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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7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0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74화

 

74화

 

 

 

 

 

 

 

 

방양고는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존심이 있지, 이대로 미친놈의 기세에 눌려 먼저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정 알고 싶다면 내 말해주지. 그저 장갑 한 켤레를 잃어버렸을 뿐이네.”

 

“장갑? 어떤 미친놈이 그런 걸 훔치려 와룡부에 들어온 겁니까?”

 

“나도 모르겠네. 어떤 놈인지.”

 

“다른 것은 없습니까? 장갑 하나 잃어버렸다고 그 난리를 치진 않았을 것 아닙니까?”

 

“없… 네.”

 

“있을 것 같은데요?”

 

“없다니까?”

 

“있으면 있다고 솔직히 말씀하시죠?”

 

“없다니까!”

 

“없으면 없는 거지, 왜 소리를 지르십니까?”

 

“…….”

 

방양고는 이를 악물고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참아야 했다. 아니면 눈앞의 미친놈이 정말 썩은 피가 고이는 뇌옥으로 끌고 갈지도 모르니까.

 

‘이 자식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놈이야.’

 

그때 이무환이 물었다.

 

“요즘 저 뒤쪽의 수로를 이용한 적이 있습니까?”

 

방양고가 흠칫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없네.”

 

“이상하군. 며칠 전에 저곳으로 배가 드나든 것을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이용한 적이 없다니…….”

 

이무환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방양고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벌레가 옷 속으로 기어가는 느낌에 방양고는 미칠 것만 같았다.

 

“가끔 필요한 물건을 수로를 통해서 들여올 때가 있는데, 아마 그걸 본 모양일세.”

 

“그래요? 사람이 아니고 물건을 들여왔단 말이죠?”

 

“그렇다네.”

 

“흠, 좋습니다. 일단은 믿어드리죠. 그럼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죠?”

 

“무, 물론이네.”

 

옷 속의 벌레가 송충이인 것 같았다.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놈. 제발 빨리 묻고 가줬으면 싶었다.

 

이무환이 그의 기대에 부응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혹시 잠풍련에 대해서 따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 없습니까?”

 

“없… 네.”

 

“있을 텐데요?”

 

“없다지 않는가? 있으면 왜 말을 하지 않겠나?”

 

이무환이 빤히 방양고를 바라보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그만 가죠. 생각나면 언제든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빨리 연락할수록 그만큼 죄가 줄어든다는 점 명심하시고.”

 

‘휴우…….’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쉰 방양고가 급히 대답했다.

 

“그, 그렇게 하지.”

 

“가자, 꼬맹아. 비월산장에 대해선 나중에 와서 물어보자.”

 

순간, 방양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이무환의 등을 노려보던 그의 얼굴이 급살이라도 맞은 듯 새파랗게 변색되었다.

 

그때 방을 나가던 이무환이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참! 부주께 전해주십시오. 사흘 후가 아들의 생일 같은데, 미리 축하한다고요.”

 

그러고는 방양고가 행여나 붙잡기라도 할까 봐 무섭다는 듯 휙 방을 나가 버렸다.

 

얼어붙은 방양고만 남겨놓은 채.

 

 

 

와룡부를 나서자, 남궁산산이 찰싹 달라붙더니 속삭이듯 물었다.

 

“오빠, 왜 그 말을 하신 거예요?”

 

“놀려주는 게 재미있잖아.”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놀려줬는데…….”

 

“꼬맹아, 네가 볼 때는 제갈무진이 어떻게 나올 것 같냐? 적이 되려고 할까, 아니면 어떻게든 구워삶으려고 할까?”

 

“머리가 있는 자이니 당연히 후자를 택할 거예요.”

 

“그렇지? 그래서 말해준 거야. 내가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시간이 촉박할 것 같거든.”

 

남궁산산은 제갈무진의 비밀을 결정적일 때 이용하자고 했다.

 

그러나 구룡성의 성주를 뽑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성주가 뽑히면 물살이 더욱 급해질 것이다. 더구나 적들의 수장이 성주가 되기 쉬운 상황. 적보다 친구를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게 나았다.

 

제갈무진이 자신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든 상관없었다.

 

패를 쥐고 있는 것은 자신이지 제갈무진이 아니니까.

 

“자, 나온 김에 신룡부도 가볼까?”

 

“근데 오빠, 우리끼리만 가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무환이 깜박 잊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아! 맞다! 너는 돌아가 있어라.”

 

“싫어요.”

 

“진짜 위험할지도 몰라, 임마.”

 

“피이, 나도 내 한 몸 지킬 정도는 된다구요. 방해는 안 될 테니까 걱정 말아요. 정 급하면 이걸 쓰죠 뭐.”

 

남궁산산이 품속에서 괘(卦)가 그려진 작은 깃발을 슬쩍 꺼내 보여주었다. 기문진을 펼칠 때 쓰는 깃발이었다.

 

“자식이 고집은…….”

 

 

 

제10장. 항주에 부는 바람

 

 

 

 

 

 

 

1

 

 

 

봄이 다가오는데도 항주의 밤공기는 차갑기만 했다.

 

지난 늦가을부터 불기 시작한 피바람이 항주 전역을 덮기 시작한 것이다.

 

흑비파 소매치기들이 모두 죽었을 때만 해도 일이 그렇게 크게 번질 줄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칠도회의 건달들 사십여 명이 시체로 발견되자 항주의 무인들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사태를 주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새해가 되자 수백 명의 무인이 항주로 스며들고, 은밀하게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추격전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러더니 한 달이 지나자 지켜만 보던 절강 일대의 대문파들이 그 일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곧 강소에서 웅크리고 있던 ‘운’의 무리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운장에 머물고 있던 나철위에게 그들의 움직임이 전해진 것은 이월이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바람이 유난히 강하게 불던 날, 나철위와 사마추경과 사마성운이 검운장의 별원에 마주 앉았다.

 

셋 다 표정이 무거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도화방에 머물고 있던 자들 중 핵심인물들을 놓친 데다, 강소 쪽에 있던 ‘운’의 무리들이 절강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흑마련과 혈해방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사마추경의 질문에 나철위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놈들이 흑마련과 혈해방을 끌어들인 것 같습니다.”

 

“으음, 곤란하게 되었군.”

 

“게다가 금천신문까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서 더 골치 아프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남궁세가가 움직일 수 없을 테니 말이야.”

 

“일단 맹에 지원을 요청했으니 곧 지원무사들이 오긴 할 겁니다만…….”

 

문제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만일 지원무사들이 도착하기 전에 적들이 움직이면 절강 일대에 피바람이 휘몰아칠 것이었다.

 

사마성운으로선 그 점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천목산장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아버님. 그들이 도와준다면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천목산장은 무사의 수가 적은 대신 고수들이 많았다.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선 여느 방파보다 실질적인 도움이 될 터였다.

 

문제는 절대경지에 달한 고수의 부재였다.

 

삼악의 무리 중에는 그러한 자가 한두 명 있을 게 분명하거늘, 자신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단지 한두 사람이지만, 있고 없고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사마추경이 그런 염려를 담아 물었다.

 

“나 령주, 맹의 고수들을 이끌고 오는 사람 중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는 없는가?”

 

나철위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도 사마추경이 뭘 우려하는지 알고 있었다.

 

“최대한 고수들을 많이 보내주길 바란다고 서신을 보냈습니다. 상황을 보면 한 분쯤은 오시지 않을까 생각하긴 합니다만…….”

 

말을 흐리는 나철위다. 확신이 없다는 말.

 

문득 사마추경의 뇌리에 빙그레 웃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허, 그놈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때였다.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령주께 아룁니다!”

 

나철위를 보좌하는 쌍위 중 한 사람, 위소였다.

 

진중한 위소의 성격 상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나올 경우는 오직 하나다.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

 

묻는 나철위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위소, 무슨 일이냐?”

 

“천강문과 위지가의 정예무사 이백여 명이 호주로 들어섰다 합니다.”

 

나철위는 물론이고, 사마추경과 사마성운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 두 문파는 ‘운’의 하부세력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고수들만이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이백의 정예가 보란 듯이 호주에 들어섰다는 것은, 그들이 마침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는 말과도 같았다.

 

“즉시 맹의 무사들을 소집하고 명을 기다려라!”

 

“예, 령주!”

 

명을 내린 나철위가 고개를 돌리자 사마추경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얼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할 것 같군.”

 

“노장주님 말씀은……?”

 

사마추경의 눈이 사마성운을 향했다.

 

“그들이 항주를 노리는 것 같다. 비상을 걸고 모든 무사들의 외출을 금지시켜라.”

 

“예, 아버님.”

 

“그리고 즉시 천태산에 사람을 보내서 도장 어르신을 모셔오도록 해라.”

 

사마성운이 움찔하며 눈을 들었다.

 

“그분이 오시겠습니까?”

 

사마추경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진인사 대천명이라, 하늘이 본 가를 돕는다면 오시겠지.”

 

그 말에 나철위의 눈빛이 아무도 모르게 흔들렸다.

 

아직 말하지 않은 사안이 두어 가지 더 있었다.

 

문제는 그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밀로 처리되어야 할 일이니까.

 

그는 자신에게 모든 편의를 봐준 사마추경을 속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만 위안이라면, 그 일이 결코 검운장에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설마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2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따사롭기만 하다.

 

이무환은 눈을 반쯤 감고서 털레털레 신룡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른 곳에 비해 신룡부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정말로 신룡부가 천룡부를 친 곳이 맞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만일 신곽이 신룡부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이무환으로서도 골머리를 싸매야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신곽이 신룡부에 기거했다는 것이 분명한 이상, 이제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신룡부를 흔드는 데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줄을 잡아당기다 보면 줄줄이 끌려 나올 수밖에 없을 걸? 어딘 누가 더 끈질긴가 한번 해보자고.’

 

그렇게 작심한 이무환이 일행들과 함께 신룡부의 담을 돌아가는데 한 사람이 지나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주인들이 일각 전에 전부 돌아갔습니다.”

 

신룡부를 감시하던 수룡단의 대원이었다.

 

다음대 성주를 뽑기 위해 모였던 부주들이 신룡부를 떠났다는 말이었다.

 

아마 자신의 마룡부 방문이 작지 않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무환은 화창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는 빙글거리며 신룡부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정지!”

 

두 명의 무사가 손을 들어 이무환의 앞을 막았다.

 

그들은 이무환 일행의 복장을 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수룡단 특조대에서 오셨소?”

 

다른 곳과는 대하는 게 달랐다.

 

이들은 자신을 모르지도, 무시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주위에서 감시하고 있는 자들도 모두 알고 있을지 몰랐다. 자신의 움직임까지.

 

아니, 분명 그럴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말하기가 편했다.

 

“비선객(飛線客) 추호상이라는 분을 만나려고 왔소만, 안내해 주시겠소?”

 

체구가 큰 무사가 옆의 무사를 힐끗 쳐다보고 곧 대답했다.

 

“따라오시오. 기별을 넣어드리리다.”

 

이무환은 서두르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영호승 등도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이무환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들을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갔다.

 

하지만 그것도 겉보기일 뿐이었다.

 

이무환의 눈에는 그들의 행동이 팽팽히 당겨진 실 같아서 칼만 대면 뚝 끊어질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뜻. 

 

그의 입가로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쯤은 추호상도 알고 있다고 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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