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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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94화
94화
남궁산산이 피식 웃었다.
“맞아요. 다른 두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은 확실히 구유잔백도에 당했어요.”
남궁산산의 말에 둘러선 사람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설강이 물었다.
“구유마도 석치상에게 당했단 말인가?”
“본인에게 당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무공에 당한 것은 분명해요.”
“그럼 그의 제자들이 구룡성에 들어왔단 말이군.”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무환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어쨌든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구유마도 석치상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
무설강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점입가경이군.”
이무환이 싸늘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안됐지만, 잘하면 이들 덕분에 마룡부를 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설강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말인가?”
“구유마도의 제자든 아니든, 그들은 분명히 마룡부에 있을 겁니다. 그들의 흔적만 발견되면 명분은 충분하지요.”
“설령 그들이 그곳에 있어도 구유마도의 체면을 생각해서 쉽게 내주려 하지 않을 텐데?”
“그럼 더 좋지요. 아예 공범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 테니까요.”
남궁산산이 이무환의 생각에 한 가지를 덧붙였다.
“그렇게 몰아치다 보면 뭔가가 나올 거예요. 하다못해 가려져 있던 잠풍련의 사람이라도 말이죠.”
이무환이 조용히 웃었다.
“내 말이 바로 그거다.”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무환이 속을 긁는데 누가 견딜 수 있단 말인가!
아마 부처라 해도 감긴 눈을 번쩍 뜨고 머리에서 김을 뿜어낼 것이다.
“자, 이제 또 다른 시신들을 보러 갈까?”
이무환의 말에 엽상이 쳐다보았다.
“화룡단으로 가실 겁니까?”
“당연히 그들도 봐야지.”
엽상이 머뭇거리며 염려되는 표정을 지었다.
“더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가 염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차라리 무력 단체라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러나 화룡단은 구룡성의 물품 보급을 책임진 곳. 그곳에 밉보이면 당장 밥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무환은 티끌만큼도 걱정하지 않고 말했다.
“혹시 알아? 또 다른 뭔가가 나올지.”
이무환은 곧바로 화룡단으로 향했다.
광룡대를 나온 사람은 이무환과 남궁산산, 무설강, 제갈신걸. 거기다 영호승과 막위와 혁수린이 동행했다.
영호승 등은 아직 완쾌되지 않았지만, 생사투를 벌이는 일만 아니라면 활동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엽상은 종리난경의 간호를 하라고 하자 두말도 않고 뒤로 빠졌다.
화룡단은 내성과 외성 사이에 있었다.
반은 외성에, 반은 내성에 걸쳐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정복을 입은 이무환 일행이 내성 쪽 입구로 다가가자 위사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무환이 짧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나, 특조대주야.”
그러고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들어갔다.
누구도 막지 않았다. 일개 위사에게 소문의 광룡을 막을 배짱이 있을 리 없었다.
“처, 천외광룡이……. 이봐, 빨리 가서 알려!”
위사 중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자가 급히 옆에 있는 동료를 떠밀었다.
이무환은 느긋한 걸음걸이로 화룡단의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옆쪽으로 부리나케 뛰어가는 위사가 보였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수룡단의 무사가 일곱 명이나 들어온 것을 보고는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했다.
그렇게 이무환 일행이 중앙의 큰 건물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끼익!
중앙 건물의 문이 열리고 세 명의 중년인이 밖으로 나왔다.
그중 가운데 서 있던 화복 차림의 뚱뚱한 중년인이, 뭘 먹다 나왔는지 이를 쑤시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쩝쩝, 나는 화룡단의 부단주, 오장명이라 하네. 특조대에서 무슨 일로 온 것인가?”
이무환이 삐딱하니 고개를 들고 오장명에게 물었다.
“약재당의 백문호 당주가 어느 분이오?”
오장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도리어 몰아붙이는 투다. 더구나 길거리 건달처럼 삐딱한 태도로 말이다.
‘저런, 건방진 놈을 봤나? 지까짓 게 특조대주면 다야?’
그러나 상대는 미친 용이라 불리는 특조대주 천외광룡이다. 그는 목소리를 최대한 누그러뜨리고 대답했다.
“지금 이곳에 없네. 그를 찾으려면 약재당으로 가보게나.”
“약재당이 어느 곳에 있소?”
“저쪽으로 가보…….”
오장명이 손을 들어 오른쪽을 가리켰다.
이무환은 오장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가리킨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어이가 없는지 오장명이 눈썹을 치켜떴다.
그때 이무환이 고개를 돌렸다.
“약재당주 백문호가 증거를 빼돌렸다는데, 혹시 아는 거 없소?”
“무슨 말인가? 증거를 빼돌렸다니?”
“백초방의 주인 백이 노인과 그의 수하 셋의 시신 말이오. 정말 모르오?”
“백이 노인이 죽었단 말인가? 나는 금시초문이네.”
“그래요?”
이무환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오장명의 아래위를 훑어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제멋대로인 이무환의 태도에 오장명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저 시건방진 애송이놈이!’
그러나 끝까지 발작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무환이 멀어지자 왼쪽의 중년인에게 나직이 명을 내렸다.
“가서 무슨 일인지 확실히 알아봐.”
“예, 부단주.”
그러고는 다시 오른쪽의 중년인에게 말했다.
“놈이 세 번의 건방을 떨었으니, 사흘간 수룡단의 식자재에서 고기의 양을 삼분의 일로 줄이고 품질을 최하급으로 낮춰라.”
오른쪽의 중년인이 머뭇거렸다.
“미쳤다는 놈인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흥! 미친놈도 먹어야 산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야.”
“알겠습니다, 부단주.”
이무환은 영호승을 먼저 보내 백문호를 찾도록 하고 천천히 약재당으로 들어갔다.
들어선 순간 싸한 약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킁! 냄새 좋군.”
잠시 서서 주위를 훑어보는데 영호승이 사십대 중년인과 함께 나왔다.
울었는지 그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내가 백문호요. 한데 무슨 말이오? 증거를 가져갔다니?”
이무환이 물었다.
“백이 노인과 백초방 하인들의 시신을 가져가지 않았단 말이오?”
“숙부의 시신을 조카가 가져온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문제는 그 시신에 증거가 남았다는 거지. 어디 있소?”
“숙부의 시신은 내줄 수 없소이다.”
생각만큼이나 강하게 나오는 백문호다.
때려잡고 물어봐?
그럴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숙부의 죽음에 슬퍼하는 백문호를 때려잡아 봐야 박수 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무환은 일단 말투를 먼저 부드럽게 바꿔봤다.
“범인을 잡고 싶지 않소?”
백문호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범인을 잡고 싶었다. 다만 조사한다며 시신을 훼손시킬까 봐 내주고 싶지 않았을 뿐. 숙부를 두 번 죽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특조대주가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잡을 수 있겠소?”
“당신이 협조해 준다면.”
‘흠, 좋은 사람 만난 줄 아쇼.’
내심 이무환이 흡족해하는데 백문호가 요구 조건을 내밀었다.
“그럼 시신을 훼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시오.”
“걱정 마시오.”
이무환이 이곳에 온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시신들의 상흔을 보는 것이고, 하나는 백문호에 대한 조사였다.
만일 백문호가 그들과 연루되었다면 조금 더 일이 쉬울 터. 이무환은 은근슬쩍 백문호를 떠봤다.
“그런데… 혹시 백이 노인이 양귀비를 몰래 대량으로 유통했다는 걸 알고 있었소?”
백문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무슨 말이오? 숙부께서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흠, 몰랐나 보군요. 그분이 돌아가신 게 그 일 때문인데…….”
백문호의 눈이 홉떠졌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우리는 세 명의 하인이 죽은 것도 분명 그 일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있소.”
“으음…….”
거짓이 섞이지 않은 표정이다. 백문호가 천하제일의 거짓말쟁이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의 눈을 완벽하게 속일 수는 없을 터였다.
이무환은 아쉬움을 털고 백문호를 재촉했다.
“자, 일단 가봅시다.”
백이 노인의 시신은 관에 담겨 있었다.
경악과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지만, 옷을 젖혀 봐도 별다른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목뼈가 완전히 부러졌을 뿐.
“단번에 목을 부러뜨렸군.”
이무환의 이마가 좁혀졌다.
일반인의 목을 부러뜨려 죽이는 거야 무공이 일류에 달한 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던 이무환으로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궁산산의 생각은 이무환과 달랐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오빠.”
“왜? 뭐 있어?”
“이 노인을 죽인 사람은 석치상의 제자가 확실해요.”
뭔가를 본 듯했다.
이무환이 남궁산산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빼고 백이 노인의 시신을 쳐다보았다.
남궁산산이 백이 노인의 머리와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네 개의 깊게 박힌 손가락 자국이 선명히 보였다. 단순히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남궁산산이 손가락 자국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구유마도 석치상의 무공은 도법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의 구유잔백도를 익히기 위해선 먼저 익혀야 할 것이 있죠. 그게 뭔지 알아요?”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남궁산산만 바라보았다.
남궁산산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도를 쥐기 위해 잔백조(殘魄爪)라는 조법을 익혀야 되요. 다시 말해 구유와 잔백이 합쳐져 구유잔백도가 된단 말이죠.”
“그럼, 백이 노인이 잔백조에 당했단 말이냐?”
“바로 그거예요. 범인은 그냥 목을 부러뜨릴 수도 있는데, 버릇처럼 잔백조를 썼어요. 오히려 도법보다 더 확실한 증거죠. 도법은 흉내 낼 수 있어도 잔백조는 흉내 내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이다 모로 꼬았다.
“다른 사람에게 그걸 증명할 방법이 있어? 그냥 평범한 손가락 자국으로 보이는데.”
남궁산산이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마 안쪽으로는 살이 문드러지고, 목뼈에 손가락 자국이 선명히 나 있을 거예요. 가루가 되어 구멍이 뚫린 채 말이죠.”
이무환은 백이 노인의 목에 난 손가락 자국을 눌러보았다. 손가락 자국 부위만 유난히 부드러웠다. 깊게 찌르자 손가락이 쑥 들어갔다. 남궁산산의 말대로 안쪽이 파괴된 듯했다.
그 광경에 백문호가 급히 나섰다.
“숙부님의 시신을 훼손하지 않기로 했잖소?”
남궁산산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말아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 아마 제가 한 말만으로도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을 거예요. 범인은 시신의 목살을 베어내는 것 정도는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악랄한 자, 우리가 그렇게 해서 확인했을 거라 생각할 테니까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가 증거를 원한다면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남궁산산은 굳이 그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때 이무환이 일어서며 백문호를 바라보았다.
“일단 시신을 훼손시키지는 않을 것이오. 단, 당신도 당분간 장례를 미루고, 시신을 안전한 곳에 보존해 주시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가 시신을 강제로 인수해 갈 것이니까.”
“그, 그건……. 후우, 알겠소.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대로 놔둘 수는 없소. 그러니 날짜를 정해주시오.”
“열흘. 그 정도면 될 거요. 물론 오늘 일에 대해서 철저히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점 명심하시고.”
“걱정 마시오. 나만이 관리하는 창고가 있소. 방부 처리해서 그곳에 놓아두겠소.”
제8장. 마룡(魔龍) 때려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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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룡부, 그것도 전마각 쪽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간 마룡부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를 한 덕에 광룡대의 대원들 중 마룡부의 인맥 구조를 잘 아는 사람이 제법 되었다. 그들을 변복시켜 모조리 마룡부 감시에 투입시킨 것이다.
그래선지 시시각각 마룡부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물론 머리를 굴리는 것은 남궁산산의 몫이었다.
이무환은 그저 탱자탱자 놀면서 남궁산산의 목소리에 귀만 기울이면 되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차나 따라 마시고, 그러다 그것도 심심하면 생각할 게 있다며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다.
행여나 남궁산산의 습격에 당할까 봐 한쪽 정신은 깨워놓은 채.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밀려들 무렵. 남궁산산이 종이를 하나 집어 들고 이무환이 누워 있는 침상 위로 폴짝 뛰어 올라왔다.
“저리 내려가!”
지레 놀란 이무환이 펄쩍 뛰었다.
그러나 남궁산산은 손에 든 종이를 내밀며 오히려 몸을 밀착시켰다.
“이거 봐요, 오빠. 아무래도 놈들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