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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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72화
72화
제9장. 왜 내 말을 안 믿어?
1
다음 날.
폭풍이 불었다. 아니, 그건 폭풍이 아니라 태풍이었다.
이무환이 오십 명의 구룡수호단과 광룡대 전원을 데리고 마룡부로 쳐들어간 것이다.
마룡부주가 신룡부로 간 사이, 특조대의 조사를 이유로.
사과는커녕 거꾸로 사람을 잡으러 가자 마룡부가 뿌리째 뒤집혔다.
마룡부의 장로, 패도절산(覇刀折山) 지영교가 특조대의 앞을 가로막고 노성을 내질렀다.
“참으로 낯이 두꺼운 놈이로구나! 우리 마룡부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더냐! 놈들을 막아라!”
지영교의 분노에 찬 노성에 몇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특조대를 제지했다.
하지만 나선 자치고 제대로 걸어서 연무장을 벗어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조사를 막는 자는, 구룡률에 의거, 모조리 때려눕혀라!”
이무환의 명령이 떨어지자 구룡수호단의 수장들이 직접 나섰다.
북리웅도, 백장청도, 상관수도 강했다.
처음에는 마룡부의 중간 간부급 무사들이, 나중에는 당주와 단주들이 그 세 사람에 의해서 연무장에 큰대 자로 뻗어버렸다.
십여 명의 고수가 널브러지자 세 명의 장로와 호법이 나섰다.
“모두 물러서라! 그놈들은 우리가 맡겠다!”
북리웅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지나가듯이 물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세 사람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환은 팔짱을 끼고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잘하면 오늘 세 사람의 진실 된 무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쉽게 승부가 나지 않을 테니,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 터. 운이 좋으면 자신이 진짜로 원하던 자가 모습을 보일지도 몰랐다.
절대 손해날 일이 없었다.
“그럼 해보쇼. 장로라는 사람들이니, 적어도 졌다고 울고불고 원망은 않을 거요.”
쾅! 따다당!
여섯 사람의 기운이 부딪치며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문 채 공방을 펼치는 그들의 표정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굳어졌다.
북리웅은 벽살도 지영교와 백장청은 장마 남승경과 상관수는 마수귀검 오춘위와 대결했다.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백중지세의 격전이 삼십 초가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무장의 격전을 바라보던 이무환의 눈빛이 번개처럼 번뜩였다.
전마각의 삼층에서 누군가가 연무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음습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을 지닌 자.
‘놈이다!’
마침내 그토록 찾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깊숙한 곳에 있는데다 창문이 조금만 열려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눈발, 표 내지 말고, 전마각 삼층 맨 좌측의 창문이 조금 열린 방에 누가 있는지 알아봐!>
이무환의 전음에 엽상이 천천히 뒤로 빠졌다.
그때 마존각의 문이 열리더니 십여 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을 바라보는 이무환의 입가로 가느다란 미소가 번졌다.
‘흐흥! 그동안 어떤 대책들을 수립했는지 몰라도, 오늘은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거다.’
“모두 멈춰라!”
마존각에서 나온 자들 중 근엄한 표정을 한 노인이 커다랗게 소리쳤다.
그가 바로 마룡부주 혁성화의 아우이며, 마존각의 각주인 마존수(魔尊手) 혁성신이었다.
그의 외침이 연무장을 뒤흔들자 백중지세의 격전을 벌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뒤로 물러섰다.
격전이 멈추자 혁성신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특조대의 대주인가?”
“그렇습니다.”
“어제 장 장로를 데려갔다 들었네. 한데 또 무슨 일로 온 것인가?”
“그야 데려갈 사람이 더 있어서 왔습니다.”
“누굴 데려가겠다는 건가?”
혁성신이 짐짓 노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무환은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그의 검지가 한 사람을 가리켰다.
“마침 본인이 나와주셨군요. 제가 데려갈 사람은 바로 저 사람입니다.”
혁성신의 눈이 이무환의 검지를 따라 움직였다.
순간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대가 감히 나를 놀리겠다는 건가?”
이무환이 가리킨 사람. 그는 이십대 후반의 청년이었는데, 그가 바로 마룡부주 혁성화의 둘째 아들인 혁천기였던 것이다.
“가서 잠깐만 조사를 받으면 됩니다. 설마 부주의 아들에게는 면책권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뭐라고? 네놈이 감히!”
발끈한 혁성신이 이무환을 가리키며 노성을 내질렀다.
그때다. 이무환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혁천기! 특조대의 이름으로 그대를 소환한다! 어기면 구룡률에 의거, 강제로 압송할 것이다!”
혁천기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미친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날뛴단 말이냐?”
“강제 압송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 않겠지?”
“어디 재주가 있으면 해봐라.”
찰나였다.
이무환의 신형이 죽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순식간에 이무환이 자신들 앞으로 다가오자 혁성신의 좌우에 있던 두 명의 중년인이 튀어나갔다.
“멈춰라!”
“막는 자는 용서치 않는다!”
콰광!
일수 일장에 두 명의 중년인이 벼락처럼 튕겨졌다.
동시에 이무환의 신형이 그대로 혁천기를 덮쳤다.
“헛! 네놈이 어디서!”
대경한 혁성신이 쌍장을 휘둘렀다.
콰앙!
두 사람의 장력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찰나, 이무환의 신형이 옆으로 빙글 휘도는가 싶더니, 그의 갈고리처럼 펼쳐진 두 손이 혁천기를 잡아갔다.
“건방진 놈!”
혁천기는 자신만만하게 이무환의 손을 후려쳤다.
무공에 자신이 있는 그였다. 이까짓 어린놈 정도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이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조심해라, 천기야!”
숙부의 염려는 쓸데없는 기우일 뿐.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애송이가 그저 가소롭기만 했다.
‘오늘 내 진면목을 확실히 보여주겠어!’
자신이 누군가. 마룡부주의 둘째 아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무환과 손이 얽혀들고 삼 초쯤 지났을 때다.
떠더더덩! 퍼버벅!
손목이 부러진 듯 강렬한 통증이 뇌리를 울리고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붕 뜬 것을 느낀 순간,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안 돼!’
퍼벅!
이무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혁천기의 혈도 두 군데를 점한 다음, 팔을 잡아서 패대기치듯 휘둘렀다.
혁천기의 몸이 붕 뜨더니 허공에서 한 바퀴 휘돌고 바닥에 처박혔다.
쾅!
“커억!”
“혁천기, 그대를 압송하겠다!”
혁천기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이무환은 땅바닥에 패대기친 혁천기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혁성신을 바라보았다.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혁성신을 비롯한 장로와 호법들은 넋이 반쯤 빠진 상태였다.
눈앞에서 빤히 보고도 막지 못했다. 설마하니 혁천기가 몇 수 만에 패대기쳐질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장옥조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더니, 조금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멈춰라, 이놈! 어딜 가겠다는 거냐!”
호법인 유곡이 노성을 내지르며 무사 십여 명과 함께 광룡대의 뒤를 막아섰다.
이무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다보고는 혁성신을 응시했다.
“막으실 겁니까?”
혁성신의 눈빛이 흔들렸다. 다른 때라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 퇴로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혁천기의 멱살을 잡아 든 저놈은 제정신을 가진 놈 같지 않았다.
막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자신들을 위협하기 위해서 혁천기의 팔다리 한두 개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꺾을 놈처럼 보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이야.’
아니나 다를까, 이무환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립니다만, 저희를 막다가 혁 공자의 목뼈라도 부러지면, 그에 대해서는 마룡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겁니다.”
두어 번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정리한 혁성신이 유곡을 향해 손을 저었다.
“물러서게, 유 호법.”
유곡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물러서자, 혁성신이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언제 보내줄 건가?”
“글쎄요, 일단은 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뭐, 부주님께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주십시오.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이……! 후우…….”
혁성신이 두 손을 움켜쥐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패는 이미 이무환에게 넘어간 상황. 이를 부드득 간 그는 분노를 억눌렀다.
“내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천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수룡단은 끝장이다. 명심하도록!”
이무환이 그를 무저갱처럼 깊은 눈으로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하죠. 당신까지 잡아가서 마룡부와 당장 전쟁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쇼. 우리 아버지도 말리지 못하는 나요. 나란 놈은 미쳐 버리면 앞뒤를 가리지 않지요. 그러니까 나를, 미치게 하지 마란 말이오!”
그가 멱살이 잡힌 혁천기를 홱 던졌다.
“도끼, 받아!”
그러고는 혁성신을 한번 노려보고 홱 몸을 돌렸다.
“철수한다! 돌아가자!”
이무환이 등을 보인 채 걸어가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지 못했다.
혁성신은 피가 나도록 주먹 쥔 손에 힘을 주고 이무환의 등을 노려보았다.
마룡부의 무사들은 그런 혁성신의 눈치만 보았다.
하지만 이무환이 특조대와 함께 마룡부를 나설 때까지도 혁성신의 굳게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저놈은… 진짜 미친놈이다. 왠지 좋지 않은 느낌이 드는 놈이야.’
2
마룡부의 일이 일어난 지 두 시진 뒤.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댔다.
덩치가 커다란 황의청년이 벌게진 얼굴로 대들듯 말했다.
“풍 사형, 언제까지 놈의 행태를 보고만 있을 겁니까?”
은의인이 그런 황의청년을 노려보았다.
“네가 지금 나를 책망하자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시잖습니까? 벌써 십여 명의 중견 간부가 잡혀가고 몇 군데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습니다. 이러다 사부님이 분노하시기라도 하면…….”
“그렇게도 모르겠느냐? 사부님이 왜 가만히 계시는지?”
“그거야 저희에게 해결하라고…….”
“멍청하긴!”
“사형!”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면 좋아할 놈이 누구겠느냐? 그러잖아도 기회만 기다리고 있는 놈들인데, 놈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아마 수룡단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도우려 할 거다. 그럼 그만큼 수룡단의 힘은 강해지고, 싸움이 길어지겠지. 게다가 호시탐탐 구룡성을 노리던 천마교도 더욱 적극적으로 손을 뻗칠 테고 말이다. 직접 놈을 치는 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야.”
“그럼 그냥 두고 볼 겁니까?”
“그럴 수는 없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한 달 안에 누가 성주가 되는지 결정 난다. 그때가 되면, 놈들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이곳을 떠나든, 고개를 숙이든.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그래서 천룡을 제거한 겁니까? 시간을 벌기 위해서요?”
“종 사제. 함부로 입을 열지 마라. 죽고 싶으냐?!”
“죄송합니다, 사형. 하도 답답해서…….”
그때 말없이 앉아 있던 백의청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분 사형,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만은 없으니 사부님의 심려도 덜어드릴 겸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는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단아하니 순한 모습이 마치 학자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가 결코 학자도, 모습처럼 순하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해 본 것이라도 있느냐?”
은의인조차 그에게는 황의청년에게 하듯이 소리 질러서 말하지 않았다.
백의청년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대사형이 준비해 온 것이 있잖습니까? 이제 시험해 볼 때도 된 것 같습니다만. 사부님께서도 결과를 기다리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