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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64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3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64화

 

64화

 

 

 

 

 

 

 

 

‘안 됩니다,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그때 이건천이 덜덜 떨며 손을 들더니 무설강의 손을 잡고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그만…….”

 

쇠로 된 심장, 철심의 소유자 무설강의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에서 펄펄 끓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전의가 올 겁니다.”

 

“늦었…… 어. 이미 독기에 심장이 타 들어가고 있다. 그냥 내 말만 들어…….”

 

“사부님……. 크흑!”

 

손을 잡고 내력을 불어넣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부님 말씀대로 폐부가 녹고 심장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대라신선이 온다 해도 살릴 수 없는 상태. 참으로 지독하고도 악랄한 독이었다.

 

“놈……. 남자는 우는 것이 아니다.”

 

“세 번은 울어도 된다 했습니다.”

 

“그럼… 나중에 울어라. 우선은…….”

 

이건천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무환이를… 찾아가… 조카처럼……. 그리고 내 말… 전해……. 배게 밑에…….”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무설강조차 귀를 바짝 대야 들릴 정도였다.

 

그렇게 반의반 각 동안 말이 이어졌다.

 

무설강은 진짜 철사자처럼 몸이 굳어버렸는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설강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삼협의 물줄기처럼 흘러내렸다.

 

이건천의 손을 들어 얼굴에 가져다 댄 무설강이 소리없는 오열을 했다.

 

‘사부시여! 오! 사부시여!’

 

그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검주,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그제야 무설강은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들었다.

 

단순히 천룡전을 지키는 위사들을 말함이 아닐 터. 무설강은 이건천의 손을 박동이 멈춘 가슴에 올려놓고 빠르게 베게 밑을 훑었다.

 

작은 봉서가 손에 잡혔다.

 

그가 봉서를 재빨리 품에 넣고 돌아서자 십여 명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천룡 이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무설강은 이충선의 경악에 찬 표정을 바라보며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천룡지주, 구룡무제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뭐야? 도대체 네놈은 자객이 들 동안 뭘 한 거냐?”

 

무설강은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근무시간이 아닐 때 벌어진 일이라 하나, 변명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부님이 돌아가셨거늘. 

 

무설강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이충현이 뒤를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천룡부를 철저히 봉쇄하고 누구도 출입하지 못하게 해라. 만약 이 일을 밖으로 알리는 놈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 내가 직접 목을 칠 것이니라!”

 

 

 

날이 밝기도 전에 무설강은 공식적인 지위인 천룡검주의 지위에서 해직되었다. 이건천의 숨이 끊어진지 두 시진 만이었다.

 

겉으로는 자객의 침입을 막지 못한 데 따른 책임이 주 이유였다. 하지만 내면의 이유는 조금 달랐다.

 

무설강은 이건천의 제자와 같은 사람. 게다가 천룡전의 중추적인 고수로 신망이 높았다.

 

이충선과 이충현으로선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아마 죽일 수만 있다면 죽여서라도 죄를 물었을 것이다.

 

무설강은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충선의 분노에 찬 말을 묵묵히 듣고는, 품속에서 천룡검주를 상징하는 검주패를 내놓고 천룡전에서 물러났다.

 

 

 

2

 

 

 

일월의 마지막 날, 동이 트자마자 구룡성의 네 개 성문과 구룡부의 주요 건물에 일제히 조기(弔旗)가 올라갔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할 즈음, 방문이 나붙었다.

 

 

 

[천룡지주이신 구룡무제 이건천 공께서 금일 축시에 서거하셨노라! 모든 구룡성의 성도들은 머리에 검은 띠를 두르고 무제의 서거에 애도를 표하라! 열흘간 어떤 분쟁도 허락지 않을 것인즉, 어기는 자는 구룡의 법에 의거,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엽상이 방문을 가지고 이무환의 방을 들이닥친 것은 해가 뜨기도 전이었다.

 

구룡성 전체가 들썩이고 있던 터다.

 

남궁산산도, 영호승과 단우경과 막위와 혁수린도, 종리난경과 유군명도 약속이라도 한 듯 이무환의 방을 줄줄이 찾아왔다.

 

이무환은 엽상이 가져온 방문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엽상이 미간을 찌푸린 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단순한 죽음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무환이 어찌 모를까.

 

지병? 노환?

 

웃기는 소리다.

 

며칠 전에 봤을 때만 해도 정정하셨다.

 

설사 내상이 악화되었다 해도 천룡전에는 상주하는 의원이 있어서 며칠 사이에 급사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믿지 못할 말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걸까?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 볼걸.’

 

기회는 많았다. 바쁘다는 것도 다 핑계였다. 행여 다른 사람들을 만날까 봐 뭉그적거리다 보니 가보지 못했던 것일 뿐이다.

 

‘죄송합니다, 백조부.’

 

눈에 싸한 느낌이 든다. 눈자위가 뜨거워진다.

 

이게 핏줄의 정이라는 걸까?

 

“오빠……. 왜 그래?”

 

이무환이 고개를 숙이고 눈꺼풀을 떨자 남궁산산이 물었다.

 

천하의 악귀 이무환이 한 장의 방문에 슬픈 표정을 짓다니.

 

이무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영호승 등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엽상만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그때 이무환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내가 말이야…….”

 

언뜻 그의 눈에 물기가 보이는 듯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이무환의 눈만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소매로 눈가를 콕콕 찍으며 말했다.

 

“전부터 그랬잖아, 천성이 순한 사람이라고. 거기다 눈물이 많아서 남들 우는 것을 못 볼 정도로 마음도 여린 사람이야.”

 

엽상을 제외한 모두가 일제히 이무환의 얼굴에서 눈을 떼고 귀를 쑤셨다.

 

마치 절대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도 평소라면 눈을 부라렸을 이무환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이 움찔 동작을 멈추었다.

 

이무환은 광룡대원들이 어떤 표정을 짓든 상관하지 않고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 생각할 것이 있으니까 아무도 따라오지 마.”

 

따라가려던 남궁산산이 걸음을 멈추고 이무환의 등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왜 저러지?’

 

그녀의 눈이 이건천의 죽음을 알리는 방문을 향했다.

 

‘오빠하고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나?’

 

 

 

이무환은 방을 나오자 빠르게 광룡대를 벗어났다.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이었다.

 

어디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한 백조부인데 죽었다는 말을 듣자 가슴에서 용암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비룡도라면 마음껏 악도 쓰고, 울어도 보고, 분노를 토해낼 수 있을 텐데…….

 

‘아버지! 백조부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놈들이 그분을 해쳤어요. 어떻게 할까요? 진짜 미친놈처럼 날뛰어볼까요?’

 

문득 무심히 걸음을 옮기던 이무환이 걸음을 멈췄다.

 

저만치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천룡전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천룡전이 보이는 곳까지 나온 것이다.

 

‘백조부님, 백조부님은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들어가서 확 뒤집어 버릴까요?’

 

천룡전의 지붕 위에서 수십 개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천룡지주 구룡무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분의 왕생극락을 비는 조기들이었다.

 

이무환의 이가 지그시 악다물어졌다.

 

‘지금까지는 마지못해 했지만, 이제는 아니야. 개 같은 놈들! 두고 봐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눈에서 피눈물을 흘려도 봐주지 않을 거다!’

 

 

 

광룡대로 돌아간 이무환은 아침을 먹었다. 평소보다 곱절의 양을 아귀처럼 단숨에 해치웠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서서 호연청을 찾아갔다.

 

이무환의 뒤를 따라가는 엽상은 불안한 눈으로 이무환의 등을 바라보았다.

 

악귀가 제정신이 아니다.

 

악귀 이무환이 미친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등을 타고 송충이가 기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3

 

 

 

이무환이 호연청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지병이라는 말을 믿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이네. 다만 외부에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는 걸 우려해서 그리 알린 것뿐이지.”

 

“살해당하신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다.

 

이무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특급 사안이 터지면 특조대가 구성된다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특조대를 맡겠습니다, 단주.”

 

이무환의 말에 호연청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일명 특조대(特調隊).

 

이무환의 말대로 특급 사안을 맡아 해결하는 특별조사대를 말함이다.

 

대주는 일반적으로 수룡단 서열 삼위 이내의 지위에 있는 자가 맡았다.

 

이무환은 비록 임시로 만들어진 광룡대주지만, 굳이 따진다면 부단주와 비슷한 지위라 할 수 있다. 지위에서 큰 무리가 없다는 말이다.

 

정확한 관계는 몰라도 이무환이 천룡전과 가까운 사이일 거라는 것은 전부터 짐작하고 있던 일.

 

‘못하게 해도 어차피 덤벼들 놈이라면…….’

 

게다가 그로 인해 뜻하지 않은 바람이 불어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물론 폭풍이 불면 더 좋고.

 

호연청은 고개를 끄덕여 그의 청을 승낙했다.

 

“공정한 조사여야 하네.”

 

상투적인 호연청의 말에 이무환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아주 공정하게 조사할 생각입니다. 이번 일에 연루된 자는 그게 누구든 철저한 조사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그게 누구든… 말입니다.”

 

되풀이하듯 공정함을 강조하는 이무환이다. 왠지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말투에 호연청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룡부와 본 단의 관계를 모르지는 않겠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한데 구룡무제께서 돌아가신 지금에도 그 관계가 여전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호연청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구룡무제의 죽음이 대외에 알려지기도 전, 천룡전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언제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든, 아니면 다음 대의 부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욕심 때문이든, 그들은 수룡단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했다.

 

자신 역시 천룡부를 적대시할 생각은 없었다. 비록 마음에 안 드는 자들이 천룡부를 지휘하고 있지만.

 

“최소한 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네. 물론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야.”

 

“그럼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지요.”

 

“장례가 진행되는 열흘간 어떤 분쟁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 테니 더 말하지 않겠네.”

 

“걱정 마십시오. 분쟁은 없을 겁니다.”

 

“아쉽겠지만, 계획했던 소환도 미뤄야 할 거네.”

 

“그럴 생각입니다. 그동안 놈들에 대해 더욱 철저히 조사하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지요.”

 

열흘의 차이. 그것은 막 일을 시작한 수룡단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누군가가 그걸 노리고 벌인 일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몇 사람이나 있으면 되겠나?”

 

“일단 저희 광룡대와 구룡수호단에서 사람을 뽑겠습니다. 필요하면 나중에 더 추가를 하지요.”

 

“천룡부에 들어갈 사람은 열 명 이내로 한정해 주게.”

 

 

 

4

 

 

 

광룡대로 돌아온 이무환은 사람들을 불러서 천룡부에 들어갈 사람을 뽑았다.

 

광룡대에서 엽상, 유군명, 종리난경, 영호승, 혁수린을, 구룡수호단에서 북리웅, 백장청, 상관수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궁산산을 포함시켰다.

 

“특조대의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내 이름은 무환으로 통할 것이오. 그렇게 알고 실수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런데 남궁산산을 보고 북리웅과 백장청과 상관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장청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 소녀도 특조대원이란 말인가?”

 

“그렇소.”

 

“허, 나원,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백장청이 풀썩 웃으며 못마땅한 듯 말했다.

 

이무환이 그런 백장청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나는 장난하러 가는 게 아니오. 그리고 앞으로 일을 할 때는 말투를 바꾸시오. 아니면 내가 바꾸게 만들어줄 테니까.”

 

“뭐야? 꼴에 단주께서 권한을 주니까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이무환이 홱 고개를 돌렸다.

 

“눈발!”

 

“예, 총대주!”

 

“내기할까? 내가 저 인간의 말투를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글쎄요.”

 

엽상이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백장청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눕히는 데 십 초, 말버릇 고치는 데 반 각 정도면 되겠는데요?”

 

어이없다는 눈으로 이무환과 엽상을 번갈아 보던 백장청의 눈매가 쭉 찢어져 올라갔다.

 

“이 자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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