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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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97화
97화
혁성화는 씩씩거리며 이무환을 공격하려다 멈칫했다.
‘아차! 헌원숭!’
쒜에에엑!
세 발의 기 화살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들었다.
혁성화는 남겨놓았던 힘을 모조리 끌어올려서 헌원숭의 공격을 막아냈다.
쾅! 쾅! 쾅!
“으음…….”
헌원숭의 공격을 겨우 막아낸 혁성화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뒤로 두 걸음을 물러선 혁성화는 급히 적혈마마공을 끌어올리고 눈을 부라렸다.
헌원숭이 다시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 보였다.
그도 전신을 호신진기로 감싸고 헌원숭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사이 이무환은 광룡대원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헹! 내가 미쳤다고 그 영감하고 끝까지 싸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그러나 이겨봐야 득이 없었다.
부주와 대등하게 싸워 견뎠다는 것과 부주를 이겼다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그를 이기면 적의 공세가 일제히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죽자 사자 싸워봐야 남는 게 없는 싸움을 왜 한단 말인가?
그런 역할은 헌원숭이 제격이었다. 어차피 그는 천중십마 중 한 사람. 모두가 당연하다 생각할 테니까.
자신은 그저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는 놈. 그 정도면 되었다. 우선 당장은.
광룡대원들과 잠풍련의 무사들로 의심되는 자들의 싸움은 그 어느 곳보다 격렬했다.
멋모르고 끼어든 사람을 빼고는 마룡부의 무사들 대부분이 주위를 둘러싸기만 했을 뿐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이무환이 소리쳤다.
“방해하지 말고 물러서!”
혁성화와 가공할 격돌을 벌인 광룡이 날아든다.
마룡부의 무사들은 화들짝 놀라서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격전을 벌이는 자들과 마룡부의 무사들이 확연히 갈라졌다.
광룡대원들 중 다치거나 쓰러진 자는 십여 명.
반면에 잠풍련의 무사들로 의심되는 자들은 삼십여 명이 쓰러지고 남은 자는 팔십여 명 정도였다.
이무환이 그들에게 다가가자 광룡대원들의 도검은 더욱 날카롭게 번뜩이고, 잠풍련의 무사들로 보이는 자들은 눈알을 굴리며 뒤로 물러났다.
찰나, 이무환이 두 손을 뻗어 그들을 향해 천광뇌공지를 튕겼다.
투두두두둥!
열 줄기 시퍼런 벼락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크억!”
“켁!”
“무, 물러서!”
가공할 위력의 지풍에 칠팔 명이 힘없이 나뒹굴거나 부상을 당한 채 정신없이 물러섰다.
바로 그때였다.
와장창!
전마각의 이층 창문이 부서지더니 두 사람이 밖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곧이어 영호승과 막위, 혁수린, 상관수, 유군명이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렸다.
“어떻게 되었어?”
“거센 저항이 있었습니다만, 무 대협과 제갈 형이 나서서 대부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발견해서 두 분과 엽 대주와 북리 형 등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신도연풍은?”
“그게… 건물을 다 뒤졌는데, 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명 있었다. 그런데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유는 하나다.
“젠장! 비밀 통로가 하나가 아니었나?”
여우처럼 빠져나갈 곳을 여러 곳 만들어놓은 듯했다.
구유마도의 제자는 기존의 통로로 보내 사람들을 그곳으로 유도하고 자신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들어갈 걸 그랬나?’
미완성의 폭령잠마단이 가진 위력을 몸으로 겪어보지 않았던가.
마단이 완성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 시간이 없기에 놈을 잡아서 마단에 대한 일을 알아내려고 했다. 마룡부를 뒤집은 것도 결국은 그 이유가 반은 되었다.
문제는 놈이 밖으로 도주할 경우 막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 합공을 해도 놈을 잡을 수 있는 고수가.
하기에 자신이 밖에 남았다. 혁성화조차 헌원숭에게 맡긴 채.
그런데 사라지다니!
지금쯤이면 전마각을 빠져나갔을 터. 쫓는다 해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하늘도 지랄 같군. 저놈들 편을 들어주다니!’
이무환이 아쉬움에 이를 갈고 있는데 전마각에서 무설강과 제갈신걸이 나오는 게 보였다.
“무 형님하고 뇌고자는 유마각으로 가쇼! 지하 통로가 그곳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전마각을 나선 두 사람은 이무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마각으로 날아갔다.
이무환은 영호승 등에게 광룡대를 도와주라 명하고는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
마룡부의 무사들이 뒤로 물러서자 싸움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광룡대는 걱정할 것이 없을 듯했다.
문제는 마룡전 쪽이었는데, 정문 지붕에 서 있던 헌원숭은 이미 땅으로 내려와서 혁성화와 대치하고 있는 상태였다.
혁성화와의 거리는 오 장. 헌원숭이 간간이 기 화살을 날리면 혁성화가 막는 식이었다.
창백한 얼굴의 혁성화 앞에 세 치 깊이로 찍힌 다섯 개의 발자국이 보였다. 헌원숭도 낯빛이 달라져 있기는 하나, 쏘아내는 기 화살의 위력은 여전했다.
혁성화가 밀리고 있다는 말.
하긴 자신과 십여 초를 겨루며 이미 공력을 소비한 혁성화다.
적어도 일이 성의 공력은 소비했을 터. 그 차이면 절대고수의 싸움에선 승부를 가르고도 남았다.
그런 두 사람의 격전을, 혁성신을 비롯한 네 명의 장로와 호법들이 만일을 대비해 주시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구룡부의 부주가 다른 사람과 협공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하는 격. 그들이 덤비면 혁성화는 이겨도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나머지 원로들은 헌원숭의 공격에 부상을 입고 물러서 있는 상태. 신도연풍을 잡지 못한 것을 빼면 모든 게 뜻대로 되어가는 듯했다.
이무환은 상황 판단이 끝나자 혁성신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저놈이!’
혁성신이 긴장한 눈으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그는 이제 안다. 광룡이라는 놈이 단순히 미친놈만은 아니라는 것을. 형이자 마룡부주인 적혈마신과 대등한 승부를 할 만큼 고수라는 것을.
자신과 네 명의 장로가 합공한다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마룡부가 이렇게 무너진단 말인가?’
혁성신의 눈꺼풀이 떨렸다.
그때 이무환이 쌍장을 떨치며 혁성신을 비롯한 네 명의 장로와 호법들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싸움을 끝맺어야 했다. 지금쯤이면 다른 곳에 이곳의 상황이 전해졌을 것이었다.
마룡부가 열세에 처한 걸 알면 돕기 위해서 달려올지도 몰랐다.
쾅!
이무환의 장력과 정면으로 부딪친 혁성신이 주르륵 밀려났다.
‘크윽! 생각보다 더 강하다!’
그가 밀리자 장로인 생사비검 위강과 귀화륜 전하민이 좌측을 공격하고, 호법인 월영마도 호세창과 사영신마 서문조가 우측으로 달려들었다.
이무환은 어차피 길게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가 전력을 다해 수류보를 펼치자 십여 개의 잔영이 어지럽게 주위를 휘돌았다.
“허엇!”
“뭐, 뭐야?”
달려들던 네 사람은 갑작스런 상황에 멈칫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순간 이무환의 만압회와 수룡회가 위강과 전하민을 압박했다.
“조심해!”
물러나 있던 혁성신이 두 사람에게 달려드는 이무환을 보고 대뜸 소리쳤다.
떠덩!
두 사람은 급급히 검과 륜을 휘둘러 이무환의 공격을 쳐냈다.
눈 깜짝할 사이 이무환의 손에서 오 초의 공격이 연환으로 펼쳐졌다.
땅!
“커억!”
결국 검이 부러진 위강이 일 장 밖으로 튕겨지고, 전하민은 륜을 든 손이 부러진 채 바닥을 뒹굴었다.
“크으윽!”
그사이 이무환은 어정쩡하니 서 있는 호세창과 서문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무환의 몸에서 사자탄의 무공이 줄기줄기 쏟아졌다.
무류탄, 만압회, 수룡회, 직룡탄…….
순식간에 칠팔 초가 날벼락처럼 쏟아졌다.
칠 초가 지나기도 전, 먼저 호세창이 가슴에 일격을 맞고 뒤로 튕겨졌다.
쾅!
“커억!”
뒤이어 어깨가 부서진 서문조가 정신없이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찰나였다. 이무환이 신형을 멈추고는, 삼 장 앞에 서 있는 혁성신을 향해 손을 밀어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물결처럼 출렁이는 장력이 일순간에 여덟 번이나 겹쳤다.
구중만첩파!
잔뜩 긴장해 있던 혁성신은 평범한 장력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장력이 여섯 겹, 일곱 겹 겹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것이 아닌가.
“흐읍! 이, 이……!”
대경한 그는 급급히 전력을 쏟아내 이무환의 장력을 향해 마주 손을 내밀었다.
동시에 이무환의 내민 손이 허공을 짓눌렀다.
아홉 번째, 구중만첩파의 마지막 물결이 혁성신을 향해 밀려갔다.
쿠우우웅!
둔중한 굉음이 울림과 동시, 혁성신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충격에 눈을 부릅떴다.
쿵! 쿵! 쿵!
힘겹게 세 걸음을 물러선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목구멍에 가득 찬 핏물을 쏟아냈다.
“웩!”
이무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이 울렁거리는 걸 참았다.
‘위력은 좋은데, 내력이 한꺼번에 너무나 많이 소모된단 말이야.’
그래도 그 덕에 마룡부의 이인자인 혁성신을 일격에 항거불능으로 만들어 버렸다.
겉으로는 그저 가벼운 내상 같아 보여도, 내장이 뒤집힌 혁성신은 당분간 움직일 수 없을 터였다.
그때 헌원숭이 혁성화를 향해서 네 발의 기 화살을 연사로 날렸다.
콰과과광!
굉음이 연달아 마룡부를 뒤흔들었다 싶은 순간,
“으으음…….”
그대로 서서 주욱 밀려난 혁성화의 발밑에 깊은 골이 파였다.
두 걸음을 물러선 헌원숭은 입술을 잘게 떠는 혁성화를 노려보았다.
이무환은 그 광경을 보고 냉소를 지었다.
‘이제 끝났군.’
혁성화의 입가에 연한 핏물이 보였다.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는 뜻.
반면에 헌원숭은 얼굴이 창백해졌을 뿐이다.
활을 몇 번만 더 튕기면 혁성화가 무너질 것이 자명한 상황.
하지만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일단 멈춰보쇼!”
이무환은 헌원숭이 활을 들어 올리자 다급히 소리쳤다.
멈칫한 헌원숭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결정을 내지 않을 건가?”
면책권이 있는 혁성화다. 승부는 내도 죽여서는 안 되었다. 죽이면 기회라 생각하고 벌 떼처럼 일어날 것이 분명하니까.
헌원숭이 활을 내리는 걸 보고 이무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되죠. 어쩌다 보니 이런 상황이 되긴 했습니다만, 우리가 어디 처음부터 마룡부와 싸우려고 왔습니까?”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럼 지금까지 싸운 것은 뭐란 말인가?
혁성화도, 혁성신도, 마룡부의 원로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이무환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저 범인을 잡으러 왔다가 의견이 달라서 약간의 다툼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 정도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계속 싸울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점입가경이다.
마룡부가 거의 무너지다시피 했는데 약간의 다툼이라니.
“너……!”
부아가 치미는지 혁성화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자 핏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이무환이 눈을 크게 뜨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까? 거참, 그러게 왜 싸우자고 하십니까? 제가 순순히 범인들을 내놓으라고 했잖습니까? 그랬으면 다치시지도 않았을 텐데. 노인네가 뭔 고집이 그리 세 가지고…….”
분명히 그랬다.
이무환이 성질을 박박 긁은 것 빼고는.
“네 이노……! 쿨럭!”
그때 피를 한 움큼 토해낸 혁성화의 얼굴이 검게 변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옆으로 쓰러졌다.
혁성신이 놀라 부르짖었다.
“형님!”
“부주님!”
그나마 조금 멀쩡한 자들이 혁성화에게 달려갔다.
이무환이 그걸 보더니 손사래를 쳤다.
“어? 제가 그런 거 아닙니다. 몸도 안 좋은 노인네가 화를 못 이겨서 그런 거지.”
“네놈이 정말……!”
혁성신이 손을 들더니 부들부들 떨며 이무환을 가리켰다.
순간, 표정이 차갑게 굳은 이무환의 입에서 냉풍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죽길 바라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