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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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99화
99화
‘어? 그게 그렇게 되나?’
단순한 생각 같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자신들처럼 요리조리 재는 사람들은 바로 떠올리기 힘든 기찬 생각이다.
명분이 생기자 엽상과 영호승 등은 즉시 광룡대를 소집하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덕분에 신이 난 남궁산산이 이무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오빠, 이번에는 나도 같이 가요.”
“네가 왜?”
“저도 광룡대의 일원이잖아요. 그리고 혹시라도 장부 내밀면서 재정이 어쩌고저쩌고하면 오빠 머리만 아플 테니까, 그것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무환은 남궁산산의 말에 움찔했다.
정말 장부를 내밀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당연히 꼬맹이가 필요했다. 그런 쪽으로는 꼬맹이가 자신보다 열 배는 나으니까.
“그래? 그럼 같이 가지 뭐.”
근 백여 명의 무사가 광대 패거리처럼 시끌벅적 몰려간다.
광룡대뿐만이 아니다. 일반 수룡단원들도 가세했다. 사흘간 풀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오히려 그들의 기세가 더 등등했다.
난데없는 광경에 구룡성 내성 사람들이 다 몰려나왔다.
“저 미친놈이 왜 또 수하들을 데리고 몰려가는 걸까?”
“이번에는 어느 곳을 치려는 거지?”
“또 한 곳 문 닫는 거 아냐?”
웅성웅성…….
팔룡이 초긴장 상태로 그들을 지켜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광룡대가 금룡부도, 도룡부도, 신룡부도, 천룡부도 아닌 화룡단으로 몰려가는 것이 아닌가.
콰당!
화룡단의 반쯤 열린 문이 부서질 듯이 활짝 열리자, 이무환을 필두로 광룡대원들과 수룡단원들이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진입했다.
“무, 무슨 일이오?”
소식을 들었는지 한 사람이 부리나케 달려나왔다. 부단주인 오장명 옆에 있던 자였다.
“비켜!”
이무환이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싸늘한 이무환의 눈빛에 오금이 저린 포의당주 임필상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멋쟁이, 도끼! 이자도 잡아! 항거하면 목을 쳐!”
영호승과 막위가 즉시 뛰어나오더니 임필상의 혈도를 제압했다. 임필상은 목을 치라는 말에 대항도 못해보고 순순히 몸을 맡겼다.
“내,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무환은 임필상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전면을 향해 소리쳤다.
“부단주 오장명! 밖으로 나와라! 횡령 혐의로 체포하겠다!”
화룡단의 건물이 우르릉, 뒤흔들렸다.
덜컹! 덜컹!
여기저기서 문이 열렸다. 그중에는 식사를 하다 말고 나온 듯 입 안에 음식이 든 자도 있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뒤뚱거리며 밖으로 나온 오장명이 버럭 소리쳤다.
이무환은 그를 보지도 않고 턱짓으로 명을 내렸다.
“뇌고자, 눈발! 잡아! 대항하면 팔다리를 부러뜨려라!”
제갈신걸과 엽상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손발을 휘둘러 대항하려던 오장명은, 옆에서 목원당주 진수근이 다급히 속삭이자 대항을 포기했다.
“부단주, 상대는 광룡대입니다. 곧 진실이 밝혀질 것이니 조금만 참으십시오.”
순식간에 오장명과 진수근이 혈도를 제압당한 채 이무환의 앞으로 끌려왔다.
그제야 안쪽에서 화복 차림을 한 오십대 중년인이 대여섯 명의 수하로 보이는 자들을 거느리고 전각을 나섰다.
“잠깐만 기다리게!”
구룡무제의 장례 때 봤던 자였다.
구룡성의 물품을 총괄하는 자. 화룡단주 장완, 바로 그였다.
“대체 무슨 일인가? 아무 설명도 없이 사람들을 이렇게 잡아가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은근한 노성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무환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물었다.
“혹시 화룡단의 식단에 어제, 오늘 변화가 있었습니까?”
어리둥절한 장완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없었네. 한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물량이 딸려서 구룡의 각 부에 배급되는 물품량에 변화를 주었다는데, 사실입니까?”
장완이 옆을 바라보았다. 수하 중 하나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없었다? 그럼, 저자들이 본 단에 들어오는 물품을 빼돌리고 착복한 것이 확실하군요.”
“어디 자세히 말해보게나. 그리 말할 정도면 증거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장완이 눈살을 찌푸리며 조용히 물었다.
그때다. 남궁산산이 재빨리 나섰다.
“총대주, 어제와 오늘, 각 부에 입고된 물품의 장부만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에 오장명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고, 임필상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이무환은 수룡단의 장부만이 아닌, 각 부의 장부를 보자는 말에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남궁산산이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이 꼬맹이 여우가 무슨 생각이지?’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천년 묵은 여우 같은 남궁산산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본 대의 장부 담당 대원의 말을 들으셨지요? 이 대원은 장부를 누구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상황을 알 길 없는 장완은 장부를 보자는 말에 잠시 망설였다.
장부는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양이 많은데다 복잡했기 때문에 금방 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어제와 오늘, 이틀치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도 같았다. 더구나 저 조그만 소녀가 장부를 빨리 파악하는 재주가 있다 하지 않는가.
장완은 소란이 오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벌써 문밖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상태였다.
그런데다 상대는 광룡대다. 마룡부를 힘으로 봉문 시킨 놈들. 윽박지른다고 순순히 물러갈 놈들이 아니었다.
그가 옆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안내해 주게.”
옆에 서 있던 중년인이 고개를 숙였다.
“저에게 있는 장부는 어제 것까지밖에 없습니다, 단주.”
“그럼 그거라도 보여주게. 오늘 것은 각 당주들이 가서 즉시 가져오고.”
“예, 단주.”
장완은 명을 내리고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거기 있는 두 당주 것도 필요할 텐데, 일단 풀어줬으면 싶군.”
이무환이 즉시 명을 내렸다.
“풀어줘! 그리고 따라가서 허튼짓 못하게 감시하고.”
이각 후.
화룡전으로 들어간 남궁산산이 당주 두 사람의 감시 하에 장부 검토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까지 이무환은 오장명을 마당 한가운데다 무릎 꿇려놓았다.
날이 많이 풀렸는데도 오장명의 이마에서 굵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 바닥으로 떨어졌다. 창백한 얼굴은 진즉부터 회칠한 것처럼 변한 상태였고.
남궁산산이 나오자, 마당을 이리저리 한가하게 거닐던 이무환이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어때?”
남궁산산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제와 오늘, 수룡단에 배급한 식품량을 그전과 똑같게 적어놨어요. 들어온 양은 절반도 안 되는데 말이에요. 다시 말해 그 차이만큼 어디론가 빼돌려졌다는 거죠.”
이무환이 어떠냐는 눈으로 장완을 바라보았다.
장완이 옆으로 다가온 중년인에게 물었다.
“사실인가?”
“예, 단주. 똑같은 양이 적혀 있었습니다. 만일 저들의 말대로 어제와 오늘 양이 현저히 줄었다면… 아무래도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 남궁산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임 당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어제 오 부단주께서 수룡단의 식품 중 고기의 양을 삼분지 일로, 질은 최하급으로 지급하라 명하셨다고 하는군요. 결국 이 일의 책임은 전적으로 오 부단주에게 있다는 말이죠.”
장완이 눈을 부릅뜨고 마당에 무릎 꿇려진 오장명을 노려보았다.
“사실인가?!”
오장명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게…….”
이무환이 손을 저으며 나섰다.
“아아, 그 일은 우리가 알아서 조사하겠습니다. 일단 세 사람을 압송해서 조사하고, 조사가 끝나는 대로 보내 드릴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죄상이 명명백백히 드러난 마당이다.
장완은 안 된다는 말도 못하고 이를 악다물었다.
“알아서… 하게.”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무환이 엽상에게 명을 내렸다.
“끌고 가!”
그러고는 장완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다행으로 아쇼. 한 보름 정도 밤이든 낮이든, 음식을 만들 때마다 몰려와서 조사를 하려다가 귀찮아서 참았수.”
그러면 보름은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장완은 어이가 없는 한편으로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광룡을 맞상대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이무환이 광룡대를 이끌고 물러가자 장완이 당주들에게 긴급 명령을 내렸다.
“수룡단의 배급품, 절대 모자라지 않게 자네들이 철저히 관리해! 알았나? 다시는 저놈 얼굴 보는 일 없도록 말이야!”
오장명은 곧바로 형옥으로 끌려갔다. 그러자 형옥당주 적사중은 그를 제일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맨 끝 방에 가두어 버렸다.
그러고는 아주 당연한 명령을 내렸다.
“그 자식은 밥 삼분의 일만 줘! 한 사흘 지난 걸로!”
4
광룡대로 돌아온 이무환이 남궁산산을 다그쳤다.
“이제 말해봐. 무슨 꿍꿍이로 장부를 다 보자고 한 거지?”
“공짜로요?”
“임마, 그럼 오빠동생 사이에 무슨 대가가 있어?”
남궁산산이 슬며시 다가앉으며 말했다.
“연인 사이에는 주고받는 게 있다던데.”
이무환이 엉덩이를 빼며 콧소리를 냈다.
“킁! 연인은 무슨, 헛소리 말고 말해봐.”
“장부하고 백문호.”
입술을 삐죽인 남궁산산이 장부 이야기를 꺼내자 이무환의 눈이 반짝였다. 거기다 백문호의 이름까지 나오자 더욱 솔깃해졌다.
“장부? 장부가 왜? 거기서 뭐 봤어? 백문호가 뭐라고 해?”
“사람이 더 있으면 거기에 들어가는 물품도 더 있어야 하는 법이죠. 식품이든, 뭐든.”
그제야 눈치를 챘는지 이무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더구나 수십 명이 몰래 숨겨져 있으면 더 그렇겠지.”
“바로 그거예요. 비록 큰 차이는 안 나지만, 자세히 비교해 보면 보일 수밖에 없죠.”
“어디어디지?”
“거의 전체가 다 그래요. 그중에서도 신룡부와 도룡부와 와룡부가 유난히 차이가 크고, 나머지는 거의 표가 나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어느 정도나 차이가 나?”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최근의 자료와 화룡단에 있는 자료의 인원이 적게는 스물, 많게는 사오십 명까지 차이가 나요.”
그 정도면 표가 날 수밖에 없다. 물론 일일이 비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테지만.
“흠, 와룡부도 그렇단 말이지?”
“예, 오빠.”
곰곰이 생각하던 이무환이 눈동자를 돌렸다.
어느새 남궁산산의 얼굴이 두 치까지 접근해 있었다.
콧속으로 스며드는 상큼한 과일향. 나무에 매달린 채 아침이슬을 맞은 앵두처럼 반질거리는 붉은 입술.
만지면 분이 묻어날 것 같은 볼이 이제 막 익어가는 복숭아처럼 연분홍빛으로 발그레하다.
두근두근, 이무환의 가슴이 방정맞게 뛰었다.
순간 깜짝 놀란 이무환이 급히 고개를 세웠다.
‘헛! 내가 무슨 생각을! 안 돼! 이 꼬맹이에게 홀리면 안 돼!’
그때 남궁산산이 입을 열었다. 과일향이 더 짙어졌다.
“그리고 백문호가 저에게 몰래 말한 게 있어요.”
“뭘?”
이무환이 엉겁결에 고개를 돌린 순간,
쪽!
남궁산산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입술을 부딪쳤다.
멍청하니 남궁산산을 바라본 이무환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이, 이제 됐지? 말해봐.”
남궁산산이 생글거리며 입을 열었다.
“밤에 백초방으로 오래요. 드릴 말씀이 있다고요.”
“밤에?”
“예, 해시 초쯤.”
이무환이 반쯤 홀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엉뚱한 생각으로 뒤죽박죽이었다.
‘피할 수 있었는데…….’
그랬다. 피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피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더 환장할 일이었다.
‘하이고……. 내가 왜 이러는 거야, 이거?’
5
백초방은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백이 노인의 장례가 끝나기 전까지는 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었다.
술시가 넘어 막 해시로 접어들 무렵, 이무환은 정문이 아닌 뒤쪽의 담장을 넘어 백초방으로 들어갔다.
종리난경에게 대충 백초방의 건물에 대해 들었던 터라, 이무환은 곧바로 백이 노인의 방이 있는 맨 뒤쪽의 건물로 다가갔다.
발자국 소리를 죽이지 않아서인지, 불이 켜진 방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방문이 열리고 백문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주시오?”
“그렇습니다. 만나자 하셨다고요?”
백문호가 옆으로 비켜섰다.
방 안에는 백문호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또 있었다.
이무환이 안으로 들어가자 백문호가 뒤에 대고 나직이 누군가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