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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7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5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73화

 

73화

 

 

 

 

 

 

 

 

백의청년의 말에 은의인의 눈 깊은 곳에서 바람이 일렁거렸다.

 

“완성되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긴 하다만, 비 사제 말대로 시험 삼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천마교에 그와 비슷한 약이 있다 했으니, 그 약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만족한 듯 은의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 같구나. 실패해도 화살이 그쪽을 향할 테니 말이야.”

 

“혹시 모르니, 사람은 이 사형이 대는 게 어떻겠습니까?”

 

실패할 경우 상대의 눈을 혼란시키자는 말.

 

그러면 계획이 틀어진다 해도 최소한 시간은 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잖아도 황의청년은 몸이 근질거리던 터였다. 그는 백의청년의 말속에 숨은 뜻이 어떻든 상관없었다.

 

“좋아. 날만 잡게. 사람은 내가 대지!”

 

 

 

3

 

 

 

마룡부뿐만이 아니라 구룡성 전체가 뒤집어졌다.

 

부주의 아들이 소환되었다는, 그것도 두들겨 맞고서 강제 압송되었다는 소문은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일파만파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마룡부주 혁성화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호연청에게 사람을 보냈다.

 

사자로서 호연청을 찾아온 장로 기척양이 혁성화의 말을 전했다.

 

“부주께서 서운해 하고 계십니다. 그런 일이 있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순순히 협조해 줬을 거라고 하셨지요.”

 

“허어, 사실 나도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소이다. 어쨌든 내가 잘 타일러 보겠소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뭐 그럴 수도 있지.’하는 표정이다.

 

기척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자신보다 반 단계 위 서열인 호연청에게 대놓고 소리치지는 못했다.

 

“일단 단주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부주께서 분노하시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단주께서도 잘 아실 테니까요.”

 

“지금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요?”

 

“그게 아니라, 부주께서 그만큼 서운해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좌우간 잘 알아들었으니 그만 가보시구려.”

 

“그럼 그렇게 알고 가겠습니다.”

 

 

 

말이 서운하다는 것이지,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을 것이다.

 

기척양이 나가자 호연청은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설마하니 혁천기를 패대기쳐 잡아올 줄이야.

 

‘흐음, 하루의 말미를 얻기는 했는데…….’

 

어차피 전쟁 중이 아닌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 시기가 너무 빨랐다.

 

상대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좋았는데, 너무 깊숙한 곳까지 건드렸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룡성의 성주를 뽑는 회의가 연일 진행 중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깊숙한 곳을 건드릴 기회가 언제 나겠는가. 

 

더구나 그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진다지 않던가.

 

“왔느냐, 상명.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려야 할까?”

 

그때다. 뒤쪽의 휘장 너머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서른 전후로 보이는 그는 백의를 입고 있었는데,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상을 지닌 자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어차피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싸움입니다. 그가 소란을 피울수록 웅크리고 있던 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일 테니, 저희에게는 손해날 것이 없지요.”

 

“하긴……. 그래, 다른 사람들을 만나봤느냐?”

 

“예, 숙부님.”

 

“뭐라더냐?”

 

“한 달은 지나야 결론이 날 것이니, 그동안 놈들을 파악하는 것에 주력해 달라는 말씀이셨습니다.”

 

“한 달이라……. 그럼 이무환을 그냥 놔두어야겠군.”

 

“제 생각에도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 시각.

 

이무환은 뒷일을 엽상과 유군명에게 맡겨놓고, 남궁산산과 영호승 등을 데리고 광룡대를 나섰다.

 

와룡부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갔다 오는 길에 다른 곳에도 들를 생각이었다.

 

말로는 특조대의 임무 때문이라고 했지만, 꼭 그 일만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광룡대를 나선 이무환이 한량처럼 한가한 걸음걸이로 걸은 지 이각, 저만치 와룡부의 정문이 보였다.

 

사실 조금 더 빨리 도착했을 것이었는데, 남궁산산이 전에 말한 선물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바람에 조금 더 걸렸다.

 

이무환은 내친김에 옥이 것도 하나 샀다.

 

옥이 것은 은자 다섯 냥, 꼬맹이 것은 세 냥짜리였다.

 

그런데도 남궁산산은 마냥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똑같이 다섯 냥짜리로 사줄 걸 그랬나?’

 

 

 

4

 

 

 

최근 들어서 구룡부 각 부의 정문은 열려 있는 적이 드물었다.

 

수룡단이 금룡부와 도룡부와 마룡부를 쳐들어가서 한바탕 휘저은 이후로 몇 곳의 문은 아예 굳게 닫혀 버렸다.

 

와룡부의 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들은 조금 다른 뜻으로 닫았지만.

 

탕탕!

 

혁수린이 나서서 문을 두드리자 쪽문이 열렸다.

 

무사 하나가 나오더니 수룡단의 복장을 보고 흠칫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오?”

 

“부주를 뵙고 싶소만.”

 

“부주님을?”

 

“그렇소. 수룡단의 특조대에서 왔다고 전해주시오.”

 

무사는 다행히 순순히 대답해서 수룡패에 머리를 두들겨 맞지 않아도 되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안에 들어가 기별을 하겠소.”

 

“그럴 필요 없소. 그냥 같이 들어갑시다.”

 

이무환이 마치 자기 집에 들어가듯이 무사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멋쟁이, 당신들은 여기서 쉬고 있어. 곧 나올 테니까.”

 

“예, 총대주!”

 

네 사람은 절도 있게 머리 숙였다. 따라 들어가서 가슴을 졸이느니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

 

와룡부 무사 유열은 그들을 보고 언뜻 들었던 한 가지 소문이 떠올랐다.

 

 

 

―수룡단 특조대의 대주는 미친놈이다. 그는 어린 소녀를 데리고 다니는데, 이제 겨우 스무 살이 조금 넘은 젊은 놈이다.

 

그렇게 젊은 나이의 그가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특조대를 맡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 그가 완전히 미쳤다는 것이다. 아니라면 어떻게 마룡부에 쳐들어가 직접 부주의 아들을 패대기쳐서 잡아간단 말인가!

 

 

 

‘맙소사, 이자가 바로?’

 

제법 한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총대주라 불렀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자가 바로 그자라는 말이다.

 

광룡(狂龍) 무환!

 

구룡성의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요즘 최고의 안주거리로 삼으며 술좌석에서 씹어대는 자.

 

‘그런데 이자가 왜 여기를 찾아온 거지?’

 

비상 상황이었다. 그것도 특급 비상 상황!

 

유열은 재빨리 뒤로 물러서서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동료 무사를 바라보았다.

 

“조 형, 이분들을 모시고 함께 오게. 나는 먼저 들어가서 손님이 왔다는 걸 알려야겠네.”

 

“어? 알았네.”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한 조구가 이무환을 삐딱하니 쳐다보았다.

 

“이봐, 쓸데없이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나만 따라와.”

 

달려가려던 유열이 이를 악다물었다.

 

‘저게 죽으려고 환장했나? 상대가 누군지 알고!’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조구가 맞아 죽으면 그건 그의 삶이 거기까지밖에 안 된다는 하늘의 뜻이었다.

 

유열은 그렇게 생각하며 정신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방양고가 직접 이무환을 맞이했다.

 

유열의 전언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광룡이라 불리는 특조대의 대주 같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롱초롱하니 맑은 두 눈, 붉게 마저 느껴지는 꾹 닫힌 입술. 계집아이들이 좋아할 만큼 잘생긴 얼굴이다.

 

아무리 봐도 미친 자로 보이지 않는다.

 

왜 이자를 미쳤다고 하는 걸까?

 

방양고가 쓸데없는 고민을 하며 이무환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는 사이, 방양고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이무환이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무환이라 합니다.”

 

“나는 방양고라고 하네. 부주님께선 급한 일 때문에 나오실 수가 없으시니 나하고 이야기하지. 좌우간 특조대의 대주를 이렇게 직접 보다니 영광이군.”

 

이무환은 굳이 제갈무진을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방양고와 이야기해도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

 

“별말씀을. 꼭 뵈었으면 했는데, 부주님께서 바쁘시다니 할 수 없지요.”

 

“그리 앉게나.”

 

‘흠, 말투도 예의 바르고, 듣던 것과는 좀 다르군.’

 

방양고는 그때까지도 이무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가, 이무환과 남궁산산이 의자에 앉자 툭 던지듯이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이무환이 되물었다.

 

“전대 성주이신 구룡무제께서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갑자기 소란이 있었다 들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방양고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실이네. 하나 그 일과 전대 성주의 시해와는 아무 상관도…….”

 

이무환이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싹둑 끊었다.

 

“아아, 그건 저희가 판단할 일입니다. 귀하는 그저 대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방양고는 슬그머니 핏줄이 하나 돋았다.

 

하지만 수양이 깊은 자답게 금방 기분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물었다.

 

“뭘 알고 싶은 건가?”

 

“들으니 도둑이 들었다고 하던데, 정말 도둑이 들었습니까?”

 

“그렇다네. 그러나 단순한…….”

 

“뭘 잃어버리셨습니까?”

 

“별것은 아니네. 단순절도범인 것…….”

 

이무환은 방양고의 말을 계속 가위로 쳐냈다.

 

“아하, 그것은 저희가 판단한다니까요?”

 

‘이 자식이!’

 

소문이 완전히 잘못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감히 자신의 말을 툭툭 끊어대다니.

 

방양고는 두어 줄기의 핏줄이 더 돋아나자 깊게 숨을 쉬고 말했다.

 

“사실 잃어버린 것도 별것 없어서…….”

 

“그게 뭡니까? 중요한 것이든, 아니든 다 말해보십시오. 혹시 압니까?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이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고…….”

 

이번에는 방양고가 이무환의 말을 잘라먹었다. 기회라는 듯.

 

“어허,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왠지 모르게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어떠냐, 이놈!’

 

하지만 이무환은 방양고처럼 참지 않았다.

 

“왜 제 말을 끊는 겁니까? 잃어버린 물건이 뭐냐는 질문도 자꾸 회피하고……. 이거 아무래도 수상한데?”

 

흘겨보는 게 꼭 도둑놈 보는 표정이다.

 

방양고는 확 열불이 솟았다.

 

“그대가 먼저 말을 끊지 않았는가?”

 

“그거야 귀하와 제가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꼭 그 짝이구만?”

 

뭐라? 방귀 뀐 놈이 어째?

 

‘이 어린놈의 자식이 정말……!’

 

방양고가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잘생긴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두 눈은 더 이상 초롱초롱 빛나지도, 맑지도 않게 보였다.

 

게다가 붉은 입술은 더 얄미워 보였다.

 

“듣기 싫으면 말게.”

 

“언제 말해주기라도 했습니까? 잃어버린 게 뭡니까?”

 

“그건……. 험, 미안하지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네.”

 

“흠, 그 말이 꼭, 그만큼 중요한 물건이라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이거 안 되겠군. 부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직접 들어봤으면 싶은데요.”

 

“글쎄,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니까?”

 

“그건 제가 판단한다니까요? 뭡니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오랜만의 분노에 방양고는 손끝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때 이무환이 남궁산산을 보며 말했다.

 

“손까지 떠는 걸 보니 정말 중요한 물건인 것 같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 압송할까?”

 

“옥이 꽉 찼잖아요?”

 

“하나 남았을 걸? 왜, 구석에 핏물 고이는 방 있잖아. 썩은 냄새 때문에 손님을 받지 않아서 지금은 비었을 거야.”

 

“그 방에는 지금 혁천기가 들어가 있잖아요?”

 

방양고의 끓어오른 가슴에 찬물이 부어졌다.

 

앞에 있는 이무환이 제정신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왜 이놈을 사람들이 광룡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갔다.

 

눈앞에 있는 놈은 진짜로 미친놈이었다.

 

그때 문득, 얼마 전에 자신이 내놓은 안건이 불쑥 떠올랐다.

 

방양고는 악문 이에 힘을 더 주었다.

 

‘이런 미친놈을 도와주자고 하다니. 내가 미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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