묻는 취미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이무환의 엉뚱한 대답에 엽상이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각오했던 터였다.

 

‘이제 나도 몰라. 대주 맘대로 하쇼!’

 

다행히 호연청이 그냥 넘어갔다.

 

“그래, 듣자 하니 본 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하던데, 어떤 관계인지 알면 안 되겠나?”

 

“지금은 안 되겠는데요.”

 

호연청의 이마에 주름이 하나 그어졌다.

 

“호오, 지금은 안 된다? 그럼 언제 말해줄 수 있겠나?”

 

“그야, 제가 단주님을 믿을 수 있을 때지요.”

 

대답은 잘도 한다. 약간 삐딱해서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호연청은 노기를 느낄 틈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자네가 나를 믿을 수 있겠나?”

 

이무환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제 가슴을 뜨겁게 달궈보시죠. 그럼 저절로 가슴이 열릴 테니까요.”

 

호연청이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엽상도 고개를 들고 이무환을 슬쩍 쳐다보았다.

 

저게 내가 아는 악귀대주 맞아? 악귀가 어떻게 저런 멋진 말을! 그런 눈빛으로.

 

이무환은 남이야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눈을 빛내며 호연청을 직시했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잔잔히 가라앉은 눈은 거산이 담길 만큼 커 보였다.

 

그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제법 괜찮게 보이는 자’ 정도.

 

그래선지 말투도 조금 전보다는 부드러워졌다. 

 

“그때가 되면, 전부 다! 말씀드리죠. 그때까지는 좀 참으셔야겠습니다.”

 

호연청은 불길이 이는 눈으로 이무환을 마주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호연청이 손으로 팔걸이를 내려쳤다.

 

“좋아, 아주 좋아! 그렇게 하지! 내 그때가 되기를 기다리겠네!”

 

그제야 이무환이 천천히 포권을 취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게 있고 절도 있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주.”

 

“하하하, 오늘 오랜만에 기분이 좋구먼. 진짜 멋진 젊은이를 만났어!”

 

호연청이 호탕하게 웃었다.

 

반면에 엽상은 소름이 돋았다.

 

‘정말… 무서운 대주다. 어쩌면 저렇게…….’

 

그때 호연청이 엽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왜 저런 젊은이를 그렇게 말했나?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군. 자네 보고만 듣고 정말 성질이 좀 그렇고 그런 젊은이인 줄로 알았잖아?”

 

엽상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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