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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71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71화

 

71화

 

 

 

 

 

 

 

 

이무환이 성큼성큼 걸어가자, 영호승 등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걸음을 빨리했다.

 

이무환 일행이 장옥조를 메고서 빠르게 연무장을 가로지르는 걸 몇 사람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묻지 않았다.

 

풀어헤쳐진 머리가 장옥조의 얼굴을 완전히 덮고 있었다.

 

설마 곤죽이 되어 남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사람이 장로인 장옥조일 것이라고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을 것인가.

 

그들이 막 정문으로 다가갈 때다. 정삼이 막위의 어깨에 걸쳐진 장옥조를 이리저리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누굽니까?”

 

이무환이 정삼을 바라보았다.

 

움찔한 정삼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다.

 

이무환이 그의 곁을 스쳐가며 말했다.

 

“내가 데리러 온 사람.”

 

고개를 갸웃거리던 정삼의 눈이 점점 커졌다.

 

옆에 있던 다른 무사가 슬며시 물었다.

 

“누구라고 그러던가? 아는 사람이야?”

 

 

 

5

 

 

 

소환된 사람은 총 여섯이었다. 처음부터 제 발로 걸어서 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특조대의 조사임을 밝히고, 한바탕 소란이 일고 나서야 겨우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문제는 이무환이 데려온 장옥조였다. 당연히 이무환이 떠나자마자 마룡부가 발칵 뒤집혔다.

 

이무환이 한잔의 차로 피곤(?)함을 달래고 있는데 호연청의 호출이 떨어졌다.

 

이무환은 마지막 한 방울의 찻물이 혀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쩝쩝, 잔소리는 듣기 싫은데…….”

 

 

 

호연청의 맞은편에 털썩 엉덩이를 내리자 곧바로 화살이 날아왔다.

 

“마룡부에서 강력하게 항의하더군. 당장 자네를 파직하라고 난리네.”

 

이무환은 시비가 가져다 놓은 찻잔을 바라보며 시큰둥하니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호연청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당장은 그럴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조금 마음이 풀어진 이무환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홀짝였다.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난리라니.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꽤나 볼만하겠군요.”

 

“저항이 더 거세질 텐데, 계속 밀어붙일 건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지금으로선 특조대의 조사를 핑계 삼는 게 제일 나은 방법 같습니다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호연청이 살짝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구룡성의 주인을 뽑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알고 있겠지?”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왔을 테니 애가 달았겠죠. 하나, 아무리 그렇다고 장례가 끝나자마자 권력에 눈이 벌게지다니…….”

 

구룡무제 이건천마저 죽은 마당. 더 참지 못할 거라 예상은 했었다. 가슴이 욕망으로 가득 찬 자들에게는 하루가 일 년 같을 테니까.

 

그렇다 해도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진행이었다. 그들을 위협할 세력이 없는 마당에 며칠을 기다리지 못하고 욕심을 드러내다니.

 

왠지 모르게 께름칙한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재촉하는 것일까?

 

결코 자신과 호연청의 공격에 흔들려서가 아니다. 그 정도에 흔들릴 자들도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서둘러 권력을 잡아야만 하는 이유가.

 

‘그들을 위협할 만한 세력이 나타나기라도 했나?’

 

그럴지도 모른다. 입 안에 집어넣기 직전의 구룡성을 누군가가 넘본다면 서두르지 않을 수 없겠지.

 

이무환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호연청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각 부에선 특조대의 조사가 그 일에 영향을 미칠까 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네.”

 

“뒤가 구린 사람일수록 더 그럴 겁니다. 단주께선 그냥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한 사람을 잡아들이면 그만큼 상대할 적이 적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걱정 말게. 모든 것은 자네에게 맡기고 나는 지켜보기만 할 테니까.”

 

언뜻 들으면 그만큼 자신을 신뢰하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꼭 그런 이유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무환은 잘 알고 있었다.

 

‘훗, 만약의 경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기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

 

어쨌든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나았으니까.

 

“나머지 사람들도 내일 소환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법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말이지요.”

 

조금 거친 방법을 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숨어 있는 놈들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이무환이 하얗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서 본격적인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호연청도 조용히 웃었다.

 

“수고하게나.”

 

손도 안 대고 코를 풀게 되었으니, 그 역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6

 

 

 

촤악!

 

물이 뿌려지자 장옥조가 눈을 떴다.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어 있었다.

 

“원래 얼굴은 치지 않으려 했는데, 장로님이 허리를 숙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거요. 이해하쇼.”

 

이무환의 말에 장옥조가 고개를 저었다.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완벽한 패배였다. 핑계를 대는 것이 창피할 정도의 완벽한 패배. 그것도 십 초가 안 되어서.

 

“크큭, 나 장옥조도 이제 죽을 때가 된 것 같군.”

 

장옥조가 자조의 웃음을 흘리며 탄식하듯 말하자 이무환이 물었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묻지요. 언제부터 잠풍련을 알았습니까?”

 

장옥조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가 거의 감긴 눈을 억지로 뜨며 말했다.

 

“나는 잠풍련을 모르네.”

 

“말싸움하기 위해 데려온 것이 아닙니다. 다시 묻지요. 잠풍련의 사람들과 언제부터 한 배를 탔습니까?”

 

“나는 잠풍련과 아무런 관련이 없네.”

 

똑같은 말투로 부인하는 장옥조다.

 

이무환이 그의 앞에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그의 지난 행적이 적힌 보고서였다.

 

장옥조의 눈이 보고서를 향하자 이무환이 말했다.

 

“장소춘이 아들이지요? 그를 불러올까요?”

 

장옥조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서른이 넘어서야 혼인을 했다. 그리고 혼인한 지 오 년 만에 아들을 하나 얻었다. 그 아이가 바로 장소춘이었다.

 

아들의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 뭘 의미라는지 모를 그가 아니었다.

 

그의 눈이 질끈 감겼다.

 

이무환이 그걸 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지간하면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는데, 장로님이 계속 그러시면 저도 하는 수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아들이 이곳으로 끌려오면 저도 그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장옥조는 천천히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사이로 이무환이 보였다.

 

담담한 표정에 조용한 말투. 서책이나 끼고 지낼 것 같은 서생 같은 유순한 표정. 조금 잘생겼다는 것만 빼면 무인으로서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놈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놈이 자신은 물론 마룡부 마검단의 무사 열둘을 웃으면서 반쯤 죽여 놓았다.

 

그는 오늘에서야 세상에 이무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무환이 아무리 독사보다 독한 놈이라 해도 순순히 굽힐 수는 없는 일.

 

그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발악처럼 말했다.

 

“감히 나를 이렇게 취급하다니, 마룡부 전체와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세력에 기대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뭘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저는 마룡부와 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행히 조금은 먹혀든 것 같다.

 

어차피 뱉은 말. 장옥조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땡감을 베어 문 표정으로 한마디를 마저 뱉어냈다.

 

“그럼 나를 풀어주게. 오늘의 일은 나의 잘못도 있는 만큼 더 따지지 않겠네.”

 

“아직도 모르시는군요.”

 

조금 이상함을 느낀 장옥조가 이무환을 주시했다.

 

“무슨 말인가?”

 

“나는 마룡부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잠풍련과 싸우려는 것입니다. 물론 마룡부가 거치적거린다면, 마룡부와도 싸워야겠지만요.”

 

“어리석은 짓……!”

 

“마룡부가 뭐 대단하다고 그러십니까?”

 

조금도 변함없는 억양.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다.

 

마룡부 정도는 조금도 걱정할 것 없다는 태도.

 

문득 웃으면서 마검단 무사들 팔다리를 부러뜨리던 광경이 떠오르자 장옥조는 소름이 돋았다.

 

‘이놈은 정말로 마룡부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어!’

 

그때 이무환이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멋쟁이, 가서 장소춘을 데려와라. 반항하면 팔다리를 잘라 버리고 목숨만 붙여서 데려와.”

 

“예, 총대주.”

 

뒤에 서 있던 영호승이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장옥조가 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는 겐가!”

 

이무환이 보고서를 한 장 제쳤다.

 

뒷장에는 장소춘에 대한 것이 적혀 있었다.

 

유흔의 시신을 몰래 반입한 사람. 그가 바로 장소춘이었다.

 

“마지막으로 묻지요. 잠풍련을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장옥조가 푸들푸들 볼살을 떨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그, 그건…….”

 

그가 더듬거리자 이무환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언제부텁니까?”

 

“삼… 년 전부터네.”

 

후환이 두려웠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었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당장 아들이 끌려올지 몰랐다. 팔다리 잘린 병신이 되어서.

 

눈앞에 있는 놈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반 시진 후.

 

이무환은 형옥을 나서며 형옥당주 적사중에게 몇 가지를 요구했다.

 

“귀한 손님들이 올지 모르니 몇 가지 준비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적사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뇌옥은 뇌옥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자가 와도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 물론 장로 이상의 신분을 지닌 사람이 잡혀온 적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잘해줄 생각은 없었다. 특조대 할아비가 부탁해도 마찬가지였다.

 

형옥의 책임자는 자신이지 특조대가 아닌 것이다.

 

적사중은 여차하면 거부할 생각을 하고 되물었다.

 

“준비를 하라면 어떤 걸……?”

 

이무환이 형옥 안을 바라보더니 안쪽을 가리켰다.

 

“저 구석진 곳 안쪽에 손님들을 모실 겁니다.”

 

그곳을 바라보던 적사중의 이마에 골이 깊게 파였다.

 

이무환이 가리킨 곳. 그곳은 형옥에서 제일 구석진 곳이었다. 사시사철 곰팡이가 슬어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곳. 게다가 비라도 많이 오면 물이 고여 썩어가는 곳이기도 했다.

 

‘저곳을 치우려면 애들 땀깨나 흘려야 할 텐데……. 썩을…….’

 

은근히 짜증이 났다.

 

죄수들 때문에 죄도 없는 수하들을 고생시킬 수는 없었다.

 

“다른 곳도 있는데 굳이 그곳을…….”

 

적사중이 짜증을 내며 거부하려는데 이무환이 말을 이었다.

 

“방마다 썩은 피도 좀 뿌려놓고, 어디 가서 썩은 고기 있으면 구해서 구석구석에 끼워놓고……. 흠, 벌레도 좀 잡아서 친구 삼아 놀게 넣어주면 더 좋겠는데 말이지요.”

 

생사람 잡는 살벌한 방처럼 꾸미라는 말.

 

입을 다문 적사중이 멍한 눈으로 이무환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잘생긴 얼굴이다.

 

저런 얼굴에서 어떻게 그런 생각이 나오는 걸까?

 

그런데 묘하게도 적사중은 그 말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정말… 그렇게 하란 말인가?”

 

“더 좋은 방법이 생각나면 당주님이 알아서 준비해 주십시오.”

 

문득 한 가지가 생각났다.

 

“잘게 부서진 개 뼈를 좀 넣으면 어떻겠나?”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이무환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에 한 번 웃음을 보기 힘들다는 냉혈사 적사중이 입술을 씰룩이고 웃으며 머리를 굴렸다. 뇌옥을 지옥답게 꾸미기 위해서.

 

‘또 뭐가 있을까? 머리카락에 돼지피를 묻혀서 뿌려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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