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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78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2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78화

 

78화

 

 

 

 

 

 

 

 

이금환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놓고 엎어버리겠다고 말하는 이무환의 태도가 부러우면서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씁쓸했다.

 

반면에 여건호와 철위종은 아연한 표정으로 이무환을 빤히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왜 그를 미친놈이라고 부르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뭡니까? 이도 저도 아니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이무환이 머뭇거리는 이금환을 몰아붙였다.

 

이금환은 왜 이무환이 그렇게 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기에 입가에서 고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어쨌든 대답을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이금환이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이 안으로 스며든 것 같소. 일단은 그들을 먼저 솎아내야겠소.”

 

이무환의 눈에서 한겨울 북풍처럼 차가운 눈빛이 흘러나왔다.

 

“흥! 잠풍련입니까?”

 

“아직 확실하게는 모르겠소. 다른 곳에서 온 자들일 가능성도 있어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구룡성을 노리는 것은 그자들만이 아닐 테니까.

 

“물론 두 사람이 끌어들였겠지요?”

 

“그런 것 같소.”

 

“어떤 자인지 알아냈습니까?”

 

“예상되는 자가 셋 있소.”

 

“흠, 셋이라…….”

 

“더 있는 것 같은데, 아직은 확인이 되지 않고 있소.”

 

“까짓것, 보이는 대로 다 잡아들이면 또 뭐가 나오겠지요.”

 

“내부에서 최대한 지원을 하겠소.”

 

“이름과 모아놓은 정보만 알려주십시오. 금 형은 그것만 알려주고 뒤로 빠져요. 명색이 천룡의 후계잔데, 그런 더러운 일에 끼어들어서 얼굴에 똥칠할 일 있습니까?”

 

이금환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집안일인데…….”

 

“뒤로 빠지기 싫으면 직접 하든가!”

 

빽! 소리친 이무환이 홱 고개를 돌렸다.

 

“이놈의 집안, 성질나는데 이 기회에 확 엎어버려?”

 

여건호와 철위종이 반쯤 입을 벌리고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무환이 쓱, 다시 고개를 돌리자 후다닥 눈동자를 틀었다.

 

“잘 들으쇼. 내가 어지간하면 아무 말 않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금 형과 생사를 같이하기로 했다니까 한마디 하겠소.”

 

여건호와 철위종이 나름대로 무게를 잡고 이무환을 마주 보았다.

 

대체 광룡이 자신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걸까?

 

의아해하는 그들에게 이무환이 말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당신들이 하는 일, 절대 아무에게도 말해선 안 되오. 도움을 청한다고 집안 어른들에게도 하면 안 되오.”

 

“그게 무슨 말이오?”

 

철위종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꼭 자기 집안의 어른들을 의심하는 말투가 아닌가?

 

“동료를 죽이기 싫으면 완전히 비밀로 하고 움직이라는 말이오. 철저히!”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오?”

 

여건호가 당연한 말을 왜 그렇게 심각하게 말하냐는 투로 툭 쏘아붙였다.

 

이무환이 차가운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창룡부와 철룡부도 믿지 않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당신……!”

 

“어디서 그따위 말을 하는 거요!”

 

여건호와 철위종이 벌게진 얼굴로 눈을 부라렸다.

 

창룡부와 철룡부를 믿지 못하다니. 그거야말로 자신의 가문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이금환은 달리 생각했다. 언뜻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 경악한 표정으로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오? 창룡부와 철룡부에 잠풍련의 세력이라도 스며들었단 말이오?”

 

그제야 뭘 느꼈는지 여건호와 철위종이 입을 닫고 이무환을 직시했다.

 

세 쌍의 눈길을 받으며 이무환이 담담히 말했다.

 

“잠풍련인지 아닌지, 아직 정확히는 모르오. 분명한 것은, 적이라는 것이지. 지금은 그렇게만 아쇼.”

 

사실 조금 더 알았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침묵이 방 안을 내리눌렀다.

 

창룡부와 철룡부에마저 적의 세력이 스며들었다면 대체 아군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차피 벌어진 상황이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오. 적이 있다는 것을 안 것만 해도 어디요? 뭐, 적의 적은 친구. 그런 말도 있으니 잘하면 그들을 이용할 수도 있고 말이오.”

 

만사태평한 이무환의 말에 세 사람은 맥이 빠졌다.

 

솔직히 그들은 결정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창룡부와 철룡부의 주 세력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런데 이무환의 말대로라면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그때 이무환이 말했다.

 

“일단 하나하나 건드려 볼 생각이오. 그러니 당신들은 일체 관여하지 말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시오.”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이금환이 물었다.

 

여건호와 철위종이 눈을 빛내며 이무환의 입을 주시했다.

 

“간단하오. 몇 놈 패 죽이면 화가 나서라도 움직이겠죠. 뭐, 죄없는 사람들 몇이 끼어들지 모르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운명이니 어쩌겠소?”

 

세 사람이 멍하니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사람 죽이는 것을 장난처럼 말하다니.

 

미친 용. 광룡이 왜 광룡인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무환이 악귀라고 불린다는 것까지 알 필요도 없었다.

 

“자, 나는 온 김에 다른 사람을 좀 만나야겠소. 금 형, 더 할 말 있습니까?”

 

이무환이 이야기를 끝내고 일어나자, 이금환이 착잡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너무 많은 피가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소, 무 대주.”

 

천룡부의 일을 말함이다.

 

이무환이 홱 몸을 돌리며 대답했다.

 

“그거야 그들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겠죠. 그래도… 최대한 신경은 쓰죠. 아, 젠장!”

 

그의 등을 바라보는 이금환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자네가 있어 정말 다행이네, 아우. 고맙네.’

 

 

 

이금환의 거처를 나온 이무환은 온 김에 무설강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로만 들었던지라 무설강의 방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서너 번이나 방을 잘못 찾아들자, 화가 난 그는 확 기둥을 뽑아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

 

기둥이 뽑히면 사람들이 튀어나올 테고, 그때 무설강에게 전음을 보내면 될 테니까.

 

어쨌든 그 바람에 잘못 찾아든 방에 있던 자들만 뒤통수를 한 대씩 얻어맞고 기절하는 불상사를 당했다.

 

그중에 천룡부 규룡당의 당주인 이종상은 두 대나 맞아야 했다. 물론 이무환은 그가 누구인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냥 기절했으면 한 대 더 맞지는 않았을 거 아냐?’

 

그렇게 방문을 여섯 번이나 열고 들어가서야 무설강을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무설강이 번쩍! 검을 빼 들고 그를 겨눴다.

 

“아, 고생고생해서 찾아왔는데, 검부터 빼 들깁니까?”

 

딱!

 

손가락을 튕긴 이무환이 불꽃을 일으켜서 등잔을 밝혔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

 

검은 거둔 무설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 있었나?”

 

“아, 글쎄. 저리 갔더니 남의 방이고, 그래서 그 옆방으로 갔는데 웬 산적이 누워 있고…….”

 

이무환이 횡설수설 방을 찾는 과정을 설명했다.

 

철사자 무설강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겨우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그것참, 미안하군. 직위에서 해제되는 바람에 방까지 옮겨야 했다네.”

 

“제길, 그것도 모르고 이 방 저 방 기웃거렸으니…….”

 

어디 그뿐인가? 뒤통수를 어루만져서 몇 사람이나 재워줬지.

 

하지만 그 일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바쁜 자네가 이 밤에 웬일로 왔는가?”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지, 왜 왔겠수?”

 

“대공자를 만나러 왔나?”

 

“앉아서 천 리시군. 어떻게 알았수?”

 

“만날 사람이 그밖에 더 있나?”

 

“하긴. 그런데 말이오, 무 형님은 이대로 그냥 있으실 거요?”

 

“당장은 뚜렷한 수가 보이지 않으니 어쩌겠나? 저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대응하는 수밖에.”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수?”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

 

“그냥, 이곳을 나오쇼.”

 

“이곳을? 천룡부를?”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설강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사부님의 온기가 식지도 않았네. 그럴 수 없다는 걸 자네도 잘 알잖은가?”

 

“누가 완전히 나오라고 했수? 잠깐만 보직을 바꾸라는 거지.”

 

“보직을? 혹시……?”

 

무설강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였다.

 

이무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특조대로 오쇼. 사람이 필요한데, 무 형님이 딱이오.”

 

“특조대라…….”

 

“겸사겸사 좋지 않수? 백조부님의 원수도 갚을 겸.”

 

그것도 그랬다.

 

“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아우의 일에 지장이 있지 않겠나?”

 

무설강의 염려에 이무환이 피식 웃었다.

 

“알잖수? 마룡부에다, 이번에는 신룡부까지 엎어버렸수. 무 형님이 특조대에 들어왔다고 더할 것도 없단 말이오.”

 

“흠, 하긴…….”

 

“그럼 결정한 거요?”

 

무설강이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더 필요없나?”

 

“누구 마음에 드는 사람 있수?”

 

“내 형제 같은 놈들이 몇 있네. 알려지진 않았어도 한가락 하는 놈들이지.”

 

호박이 넝쿨째, 거기에 뿌리까지 딸려서 굴러들어오는 격이다. 마다할 이무환이 아니었다.

 

“그럼 나야 좋죠. 함께 오쇼. 밥값은 걱정 말고.”

 

 

 

제2장. 고맙네, 아우

 

 

 

 

 

 

 

1

 

 

 

햇살이 따사롭다.

 

비가 올 줄 알았는데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아침을 먹자마자 이무환은 침상에 누워서 머리를 남궁산산에게 맡겼다.

 

“아야! 너, 조심 안 할래? 옥이처럼 조심해서 파란 말이야.”

 

이무환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치자, 뾰족한 대나무 꼬챙이를 든 남궁산산이 샐쭉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안 해봤다고 했잖아요.”

 

“그건 해보고 안 해보고의 문제가 아니야, 정성 문제지.”

 

“피이……. 바늘로 쑤셔도 끄떡없다면서 이런 꼬챙이를 준 오빠가 문제죠, 뭐.”

 

대젓가락을 대충 깎아서 만든 귀이개다. 고막이 뚫리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옥이는 그런 걸로 잘만 파더라.”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데, 영호승이 밖에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험. 총대주, 손님이 왔습니다.”

 

문득 오늘 온다던 무설강이 떠올랐다.

 

벌떡 일어선 이무환은 행여나 오해하기라도 할까 봐 남궁산산을 재빨리 침상에서 쫓아냈다.

 

그러고는 자신도 탁자로 다가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오시라고 해!”

 

문이 열리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상당한 기운이 느껴져서 무설강이 틀림없다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아니었다.

 

들어온 사람은 이십대 후반의 흑의청년이었다. 무채색의 고요한 눈이 인상적인 그는 지닌 능력에 비해 너무 평범해 보였다.

 

그를 바라보는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젊은 나이에 절정, 그 이상의 무위. 허무하게 느껴지는 고요한 눈빛.

 

눈앞에 있는 자 정도의 젊은 사람은 강호를 통틀어도 결코 많지 않을 것이었다.

 

중원오신룡이라는 자들이 이 정도일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무환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자신의 뇌리에 기억된 자들 중 앞에 있는 자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젊은 사람들의 이름이 죽 스쳐 갔다.

 

그들 중 자신을 찾아올만한 자가 누가 있을까?

 

구룡성과 연관이 있는 자는?

 

한순간, 책자에 쓰여 있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동시에 이무환의 눈빛이 묘하게 번뜩였다.

 

‘그잔가?’

 

자신의 생각이 맞는 듯했다. 비록 멀리서 봤지만 부자간에 많이 닮아 보였다.

 

그런데 이 장 앞에 조용히 서서 내력을 끌어올리는 모습이 그냥 앉을 것 같지가 않았다.

 

‘으흥! 자존심은 있어서 그냥 굽히기는 싫다, 이거지?’

 

이무환은 손을 뻗어 검지를 폈다.

 

흑의청년이 천천히 배의 혁대로 손을 가져간다.

 

순간 이무환의 검지 끝에서 붉은 구슬이 튀어나왔다. 칠성의 내력이 실린 홍옥지였다.

 

영롱하니 맑은 구슬이 빙글빙글 돌며 다가가자, 흑의청년의 무채색 눈에 신광이 어렸다.

 

‘어쭈? 무 형님에 못지않은데?’

 

찰나, 흑의청년의 옆구리에서 한줄기 번개가 번쩍이더니, 그대로 홍옥을 후려쳤다.

 

쾅!

 

짧고 강한 굉음이 방 안을 울렸다.

 

하지만 그뿐. 붉고 영롱한 구슬은 여전히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고, 청년의 손에 들린 매미날개처럼 얇은 연검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달라진 것은 흑의청년의 낯빛이 조금 하얘졌다는 것 정도.

 

이무환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더 할 거요? 더 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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