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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66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5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66화

 

66화

 

 

 

 

 

 

 

 

이무환이 이를 악문 채 감정을 추스르는 동안, 뒤에서는 남궁산산이 사람들을 지휘했다.

 

“절대 빠르게 움직이지 말고 발밑을 조심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떼세요. 이상한 점이 있으면 뭐든 놓치지 말아야 돼요. 그게 어떤 것이든. 그쪽의 네 사람은 천장을 조사하고, 거기 세 사람하고 언니는 저와 함께 방을 조사해요.”

 

마치 수십 년간 살인사건을 조사한 즙포사신처럼 남궁산산의 지시는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이봐요! 거기 덩치 큰 아저씨! 벽을 그렇게 뜯어내면 어떻게 해요?”

 

“부서져 있어서…….”

 

기세가 죽은 백장청이 더듬거리며 얼버무렸다.

 

남궁산산이 그런 백장청을 몰아붙였다. 손을 하늘로 쳐든 채 콕콕 찌르며.

 

“뭐든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제 말이 그렇게 우스워요? 오빠! 이 아저씨, 이자를 한 달에 두 냥씩 받아.”

 

게다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장난스런 말까지.

 

이무환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우울하게 보이는 자신을 달래려는 것 같다. 아무래도 자신에 대해 뭔가를 눈치 챈 것처럼 보인다.

 

눈치가 귀신같은 꼬맹이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스스로가 한심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백장청이 침상 끝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어? 이게 뭐지?”

 

그가 몸을 굽혀 바닥에 길게 누워 있는 뭔가를 집어 들려고 하자 남궁산산이 재빨리 말렸다.

 

“만지지 마, 덩치 아저씨!”

 

남궁산산의 한마디에 백장청의 곰 같은 몸이 그대로 굳었다.

 

병아리만 한 남궁산산이 곰 옆에 몸을 수그리더니,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검게 변색된 실 한 가닥을 집어 올렸다.

 

그걸 찬찬히 살펴본 남궁산산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덩치 아저씨, 잘했어요!”

 

백장청이 자신도 모르게 활짝 웃음을 지었다.

 

사람들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곧 웃음을 지우고 남궁산산의 손을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죽도록 고생할 뻔했다구요. 봐요, 이건 천잠사 중에서도 백색천잠사라 거의 반투명하게 보일 정도예요. 그런데 여기가 검게 물들었잖아요. 보이죠?”

 

백장청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환도 고개를 돌리고 남궁산산의 손에 들린 가느다란 실을 바라보았다.

 

“독이에요. 그것도 천하의 구룡무제를 단숨에 절명시킬 정도의 치명적인 독.”

 

“그걸 어떻게 알았지?”

 

백장청이 멍하니 실을 바라보며 물었다.

 

남궁산산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백장청을 바라보면서 손수건 한쪽을 내밀었다.

 

“덩치 아저씨, 여기다 살짝 피를 흘려봐요.”

 

백장청이 손가락 끝을 내공이 스민 손톱으로 긁었다.

 

한 푼 정도가 그어지자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남궁산산이 말했다.

 

“이게 뭐죠?”

 

“그거야 내 피지.”

 

“그거예요. 이건 피. 이건 독. 내 눈엔 그게 확실하게 보여요.”

 

단순히 그걸 알려주기 위해 손을 베어 피를 내라고 했단 말인가?

 

백장청이 손에 괜한 상처를 냈다는 후회를 할 때다.

 

남궁산산이 실을 상처에 가져다 댔다.

 

순간 빨갛던 피가 부글부글 끓더니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헛!”

 

백장청을 비롯한 사람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그걸 빤히 쳐다보았다.

 

남궁산산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쯔쯔, 꼭 먹여줘야 맛을 안다니까.”

 

백장청은 입을 꾹 닫고 슬그머니 남궁산산의 눈을 피했다. 남궁산산이 무섭게 느껴지는 사람이 또 하나 늘어난 순간이었다.

 

그때 남궁산산이 손수건에 코를 들이댔다.

 

“꼬맹아, 위험해!”

 

이무환이 급히 말렸다. 하지만 남궁산산은 코를 떼지 않고 몇 번 더 킁킁거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남궁산산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이무환이 놀라 소리쳤다.

 

“중독된 거냐? 이런!”

 

그가 급히 남궁산산에게 다가가려는데 남궁산산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설마… 천살지독?”

 

“무슨 말이야? 천살지독이라니?”

 

이무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남궁산산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정확하지는 않아요. 단지 말로만 들었던 천살지독과 같은 결과가 나와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 이름이 중요한 것이냐?”

 

“중요하다면 중요하죠. 그것도 아주.”

 

여전히 굳은 표정의 남궁산산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제가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천살지독에 대한 말을 밖에 해서는 안 돼요.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니까.”

 

“어? 어. 그러지 뭐.”

 

이무환이 대답하고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모두가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남궁산산이 반 정도가 검게 변색된 실을 손수건으로 감싸고 일어났다.

 

“오빠, 일단 시신을 봐야겠어요. 그리고 그분이 입고 있던 옷도.”

 

“알았다. 또 다른 것은?”

 

이무환의 말에 남궁산산이 천장을 바라다봤다.

 

“위에서 발견한 걸 보구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장에서 엽상의 말이 들려왔다.

 

“총대주,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것 같은데, 예상보다 파손된 곳도 없고, 핏자국만 보입니다.”

 

뒤이어 영호승의 말도 들렸다.

 

“침상 바로 위에 조그만 구멍이 두 개 나 있습니다.”

 

“밖으로 빠져나간 흔적은?”

 

“없습니다.”

 

 

 

잠시 후.

 

천장을 조사하고 내려온 남궁산산이 마치 눈으로 본 듯 말했다.

 

“아마 침상 위에서 실을 늘어뜨려 독을 그분의 입에 직접 넣었을 거예요. 그러다 어떤 이유로 행적을 들켰고, 벽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려다가 포위당하자 자결을 한 것 같아요.”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빈틈이 없는 추리였다. 자신의 생각과 똑같았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아마 범인은 자신에 대한 것을 모두 지웠을 것이다. 시신을 본다고 해도 그가 누군지 알기는 쉽지 않을 거야. 어떠냐, 그래도 봐야겠지?”

 

“당연히 봐야죠. 사람은 가끔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하는 수가 있거든요.”

 

이무환과 남궁산산이 마주 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래, 스스로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법이지.”

 

사람들은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오한이 들었다.

 

북리웅조차 얼굴이 굳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듣고 보면 당연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듣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단 일각이라는 그 짧은 순간, 두 사람이 백지에 완벽한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다.

 

눈만 남겨놓은 채.

 

화룡점정(畵龍點睛).

 

‘이제 눈을 그리는 일만 남았군. 과연 저들이 그것까지 해낼 수 있을까?’ 

 

 

 

2

 

 

 

구룡무제의 시신은 천룡전 뒤쪽의 사당에 안치되어 있었다.

 

이충선은 이충현으로부터 이무환에 대한 말을 전해 듣고는 어쩔 수 없이 사당의 문을 개방했다.

 

이무환은 관에 든 이건천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피식 웃으면서 ‘도둑놈!’ 하며 일어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었다. 

 

그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듣고만 싶다. 도둑놈이 아니라 더한 소리라도 환하게 웃으며 들을 수 있을 텐데…….

 

문득 눈 가장자리에 안개가 끼는 듯했다.

 

‘쳇, 그깟 놈들에게 당하다니. 구룡무제가 뭐 그리 시시해요?’

 

조금만 더 신경 쓸걸. 그랬으면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죄송해요, 백조부…….’

 

다른 사람들은 조금 떨어져서 이무환이 움직이기만 기다렸다.

 

“오빠…….”

 

남궁산산이 슬며시 소매를 잡아당긴다. 그제야 이무환은 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백조부님, 너무 걱정 마세요. 절대 구룡성을 놈들에게 넘겨주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때 옆에 앉은 남궁산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상하네?”

 

“왜?”

 

“제가 생각한 독이 맞다면, 중독 증상이 이보다 더 심각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덜해서 그래요.”

 

“그래?”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무환이 엽상을 바라보았다.

 

“비수 같은 거 있어?”

 

“예?”

 

흠칫한 엽상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종리난경도 이무환을 말렸다.

 

“시신을 훼손하면 안 됩니다, 총대주.”

 

이무환이 두 사람을 흘겨봤다.

 

“누가 훼손한대? 입만 벌려볼 거야.”

 

“그럼 이걸 써요.”

 

남궁산산이 머리에 꽂았던 비녀 하나를 뽑아주었다.

 

“비싼 것 같은데… 입 안에 독이 남아 있으면 못쓰게 될지 몰라.”

 

“나중에 오빠가 사주면 되죠.”

 

“그래서 하는 말이야. 더 싼 걸로 사줄 순 없잖아.”

 

사람들이야 질렸다는 눈으로 바라보든 말든, 이무환은 아까운 표정을 지으며 비녀로 이건천의 입을 벌렸다.

 

검게 변색된 입 안이 보였다. 이까지 검게 변해 있었다.

 

그걸 보더니 남궁산산이 말했다.

 

“역시 그랬군요.”

 

“뱉어냈지?”

 

“목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뱉어낸 것 같아요. 만약 안으로 들어갔다면 이까지 이 정도로 변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속은 순식간에 다 녹아버렸을 테지만. 그랬다면 아마 열을 셀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죽었을 거예요.”

 

“진짜 지독한 독이군.”

 

“그래서 범인이 들킨 것 같아요. 기침을 했든 어쨌든, 이분이 독을 뱉어내는 바람에 말이에요.”

 

묵묵히 이건천을 바라보던 이무환이 조용히 물었다.

 

“바로 돌아가셨을까?”

 

남궁산산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직이 대답했다.

 

“아마… 잠시 동안은 정신이 있으셨을 거예요.”

 

“그동안 지독한 고통 때문에 몸부림을 치셨겠지?”

 

“어쩌면…….”

 

순간 남궁산산이 눈을 반짝였다.

 

이무환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남궁산산을 쳐다보았다.

 

 

 

사당을 나선 이무환은 곧바로 이충선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에게 범인의 시신을 요구했다.

 

이충선이 눈을 크게 떴다.

 

“무슨 말인가? 범인이라니?”

 

눈감고 아웅하겠다는 뜻.

 

당연히 거기에 넘어갈 이무환이 아니었다.

 

“자결한 범인이 설마 어디로 도망갔겠습니까?”

 

“자결? 자결이라니?”

 

“다 알고 왔습니다. 설마 쓸데없는 말싸움을 하자는 건 아니시겠지요?”

 

“어허! 이 사람이!”

 

이충선이 짐짓 노기를 띤 표정으로 이무환을 몰아붙였다.

 

이무환이 뒤를 돌아다봤다.

 

“북리 단주, 상관, 백 부단주와 함께 범인의 시신이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져 보시오. 여기 계신 전주께서 보지 못하셨다고 할 정도라면, 아마 구석구석까지 뒤져야 할 거요. 소란이 이는 것은 내가 책임지겠소.”

 

어차피 기호지세, 북리웅이 고개를 반쯤 숙였다.

 

“알겠소이다, 총대주.”

 

이무환이 한마디 덧붙였다.

 

“특히, 지하는 더욱 철저히 조사해 보시오.”

 

지하라는 말에 이충선이 벌떡 일어섰다.

 

“자네, 정말 그럴 겐가?!”

 

그의 고함이 울려 퍼짐과 동시, 방문이 열리며 네 명의 무사가 들어왔다.

 

“전주, 무슨 일입니까?”

 

능히 절정에 다다른 고수들이다.

 

그러나 북리웅 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동안 이무환과 남궁산산에게 눌려 있던 백장청이 그동안 당한 분풀이라도 하겠다는 듯 앞장섰다.

 

“비켜라! 특조대주의 명을 수행 중이다! 비키지 않으면 힘으로 뚫고 나갈 것이다!”

 

우르르릉! 뇌음이 일며 쏟아지는 그의 기세에 들어선 자들이 움찔했다.

 

이무환은 속으로 ‘잘한다!’를 외치면서 몇 마디 말로 세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막는 자는 모두 제압해서 압송해!”

 

그러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충선을 바라보았다.

 

“아시겠지만, 특조대에게는 특권이 있지요. 원치 않게 제법 많은 사람들을 압송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충선의 얼굴이 순식간에 열두 번은 변했다.

 

“우리와 수룡단의 관계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꼭 이렇게 해야겠나?”

 

이무환이 무거운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범인을 보자는 겁니다. 구룡무제 어르신의 시해범을 잡자는 것이지요. 설마 그걸 막을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방문 쪽에서는 당장에라도 한바탕 싸움이 벌어질 판이다. 게다가 범인이 자결했다는 것까지 다 알고 온 마당이 아닌가.

 

이충선이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 네. 범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네만, 시신 한 구가 의당 지하에 있다는 말을 들었네. 그 시신이 자네가 찾던 것일지 모르겠구먼.”

 

그제야 이무환이 포권을 취하며 씩 웃었다.

 

“감사합니다, 전주. 분명 저희가 찾던 자일 겁니다.”

 

하지만 웃음은 그때뿐이었다.

 

홱 돌아선 이무환은 부글부글 끓는 화를 참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뒤에 늘어서 있던 몇 사람이 머뭇거리며 이충선의 눈치를 살폈다. 이무환의 살벌한 눈빛이 그들에게 꽂혔다.

 

“진짜로 끌고 가기 전에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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