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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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9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98화
98화
돌변한 태도, 난데없는 말에 혁성신이 말을 더듬었다.
“너… 무슨……?”
“잠풍련과 간접적이나마 관련 있는 자들까지 다 죽이길 바라는 거요? 그럼 일반 무사들 빼고, 간부들은 대부분이 죽어야할 텐데?”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룡부 안에 나직이 울려 퍼졌다.
“저들은 누가 뭐래도 구룡성의 무사들. 우리는 잠풍련을 제거하려는 것이지, 저들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면…… 원하는 대로 해드리죠.”
일순간 무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자신은 아니라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고, 바닥을 내려다보며 딴청 부리는 사람도 있다.
혁성신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처졌다.
“그… 그건…….”
이무환의 고저 없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기서 끝내는 걸 다행으로 아십쇼. 그 일을 파고들면 가족들까지 모두 다칠 겁니다. 자식들이 무슨 죕니까? 부인들이, 손자들이 무슨 죄요? 죄인의 가족이 되어 구룡성에서 쫓겨나면 어디로 갈 거요? 그때도 잠풍련이 도와줄 거라 생각하십니까?”
“…….”
“사실 확 밀어버릴까 생각했는데, 어떤 멍청한 양반 때문에 참은 겁니다. 그러니 오늘부로 문 닫고 조용히 있으쇼. 노인네 일어나거든, 나중에… 나중에 그 양반에게 고맙다고 인사말 한마디 하라고 전해주시고.”
그 말을 끝으로 이무환은 들어올 때처럼 뒷짐을 진 채 유마각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렸다.
“뭐? 피를 적게 봤으면 좋겠다고? 젠장,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자기가 무슨 군자라고 말이야. 승질 나는데 미친 척하고 내 맘대로 해버릴까? 에이씨…….”
그때였다.
덜컹!
유마각의 문이 열리더니, 무설강과 제갈신걸을 비롯해서 구유마도의 제자를 쫓았던 사람들이 축 늘어진 두 사람을 옆구리에 끼고 나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무환이 무설강에게 물었다.
무설강이 한 사람을 내려놓더니 입을 열었다.
“지하 통로로 도망가는 자를 쫓던 중에 유마각의 지하에서 뜻밖의 방해자들을 만나 좀 늦었네.”
“지하 쪽에서 약을 달이는 냄새를 맡지 못했습니까?”
“그런 냄새는 맡지 못했네.”
하긴 아무리 지하라도 연단을 하다 보면 약 냄새가 새어 나올 게 분명했다. 너구리 같은 놈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마룡부 내에서 연단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무환은 아쉬웠지만 그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하고, 무설강이 바닥에 내려놓은 자를 바라보았다.
이무환도 본 적이 있는 자였다.
유마각주인 유령마존 설무근. 바로 그였던 것이다.
이무환은 그를 싸늘히 노려보고는 엽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놈이야?”
“예, 총대주. 이자가 구유마도의 제자인 것 같습니다.”
엽상이 얼굴이 긴 장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격렬히 저항했는지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당장 심문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나 있을지 걱정이었다.
“아예 잘근잘근 부숴놨군.”
그 말에 북리웅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놈에게 상관 아우가 부상을 입는 바람에…….”
그러고 보니 무설강과 제갈신걸을 제외하면 대부분 여기저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유마각의 지하에서 제법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 듯했다.
이무환은 고개를 돌려, 아직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혁성신을 바라보았다.
“이 두 사람은 제가 데려가죠. 그리고 문 닫는 거 잊지 마쇼.”
그러고는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렸다.
“사냥이 끝났으니 가자고!”
얼굴 피부가 만년한철만큼이나 강한 이무환도 차마 ‘마룡을 때려잡았으니 가자!’라고는 하지 못했다.
그러면 정말로 함께 죽자고 덤벼들지 모르니까.
이무환이 정문을 나서는데 무사 수백 명이 몰려왔다. 신룡부와 금룡부, 도룡부에서 마룡부를 돕고자 온 자들이었다.
“무슨 구경거리라고 이렇게 떼로 몰려오는 거야? 좀 비켜주쇼!”
이무환은 그들의 목적을 알면서도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옮겼다.
다가오던 삼부의 무사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혁성화가 쓰러지고, 마룡부가 무너졌다. 마룡부의 도움요청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먼저 나설 순 없었다.
힘을 잃은 마룡부를 구하겠다고 먼저 나섰다가 광룡의 다음 표적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이무환은 휘적휘적 그들 사이를 걸어서 통과했다.
그렇게 이월의 마지막 날, 구룡 중 마룡부의 정문이 광룡의 손에 의해 못질을 당했다.
제9장. 마단(魔丹)을 만드는 자
1
―마룡부가 봉문했다!
―천외광룡이 특조대인 광룡대를 이끌고 마룡부를 쳐들어갔다고 한다.
―특조대의 대원들이 살해당했는데, 범인은 구유마도의 제자라고 한다.
―명부신사 헌원숭이 특조대의 일원으로 나타났는데, 그에게 마룡부주 혁성화가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그 소식은 한 시진도 되지 않아 구룡성의 쥐구멍까지 퍼졌다.
구룡성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물론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나직한 노성이다. 그러나 은의인은 노인의 질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제자가 너무 방심했습니다, 사부님.”
“너의 방심 한 번으로 본좌가 쳐놓은 그물에 구멍이 뚫렸다. 더 큰 문제는, 구룡성주의 자리 확보가 미궁에 빠졌다는 것이야.”
노인의 목소리가 나직해질수록 은의인, 신도연풍의 이마에 솟는 땀방울도 늘어났다.
설마 놈이 마룡부를 그런 식으로 급습할 줄이야. 그는 당한 지금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노인이 말을 이었다.
“너의 잘못을 메울 방법이 있느냐?”
없다면 제자의 자리도, 후계자의 자리도 날아간다.
신도연풍은 즉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제자가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만들어온 폭마단이 있습니다. 다행히 그것은 다른 곳에서 연단을 하고 있던 터라 무사합니다. 그것이라면 마룡부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이옵니다. 게다가 구유마도 석치상에게 제자가 당한 것을 알렸으니, 그가 곧 이곳으로 올 겁니다.”
그때 한쪽에 얌전히 시립해 있던 금철종이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나 사형, 폭마단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도연풍이 힐끔 금철종을 바라보고 이를 갈았다.
“물론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나 곧 완성될 것이다.”
“언제 말입니까? 구룡성의 주인을 선출하는 날은 이제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가능하겠습니까?”
“걱정 마라. 그때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니까.”
금철종이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하면 그동안에는 저와 비 사제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야겠군요.”
신도연풍은 부서지도록 이를 악다문 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입이 열 개라도 지금은 할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의 설전에 노인이 한마디 했다.
“그동안이 문제다. 구룡성의 주인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본 련의 모든 힘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너희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잠풍련의 힘은 강하다. 그러나 그 힘은 구룡성 곳곳에 숨겨져 있다. 하기에 구룡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성주가 되기 전에는 밖으로 돌출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광룡이 그토록 날뛰는데도 보고만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잠풍련의 힘이 밖으로 드러나면, 구룡성의 나머지 힘과 또 다른 욕심쟁이들이 이때라는 듯 힘을 합쳐서 달려들 테니까.
“당분간은 비아가 모든 일을 총괄한다. 너희 둘은 비아를 도와주어라.”
금철종의 얼굴이 슬그머니 구겨졌다.
신도연풍은 이를 가는 중에도 그 모습에 조소를 금치 못했다.
‘흥! 사부께서 너처럼 멍청한 놈에게 지휘권을 맡길 줄 알았느냐?’
반면에 백의청년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당분간만 미숙한 제가 두 분 사형의 도움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신도연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실수로 인해 네가 고생하게 생겼구나.”
금철종도 일단은 수긍했다.
“언제든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해라, 사제.”
장사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는 하는 수 없었다.
2
“놀랍군, 정말 놀라워!”
제갈무진은 진정으로 감탄했다.
작은 것 하나를 이유 삼아 거룡을 쓰러뜨렸다. 자신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을 이무환은 별 피해 없이 깨끗하게 마무리 지은 것이다.
천중십마 중 한 사람인 명부신사 헌원숭이 가세한 것도 굉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무환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부주. 너무 크면 부담이 되지 않겠습니까?”
방양고의 조심스런 조언에 제갈무진은 찻잔을 잡아 입으로 가져갔다.
찻잔을 내려놓은 제갈무진이 말했다.
“이미 컸네.”
“하오면……?”
“차라리 잘되었는지도 모르지. 그가 크면 클수록 우리의 입지도 커질 테니까. 해서 말인데… 이 기회에 사십팔객을 그에게 보낼까 하네.”
방양고의 눈이 커졌다.
“예?”
와룡사십팔객(臥龍四十八客).
지난 이십여 년, 비월산장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운 사람들을 말함이다.
비록 사십팔 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호연천이 키웠다는 구룡수호단에 뒤지지 않는 고수들이었다.
“적어도 그 정도는 옆에 있어야 호연청을 견제할 수 있지 않겠나?”
순간 방양고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호연청을 견제하기 위해서 보내시려는 것입니까?”
“광룡이 커지는 게 모두에게 부담이라면, 호연청에게도 부담이 가겠지. 그 와중에 호연청의 힘이 더 커져서 그가 필요없을 정도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나?”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 교활한 토끼가 잡히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진다 했지요.”
“바로 그거네. 하나 그의 곁에 강력한 힘이 있다면, 그는 망설일 수밖에 없을 터.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나에게도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제갈무진은 느긋이 기다릴 생각인 것이다. 상대를 견제하면서.
그제야 방양고가 수긍하며 물었다.
“호연청이 순순히 받아들이겠습니까?”
제갈무진이 조용히 웃었다.
“그는 지금 나중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네.”
그럴 것이다. 그에겐 당장 힘이 필요하니까.
“하면 언제쯤 보낼 생각이십니까?”
“오늘 하루는 잔치 분위기 아니겠나? 그러니 흥분이 가라앉은 내일 오후에나 보내도록 하세.”
3
그러나 광룡대는 결코 잔치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마룡부를 처리하고 돌아와 즐거운 점심을 맛있게 먹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한 대원이 지나가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이래서 줄을 잘 서야 된다니까. 누구는 싱싱한 고기를 뜯고, 누구는 상한 고기 둥둥 뜬 국물에 풀만 씹어야 되다니. 아, 지미…….”
무슨 소린가 했다.
상한 고깃국에 풀이라니.
설마 감찰부인 수룡단의 식단에 풀만 올라왔단 말인가?
그게 웬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란 말인가?
왠지 찜찜한 마음이 든 이무환은 영호승을 보내서 무슨 말인지 알아보라고 했다.
돌아온 영호승이 말했다.
“배급된 고기가 삼분지 일로 줄어서 광룡대에만 고기를 지급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고기도 조금 오래된 것 같은데, 숙수 말로는 사흘 정도는 그렇게 먹어야 한다고…….”
“뭐야?”
이무환이 차를 마시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엽상이 이무환을 힐끔거리며 입을 열었다.
“화룡단이 밉보인 곳에 가끔 배급을 줄인다는 말이 있던데…….”
이무환도 얼핏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직접 당하고 나니 분통이 터졌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교훈을 내려줘야 한다. 사람을 잘못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온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려줘야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못하는 법이다.
“가자고!”
“예? 어디로 말입니까?”
“어디긴? 화룡단이지!”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이는 거 아닌가 하는 표정들이다.
하지만 악귀, 광룡이 내린 결정이다.
엽상과 영호승, 막위, 혁수린이 주섬주섬 일어나자, 이무환이 안쪽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가서 부상이 심한 사람만 남겨놓고, 움직이는데 지장 없는 사람은 전부 오라고 해!”
“예?”
“뭐 해? 광룡대 출동이야! 도둑놈들 잡아야지! 우리 줄 것 빼돌렸으니까 도둑놈들이 맞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