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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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96화
96화
“왜 수룡단의 대원을 죽인 범인을 본 부에 와서 찾는단 말이냐? 헛소리 말고 돌아가라!”
이무환이 싱긋 웃었다. 입만 웃을 뿐, 그의 눈에선 차가운 한광이 번뜩였다.
“왜 찾느냐고요? 그야 여기에 있기 때문이죠. 바로 여기, 마룡부에.”
흠칫한 혁성신이 냉랭히 코웃음 쳤다.
“그게 누구냐? 이름을 밝히고 증거를 내놔봐라!”
“이름은 몰라.”
툭 던진 반말에 혁성신이 발끈했다.
“뭐라? 네놈이 지금 감히 나와 장난하자는 것이냐?”
“대신, 그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 어디에 있는지도.”
“이놈! 이름도 모른다는 놈이 무슨 헛소리냐?!”
이무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노인 양반이 쓸데없이 화내는 걸 보니 오래 살기는 틀렸군.”
혁성신의 얼굴이 붉어졌다. 분노에 목소리도 떨려 나왔다.
“네, 네놈이… 감히……!”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전마각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유마도 석치상의 제자. 그를 내놓으쇼.”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혁성신의 귀에는 천둥처럼 울렸다.
“무, 무슨 소리냐? 구유마도의 제자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이냐?”
사람들이 그의 말에 웅성거렸다. 난데없이 천중십마의 이름이 나오니 놀란 듯했다.
생각대로 구유마도라는 이름에 분위기가 흐트러지자, 이무환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혁성신을 노려보았다.
“어제 저곳에서 나온 것을 봤고, 다시 들어가는 것도 봤소. 그리고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소이다. 그러니 저 안에 구유마도의 제자가 있을 것 아니오?”
“네놈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이무환이 갑자기 빽! 소리쳤다.
“헛소리 아니라니까! 아, 진짜! 조용히 해결하려고 했더니, 노인네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무 형! 뇌고자!”
무설강과 제갈신걸이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발끈한 혁성신이 미처 노성을 내지르기도 전에 이무환의 명이 이어졌다.
“들어가서 끌고 나오쇼! 반항하는 자는 죽여도 돼! 내가 책임질 테니까!”
무설강과 제갈신걸이 스윽, 앞으로 나아갔다.
진기를 끌어올린 그들이 나아가자 앞을 막고 있던 무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노성을 내지르려던 혁성신은 두 사람의 신위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결코 내 아래가 아닌 고수들이다!’
무설강은 그도 안다. 천룡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불리던 고수가 바로 그였으니까. 그러나 제갈신걸은 듣도 보도 못한 자였다.
혁성신은 굳은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전마각 앞에 오십여 명의 무사가 모여 있지만, 그들로는 두 사람을 막을 수 없을 듯했다.
그가 옆을 향해 눈짓했다.
세 명의 장로가 즉시 전마각 쪽으로 이동했다.
그때 이무환이 손을 들어 그들을 가리켰다.
“막는 자는 죽는다 했다!”
찰나였다.
쒜에에엑!!!
대기가 진저리치며 찢겨지고, 대낮에 세 줄기 번갯불이 번쩍였다.
전마각 쪽으로 가던 장로들 중 둘이 대경해 무기를 빼 들었다. 순간!
텅! 쾅!
“허억!”
“크윽!”
두 명의 장로가 신음을 토하며 주르륵 밀려났다.
한 사람은 어깨에, 한 사람은 옆구리에 구멍이 난 채 물러나기에 급급하고, 그나마 뒤처져 있던 한 사람만이 황급히 뒤로 몸을 날리며 검을 빼 들고 번개가 날아든 곳을 바라봤다.
혁성신도 눈을 홉뜬 채 급히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정문 지붕 위에 한 사람이 오연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석 자 크기의 백색 궁. 두 명의 장로를 단번에 물리친 번개는 그의 궁에서 뿜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궁으로 공격했는데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정말 저자가 공격했나?’
그때 그를 향해 이무환이 말한다.
“죽여도 된다니까요?”
그가 대답한다.
“자네가 이해하게. 죽일 때 죽이더라도 첫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나?”
“거참, 맘도 좋으셔.”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대로 손을 쓰지.”
혁성신은 머릿속에서 맴도는 누군가의 인상을 떠올리며 그에게 물었다.
“귀하는 누구시오? 누구신데 우리와 척을 지려는 것이오?”
“헌원숭이라 하오.”
혁성신의 눈이 한껏 커졌다.
“며, 명부신사 헌원숭?”
웅성거리던 장내가 점차 조용해졌다.
무설강과 제갈신걸이 전마각 안으로 사라졌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무환이 때를 놓치지 않고 손을 앞으로 뻗으며 소리쳤다.
“모두 들어가서 놈들을 찾아!”
이무환의 뒤에 늘어서 있던 광룡대의 간부들이 일제히 전마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제는 누구도 막지 않았다.
움직이면 명부신사의 활이 튕겨질 터였다.
화살이 몇 개인지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전에 봤다시피 그는 화살을 쓰지 않았다. 화살 대신 기를 유형화시켜 날릴 뿐!
그렇게 광룡대의 간부들이 일제 전마각 안으로 사라졌을 때다.
“멈춰라!”
마룡각 안에서 굉량한 외침이 터지더니, 문이 활짝 열리고 십여 명이 걸어나왔다.
그들을 본 이무환의 눈에서 싸늘한 광망이 번졌다.
‘마침내 나왔군!’
마룡부주 적혈마신(赤血魔神) 혁성화.
마침내 그가 장로와 호법들을 대동하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누가 감히 본 부에 와서 행패를 부린단 말이냐?!”
노성을 내지른 혁성화는 정문 위에 서 있는 헌원숭을 바라보았다.
그는 안에서 보고받으며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팔부의 눈이 다 몰려 있는 상황, 자신이 직접 나선다는 것은 체면 문제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명부신사 헌원숭!
그 이름에 대경한 그는 더 이상 체면만 생각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가 온 걸까?
그는 의문을 품고 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정문 지붕 위에 조용히 서 있는 그는 분명 헌원숭이다.
오늘 처음 보는 모습이지만, 그를 알아보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뻗치는 절대의 기운! 그것만으로도 그는 헌원숭인 것이다.
“귀하가 왜 본 성의 일에 끼어든 것이오!”
혁성화의 외침에 이무환이 대답했다.
“그도 특조대의 사람입니다, 부주.”
같잖은 애송이 따위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만큼은 그를 놀라게 하고도 남았다.
“무슨 말이냐? 헌원… 대협이 왜 특조대 사람이란 말이더냐?!”
혁성화는 차마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고 대협이라 칭했다. 그만큼 헌원숭은 그로서도 껄끄러운 상대였다.
“오늘부로 본 성의 사람이 되신 분이지요. 저희 특조대의 일이 끝날 때까지 도와달라고, 단주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셨다 합니다.”
혁성화는 당장 눈앞의 건방진 놈을 때려잡고 싶었지만, 억지로 화를 짓눌렀다.
“이놈! 즉시 수하들을 불러들여라! 본 부를 수색하고 싶거든 호연청더러 직접 오라고 해!”
이무환이 피식 웃었다.
“죄송하지만, 그분은 바빠서요. 범인만 잡으면 물러갈 테니, 부주께선 그만 들어가 쉬십시오. 제가 설마하니 마룡부를 다 부수기라도 하겠습니까?”
“네, 네놈이 감히!”
박박 속을 긁는 이무환의 말투에 혁청화가 끝내 분노를 터뜨렸다.
“성신, 너는 사람들을 데리고 전마각으로 가서 놈들을 막아! 저놈은 내가 직접 잡아서 호연청에게 따질 것이니까! 모두 저놈을 잡아라!”
마룡부주의 명이다.
아무리 헌원숭의 궁이 무섭다고 해도 부주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이백수십 명의 마룡부 무사가 일제히 이무환을 둘러쌌다.
하지만 이무환은 태연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정말 해보자, 이거지요? 다쳐도 책임 묻기 없기, 치사하게 뒷말하면 네발 달린 짐승이 되는 겁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오냐, 이놈! 내 반드시 네놈의 사지를 부러뜨려서 호연청에게 던져 줄 것이니라!”
그의 목소리가 사그라지기도 전이었다. 담장 위로 육십여 명의 광룡대원이 올라섰다.
수룡단의 일반 대원들이 아니다.
그들은 육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삼백에 가까운 무사에 비해 조금도 기세에서 눌리지 않는다.
‘구룡수호단이 모두 왔다는 말?’
그제야 혁성화가 솟구친 분노를 짓누르고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헌원숭과 이무환, 거기에 초절정고수가 둘. 더해서 절정의 경지에 이르거나 그에 근접한 일류고수들만 모아 만들었다는 구룡수호단 오십에 광룡대다.
이겨도 세력의 반 이상은 잃을 생각을 해야 한다. 끓어오른 분노를 풀기 위한 대가치고는 너무도 크다.
‘한 번 더 참아야 했나?’
그가 이를 악물고 상황을 판단하고 있을 때였다. 이무환이 양팔을 쫙 벌리더니 미친놈처럼 소리쳤다.
“좋아! 덤비고 싶으면 다 덤벼!”
그러더니 간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동시에 담장 위에 올라서 있던 광룡대원들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순간 쇄도하던 이무환의 눈에서 기광이 일었다.
콰광!
단 한 번의 공격에 세 명의 무사를 튕겨낸 그는 그 반탄력을 이용해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그러자 확연히 보였다.
삼백의 마룡부 무사 중 백여 명이 표시 나지 않게 슬슬 뒤로 몸을 뺀다. 개중에는 간부도 있고 일반 무사도 있다.
그런데 그들이 광룡대가 없는 곳으로 이동하며 따로 뭉치고 있었다.
이무환이 소리쳤다.
“저 뒤쪽으로 도망치는 놈들을 쳐! 저놈들이 잠풍련 놈들이다!”
명이 떨어짐과 동시, 마룡부의 무사들을 몰아치던 광룡대원들이 눈앞의 상대를 강하게 밀치고 몸을 날렸다.
이무환의 명령이 뜻밖이었는지 마룡부의 무사들도 엉거주춤 손을 멈췄다.
도망치는 놈들! 잠풍련 놈들!
대체 무슨 말인가!
“잠풍련에 속하지 않은 구룡성의 무사들은 특조대에 대항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라! 물러서는 자는 죄를 묻지 않을 것이다!”
이무환의 연이은 외침에 마룡부의 무사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이 우왕좌왕 머뭇거리는 사이, 이무환은 헌원숭에게 전음을 보내고 혁성화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장로와 호법들을 맡아주십시오!>
이무환이 날아오자 혁성화의 옆에 있던 호법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헌원숭의 활이 튕겨졌다.
투두두둥!
찰나에 십여 발의 형체없는 화살이 호법들에게 쏟아졌다.
콰과광!
떠더더덩!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해도 상대가 헌원숭이다.
네 명의 호법이 정신없이 무기를 휘두르며 헌원숭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방향을 바꾼 기의 화살이 옆 사람마저 위협했다.
뒤따라 움직였던 장로와 호법 셋이 황급히 몸을 피했다.
“헉!”
“크윽!”
두 명이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전면이 순식간에 뻥 뚫렸다.
이무환은 떨어져 내리던 그대로 혁성화를 향해 천광수뢰공을 펼쳤다.
뜻밖의 가공할 기세에 혁성화도 쌍장을 휘둘렀다.
이미 불은 장작더미에 옮겨 붙은 상황. 끄기 위해선 입만 산 애송이 놈을 먼저 때려잡아야 했다.
“건방진 놈!”
마룡부의 절기인 적혈마마공이 붉은 광채를 뿜어내며 줄기줄기 뻗어나갔다.
일순간, 가공할 경력이 일 장의 간격을 격한 채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과광!!!
이무환이 훌쩍 뒤로 날아갔다.
혁성화가 쿵쿵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화르르르르!
부서진 기운의 파편이 주위를 휩쓸며 회오리쳤다.
그 바람에 주위 삼 장 안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신음을 토하며 비틀거렸다.
이무환은 오 장 밖에 내려서자마자 지체없이 몸을 날려 혁성화를 공격했다.
상대는 구룡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마룡부주다.
어줍잖은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일격필살의 기세를 담아 상대를 눌러야 한다.
이무환은 구성의 내력을 담아서 천광수뢰공을 재차 쏟아냈다.
“다시 한번 받아봐!”
다섯 걸음 물러섰던 혁성화도 눈을 부릅뜬 채 이무환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오냐, 이놈! 덤벼라!”
또다시 두 사람의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과과광!!!
두 사람의 무지막지한 격돌에 마룡각 주위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무식하게 보일 정도의 정면 격돌이 오 초를 넘어가자, 바닥의 청석이 가루가 되어 뿌연 먼지구름처럼 솟구쳤다.
두 사람의 격전이 벌어지는 곳 십 장 이내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그렇게 십 초를 넘어갈 때였다.
갑자기 이무환이 뒤로 몸을 빼는가 싶더니 헌원숭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만 좀 막으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