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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4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45화

 

45화

 

 

 

 

 

 

 

 

손톱으로 새긴 나뭇조각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가운데 있는 자를 조심해. 눈발보다 강한 자니까.>

 

엽상의 눈이 커졌다. 이무환이 가끔 엉뚱한 말을 하긴 해도 헛소리는 하지 않는다.

 

은근히 오기가 솟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엽상은 세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뉘신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가운데 있던 갈의인이 냉랭히 대꾸했다.

 

“굳이 알 필요 있겠나? 그냥 쉬었다 떠나면 그만인데.”

 

“요즘 이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서 말이지요.”

 

엽상은 혹시 당신들이 그 범인 아냐? 그런 눈빛으로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갈의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지금 시비 걸자는 건가?”

 

“그럴 리가요. 그냥 어느 동네에서 노는 분들인지 궁금해서 그런 것뿐입니다.”

 

그 말에 갈의인의 동공이 작아지고 은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엽상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말투가 이무환의 말투와 비슷하다는 걸. 상대를 슬슬 긁는 표정까지.

 

“비슷한데?”

 

“그러게. 대주에게 물들었군. 표정 봐, 똑같잖아.”

 

영호승과 단우경의 중얼거림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깨닫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이런! 내가 어쩌다……!’

 

엽상이 자괴감을 느낄 때다. 이무환은 나뭇조각을 남궁산산에게 넘기고 조용히 웃었다.

 

미약하지만 갈의인에게서 흘러나온 기운을 느꼈다. 바람의 기운, 이미 한 번 느껴본 기운이었다.

 

적혈삼마가 사라졌으니 조사차 누군가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쳐 갈 확률은 열 중 아홉.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눈이 저들도, 자신들도 제당으로 몰아넣었다.

 

‘여기에서 만나다니. 운이 좋군. 눈 덕분인가?’

 

어쨌든 만나지 않은 것보다는 만난 것이 나았다. 놈들을 또 한 번 흔들 기회가 될 테니까.

 

“눈발, 혹시 빨간 옷을 입은 세 놈에 대해 아냐고 물어봐.”

 

굳이 엽상이 물을 것도 없었다. 이무환의 말이 떨어진 순간, 갈의인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혹시 그런 사람을 봤나?”

 

엽상은 슬며시 손을 쥐고 그 말에 대답했다.

 

“어젯밤에 보긴 했는데, 귀하가 아는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소.”

 

“하나는 키가 작고, 하나는 빼빼 마르고, 다른 하나는 조금 키가 크지.”

 

“달밤에 설치다가 팔목이 부러지고, 가슴과 등가죽이 달라붙어 죽은 자가 하나 있는데, 그의 키가 조금 작습디다. 혹시 아는 사람이오?”

 

역시나 이무환과 비슷한 말투다.

 

은근히 신경을 긁는 말투에 갈의인의 눈빛이 새파랗게 빛났다.

 

“그의 이름이 혹시 서웅기라 하지 않던가?”

 

“내가 그딴 놈 이름을 어떻게 알겠소?”

 

그때였다. 이무환이 또 끼어들었다.

 

“구중산에 대해선 내가 아는데.”

 

갈의인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몸에서 바람이 이는 듯했다.

 

“네가 구중산에 대해 안다고?”

 

이무환도 씨익, 웃으며 일어섰다.

 

“하도 대답을 잘해줘서 내가 좋은 곳에 묻어줬거든.”

 

그사이 엽상은 두어 걸음 물러서고, 영호승 등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남궁산산을 둘러쌌다.

 

갈의인이 밖에서 부는 바람보다 더 차갑게 콧바람을 날렸다.

 

“흥! 그럼 죽어도 할 말이 없겠군. 아니지, 죽기 전에 나에게 많은 말을 해줬으면 좋겠어.”

 

이무환의 웃음이 짙어졌다.

 

“말은 아마 당신이 해야 할 거야. 아직 알고 싶은 게 많거든.”

 

찰나였다. 갈의인의 몸이 죽 늘어나는 듯 보이더니 그대로 엽상을 덮쳤다.

 

동시에 엽상의 손이 설홍을 잡아갔다.

 

쾅!

 

일초 격돌. 세 걸음씩 물러선 두 사람은 서로를 쏘아보았다.

 

“제법이구나!”

 

“당신 역시!”

 

“어디 이것도 받아보아라!”

 

순간이었다. 갈의인의 신형이 좌우로 흔들리는가 싶더니, 서너 개의 그림자가 동시에 엽상을 공격했다.

 

“하앗!”

 

반사적으로 엽상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왔다.

 

설홍이 좌우로 흔들리고, 십여 개의 검화가 그림자들을 꿰뚫었다.

 

어떠한 검식도 아니었다. 초연십이식에 따른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쩌저정!

 

서너 번의 격돌이 찰나간에 이루어졌다.

 

뒤로 물러선 갈의인의 눈에 경악이 떠올랐다.

 

“네놈은… 혹시 설비검 엽상?”

 

반면에 엽상은 이를 악물고 갈의인을 노려보았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대체 뭐였지?’

 

초연십이식의 육감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어디 한군데는 부러졌을지 몰랐다. 그 정도로 작심하고 펼친 갈의인의 공격은 무서웠다.

 

“물러서, 눈발. 그자에게 물어볼 게 있으니까.”

 

이무환의 말이 들리고 나서야 엽상은 숨을 들이켜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때까지도 갈의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엽상을 떠나 이무환을 향하고 있었다.

 

이무환은 터벅터벅 걸어서 엽상을 지나쳤다.

 

“누군가가 그들을 조사하러 나올 거라 생각은 했지.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군.”

 

갈의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네놈은 누구냐?”

 

“이무환.”

 

처음 듣는 이름에 갈의인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이무환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냐?”

 

이무환의 말투에 말려든 갈의인이 엉겁결에 물었다.

 

“이름이 뭐지?”

 

듣자 하니 계속 반말이다. 갈의인은 눈초리를 치켜올리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건방진 놈. 죽어 저승에 가거든 알아봐라.”

 

“그것도 좋겠지. 뭐, 저승에 가는 건 당신이 될 테지만.”

 

담담히 말하던 이무환이 쓰윽, 왼손을 들어 올렸다.

 

움찔한 갈의인도 쌍장을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그의 쌍장에서 하얀 기운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순간 이무환의 왼손 검지 끝에 작은 방울이 맺혔다. 홍옥처럼 맑은 방울이었다.

 

“잘 봐. 이게 바로 고금제일 홍옥지라는 것이니까.”

 

찰나였다. 검지 끝에 매달려 있던 붉은 방울이 똑 떨어져 날아갔다.

 

갈의인은 갑자기 눈앞에 사발만 한 붉은 구슬이 보이자 대경하며 몸을 날리고는 황급히 백색 쌍장을 휘둘렀다.

 

팅!

 

순간 붉은 구슬이 옆으로 튕겨지더니, 잔뜩 긴장해 있던 청의인의 이마를 꿰뚫었다.

 

“컥!”

 

“이놈!”

 

어린놈에게 희롱당했다 생각했는지, 갈의인은 노성을 내지르며 이무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쌍장에서 백색 기운이 폭풍처럼 일어나며 이무환을 덮쳤다.

 

그와 동시, 이무환이 백색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백색 폭풍 속에서 시퍼런 벼락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쾅! 콰광! 콰르릉!

 

남궁산산과 함께 제당 끝까지 물러선 광룡대원들은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금방이라도 제당이 무너질 것 같았다. 기둥과 벽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부서진 조각들이 쏟아져 내렸다.

 

한편, 이무환은 백색 폭풍 속으로 뛰어들자마자 반천무영장을 펼쳐 극한의 빠름을 자랑하는 상대의 쌍수를 일일이 후려쳤다.

 

그로 인해 내부의 기운이 엉망으로 뒤엉킬 때까지, 갈의인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할 때까지. 찰나간에 십여 번을!

 

상대는 바람의 무공을 보다 더 확실하게 익힌 자다.

 

여유를 주면 도망칠지 몰랐다. 적혈삼마의 경우와는 또 다른 상황. 시작하면 끝장을 봐서 무너뜨려야 했다.

 

“이, 이런 개, 개 같은…….”

 

결국 갈의인이 질린 표정으로 물러서려 한다.

 

이무환은 그의 가슴으로 뛰어들며 양손을 쫙 펼쳤다.

 

일시지간, 시퍼런 구름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갈의인의 가슴을 부수며 함몰시켰다.

 

단 세 번의 손짓!

 

퍼버벅!

 

“커어억!”

 

갈의인이 전신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튕겨졌다.

 

쾅!

 

그의 몸이 기둥에 부딪치자 제당 전체가 흔들렸다.

 

“오빠, 조심해!”

 

그때 남궁산산의 목소리가 제당을 울렸다.

 

이무환은 좌수를 뻗어 쓰러지려는 갈의인의 견정혈을 향해 일장을 날리고, 우수는 옆을 향해 홱 내쳤다.

 

퍽!

 

“크억!”

 

이무환을 향해 달려들던 청의인이 훌훌 날아갔다.

 

“쯔쯔쯔, 뭐 하는 거야, 눈발? 그동안 저놈을 처리했어야지!”

 

이무환이 혀를 차며 바라보자 엽상은 벌게진 얼굴을 슬그머니 돌렸다.

 

갈의인은 자신보다 한 수 강한 자였다. 그런 자가 형편없이 밀리고 결국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무너졌다.

 

마치 자신이 그렇게 당하는 것만 같아 온몸이 저렸다. 청의인의 움직임을 놓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엽상은 일어나려는 청의인의 뒷목을 검집째 후려쳤다. 목이 부러질 정도로 세게.

 

빡!

 

그사이 이무환은 내력을 가라앉히고, 갈의인의 입을 벌려 이를 살펴보았다.

 

갈의인의 입에서는 독약이 든 이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고약한 냄새가 났다.

 

마치 약초가 썩어가는 것 같은 냄새. 썩은 고등어보다 더 지독한 냄새.

 

“크으, 대체 뭘 먹어서 이렇게 냄새가 지독한 거지?”

 

어쨌든 독약이 없는 게 확인되자 이무환은 갈의인 옆구리를 걷어차 정신을 들게 했다.

 

시간이 없었다. 손을 심하게 써서 언제 죽을지 몰랐다. 그전에 몇 마디라도 들어야 했다.

 

서너 번 옆구리를 걷어찬 순간.

 

“끄윽!”

 

갈의인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순식간에 툭툭 붉어진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고, 몸 한쪽이 뒤틀렸다. 그러더니 곧이어 두두둑! 뼈마저 어긋나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제당을 울렸다.

 

“끄어어어!”

 

그런 갈의인의 함몰된 가슴을 살펴본 이무환이 씩 웃었다.

 

‘흠, 이 정도면 그자가 펼친 묵령운과 비슷해 보일 것도 같은데.’

 

그러더니 갈의인을 향해서 친한 친구에게 말하듯 부드럽게 속삭였다.

 

“이봐, 말할 생각이 있으면 고개를 끄덕여.”

 

그 목소리에 엽상과 영호승 등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역시 악귀다!’

 

그러나 남궁산산만은 묘한 눈빛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는 갈의인을 바라보았다.

 

갈의인이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때였다.

 

이무환은 수혼각참의 수법을 해제시키고 갈의인에게 물었다.

 

“이름은?”

 

“유… 흔.”

 

“마룡부의 사람인가?”

 

“아니…….”

 

“누가 명령을 내렸지?”

 

“내… 주인……. 흐으읍.”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갈의인이다. 이무환이 급히 물었다.

 

“누가 그대의 주인이지?”

 

갈의인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니… 애비… 다.”

 

그걸로 끝이었다.

 

마지막만큼은 이겼다는 듯, 희미한 웃음마저 지은 채 고개를 툭 떨군 갈의인은 두 번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이무환이 풀썩 웃었다.

 

“큭. 썩을, 꼴에 자존심은 있다, 이 말이지? 좋아, 인정해 주지.”

 

그러고는 말과 달리 갈의인을 뻥 차서 벽에 처박았다.

 

“그런데 왜 재수없이 아버지를 들먹여? 이 썩은 고등어 같은 자식아!”

 

 

 

제8장. 구룡성(九龍城)에 들어가다

 

 

 

 

 

 

 

1

 

 

 

구룡성(九龍城).

 

정천무림맹, 천마교와 함께 천하에서 가장 강한 삼대세력 중 하나.

 

백삼십 년 전, 천하제일을 다투던 아홉 명이 의형제를 맺고 무창성 이십 리 동쪽에 둥지를 트니 그것이 구룡성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천마교의 공격에도, 정천무림맹의 견제에도 꿋꿋이 힘을 키워 삼십 년 만에 호북 중남부와 호남 중북부의 강호 세력을 완전히 누르고 그 이름을 천하에 알렸다.

 

실질적으로 호광 땅이 모두 그들의 세력권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부터는 누구도 구룡성을 넘보지 못했다.

 

대륙의 주인인 천자조차 그들을 인정해서 ‘구룡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정도였다.

 

결국 천마교도, 정천무림맹도 구룡성을 인정하고 먼저 불가침조약을 제안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타 문파는 감히 구룡성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백 년. 구룡성은 천하를 웅패했다.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천 년이 지나도 절대 변함이 없을 것처럼!

 

“그런데 지금은 곪을 대로 곪아서 칼만 대면 톡 터지기 직전이란 말이지?”

 

앞을 노려보며 이무환이 짜증나는 말투를 내뱉었다.

 

구룡성의 현판이 저만치 보였다.

 

거대한 성문에, 역시 거대한 크기의 현판이 높다란 곳에 달려 있었다.

 

게다가 높은 담은 어찌나 긴지 끝도 보이지 않았다. 백만 평이 넘는다더니 절대로 과장이 아닌 듯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엽상이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하지만 이무환의 짜증난 표정을 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더 골치 아프다니까. 차라리 터져 버렸으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

 

그건 그랬다. 물론 그만큼 피가 더 흐를 테지만.

 

“오빠, 구룡성에 들어가면 뭐부터 할 거야?”

 

그나마 남궁산산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리자 이무환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글쎄, 일단 맛있는 거부터 먹고 생각해 보자.”

 

구룡성을 앞에 두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맛있는 거 먹잔다.

 

광룡대원들은 앞날이 걱정되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껏 들떴던 마음도 늪 속으로 가라앉아서 구룡성을 향한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대체 왜 우리가 구룡성에 가는 걸까? 회한이 들 지경.

 

그들의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이무환이 갑자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소리쳤다.

 

“우와! 저 여자, 진짜 예쁘다!”

 

짜증은 구만 리 밖으로 날아간 상태. 이무환의 먹구름 가득하던 얼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게 펴졌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합창처럼 흘러나왔다.

 

그런데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엽상은 한숨 대신 굳은 표정을 짓고는, 호위무사에 둘러싸인 채 성문으로 다가가는 여인을 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인이 바로 신룡부주 주백천의 딸인 백화용녀(白花龍女) 주화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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