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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63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63화

 

63화

 

 

 

 

 

 

 

 

5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다음 날 아침.

 

여덟 사람이 호연청의 집무실에서 기다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호연청과 구룡수호단의 단주 북리웅, 좌부단주 백장청, 우부단주 상관수. 그리고 이무환과 세 명의 대주.

 

이무환을 구룡수호단의 세 간부와 함께 불렀다는 것은 한 가지사실을 의미했다.

 

이제 이무환과 광룡대에 대한 비밀을 밝힐 때가 되었다는 것.

 

조금 이른 감이 들었지만 이무환도 반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꼴에 자존심은 겁나게 세서, 일찌감치 잡아놓지 않으면 골치만 아플 것 같았으니까.

 

“수고들 많았네.”

 

호연청이 먼저 입을 열어서 그간의 수고를 치하했다. 

 

북리웅이 눈빛을 빛내며 그의 말을 받았다.

 

“신룡부와 마룡부도 이제는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이무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차만 홀짝거렸다.

 

작은 성과는 아니었다. 장로급과 당주급 고수들을 몇 때려잡았다. 덤으로 그들을 따르던 무사 수십 명도 솎아냈고. 

 

그 정도면 아쉬운 대로 괜찮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가 원한 것은 신룡부와 마룡부에 대한 견제가 아니었다. 

 

‘겨우 가지치기밖에 못했는데 좋아하기는.’

 

그때 호연청이 말했다.

 

“어떤가, 이 대주? 이제 자네가 전면에 나설 때가 된 것 같은데.”

 

호연청의 말에 북리웅 등 세 사람이 일제히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작전을 진행하는 동안 이상한 생각이 들긴 했다.

 

같은 대주이니 그런가 보다 하며 가볍게 넘기면서도, 엽상이 왠지 모르게 이무환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무환은 세 사람의 눈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호연청에게 다짐을 받았다.

 

“전에 말한 제 조건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물론이지. 자네가 원한다면 구룡수호단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도 주겠네.”

 

그 말에 북리웅과 백장청과 상관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호연청이 말을 이었다.

 

“작전 중일 때뿐이지만 말이야.”

 

이무환이 북리웅 등을 바라보았다.

 

“저분들은 불만이신 것 같은데요?”

 

“아직 자네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것이지.”

 

“저는 일하면서 제 말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조금 뭐라고 할 때도 있지요. 그래 봐야 천성이 순해서 심하게 하지는 않습니다만.”

 

엽상과 유군명과 종리난경이 힐끔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천성이 순해? 저런 거짓말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하다니.’

 

그런 마음에 한결같이 질린 눈빛이었다.

 

그러나 이무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면, 단주님의 청을 받아들이지요.”

 

호연청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북리웅이 입을 열었다.

 

“단주님,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자존심이 상한 듯한 말투였다.

 

바로 그 순간, 호연청의 눈빛 깊은 곳에서 차가운 한기가 떠올랐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러는 것이야. 내가 허튼소리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북리웅의 기세가 단숨에 수그러들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내 말대로 하게.”

 

“예… 단주.”

 

 

 

호연청의 집무실을 나서는 이무환의 입가로 가느다란 미소가 번졌다.

 

‘나를 이용하고 싶은가 본데, 그리 쉽지는 않을 거야. 어디 누가 이기는가 해보자고.’

 

호연청과 북리웅의 대화는 짧았다. 하지만 이무환은 그들의 대화에서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구룡수호단. 그들은 삼룡부의 숨겨진 고수들이라 했다.

 

그러데 자신이 봐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그들이 삼룡부의 충실한 수하들이라면 그 결정을 내릴 때 삼룡부에 의중을 묻는 뜻이라도 비췄어야 했다. 그런데도 호연청과 북리웅, 상관수, 누구도 그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보다 호연청의 세력이 클 수도 있다는 말인데……. 혹시 그의 뒤에 누가 있는 거 아냐?’

 

있다면 누굴까?

 

은근히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뒤에 있는 자들이 누군지만 알면 호연청이 뭘 바라는지 그 속마음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참나, 어떻게 된 놈의 것이 구룡성에 용은 없고, 늑대와 여우와 너구리만 득시글거리는 거야?’

 

 

 

6

 

 

 

광룡대의 회의실. 부상을 입은 다섯 명을 제외하고 광룡대원들이 모두 모였다.

 

“대충 그 정도면 된 것 같군.”

 

이무환의 말에 엽상이 붓을 놓았다.

 

앞에 놓인 종이에는 스물두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무환이 인상착의를 말하면, 광룡대원들이 기억을 더듬어서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적힌 이름은 금룡부 사람이 여덟, 도룡부 사람이 열넷이었다. 개중에는 당주급 인사의 이름도, 장로와 호법들의 이름도 있었다.

 

모두가 이무환의 눈에 걸려든 특이한 기운의 소유자들이었다.

 

“자, 대주만 남고 나머지는 이제 나가서 쉬어.”

 

대원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영호승과 단우경과 막위와 혁수린은 뒤가 궁금한지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엽상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말 이들을 다 소환할 겁니까?”

 

“당연하지. 그러려고 이름을 알아놓은 거니까.”

 

“소환에 쉽게 응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직접 찾아가서 끌고 오지 뭐.”

 

“총대주님이 직접 말입니까?”

 

엽상을 비롯해 유군명과 종리난경, 영호승 등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왜, 눈발이 가서 그들을 끌고 오려고?”

 

엽상이 고개를 휘휘 내둘렀다.

 

지난밤 작전을 하면서도 어찌나 턱에 힘을 주었는지 지금도 턱이 아팠다. 멋도 좋고, 이름을 날리는 것도 좋지만, 다시는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천추도왕 구 부주님의 기운을 억지로 받아냈더니 지금도 온몸이 욱신거립니다. 다시는 하기 싫습니다.”

 

“그래도 멋지게 처리했잖아.”

 

“그거야 뒤에 총대주님이 버티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했죠.”

 

이무환이 피식 웃고는 고개를 숙여 종이 위에 적힌 이름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어차피 몇 사람을 한꺼번에 잡아오려면 나 혼자는 안 돼. 그대들이 함께 움직여야지. 그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자만 내가 처리할 거야.”

 

이무환의 이어지는 말에 엽상과 유군명과 종리난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룡수호단을 나눠 줄 테니 함께 움직여. 단주가 구룡수호단을 움직일 권한을 줬으니 마음껏 써먹어야지. 안 그래?”

 

이무환은 그 말을 하며 웃는 듯 찡그린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세 대주는 왠지 구룡수호단의 앞날이 훤하게 보이는 듯했다.

 

악귀에게 시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제6장. 이제는 내가 원해서 한다

 

 

 

 

 

 

 

1

 

 

 

둥! 둥! 둥!

 

자정(子正). 서른여섯 번에 걸친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북소리에 맞춰 천장에 두 개의 구멍을 낸 그는 오른쪽 구멍에 눈을 대고 왼쪽 구멍으로 실을 풀어내려 보냈다.

 

천잠사로 만들어진 실은 반투명한데다 극히 가늘어서 눈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

 

끝에는 콩알만 한 구슬이 매달려 있었는데, 반투명한 실은 신기할 정도로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잘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제조한 무색무취의 미약도 훌륭히 제 역할을 해서 천장에 잠복해 있던 고수 둘을 일각 만에 잠재웠다.

 

다음 단계로 잠이 든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길고 가느다란 송곳을 귓구멍에 쑤셔 넣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리고 북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일을 시작했다.

 

설령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가도 벽에 잠복해 있던 자들은 북소리로 인해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었다.

 

둥!

 

마침내 스무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이제 남은 것은 열여섯 번.

 

환요는 실 끝에 매달린 구슬이 목표물의 입에 다가간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섯 치만 더 풀면 구슬이 목표물의 입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러면 아주 쉬운 일만 남는다. 실을 통해 공력을 주입하면 구슬이 터질 테니까.

 

‘잠깐 몸을 떨겠지?’

 

하지만 그뿐. 구슬에 든 천살지독을 이기기에 목표물은 몸이 너무 약해져 있었다.

 

소문으로는 반 정도의 공력이 남았을 거라고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목표물은 이 할의 공력도 남지 않았다. 더구나 갑자기 공력을 잃으면서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대로 뛰어내려 공격해도 자신의 삼 초를 막지 못할 정도.

 

환요는 구슬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싸늘한 살소를 지었다.

 

뛰어들면 목표물을 제거할 수 있지만 그러면 자신도 죽는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왜 죽는단 말인가.

 

둥!

 

스스스스.

 

스물일곱 번째 북소리가 울릴 때, 마침내 구슬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

 

환요는 북소리가 울리기만 기다렸다.

 

둥!

 

스물여덟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환요는 실을 잡은 손에 공력을 주입했다. 그의 내력이 빠르게 실을 타고 내려간다.

 

둥!

 

스물아홉 번째 북소리가 울렸다.

 

‘이제 끝이다. 잘 가라, 구룡무제!’

 

순간 툭! 구슬이 목표물의 입안에서 터졌다.

 

“후욱! 충량, 이노…… 옴.”

 

동시에 목표물이 갑자기 숨을 내쉬며 누군가의 이름을 외쳤다.

 

환요의 안색이 급변했다.

 

천살지독은 분명 입 안에서 터졌다. 거기까지는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시커먼 연기가 밖으로 반쯤 흘러나왔다.

 

절반의 천살지독에 목표물이 죽을까?

 

아무리 발톱이 빠지고, 여의주를 잃고, 뿔이 잘렸다 해도 상대는 구룡무제 이건천이 아니던가!

 

구멍에서 눈을 뗀 환요가 망설인 것은 눈 한 번 깜박일 시간의 반에 불과했다.

 

그가 다시 구멍에 눈을 들이댔다.

 

바로 그때였다.

 

“컥!”

 

이건천이 한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는, 허공을 향해 손을 쳐든 채 눈을 부릅떴다.

 

찰나!

 

우지끈!

 

양쪽 벽이 터져 나가며 두 명의 중년인이 튀어나왔다.

 

“주군!”

 

검을 빼 든 그들은 이건천의 손이 천장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즉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웬 놈이 감히!”

 

대경한 환요는 천장의 옆 벽을 부수고 즉시 몸을 날렸다.

 

그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천장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삼 장을 벗어나기도 전.

 

쾅! 쾅!

 

천장이 터져 나가며 사방에서 무사들이 솟구쳤다.

 

‘뭐,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정보대로라면 천룡전을 지키는 사람은 열 명 정도라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자신의 눈에 비친 자들만 해도 절정에 이른 고수가 십여 명이다. 게다가 아래쪽에서도 가공할 기운이 몰려오고 있다.

 

적어도 예상의 세 배의 이르는 숫자, 그것도 하나같이 고수들이었다.

 

‘과연 천룡! 주군께서 그토록 숙고하신 것에 이유가 있었구나!’

 

환요는 그 자리에 멈춘 채 혀로 어금니를 밀어냈다.

 

툭!

 

입 안에서 독한 냄새가 퍼졌다.

 

‘주군은 내가 살아 나오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생각은 길지 못했다. 결론도 내지 못했다.

 

침과 함께 삼켜진 독에 오장육부가 타 들어가고 있었다.

 

 

 

쾅!

 

부술 듯이 문을 박차고 방에 들어간 무설강은 눈을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았다.

 

벽이 부서지고 천장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무설강은 분노에 찬 눈으로 천장을 노려보고 침상을 향해 날듯이 다가갔다.

 

이건천이 누워 있었다.

 

노예로 팔려가는 자신을 구해주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준 사람.

 

‘사부!’

 

이건천은 사부라 부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자신은 항상 사부라 생각했다.

 

아버지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얼토당토않은 욕심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제발……!’

 

누워 있는 이건천의 입가에 검은 피가 묻어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눈에 떠오른 희미한 미소.

 

“사부님!”

 

그는 처음으로 어르신이라는 말 대신 사부라 불렀다.

 

이번에는 이건천도 다른 때처럼 고개를 젓지 않았다.

 

급히 침상 앞에 무릎을 꿇은 그는 이건천의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의 공력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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