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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9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79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95화

 

95화

 

 

 

 

 

 

 

 

[전마각에서 세 사람이 나와 평등로로 갔음. 모두 처음 보는 자들로, 그들은 한 사람을 만나고 식사를 한 다음 마룡부로 되돌아갔음. 그들을 감시했던 네 명의 대원이 의견을 나누어본 바 모두가 그의 정체를 알지 못했음. 그중 한 사람은 절정의 무공을 지닌 것으로 판단됨.]

 

 

 

십중팔구는 분명해 보였다. 설령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용의자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도 충분히 그들을 만나볼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었으니까.

 

그러나 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단순히 그들을 잡는 걸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이 기회에 마룡부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버릴 작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이무환은 하루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

 

내일이면 그가 올 테니까.

 

천중십마 중 한 사람, 명부신사 헌원숭이!

 

‘당신이 먼저 내 일에 협조하라고. 그러면 혹시 알아? 기분이 좋아서 차라도 한잔 줄지.’

 

이무환이 조용히 웃음을 짓자 남궁산산이 물었다.

 

“언제 갈 거예요?”

 

“오늘은 그냥 놔두고 내일 갈 거다.”

 

“왜요?”

 

“내일 힘 좀 쓴다는 사람이 온다고 했잖아. 신입 교육도 시킬 겸, 그에게 밥값할 일거리를 만들어주려고.”

 

이무환의 말뜻을 깨달은 남궁산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하에서 헌원숭을 상대로 신입 교육이 어쩌고저쩌고, 밥값 하라며 다그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치지 않았다면.

 

‘확실히 미치긴 미쳤어. 나만큼이나. 헤헤헤, 그래서 우리는 천생연분이라니까, 오빠.’

 

그때 이무환이 물었다.

 

“근데, 너 언제 내려갈 거냐?”

 

남궁산산이 스르르, 옆으로 쓰러졌다.

 

“좀 전에 먹은 것이 잘못 되었나 봐. 갑자기 옆구리가 아파. 조금 있다 내려갈 거야.”

 

 

 

그날 밤.

 

이무환은 밤을 새며 수련했다.

 

자신이 익힌 무공을 정리하고, 뇌정갑으로 인해 세 개를 한 번에 던질 수 있게 된 무영뢰도 완숙해지도록 수십 번 반복해서 펼쳐 보았다.

 

그러면서 한 시진마다 일각씩 운기행공을 해서 기운을 추슬렀다.

 

-이상하게 말이야, 그날따라 수련을 그렇게 하고 싶더라고. 

 

나중에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전부 헛소리였다. 

 

남궁산산이 침상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워도 끝까지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남궁산산을 들어서 그녀의 방에 옮겨 놓으려고만 하면 이상하게도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결국 해시가 지날 즈음, 이무환은 남궁산산을 옮기는 걸 포기했다. 대신 밖에 나가서 오랜만에 땀이 날 정도로 몸을 움직였다.

 

날이 샐 때까지.

 

‘진짜 거머리가 따로 없다니까.’

 

 

 

2

 

 

 

그가 온 것은 아침나절이었다.

 

이무환은 호연청이 부른다는 말을 듣고 헌원숭이 도착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는 대원들을 대기 상태로 놔둔 채 단주의 집무실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집무실에 들어가자 처음 보는 사람이 호연청과 마주 앉아 있었다.

 

빼빼 마른 체구, 약간의 매부리코, 나이는 오십 중반쯤 되어 보이는 자였다. 그의 등에는 작은 보따리가 메어져 있었는데, 휘어진 것이 활인 듯했다.

 

천하제일궁 명부신사 헌원숭, 바로 그였다.

 

“어서 오게나.”

 

호연청의 반기는 말에도 이무환의 눈은 헌원숭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대단하군. 십마십존이 천하제일을 다툰다더니, 허언이 아니라는 건가?’

 

처음으로 보는 강자.

 

구룡의 주인들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내부에서 투기가 꿈틀거리며 절로 반응할 정도다.

 

그러나 압박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옆으로 걸어간 이무환은 비어 있는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헌원숭의 눈이 이무환을 향했다.

 

그도 호연청에게 나름 자세한 말을 들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다는 것, 무공이 대단히 강하다는 것. 그리고 뺀질뺀질하게 생겼다는 것까지.

 

성격이야 아직 잘 모르니 그렇다 치고, 나머지는 호연청의 말 그대로였다. 특히 내면에 깊게 도사린 힘은 그조차 정확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경악이 그의 부동심을 뒤흔들었다.

 

‘이제 겨우 스물이 넘었다 들었거늘, 지금 내 눈을 믿어야 하나?’

 

두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상대의 바다처럼 깊고 거대한 기운을 느끼고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그가 절대의 경지에 올라섰기에 이무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십여 년 전의 경지였다면 이무환을 그저 그런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설마 절대의 경지에 들어선 것은 아니겠지?’

 

그럴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무환이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라는 점이다.

 

십 년 후에는 어디까지 성장할까?

 

무릎에 얹혀 있던 헌원숭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 안에 땀이 찬 것도 느끼지 못한 채, 헌원숭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때마침 호연청이 입을 열었다.

 

“인사하게나. 헌원숭 대협이시네.”

 

이무환이 무게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이무환입니다. 당분간은 그냥 무환이라고 불러주십시오.”

 

“헌원숭이네. 단주에게 말은 많이 들었네.”

 

“너무 많은 것을 믿지는 마십시오.”

 

“그래도 하나를 빼고는 모두 사실인 것 같군.”

 

“그것이 성격에 대한 거라면, 그저 젊은 사람이 조금 활달하다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허, 내 보기에도 그런 것 같으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고요한 가운데 파동이 일었다. 아무도 느끼지 못할, 오직 두 사람만이 느끼는 파동이었다.

 

‘쉽지 않겠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었어. 내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도 흔들리지 않다니. 젊은 놈이 정말 대단하군.’

 

그러한 가운데 호연청이 힐끔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나도 처음에 저 모습을 보고 속았었는데, 천하의 헌원숭도 어쩔 수 없군. 거참…….’

 

그때 이무환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마침 절대고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헌원 대협께서 오신다기에 절실히 기다렸습니다.”

 

“허, 그랬나?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말하게. 어차피 놀러 온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 말에 호연청이 흠칫했다.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헌원숭이 덜컥 허락을 해버리자 걱정이 되었다. 광룡이 무슨 일을 시킬지 누가 안단 말인가?

 

“일단 무슨 일인지 먼저 말해보게, 이 대주.”

 

“수룡단 대원들의 살해범을 잡으려 합니다만, 놈들이 워낙 깊숙이 숨어 있어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 기회에 살해범을 감싸는 놈들까지 한꺼번에 처리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저희 힘만으로는 힘든 일이어서요.”

 

호연청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 역시 분노를 느끼고 전 대원들로 하여금 광룡대를 돕도록 하고 있었다.

 

또한 이무환의 계획대로 해서 마룡부를 뿌리째 흔들면 얻는 이익도 적지 않을 듯했다.

 

호연청은 손해날 일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무환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헌원 형의 입성 소식도 알릴 겸, 몸 좀 푸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음, 그럴까요?”

 

헌원숭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환이 다시 포권을 취했다.

 

“덕분에 대원들이 더 안전해지게 되었으니, 먼저 감사드립니다.”

 

포권을 취하는 손에 가려진 이무환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그놈이 바로 구유마도 석치상의 제자요. 혹시라도 석치상이 열 받아서 달려오면 당신이 알아서 하쇼.’

 

두 사람이 붙으면 공전절후의 싸움이 벌어질 터. 그 광경을 구경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거워졌다.

 

 

 

광룡대로 돌아가자 회의실에 광룡대와 구룡수호단의 간부들이 모두 대기하고 있었다.

 

이무환이 헌원숭과 함께 회의실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했다.

 

헌원숭이 그들을 보더니 진정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굉장하군. 천하가 왜 구룡성을 강호제일로 치는지 이제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겠구먼.”

 

언뜻 봐도 초절정에 달한 고수가 셋,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는 자가 다섯 명이나 된다. 더구나 오면서 본 수십 명의 일반대원 역시 대부분 일류고수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여느 대문파의 힘과 맞먹는 강력한 집단.

 

그러한 힘으로도 구룡 중 하나를 상대하지 못해 도움을 청한 마당이니, 천하의 헌원숭이라 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구룡성! 그 친구가 어려움을 느끼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헌원숭이 광룡대를 쓸어보며 경악하는 사이 이무환이 입을 열었다.

 

“이분은 명부신사라 불리시는 헌원 대협이시오. 우리의 작전을 돕기 위해 함께 갈 것이니, 모두 최선을 다해서 작전에 임해주시기 바라겠소!”

 

알고 있던 사람들은 아는 대로, 모르고 있던 사람들은 모르는 대로 경악한 표정을 한 채 양손을 들어 올려 포권을 취했다.

 

하지만 인사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기 전에 이무환이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조용! 적들에게 미리 알려줄 일 있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얼버무리며 포권만 취했다.

 

헌원숭도 조용히 손만 들어 올렸다.

 

그가 손을 내리기 무섭게 이무환이 남궁산산에게 물었다.

 

“어제 이야기한 계획, 다 전달했지?”

 

“예, 오빠.”

 

이무환이 흐뭇하니 웃으며 말했다.

 

“좋아! 꼬맹이, 오늘은 여기 남아 있어. 마룡을 때려잡고 올 테니까!”

 

마치 강가로 물고기 잡으러 가는 소년처럼 맑은 표정이다.

 

남궁산산도 오늘의 일이 어떻게 흐를지 몰라서 따라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몸조심해서 다녀와요, 오빠. 맛있는 거 준비해 놓고 기다릴 게요.”

 

대신 생긋 웃으며 부인처럼 대답했다.

 

 

 

3

 

 

 

수룡단의 정복을 한 칠십여 명의 광룡대가 우르르 몰려가 마룡부를 에워싸자 갑자기 긴장감이 맴돌았다.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나도록 움직여서인지 나머지 팔부에서도 급히 사람들을 파견해 사태를 주시했다.

 

“특조대다! 문 열어! 안 열면 부수고 들어갈 것이다!”

 

이무환의 목소리가 마룡부의 건물을 흔들며 울려 퍼졌다.

 

곧이어 문이 활짝 열렸다.

 

이무환은 문이 열리자 뒷짐을 진 채 안으로 들어갔다.

 

 

 

신도연풍은 전마각 삼층에서 창문 틈 사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미친놈이 왜 아침부터 쳐들어온 거지?”

 

며칠간 조용하던 광룡이 다시 미쳐 날뛴다.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러잖아도 폭마단의 반쪽짜리 성공에 잔뜩 골머리를 썩던 신도연풍은 습격이나 다름없는 광룡의 등장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화룡단을 방문해 백이 노인의 시신을 감정했다 하던데, 혹시 그 일로 오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뒤에 서 있던 적흔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말하긴 했습니다만, 만에 하나 그 일로 왔다면 어떤 대비를 함이 옳지 않겠습니까?”

 

“대비라……. 제길, 너무 갑자기 쳐들어와서 마땅한 대비책을 세울 시간도 없군. 좌우간 그대는 가서 그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고 전해. 여차하면 함께 지하 통로를 통해 유마각 쪽으로 가서 힘을 합치고.”

 

“예, 대령주.”

 

적흔이 나가자 신도연풍의 눈빛이 흔들렸다.

 

‘제길,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급하면 버리고 가는 수밖에…….’

 

 

 

넓은 연무장에 백여 명의 무사가 나와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무사들의 수는 더욱 많아졌다.

 

마룡부의 무사들이 모조리 쏟아져 나오는 듯했다.

 

그들은 이무환이 들어오는 것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일전을 불사할 것처럼 무기를 움켜쥐었다.

 

이무환은 무설강과 제갈신걸을 비롯한 십여 명을 대동한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헌원숭은 보이지 않았는데, 밖에서 대기 중이었다.

 

아직 정체를 드러내기는 이른 상황. 더구나 그의 장기는 궁이 아니던가? 장거리에서 도와주는 게 훨씬 나았다.

 

이백이 넘는 무사들 사이로 들어가는 이무환의 태도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뒷짐을 진 것도 여전하고, 걸음걸이도 여전했다.

 

너무나 태연한 이무환의 태도에 오히려 마룡부의 간부들이 분노했다.

 

마존각 앞에 서 있던 혁성신이 버럭 소리쳤다.

 

“또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이냐?!”

 

“볼일이 있으니까 온 것 아니겠습니까?”

 

삐딱한 말투.

 

혁성신은 이무환의 말투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일이라고? 아직도 조사할 사람이 있단 말이냐?”

 

느닷없이 이무환이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어떻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찾아왔지요!”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을 굳히고 차가운 눈빛으로 혁성신을 직시했다.

 

“특조대의 대원들을 살해한 범인을 순순히 내줬으면 좋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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