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7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76화
76화
제1장. 확 엎어버려?
1
이무환은 무영뢰가 끼어져 있는 왼쪽 팔목을 비틀며 추호상에게 물었다.
“잠풍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별것이 없네.”
대답하는 추호상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손끝에 비혈조의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그는 슬그머니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비혈조가 손가락 사이에 잡혔다.
그때 이무환이 왼손을 가볍게 털었다.
쒜액!
기음이 일더니, 푸른빛이 벼락처럼 번쩍였다.
추호상은 손을 반쯤 내밀다 말고 반사적으로 몸을 뉘였다.
뭔가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조금만 늦었으면 자신의 이마를 관통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등골이 오싹해진 추호상은 뒤로 눕힌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퍼런 손바닥이 코앞에 들이닥쳤다.
추호상은 다급히 한 번 더 몸을 휘돌렸다. 손척의 경우를 봤기에 손을 내밀어 막지는 않았다.
그때, 퍽! 옆구리에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흐읍!”
이를 악문 추호상은 몸이 튕겨지는 와중에도 두 손을 털듯이 휘둘렀다.
너 죽고 나 죽자는 비장한 마음으로!
순간 손가락 사이에 잡혔던 비혈조가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비혈조 열 개를 다 털어내기도 전, 시퍼런 손바닥이 십여 개로 변하는가 싶더니 그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와직! 퍽!
비혈조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자신의 가슴뼈가 부서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꽉 조여든 가슴이 심장을 짓눌렀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요?”
이무환은 나직이 말하며 손을 털었다. 부서진 비혈조 세 개가 그의 손 안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이곳은 적지라 할 수 있는 곳. 더구나 남궁산산이 걱정되어 작심하고 손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덕에 추호상이 제대로 대항조차 못해보고 쓰러졌다.
이무환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추호상에게 다가갔다.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아쇼.”
반면에 당한 추호상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널브러진 그는 안간힘을 다해 억지로 몸을 세웠다. 목을 타고 비릿한 피 비린내가 솟구쳤다.
“웩!”
입을 열자 목구멍을 가득 메웠던 피가 쏟아졌다.
그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눈을 들었다.
놈이, 미친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순간이었다.
퍽!
어깨 위로 커다란 쇠망치가 떨어지는 충격이 전해졌다.
동시에 광룡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와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형옥에 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네?”
이무환 일행이 손척과 추호상을 메고 대전을 나오자, 입구 쪽에 있던 삼십대의 무사가 눈을 부릅떴다.
“그, 그……!”
“비켜라! 특조대의 앞을 막으면 즉참할 것이다!”
지나가던 자들이 일제히 이무환 일행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막위와 혁수린의 어깨에 걸쳐진 추호승과 손척을 알아보았다.
“추 장로님과 손 장로님이시다!”
정적이 신룡부의 넓은 연무장을 뒤덮었다.
이무환 일행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사들이 수십 명씩 늘어났다.
그렇게 늘어난 무사들이 이무환 일행이 연무장을 반쯤 지날 즈음에는 백여 명으로 불었다.
쾅!
정문도 닫혔다.
생각보다 빠른 대응. 특조대가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준비를 했다는 말이다.
개중 삼십여 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영호승이 한 발 내딛으며 소리쳤지만, 앞을 가로막은 자들은 움직이지 않고 대신 도검을 움켜쥐었다.
일순간, 그들에게서 일어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밀려들었다.
이무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신룡전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도 십여 명이 나와 있었다. 척 보니 신룡전의 간부급 고수들이었다.
이무환이 바라보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그분들을 놓고 가게. 그럼 보내주지.”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었다. 백의에 흑염이 가슴까지 늘어져서 근엄한 풍모를 지닌 자였다.
신룡부주 주백천의 셋째 동생. 신룡부 최강의 무사단인 제검단의 단주 주용천이 바로 그였다.
“싫다면?”
“그럼 나갈 수 없을 거네.”
“훗! 지금 특조대의 압송을 막겠다, 그 말이오?”
“정당치 못한 압송이네.”
“자신이 잠풍련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는데도?”
이무환의 말에 중년인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그 말을 믿을 수 없네. 추 장로님은 신룡부와 삼십 년을 같이한 분이지. 그런 분이 잠풍련의 간자라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네.”
“증거는 수룡단에 얼마든지 있지요. 가서 보자고 하면 보여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그럴 이유가 없네. 다시 말하지. 그분들을 내려놓고 조용히 나가게.”
이무환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 제기랄! 왜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거지? 귀가 걸레로 막혔나?”
주용천이 싸늘한 눈빛으로 이무환을 직시했다.
“미친 자라는 말은 듣긴 했는데, 생각보다 더하군. 하지만 그러한 짓도 가려 해야 할 곳이 있는 법이다, 애송이.”
이무환이 고개를 돌려 주용천을 향했다.
“가려서 해야 할 곳? 그러니까, 신룡부에서는 말을 가려 하라, 이 말이오?”
“알면 함부로…….”
“염병, 신룡부가 뭐 대단하다고.”
이무환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주용천이 말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무환 일행을 둘러싼 무사들에게서도 살기가 스멀거리며 피어올랐다.
“흐흥! 한번 해보겠다는 건가?”
남궁산산이 눈치 빠르게 이무환 곁으로 바짝 붙더니, 품속에서 깃발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오빠, 여차하면 제가 팔기금쇄진(八旗禁鎖陣)을 펼칠게요. 깃발이 꽂히면 반경 이 장 안에는 아무도 못 들어올 거예요.>
남궁산산의 전음이 들리자 이무환의 입가로 흐뭇한 웃음이 맺혔다.
‘크크, 제법 쓸모가 많단 말이야.’
물론 싸움이 난다 해도 빠져나가는 일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기문진이 펼쳐져서 남궁산산과 영호승 등이 안전해진다면, 또 다른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혼자라면 천하의 누구도 겁날 게 없는 이무환이 아니던가!
주용천을 바라보는 이무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후회할 일은 마쇼. 더 시끄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두 분만 놓고 나가면 된다 하지 않았는가?”
“그럴 수 없다고 하지 않았수?”
주용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스릉, 쩌정, 챙!
둘러싸고 있던 신룡부의 무사들이 하나둘 무기를 빼 들었다.
순간 깃발을 든 남궁산산이 폴짝거리며 이무환과 영호승 등의 주위를 빙 돌았다.
푹푹!
나이 어린 소녀가 깃발을 들고 다니니 누가 말리지도 않았다. 그사이 깃발은 청석으로 된 바닥이 두부라도 되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들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깃발이 다 꽂힌 후였다.
기껏해야 한 자 크기의 깃발 여덟 개다. 하지만 깃발이 꽂힘과 동시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주용천이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신룡부의 사람들 중 누군가가 깃발의 의미를 알고 놀라 소리쳤다.
“기문진이다! 함부로 접근하지 마라!”
삼 장 근처까지 접근하던 무사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그때였다. 홱 고개를 돌린 이무환이 신룡부의 정문을 향해 빽, 고함을 질렀다.
“눈발! 볼일 끝났으니까, 문을 부수고 들어와!”
쾅!
굉음과 함께 신룡부의 정문이 부서지며 덜렁거렸다.
동시에 구룡수호단과 광룡대의 대원들이 신룡부의 담장 위에 나타났다.
“늦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총대주!”
엽상이 구룡수호단의 수장들과 함께 들어섰다. 이무환은 어깨를 추켜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 빨리 왔어. 몸 좀 푼 다음에 왔어도 됐는데. 뭐, 그래도 아주 빠르지는 않았어. 그럭저럭 사람 구경이라도 했으니까.”
그러고는 씩 웃으며 주용천을 바라보았다.
“흠, 어떻수? 계속하겠수? 나는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아예 이 기회에 신룡부의 힘을 반쯤 줄여놓으면 나중에 더 편할 것 같거든?”
느물거리는 말투, 놀리는 것처럼 보이는 표정.
속이 부글거리고,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바로 앞에 있으면 주먹으로 주둥이를 쳐버리고 싶을 마음뿐.
주용천은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갈았다.
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수룡단의 대원이야 문제될 것이 없었다.
여자아이가 펼쳐 놓은 기문진도 별문제는 없을 듯했다. 아무리 기문진이라는 것이 신묘하다지만, 저 몇 개의 깃발로 자신들의 앞을 막는다는 것이 우습게 보일 뿐이었다.
정작 우려되는 것은, 구룡수호단이라는 놈들이었다.
개개인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고수들. 정면으로 붙으면 저 얄미운 놈의 말대로 엄청난 타격을 감수해야 할 것 같았다.
거기다 급습해서 광룡을 죽이거나 잡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기문진이 펼쳐진 이상 그것도 쉽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상대는 특조대다. 완벽히 이기지 못하면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었다.
보내자니 자존심이 울고, 막자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주용천이 숨을 길게 몰아쉬며 참고 있는데, 바로 곁에 있던 청년이 분노의 일성을 내질렀다.
“숙부! 망설일 것이 뭐가 있습니까? 저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줍시다!”
“조용히 해라!”
주용천의 일갈에 주원위의 얼굴이 붉어졌다.
“겁나면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숙부!”
주용천의 눈이 주원위의 눈을 직시했다.
‘이놈이 어디서……!’
짜증이 왈칵 솟구쳤다.
“네가 책임진다고? 뭘 말이냐?”
“그거야…….”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라! 한 번만 더 나서면, 내 조카라 해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수, 숙부?”
주원위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주용천은 그를 보지도 않고, 빙글거리며 웃고 있는 이무환을 향해 눈을 돌렸다.
백수십 명의 적이 내뿜는 기운 한가운데 서서 눈 하나 꿈쩍 않는 자. 상황도 모르고 싸우자고 하는 조카와는 격이 달랐다.
과연 자신이라면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적진 한가운데 서 있다는 생각을 하자 전율에 몸이 떨렸다.
‘저놈을 너무 우습게봤어. 단순히 미친놈이 아니다. 절대 쉽게 생각할 놈이 아니야.’
그때 이무환이 천천히 몸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 비켜! 셋을 셀 동안 비키지 않는다면 구룡률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하나!”
이무환이 주용천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냉소를 입가에 매단 채.
“둘!”
주용천이 손을 들었다.
셋이 떨어지기 전에 그가 손을 저었다.
입구를 가로막았던 자들이 쫙 좌우로 갈라졌다.
이무환이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꼬맹아, 깃발 챙겨라!”
“예, 오빠.”
간격이라고 해봐야 이 장 정도.
주용천의 명이 떨어지면, 수십 자루의 도검이 일제히 이무환 일행을 향해 떨어질 터였다. 그런데도 남궁산산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돌아다니며 깃발을 회수했다.
“돌아가자!”
몸을 돌린 이무환이 외마디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누구 하나 어깨를 움츠리지 않았다. 이무환도, 남궁산산도. 그리고 두 사람을 따라가는 영호승 등도.
“수고들 하쇼!”
이무환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광룡대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신룡부의 무사들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2
적사중의 즐거운 노력(?) 덕분에 뇌옥은 정말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물론 안에 갇힌 사람들이야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흠, 노력한 표가 팍팍 나는군. 수고했다고 술이라도 사줘야겠어.’
이무환은 흐뭇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혁천기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어때? 이제 말할 마음이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