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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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101화
101화
제1장. 와룡(臥龍)의 마음을 빼앗다
1
장원의 주인이 망설이는 사이 무사 수십 명이 쏟아져 나왔다.
“적이다! 적이 침입했다!”
“놈들을 막아! 장주를 구해!”
소란이 일자 좌우에서 대기 중이던 광룡대의 고수들이 일제히 안으로 들어왔다.
“네놈들은 우리가 맡아주마!”
북리웅이 기세 좋게 소리치며 백장청, 유군명과 함께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들을 공격했다.
거기다 무설강과 제갈신걸마저 뒤쪽에서 나타났다.
사십여 명의 호장무사는 그들만으로도 충분할 터. 이무환은 장주라는 자를 더욱 다그쳤다.
“어디 있냐니까! 말 안 하면 지금부터 팔다리를 하나씩 부러뜨리겠다! 어디 있어?”
“나는 잘…….”
우둑!
팔 하나가 부러졌다.
“끄억!”
“어디 있어!”
“그, 그게…….”
뚜둑!
“꺼헉!”
“다음은 다리야! 어디 있어?!”
“저, 저, 저 안에 지하로…….”
이무환이 헌원숭을 바라보았다.
“제압한 혈을 풀어주시겠습니까?”
‘성격이 좀 괴팍하다고 하더니,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군.’
헌원숭은 이마를 찌푸리며 장주라는 자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이무환은 말하지 않으면 목을 부러뜨릴 것처럼 장원 주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안내해! 시답잖게 거짓으로 행동하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사정없이 팔을 부러뜨린 이무환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정말 두 다리까지 부러뜨릴지 몰랐다.
하가장의 장주 하종건은 감히 대항할 생각을 못하고 비칠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하종건이 안내한 곳은 전각의 뒤쪽이었다.
좌우를 둘러본 이무환이 나직이 물었다.
“지하인가? 통로가 어디지? 바닥이야, 벽이야?”
귀신같은 눈치에 하종건은 꼼짝도 못하고 구석의 벽으로 다가갔다.
“여, 여길 밀면…….”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무환이 벽을 밀었다.
그르르륵.
약향을 감추기 위해 삼중으로 두텁게 만들어진 벽이 밀리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동시에 시큼한 약향이 은은히 새어 나왔다.
이무환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 헌원숭에게 말했다.
“이자를 지켜주십시오. 안에서 기관이 발동될 때마다 제가 소리칠 테니 이자의 다리뼈를 하나씩 부러뜨려 버려요.”
그러고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때 뒤에서 하종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면… 문을 열기 전에 유등을 좌측으로 돌려주시오.”
역시 기관이 설치되어 있었다.
씩, 냉소를 머금은 이무환은 곧바로 계단을 내려가 기다란 통로를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석문이 하나 나타났는데 옆에 유등이 걸려 있었다.
이무환은 유등을 돌리고 석문을 밀었다.
순간 독한 약향이 확 풍겨왔다. 잘은 몰라도 연단실이 멀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무환은 급히 안으로 들어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석실은 총 다섯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중 세 곳에는 약초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양이 그리 많지 않은 걸 보니 사용하고 남은 것인 듯 보였다.
남은 두 곳 중 하나는 거처였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석실은 연단실이었다.
연단실의 입구는 허리를 반쯤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는데, 안쪽의 천장은 환기를 하기 위해서인지 일 장 높이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연단하던 두 개의 단로에선 아직도 약향과 열기가 뿜어지고 있는 상태. 조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석실의 구조들은 단순했다. 사람이 있었다면 어느 곳으로도 빠져나갈 곳이 없을 것 같았다.
도망갈까 봐 자식까지 잡아둔 상황. 따로 비밀 통로를 만들어두었을 리도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무환이 짜증을 내며 이마를 찌푸렸다.
약의 향이 어찌나 독한지 머리가 다 지끈거릴 정도였다.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무환은 단로에 다가가 안을 바라보았다.
한쪽의 단로에선 바닥에 붙은 약이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다른 하나에선 제법 많은 양의 고운 갈색 약이 바닥에 깔린 채 뿌연 김을 뿜어냈다.
끈적끈적한 걸 보니 밖으로 내놓으면 얼마 안 돼서 굳을 것 같았다.
급히 긁어갔는지 끈적끈적한 약이 단로 밖에도 묻어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그 단로의 약향은 그리 독하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과연 얼마나 연단을 한 것일까? 누군가가 가져갔다면, 전체에서 어느 정도나 남은 것일까?
한쪽에 주걱처럼 생긴 것이 보이자 이무환은 주걱으로 단로의 약을 긁어보았다.
서너 번의 주걱질에 대충 반 주먹 정도의 약이 모아졌다.
“가져가서 당 노인에게 물어봐야겠군. 완성된 것인지, 아닌지.”
마침 구석에 속이 빈 대나무통이 보이자 이무환은 단로의 약을 긁어서 대나무통에 집어넣고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구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바로 그때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살랑거리며 날렸다.
‘응? 어디서 바람이?’
홱, 고개를 돌린 이무환은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찾아보았다.
결코 천장의 구멍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바람은 밖에서 불어온 것이었다.
연단실을 나가자 닫힌 문이 보였다.
‘어디서 불어온 거지?’
살랑, 머리카락이 또 날렸다.
이무환의 눈이 한곳을 향했다. 사람이 기거하던 거처로 보이던 곳, 바로 그곳이었다.
급히 안으로 들어간 이무환은 이를 악물었다.
구석에 대충 놓인 것처럼 보이는 거적 같은 옷 끝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지를 않은가.
이무환은 장력을 날려 거적을 치웠다. 순간 석 자 크기의 뻥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젠장!”
구멍은 정확하게 담장 밖으로 뚫려 있었다.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온 이무환은 주위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 삼십여 장 안에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몰래 토굴을 뚫을 정도로 철저한 자가 흔적을 남기고 도망갔을 리 없었다.
더구나 근처의 지리를 잘 안다면, 그사이에 산 하나는 넘었을 터였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꼬맹이를 데려오는 건데.”
남궁산산이라면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최소한 그런 쪽에서는 자신보다 나으니까.
잠시 망설이던 이무환은 일단 담장을 넘어서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청산이 지척이고 장강이 지척인지라 자잘한 어촌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얼굴도 모르는 자를 무작정 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헌원숭은 이무환이 갑자기 뒤쪽에서 나타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건가?”
“연단하던 자가 도망쳤습니다.”
간단하게 대답한 이무환은 하종건을 바라보았다.
“안에 들어가 본 지 얼마나 되었지?”
“약 냄새가 너무 독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제길, 그러니 굴을 파고 도망치지.”
인상을 쓴 이무환의 말에 헌원숭이 다급히 물었다.
“그럼 그 마단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되었나?”
이무환은 몸을 돌려 살짝 솟은 가슴을 감춘 채, 아쉬운 표정으로 어정쩡하니 대답했다.
“단로가 비어 있는 걸 보니 놈이 가져간 것 같습니다.”
“저런!”
아쉬움과 다급함을 동시에 드러내며 탄식을 하는 헌원숭이다.
하지만 그런 헌원숭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일단 사람을 모아야겠습니다.”
앞쪽으로 가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장원을 지키던 무사들은 모두 처리된 상태였다.
대부분이 죽고,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칠팔 명도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한쪽에 네 여인이 벌벌 떨며 주저앉아 있었는데, 장주의 가족과 하녀들로 보였다.
“생포하려고 했는데, 도망갈 수 없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네.”
무설강이 말했다.
안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자들 중 잠풍련의 사람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이무환이 죽을상이 된 하종건에게 물었다.
“안에서 단약을 연단하던 자의 이름이 뭐지?”
“고, 고진입니다.”
“나이는?”
“서른세 살입니다.”
“그자의 생김새를 말해봐!”
그려보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두 팔이 다 부러진 상태. 하나에서 열까지 꼬이는 기분에 이무환의 눈빛이 더욱 살벌해졌다.
하종건이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놈은 눈초리가 유난히 아래로 처져 있고, 입술 옆에 손톱만 한 점이 있습니다. 키는 다섯 자밖에 안 될 정도로 작고, 빼빼 마른데다 얼굴도 동안이라서 언뜻 보면 열댓 살 된 소년처럼 보일 정돕니다.”
“무공을 익혔나?”
“어릴 때부터 조금 익혔는데, 그저 삼류무사 정도일 뿐입니다. 체구에 비해 힘은 장사입니다만…….”
“그가 갈 만한 곳은?”
“어, 어, 없을 겁니다. 이곳에서만 살아서…….”
“잡아놨다는 그자의 가족은 어디에 있지?”
반쯤 몸을 일으킨 하종건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뭔가를 눈치 챈 이무환이 싸늘히 물었다.
“다 죽였나?”
“그, 그게… 제가 아니라 저자들이…….”
“개만도 못한 놈!”
퍽!
하종건의 몸이 붕 떴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이무환은 하종건이 기절하자 사람들에게 명을 내렸다.
“유 대주는 즉시 수룡단으로 돌아가서 마차 한 대와 사람들을 데려오고, 무 형님이 북리 단주와 백 부단주를 데리고 이곳을 지키쇼. 그리고 나머지는 고진이란 자를 쫓기로 합시다.”
이무환이 토굴이 뚫린 장원의 뒤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면 담장 뒤에 토굴이 뚫려 있을 거요. 거기서부터 시작하쇼. 날이 밝을 때까지 쫓아도 잡지 못하면 돌아오도록 하고.”
이무환의 명이 떨어지자 무설강과 북리웅과 백장청만이 남고, 고개를 끄덕인 일곱 명이 일제히 장원의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헌원숭 역시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장원을 떠났다.
이무환은 헌원숭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는 가족들로 생각되는 여인들을 바라보았다.
사색이 된 여인들이 앞다투어 소리쳤다.
“저희들은 돈을 받고 와 있을 뿐입니다, 공자님!”
“살려주십시오, 공자님!”
‘내가 그렇게 악랄해 보였나?’
이무환이 머쓱한 표정으로 여인들에게 말했다.
“잘 들으쇼. 도망갈 생각은 아예 마쇼. 도망가면 진짜 죽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 남아 있다가 몇 가지 묻는 말에만 제대로 대답하면 장주의 재산을 나눠 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소?”
“예? 예, 공자님!”
“정… 말인가요?”
“내 얼굴 보쇼, 어디 거짓말하게 생겼는지.”
무설강과 북리웅과 백장청이 힐끔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뭘 보슈?”
이무환은 그들을 향해 눈을 한번 부라리고는 고진을 찾기 위해 장원을 떠났다.
날이 어스름해질 무렵.
제일 먼저 이무환이 돌아왔다. 연단실에 들어간 그는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는 수상하게 보이는 것은 모조리 수거해서 자루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밝자 사람들이 하나둘 빈손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자, 이무환이 대전에 널브러져 있는 하종건에게 물었다.
“고진이란 자와 무슨 관계지?”
하종건이 힘겹게 눈을 뜨더니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하종건은 연단술의 대가로 제법 널리 알려진 자였는데, 백건산에 터를 잡고 산 지 백 년이 넘은 의가인 하가장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일 년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찾아와서 연단에 대한 제의를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단약을 만들어주면 한 알에 은자 백 냥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연단법도 자신들이 알려주고, 비싼 약재도 알아서 다 대준다면서.
모두 백 알. 무려 은자 만 냥에 달하는 거금이다.
하종건은 그중 일 할인 천 냥을 선불로 내놓자 두말도 않고 쾌히 승낙했다. 한 번에 평생 먹고살 것을 버는데 망설일 그가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연단술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은 그였지만, 실제 단약을 연단하는 사람은 그의 집에서 대대로 하인을 지낸 고 노인의 아들, 고진이었다.
그런데 고진이 그런 약을 제조할 수 없다고 연단을 거절한 것이다.
결국 그는 고진을 윽박질렀다. 가족까지 인질로 잡고서.
하는 수 없이 고진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연단을 시작했다.
그렇게 아홉 달. 마침내 연단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 이무환이 쳐들어왔다.
빡!
“끄억!”
이무환의 발길질에 하종건이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이런 도둑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