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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4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2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44화

 

44화

 

 

 

 

 

 

 

 

“이 소나무… 구유마도(九幽魔刀) 석치상. 그자의 구유잔백도(九幽殘魄刀)에 당한 것 같아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오직 이무환만이 소나무를 쓸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침을 튀기며 말한 몇 안 되는 이름 중 하나였으니까.

 

구유마도 석치상.

 

천중십마(天中十魔) 중 한 사람. 우내십존(宇內十尊)과 함께 천하제일을 다투는 이십 인 중에 한 사람. 단신으로 대문파의 존망을 위협할 수 있는 절대자들 중 한 사람.

 

그의 이름은 공포였다.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전상휘는 생각을 달리해야 할 정도였다.

 

그가 정말로 이 일에 연루되었고 그와 싸워야 한다면, 황산검문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근데 조금 이상하군.”

 

그때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무환이 침묵을 깼다.

 

“뭐가요, 오빠?”

 

“그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들었거든? 근데 이건 아니야. 이 정도는 나철위나 네 아버지도 충분히 할 수 있거든.”

 

사람들의 얼굴에 약간의 희망이 떠올랐다. 이무환은 그 능력을 종잡을 수 없는 인물. 그가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피이, 오빠도. 누가 석치상이 직접 손을 썼다고 했어요?”

 

“그렇… 지?”

 

“아마 석치상의 제자나 그의 무공을 배운 다른 사람이 손을 썼을 거예요.”

 

“하긴, 나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이 손을 썼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지.”

 

“물론이죠.”

 

모두가 이무환과 남궁산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경악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무환이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감히 천중십마를 자신과 동격에 올려놓다니! 그걸 당연히 여기다니!

 

하지만 이어진 남궁산산의 말에 다시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구유마도 석치상이 관련되어 있다는 거예요.”

 

“후우…….”

 

전상휘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구유마도가 관여되었다니. 그거야말로 진짜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리고 뒤이은 이무환의 말이 그의 아픈 머리를 쪼개지게 만들었다.

 

“내가 직접 만나서 따져 볼까? 그 양반, 어디 살지?”

 

 

 

황사객잔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침중한 표정으로 엽차를 들이켰다.

 

석치상의 이름이 나온 이상, 이번 사건의 범인과 구룡성과의 관계를 밝히는 일만으로 끝날 수가 없게 되었다.

 

전상휘는 술이라도 진탕 퍼마시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사형, 문주님께 일단 알려야 하지 않겠어요?”

 

유소경이 옆에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전상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일단 공 사형이 일어나면 상의해 보자. 의원이 보고 갔으니 곧 일어나겠지.”

 

마침 뒤채에서 언문승이 뛰듯이 달려나왔다.

 

“전 사형, 공 사형이 깨어나셨습니다!”

 

그 말에 유소경이 먼저 벌떡 일어섰다. 전상휘도 이를 지그시 깨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

 

이무환은 공은효가 깨어났다는 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안 가볼 거예요?”

 

“보나마나 또 미친놈이라고 할 텐데, 내가 왜 가?”

 

그때의 상황을 지켜본 광룡대원들이 웃음을 참았다.

 

“설마요. 그때야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랬겠죠.”

 

“쌍칼, 그럼 너나 가.”

 

“에이, 대주님도. 그래도 가봐야죠. 오해도 풀 겸.”

 

“나는 싫다니까? 그렇게 보고 싶으면 멋쟁이나 가봐.”

 

“남자가 쪼잔하게…….”

 

“뭐? 도끼! 너, 지금 나한테 그랬지?”

 

“예? 제가 뭘요? 저는 꼬챙이가 젓가락질을 하도 한심하게 해서…….”

 

“막 형님은 왜 또 저를 걸고 넘어져요?”

 

그때였다. 엽상이 슬그머니 그들의 말도 안 되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대주. 저는 뭐라고 부르실 겁니까?”

 

남궁산산과 광룡대원들이 일제히 엽상을 바라보았다.

 

미쳤나? 부러워할 걸 부러워해야지, 하는 눈빛이었다.

 

“엽 형도 별호로 불리고 싶어?”

 

영호승 등은 입을 반쯤 벌리고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그게 건달들 별명이지, 어디 무사들의 별호요?’

 

엽상은 괜히 말한 것 같아서 후회되었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이 먼저 꺼낸 말인 만큼 꾹 참고 말했다.

 

“뭐, 꼭 그렇다기보다…….”

 

그때 황산검문의 제자 중 제일 나이가 어린 관송일이 뒤채에서 나왔다.

 

“저, 이 대주님, 전 사숙께서 부르십니다. 공 사숙께서 찾으신답니다.”

 

“나를?”

 

“예, 은인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은인.

 

그 말 한마디에 이무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킁! 진작 그랬으면 그 고생도 안 했지.”

 

그러고는 엽상을 바라보더니, 결정했다는 듯 짧게 말했다.

 

“눈발, 같이 가자고.”

 

엽상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제길. 설화란 말도 있고 백설이란 말도 있는데, 좋은 말 다 놔두고 하필 눈발이 뭐야?’

 

괜히 말해서…….

 

 

 

공은효가 고개를 돌리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이무환이 그를 향해 퉁퉁거리며 말했다.

 

“괜찮수?”

 

“구해줘서… 고맙소.”

 

속삭이듯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듣는 데 그리 어려움은 없었다. 이무환은 전신을 묶은 게 조금 미안했는지 고개를 살짝 틀고 툭 쏘아붙였다.

 

“왜 또 미친놈이라고 하지 그러슈?”

 

“그럼, 갑자기 허공에 둥둥 떠서 나타나더니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에게 뭐라 하겠소?”

 

“그거야, 다친 사람 긴장을 풀어주려고 그랬지 뭐.”

 

그도 그렇다. 들어보니 상대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미친놈 운운한 자신이 우스울 뿐이다.

 

“그 점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오. 쿨룩!”

 

공은효가 갑자기 기침을 하자 입가로 피가 흘렀다.

 

유소경이 깜짝 놀라 급히 다가가더니 재빨리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공 사형,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마세요. 아직은 심력을 많이 쓰면 안 된단 말이에요.”

 

“으음……. 알았다. 그럼 몇 마디만 더 하고 그만두겠다. 너희들도 잘 들어라.”

 

공은효는 몇 번 숨을 몰아쉬더니,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단 황산으로 돌아간다. 그때만 해도 몰랐는데, 너희들 말을 들으니 그의 도법이 확연히 떠올랐다. 비록 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구유잔백도가 분명해. 지금 상황에서 그들과 싸우는 것은 기름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꼴이야.”

 

사실이 그랬다. 그 말에는 누구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다만 사형제들의 원수를 놔두고 그냥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 분통할 뿐이었다.

 

“원한을 갚는 것은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아. 돌아가서 어른들과 상의하고, 제대로 된 힘으로 복수를 하자는 거다. 몇 년이 걸려도 말이야.”

 

전상휘가 턱이 부서지도록 이를 악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구룡성과 구유마도가 적이다.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이란격석(以卵擊石). 그것이 현실이었다.

 

“알겠습니다, 사형.”

 

공은효가 어찌 전상휘의 마음을, 사제, 사매, 사질들의 마음을 모를까.

 

그는 떨리는 눈으로 전상휘를 바라보고는 이무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 들었소. 내 일이 아니라도 황산의 은인이라는 걸. 비록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당장 대가를 드릴 수는 없소만, 내 이름을 걸고, 황산의 이름을 걸고 언제든 충분한 대가를 드리겠소.”

 

이무환은 숨이 거칠어진 공은효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불쑥 입을 열었다.

 

“그게 말입니다. 내 성격이 조금 지랄 맞아서 말이죠.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지 않거든요? 오죽하면 사람들이 나를 악귀라고 부르겠습니까?”

 

악귀? 그래서?

 

공은효와 전상휘와 유소경과 언문승이 의아한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해 불가, 판단 불가의 이 청년이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하는 눈빛으로.

 

오직 엽상만이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무환이 본론을 꺼냈다.

 

“미처 틈이 안 나서 말을 못했는데, 나는 이 길로 구룡성에 들어갈 겁니다.”

 

“구룡성에?”

 

전상휘가 놀란 눈으로 이무환을 직시했다.

 

“가서 개인적으로 처리할 일이 있거든요. 해서 가는 길에 이번 일도 함께 조사해 볼 생각이랍니다. 좀 더 깊이 있게.”

 

“그게… 정말이오?”

 

이무환이 씨익,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이 일에 달려든 것이 아닌가?

 

생색도 내고, 정보도 얻고, 대가도 받고, 황산검문이라는 대문파와 친구도 되고. 일석사조를 노리고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가슴에 눌러놓고 듣기 좋은 말만 했다.

 

“뭐든지 남의 손에 있을 때는 절대 내 것이 아니고, 내 손에 쥐어졌을 때 내 것이라는 것이 내 신조고, 고집쟁이 아버지의 신조지요.”

 

황산검문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이무환의 눈이 암흑처럼 깊어졌다.

 

“최대한 이번 일을 빨리 처리할 겁니다. 그리고 대가를 받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항상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어라, 이 말입니다.”

 

굳어 있던 전상휘의 얼굴이 붉어졌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야…….”

 

곧 죽어갈 것 같던 공은효의 뺨에도 화색이 돌았다.

 

“연락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겠소.”

 

그들을 향해 이무환이 말했다.

 

“돌아갈 때는 다른 길을 이용하쇼. 그들이 용항의 일을 알았다면 쫓아올지 모르니까.”

 

그렇게 말을 끝맺고 돌아서던 이무환은 유소경이 보이자 빙긋 웃었다.

 

“유 낭자, 에……. 혹시 말이오…….”

 

 

 

방을 나서는 이무환에게 엽상이 투덜거렸다.

 

“그 말을 꼭 그 자리에서 해야 했습니까?”

 

“그럼? 이제 헤어질 텐데, 지금 해야지 언제 해? 그러다 유소경이 시집이라도 가면, 눈발이 도끼 책임질 거야?”

 

“그건 아니지만…….”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대가 운운하더니, 나올 때 유소경에게 느닷없이 물었다.

 

 

 

“우리 도끼. 아니, 막위 대원 어때요? 성실하고, 유 낭자 엄청 좋아하는데. 사귀어볼 생각 없어요? 조금 있으면 굉장한 고수가 되어 유 낭자를 지켜줄 수 있을 텐데. 다음에 만날 때까지 잘 생각해 봐요.”

 

 

 

그 말에 얼굴이 벌게진 유소경은 입도 벙긋 못했다. 황산검문 사람들은 황당했는지 멍하니 이무환만 바라보았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낯도 두껍게 손까지 흔들고 방을 나왔다.

 

지금쯤 무슨 말이 오가고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귀가 다 아팠다.

 

엽상은 한숨을 푹 쉬고 이무환에게 사정했다.

 

“후우우. 제발! 구룡성에 들어가서는 말 좀 조심해 주십시오, 대.주!”

 

그 말에 이무환이 입술을 씰룩였다.

 

“입이 뭐 밥만 먹으라고 있는 줄 알아?”

 

물론… 옥이 입술 닦을 때도 필요했다.

 

문득 떠오른 옥이 생각에 이무환의 눈이 가늘어지고, 미소가 귀까지 기다랗게 그려졌다.

 

‘다음에는 이도 닦아줘야지.’

 

 

 

4

 

 

 

황산검문의 사람들과 헤어진 지 하루.

 

무창으로 가는데 하늘에서 하얀 솜 같은 눈이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일 년에 한번 내릴까말까 한 눈은 순식간에 대지를 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꼬맹아, 원단이 얼마나 남았지?”

 

“닷새요.”

 

남궁산산의 대답에 이무환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비룡도에도 눈이 올까?’

 

십칠 년간 눈을 본 날은 십여 번에 불과했다.

 

어쩌면 올해도 오지 않을지 몰랐다.

 

“대주, 저기에 제당이 있는데, 쉬었다 가시겠습니까?”

 

이무환은 엽상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제법 우거진 송림 입구에 허름한 제당이 보였다. 둘러싼 담장은 반쯤 무너져 있었지만, 건물은 말짱해서 잠깐 쉬어 가기는 괜찮을 듯했다.

 

“그럴까? 우리 꼬맹이도 힘들어하는데.”

 

남궁산산이 고개를 살짝 들고 배시시 웃었다. 이무환의 말 한마디에 추위가 다 달아난 표정이었다.

 

 

 

제당은 겉보기보다 깨끗했다.

 

엽상이 반쯤 무너진 담장을 넘어가려 하자, 이무환이 한마디 툭 쏘아주고 발길을 돌려서 문 쪽으로 빙 돌아갔다.

 

“우리가 도둑이야? 담을 넘게.”

 

그렇게 들어간 제당 안에는 선객이 있었다. 모두 셋. 삼십대로 보이는 무사들이었다.

 

그중 옅은 갈색 옷을 입은 자가 수장인 듯 나머지 두 명의 청의무사가 그의 양옆에 앉아 은연중 호위하는 모습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세 사람의 눈이 일제히 이무환 일행을 향했다. 조금은 긴장한 눈빛이었다.

 

광룡대원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뜻밖의 고수임을 알아보고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이무환은 마치 자기 집에 들어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흠, 먼저 온 손님이 있었군. 우리는 저쪽에 앉지.”

 

그는 남궁산산을 끌고 작은 창문이 있는 곳에 앉았다.

 

들어오기 전부터 제당 안의 기척을 느꼈다. 제법 강한 기운. 그중 하나는 엽상이 본 실력을 모조리 드러내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고수였다.

 

의외라면 의외였다. 강호에 엽상 정도의 고수가 흔하다면 몰라도 결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꼬맹아, 추워? 불 피워줄까?”

 

남궁산산이 고개를 저었다.

 

“참을 만해요.”

 

이후로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이무환은 나뭇조각을 하나 주워 들더니 손톱으로 뭔가를 새기고, 남궁산산은 보따리를 끌어안은 채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밖에서 내리는 눈발은 점점 더 굵어졌다.

 

일각가량이 지나자 엽상이 전음을 보냈다.

 

<대주, 수상한 자들입니다. 복장이나 무기를 봐도 근처 문파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체를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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