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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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42화
42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수년 동안 추진해 온 일에 몇 번의 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토록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다.
희생자가 몇 명 있다는 것도 아니고, 전원 행방불명이라니.
이게 웬 귀신 호박씨 까먹다 재채기하는 소리란 말인가!
“유흔!”
그의 입에서 나직한 호통이 흘러나오자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섰다.
“부르셨습니까, 대령주!”
“이조가 실종되었다.”
“예?”
“전원이 행방불명되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에게 믿으라고 강요한다는 것도 우스웠다.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손의 주인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싸늘히 말했다.
“쌍귀에게서 전서가 왔다. 출발점에 돌아와야 할 이조가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군.”
“적에게 당했다는 말씀이신지?”
“적이라고 해봐야 황산십검 중 하나와 황산검문의 제자 십여 명을 비롯한 표사들이 전부다. 적혈삼마와 삼십 명의 암운대가 그들에게 당할 거라고 생각하나?”
어림도 없는 소리다. 게다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당한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앉아 태산이 평지가 되는 것만큼의 가능성도 없었다.
“네가 가봐라. 쌍귀가 알아보고는 있을 테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직접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알아봐.”
“예, 대령주!”
제7장. 입이란 밥만 먹으라고 있는 게 아니다
1
아침이 밝아오자 부상자는 되돌려 보내고 나머지만 부강(富江)을 건넜다.
전상휘와 유소경을 비롯한 황산검문의 제자가 일곱. 이무환과 남궁산산을 비롯한 광룡대가 일곱이었다.
그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황사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그렇게 성택을 지나고 한 시진, 황사를 이십여 리 남겨놓은 지점을 지나갈 때였다. 언뜻 우측 숲 상공에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가 날고 있는 게 보였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행은 짓누르는 불안감을 가슴에 안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잠시 후, 제법 넓은 공터에 도착한 사람들의 몸이 일제히 굳어졌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주검 위에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
까마귀들이 움켜쥐고 있는 주검은 그들이었다. 황산검문의 사형제들.
“강 사제!”
“구 사형!”
“오오오, 맙소사!”
사방이 시뻘건 피로 뒤덮여 있었다.
사지가 잘린 시신, 목이 반쯤 베어진 시신, 기어가다 검을 맞았는지 등과 땅이 동시에 쩍 갈라진 시신.
사형제들의 싸늘히 식은 시신은 이슬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까마귀들이 쪼아댄 곳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몸 여기저기에서 찢겨진 살점이 덜렁거렸다.
그들을 향해 달려가는 황산검문 제자들의 가슴에서 그동안 참았던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저리 가! 저리 안 가!”
“이런 까마귀 새끼들이!”
“찢어 죽일 놈들!”
“으아아아! 어떤 놈들이야! 누구든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전상휘는 사위를 둘러보며 피가 베이도록 입술을 깨물고, 유소경은 바락바락 소리치며 황산검문의 제자들을 다그쳤다.
“공 사형을 찾아봐! 어서!”
이무환은 일행들과 한쪽에 서서 그들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기 전에 당한 것 같아요.”
남궁산산이 작게 속삭였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밤이 되었다면 이렇게 한 곳에 뭉쳐서 당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둠을 이용해서 도망치려 했을 테니까요.”
자신들보다 먼저 공격을 받았다는 말.
‘작정하고 쳤단 말인데. 정말 평범한 약초 때문에 벌인 일일까?’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리가 없다.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말이다.
‘결국 잃어버린 약초가 뭔지 알아야 실마리가 풀릴 것 같아.’
한편, 전상휘는 분노를 억누른 채 사형제들의 시신을 정리했다.
그때 외곽을 조사하던 사제, 언문승이 달려왔다.
왠지 모르게 곤혹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또 뭐지?’
불안감이 먼저 가슴을 짓눌렀다.
“전 사형, 아무리 찾아도 공 사형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 안 보이는 사람이 있느냐?”
“여 사제하고 방 사형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비록 황산십검에 들지는 못했어도 여수정과 방연은 자신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공은효와 함께 사라졌다는 말에 전상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다.
“일단 사형제들의 시신을 모두 모아라. 까마귀밥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
“예, 사형!”
언문승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희망이 금 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각이 채 지나기도 전이었다. 언문승이 침중한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전 사형, 여 사제의 시신이 백 장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유소경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아요! 놈들을 쫓아요!”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전상휘도, 그 말을 한 유소경도 너무나 잘 알았다.
“일단 공 사형과 방 사제의 흔적부터 찾자.”
전상휘의 말에 유소경은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때 이무환이 나섰다.
“우리가 두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테니, 그대들은 그동안 이곳 정리를 마무리하는 게 어떻겠소?”
그 자신이 추적에 자신 있어서가 아니었다. 추적술에 자신 있다는 남궁산산의 말에 혹해서만도 아니었다.
시신을 붙들고 울어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만히 서 있기가 어정쩡했다.
전상휘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무환은 자신의 생각 밖에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들이 찾지 못하는 것을 이무환이라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해주시겠소?”
이무환은 즉시 남궁산산을 앞세웠다.
“가자.”
“예, 오빠. 일단 저쪽부터 살펴봐요.”
남궁산산은 이무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수정이 발견되었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흔적을 발견했다.
“봐요, 발자국 끝이 이쪽으로 끌린 데다 마른 풀이 이쪽으로 쓸리고, 이쪽으로 꺾어진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다른 것과 달리 저쪽으로 흘렀잖아요. 그것은 누군가가 저쪽으로 갔다는 말이에요.”
도대체가 이 여우 같은 꼬맹이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정말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맞다. 내 생각과 같구나. 가보자.”
이무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고는 남들이 흘겨보든 말든 즉시 남궁산산이 가리킨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광룡대원들은 그런 이무환이 남궁산산보다 더 대단해 보였다.
‘정말 낯도 두껍다.’
“뭐 해? 빨리 와! 우리 꼬맹이가 기다리잖아!”
“예! 대주!”
방연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칠십여 장가량 갔을 때였다.
그게 방연의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았다. 다만 주위에 황산검문의 검이 펼쳐진 흔적이 남아 있고, 반으로 부러진 검날이 나무에 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남궁산산은 자신있게 방연의 것이라 했다.
이무환도 그랬다.
다만 이번에는 그도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들었다.
“꼬맹이의 말대로 황산검문의 검흔이 분명한데, 검흔을 보니 아직 절정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검흔이다. 그렇다면 공은효가 아닌 방연의 것이라고 봐야겠지.”
“검이 부러진 걸 보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 같아요. 주위를 잘 살펴봐요.”
남궁산산이 이무환의 의견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무환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도망 왔다면 정신력이 남다르다는 말이다.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게 인간의 정신력이지. 봐, 우리 광룡대 대원들도 나에게 그렇게 맞고 아직 살아 있잖아?”
그게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말인가?
다섯 명의 광룡대원은 이무환을 흘겨보았다.
‘조금만 더 세게 맞으면 진짜 죽을 거요!’
하지만 이무환은 본 척도 않고 남궁산산을 재촉했다.
“그들이 어디로 갔다고 보느냐?”
“저쪽요.”
남궁산산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한쪽을 가리켰다.
이무환은 두말 않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이십여 장을 전진하며 근처를 뒤졌지만 방연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이무환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봐라. 인간의 정신력은 단순 계산으로 나오지 않는 거라니까?”
광룡대원들은 조금 더 주위를 찾아봤다. 어떻게든 이무환의 말을 뒤집어보려고.
그러나 제법 많이 쏟아진 핏자국만 있을 뿐, 손가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곳에서의 수색을 포기한 남궁산산이 광룡대원들을 재촉했다.
“앞쪽으로 조금 더 가봐요.”
삼십여 장을 더 가자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나왔다. 깊이가 오십 장은 되어 보이는 협곡이었다.
“여기서 떨어져 죽었을까?”
이무환이 그렇게 물을 만도 했다.
격렬한 싸움의 흔적이 있었다.
나무가 부러지고, 바위가 깎여나간 흔적이었다.
게다가 적지 않은 피가 바위에 흩뿌려진 채 검붉은 색으로 굳어 있었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어요. 동맥을 상했다는 말이죠. 바로 지혈하지 않았다면, 얼마 못 가 죽었을 거예요. 아니면 절벽에서 떨어졌든지.”
마지막 힘을 다해 적에게 대항한 듯했다.
동맥을 다쳤다 해도 지혈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여기 반쪽 남은 검이 있습니다, 대주.”
영호승이 바위 뒤에서 동강난 검을 하나 주워들었다. 방연의 검으로 보였다.
그가 검을 버렸다면 죽었다고 봐야 했다. 문제는 이곳에 시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무환은 낭떠러지 끝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조심해요, 오빠!”
남궁산산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걱정 마라. 다섯 살 때 뛰어놀던 곳보다 훨씬 안전한 곳이니까.”
직각을 이룬 오십 장 높이의 낭떠러지는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서 보는 것의 차이가 엄청났다.
발을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아 허리를 깊게 숙이고 내려다보니 섬뜩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무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위틈에 한쪽 발끝을 걸치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비룡도의 절벽은 이보다 더 높고, 바람은 훨씬 더 거셌다. 태풍이 불어올 때는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에 비하면 이곳은 발가락 하나만 바위틈에 걸고 거꾸로 매달려서 잠도 잘 수 있을 정도였다.
“응?”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던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저 아래, 까마득한 협곡 아래 시신이 보였다. 언뜻 보면 둘 같지만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보면 하나였다.
그러나 이무환이 눈을 반짝인 것은 그 시신 때문이 아니었다. 절벽 중간에서 힐끗 뭔가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보면 보이지 않았다. 이무환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반쯤 내밀었기에 보인 것이다.
바위틈에서 남삼 끝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며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거리는 이십여 장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이무환은 한마디만 남기고 훌쩍 몸을 날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사랑하던 여자에게 배신당해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낙심한 청년 같은 행동이었다.
“오빠!”
“대주, 미쳤수!”
“저 대책없는 양반이!”
남궁산산과 광룡대원들이 대경해 소리치며 낭떠러지 끝으로 달려왔다.
그때는 이미 이무환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절벽의 바위틈에 끼어 있던 공은효는 희미한 정신을 억지로 붙잡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어디선가 바람 소리에 섞여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미쳤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나마도 아득해지는 가운데 들은 거라 확실치도 않았다.
다행히 혀를 깨물어서인지 조금이나마 정신이 드는 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거기서 뭐 하쇼?”
갑자기 바로 앞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허공에서.
‘잘못 들었겠지.’
그냥 그렇게 생각한 그는 눈을 감은 채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을 붙잡는 일에만 주력했다.
“살았으면 눈 좀 떠보쇼.”
조금 전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공은효는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순간, 그의 마른 목이 갈라지며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헛!”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앞에 있었다. 허공에 둥둥 뜬 채.
“죽지는 않았군.”
그가 다시 말한다. 공은효도 억지로 입을 열었다.
“당신… 누구……?”
“나? 이무환이오. 사람들이 악귀라고 부르는데, 그건 나를 잘 몰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오. 우리 옥이만 해도 내가 얼마나 자상한 오빤지 잘 알고 있다오. 물론 우리 아버지야…….”
말이 길어진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공은효는 어이가 없었다. 머리가 더 멍해졌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가 꿈을 꾸는가 보구나. 차라리 방 사제나 보이지, 하필 미친놈이 보이다니.’
자신과 함께 떨어져 내리던 방연은 바위틈이 보이자 자신을 밀치고는 혼자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하하하! 저 먼저 갑니다, 사형!”
떨어져 내리며 웃는 그를 보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던가.
‘사제! 너의 한을 내가 꼭 풀어주마!’
그때 꿈속에 보였던 미친놈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