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7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75화
75화
체구가 큰 무사는 연무장을 빙 돌아 우측 건물의 끝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멈춘 그가 대전 안에다 소리치듯 말했다.
“수룡단 특조대에서 추 장로님을 찾아오셨습니다.
잠시 후.
전각문이 열리더니 서른 중반의 무사가 이무환 일행을 바라보았다.
“들어오시오.”
이무환은 마치 제집을 찾아들어 가듯 뒷짐을 진 채 안으로 들어갔다. 남궁산산과 영호승 등이 그 뒤를 따라갔다.
손님을 접대하는 내전을 지나자 복도가 나왔다. 추호상의 방은 그 끝에 위치해 있었다. 문을 열었던 무사가 복도 끝의 방 앞에 멈춰 서더니 안에다 대고 나직이 말했다.
“특조대의 대주께서 추 장로님을 찾아오셨습니다.”
“모셔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거침없는 대답이다.
비선객(飛線客) 추호상.
나이 쉰넷. 신룡부의 서열 십사위이며 팔대장로 중 한 사람.
그것이 이무환이 아는 추호상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물론 그와 신곽과의 관계는 또 다른 문제였다.
소리 없이 문이 열리자 방 안의 광경이 보였다.
방안에는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사십대 후반의 중년인. 장례식 때 천룡부의 삼층에서 봤던 자였다.
‘신풍창 손척? 흠, 잘됐군. 둘이 함께 있다니.’
이무환이 추호상을 바라본 채로 입을 열었다.
“멋쟁이, 지금부터는 아무도 이 방으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예, 총대주.”
“할 수 있으면 소리도 최대한 차단하고.”
네 사람의 공력으로 방 전체를 감쌀 수는 없다. 하지만 네 명이 합세하면 방문 쪽 한 면 정도는 막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하면 되니까.
영호승 등이 방문의 입구에 버티고 섰다.
그러더니 마치 원래 주인이라도 되는 양 삼십대 중반의 무사를 멀리 쫓아냈다.
“지금부터 이곳에서는 특조대의 조사가 진행될 것이오. 귀하는 밖으로 나가 있으시오.”
구룡성을 뒤집어놓은 특조대다.
삼십대 무사는 아니꼬웠지만, 차가운 코웃음만 날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이무환은 남궁산산과 안으로 들어가더니, 휘적휘적 걸어서 추호상의 일 장 앞에 멈춰 섰다.
“특조대의 무환이라 합니다.”
이무환이 가볍게 포권을 취하자 추호상도 손을 들어 맞잡았다.
“내가 추호상이네. 자네에 대한 말은 많이 들었지.”
“갑자기 찾아와서 손 장로님과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험, 이야기가 끝나가던 마당이네. 걱정 말고 앉게나.”
“다행이군요. 꼬맹아, 앉자.”
이무환이 남궁산산과 함께 자리에 앉자, 곧 시비가 차를 들고 들어왔다.
시비는 이무환과 남궁산산, 손척의 앞에 찻잔을 놓고 차를 따랐다. 그 모습에 이무환의 웃음이 짙어졌다.
탁자에 찻잔이 하나밖에 없었다. 손척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마 자신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 급히 달려온 듯했다.
‘훗, 노인네가 거짓말은…….’
식기도 전에 후르륵 찻잔을 비운 이무환이 추호상을 직시했다.
조금은 경박해 보이는 행동에 손척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추호상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이무환을 향해 물었다.
“그래, 무엇 때문에 날 찾아온 건가?”
이무환이 대답했다.
“마룡부의 장옥조 장로께서 압송되었다는 말은 들으셨을 겁니다.”
“들었네.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압송되었다더군. 그리고 오늘 오전의 일도 들었지.”
이무환이 조용히 웃었다.
“그럼 제가 신룡부라는 이름에 겁을 먹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아시겠군요.”
“그렇다고들 하더군.”
이무환이 한쪽에 서 있는 시비를 바라보았다.
“저기, 차 한잔 더 주실랍니까?”
시비가 급히 다가와 차를 따랐다.
후르륵, 쩝쩝.
마지막 한 방울까지 입맛을 다시며 차를 비운 이무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룡단에는 이런 차가 없는데, 꼬맹아, 이거 뭐라는 차지?”
남궁산산이 재빨리 설명했다.
“복건성 안계의 철관음(鐵觀音)이라는 차예요.”
“흠, 단주에게 말해서 좀 사달라고 해야겠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추호상이 넌지시 말했다.
“원한다면 내가 좀 줄 수도 있네.”
이무환이 고개를 들고 추호상을 바라보았다.
“이거야 사면 되는 것이고… 추 장로께선 저에게 다른 것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것? 뭘 말인가?”
“잠풍련에 대한 정보.”
추호상의 얼굴이 굳어졌다.
“장난이 심하군. 왜 나에게 그걸 묻는 건가?”
“신곽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추호상과 손척의 얼굴이 굳어졌다.
말하는 사이, 기이한 기운이 이무환의 몸에서 흘러나오더니 방 안에 퍼져 나간다.
그게 무엇인지 모를 두 사람이 아니었다.
‘가, 가공할 기운이다!’
경악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향해 이무환이 말을 덧붙였다.
“나이 마흔여섯. 잠풍련의 호법.”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하나하나 신곽에 대한 것을 말할 때마다 추호상과 손척의 낯빛이 달라졌다.
이무환이 콕 집듯이 말했다.
“그가 몇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더군요.”
거짓말이다.
그는 정확한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약간 돌려서 한 질문에 서너 명의 이름이 들어 있었을 뿐.
물론 추호상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를 테지만.
“그가 본 부에 있던 사람인 것은 나도 알고 있네. 그런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가 단순히 이름을 알려준 것 가지고 지금 나를 핍박하겠다는 건가?”
“신곽이 잠풍련의 호법이라는 것은 알고 계셨습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면, 그가 신룡부를 나서기 전 추 장로님을 찾아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십니까?”
“나는 모른다지 않았는가!”
추호상이 발끈해서 소리를 내질렀다.
손척이 그를 옹호했다.
“지금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 가지고 감히 추 장로님을 핍박하겠다는 건가?”
“확실하지 않다? 핍박한다? 하아, 정말로 핍박한다는 것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이시구만.”
“뭐라? 네놈이 감히!”
추호상이 벌떡 일어섰다.
당장에라도 손을 쓸 것 같은 그의 태도에 이무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신곽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쇼?”
“무, 무슨 헛소리를……!”
추호상의 눈빛이 흔들렸다.
행방불명된 신곽의 이름이 나왔을 때부터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상황을 보니 신곽이 사라진 것에 이무환이 관여했음이 분명해 보였다.
문제는 그 말을 이곳에서 한다는 것이다.
왜 이 미친놈은 그 말을 적의 심장부에 들어와서 하는 걸까?
몰라서?
웃기는 소리다. 모르는 놈이 이곳에 와서 그 말을 한단 말인가? 음파까지 차단해 놓고.
그때 이무환이 남궁산산에게 물었다.
“꼬맹아, 그가 어떻게 되었지?”
남궁산산이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투는 전혀 아니었지만.
“팔다리뼈가 완전히 부서지고, 힘줄이 다 빠지고, 걸레처럼 변해 버렸지요. 솔직히 너무했어요. 사람을 그렇게 만들다니.”
팔다리뼈가 부서진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무환은 그런 말을 태연하게 하는 남궁산산을 힐끔 쳐다보고는, 품속에서 뇌정갑을 꺼내 천천히 손에 꼈다.
그리고 박자를 맞춰주었다.
“나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입을 다물어서 하는 수 없이 그랬지. 덕분에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잖아.”
“이놈!”
갑자기 손척이 몸을 날리며 쌍수를 내쳤다.
그의 두 손에는 어느새 빼 들었는지 길이가 짧은 단창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
동시에 이무환도 뇌정갑을 낀 손을 휘저었다.
푸른빛이 번쩍였다 싶은 순간.
덥썩! 손척의 창이 이무환의 좌수에 잡혔다.
뒤이어 이무환의 뇌정갑을 낀 우수가 손척의 가슴에 떨어졌다.
손척은 황급히 좌수를 내밀어 이무환의 우수를 막았다.
쾅!
“크억!”
둔탁한 소리, 고통에 찬 답답한 신음.
입을 쩍 벌린 손척이 팔목이 부러진 좌수를 움켜쥐고서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그와 동시, 이무환이 튕겨진 손척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퍼벅!
창도 없고, 한 손이 부러진 손척이었다.
게다가 그 충격에 내상마저 입은 상태. 이무환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몇 번의 손이 오가기도 전에 손척의 몸이 구겨져 구석에 처박혔다.
손척이 정신을 잃고 널브러지자, 그제야 이무환이 자신의 손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단순히 질기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장력의 위력이 더 강해진다.
더구나 내력을 일으키자 손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았다.
“호오, 이거 그냥 써도 괜찮은데?”
추호상은 이무환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졌다.
도와주려 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버린 상황.
광룡 무환.
그가 장옥조를 개 패듯 두들겨 패서 데려갔다는 소문, 혁성신의 방해를 유유히 피해 혁천기를 잡아갔다는 소문이 모두 사실인 듯했다.
‘헛소리고 과장되었을 거라 생각했거늘.’
여차하면 자신도 장옥조와 혁천기 꼴이 될지 몰랐다.
음파마저 차단된 상황. 누구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 터. 이곳이 신룡부 안이라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조대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말에 손척이 뒷문을 통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그 정도면 되었다 생각했다. 그와 자신이라면 쉽게 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상황이 심각해지면 그때 가서 사람을 더 부르면 될 일.
그런데 일의 진행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손을 쓸 새도 없이 손척이 당해버린 것이다.
추호상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이무환은 좌수에 잡힌 손척의 단창을 탁자 위에 쿵! 소리가 나도록 꽂고 추호상을 직시했다.
“특조대를 공격한 자, 즉참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아실 텐데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그랬지요? 신룡부라는 이름으로는 겁줄 수 없다고. 그리 말했으면 조용히 대화로 풀어나갈 생각을 했어야지, 왜 공격을 한단 말입니까?”
“그, 그거야…….”
“뭐, 지금이라도 대화를 하겠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어떻습니까? 대화로 할까요, 아니면 힘으로 할까요?”
추호상은 속으로 침음을 삼키며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손가락 끝에 차가운 감촉이 잡혔다.
뻗으면 자신의 장기인 비혈조가 허공을 날을 것이다.
겨우 일 장의 거리. 천하없어도 피할 수 없을 듯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무환의 나직한 목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비선객 추호상. 열 개의 비혈조가 하늘을 날면 귀신조차 목이 잘린다고 함. 수룡단에서 들은 말인데, 맞지요?”
추호상의 손이 멈칫했다.
이무환이 말을 이었다. 보다 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손가락을 움직이면 후회할 겁니다. 뭐, 죽고 나면 후회할 수도 없을 테지만.”
망설임도 잠깐이었다.
추호상은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소매 속에서 흘러나온 비혈조를 손가락으로 밀어 넣었다.
“일단 손 아우의 부상을 먼저 살폈으면 하네만.”
이무환은 힐끔, 정신을 잃은 손척을 보고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없으니 그냥 하지요. 이야기를 끝내고 손봐도 충분할 테니까. 설마 그때까지 죽겠습니까?”
‘악랄한 놈!’
추호상이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놈이 의자에 앉아 있다. 훨씬 유리한 상황.
‘저 미친놈에게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