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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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93화
93화
안쪽의 두 번째 건물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약초를 정리하던 두어 명의 일꾼마저 나가자, 약초향 가득한 건물 안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팔호와 구호는 태연한 걸음걸이로 좌우에 쌓인 약초 더미를 살피며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의 뒷문은 백초방의 주인인 백이의 거처와 연결되어 있었다.
곧 대주가 들어올 터. 그때를 대비해 백이의 존재를 정확히 확인해야 했다.
그때 누군가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더니 뒤쪽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누군가가 창고에 들어온 것을 알고도 돌아다보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다보는 것이 더 의심을 살지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찡!
바로 뒤에서 칼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을 때서야 실수를 깨달은 두 사람은 급히 몸을 날렸다.
“이런! 피해!”
그러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게다가 상대의 칼은 두 사람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쉬이익!
“허억!”
일 장의 거리를 나아가던 두 사람은 뿜어지는 피분수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상대의 칼이 심장을 그대로 갈라버린 것이다.
털썩!
두 사람이 무너지자 얼굴이 긴 장한이 나직이 명을 내렸다.
“흔적을 치워라. 다음 손님을 맞이해야 하니까.”
안쪽의 첫 번째 건물에는 십여 명의 손님이 약초를 고르고 있었다. 손님이 골라놓은 약초를 옮기는 일꾼도 두어 명 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찾던 수하와 수상히 여겼던 세 사람은 그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종리난경의 미간에 세 줄기 골이 만들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싸늘한 느낌. 살기였다.
스쳐가듯 바로 사라져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느낌을 믿었다.
이무환이 준 화정팔검을 익히기 위해서, 초연십이식을 익힌 영호승 등과 매일같이 실전이나 다름없는 비무를 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육감이 남달리 예민해진 그녀였다.
“안으로 가자.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종리난경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을 보고 일호도 바짝 긴장한 채 뒤를 따라갔다.
피비린내는 강한 약초향에 가려져 버렸다.
그런데도 육감은 계속 경고를 보냈다.
종리난경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좌우를 쓸어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손님조차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종리난경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손을 등 위로 올렸다.
스르릉.
검이 맑은 울음소리를 흘리며 뽑혔다.
종리난경이 검을 뽑자, 일호도 덩달아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그렇게 중간을 지났을 때다.
와르르르…….
좌우의 약초 더미가 두 사람을 향해 무너져 내렸다.
“조심해!”
종리난경이 소리치며 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거의 동시 일호도 뒤로 몸을 날렸다.
“웬 놈이냐?!”
순간, 무너지는 약초 더미 사이에서 시퍼런 광채가 번뜩였다.
상대가 누군지 확인하기 전에 도광이 먼저 코앞에 다가왔다.
극쾌의 도!
종리난경은 자신의 커다란 검으로 원을 그리며 암습자의 도를 튕겨냈다.
탕!
그러나 날아드는 도는 하나가 아니었다.
종리난경은 몸을 옆으로 누이며 허공에 세 개의 검화를 그렸다.
화정팔검 중 삼초, 삼화초개(三花初開)였다.
따다당!
날아들던 도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뒤이어 처음에 튕겨진 도가 다시 우측을 파고들었다.
종리난경은 몸을 휘돌리며 찰나간에 칠검을 뿌렸다.
따다당!
폭이 좁은 도 두 자루가 그녀의 커다란 검이 만들어낸 검영에 부딪치며 좌우로 튕겨나갔다.
종리난경은 그제야 바닥으로 내려서서 상대의 모습을 확인했다.
바로 그놈들이었다. 얼핏 봤던, 등에 보따리를 매고 있던 자들.
“웬 놈들이 감히 암습을 하는 것이냐?!”
그때였다.
“커억!”
뒤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반사적으로 눈을 돌리자, 가슴이 쩍 벌어진 일호 장기명이 쓰러지는 게 보였다.
“기명!”
얼굴이 긴 장한이 피 묻은 도를 흩뿌리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젠 너만 남았구나, 계집.”
“네놈이 감히!”
종리난경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쉐쉐쉑!
다섯 송이 검화가 얼굴이 긴 장한을 향해 몰려갔다.
강력한 검기!
종리난경의 검이 그렇게 강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표정이 굳어진 장한이 폭이 좁은 도를 들어 허공을 십자로 갈랐다.
쉭쉭!
따다다당!
검화가 스러지며 스멀거리는 도기가 종리난경의 검을 휘감았다.
눈 깜짝할 사이, 두 사람 사이에 삼 초의 공방이 이루어졌다.
검광도광이 난무하고 양쪽에 있던 약초가 허공에 날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쾅!
굉음이 일며 종리난경이 뒤로 밀려났다.
얼굴이 긴 장한 역시 두 걸음을 물러서서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군. 수룡단의 일개 대주가 내 칼을 받아내다니 말이야.”
“개자식! 감히 수룡단의 무사를 죽이다니!”
종리난경이 이를 갈며 호기롭게 소리쳤다. 그러나 마음은 다급하기만 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처럼 얼얼했다.
눈앞에 있는 적은 최소한 자신보다 한두 수 위에 있는 고수였다.
‘빌어먹을! 어디서 이런 놈이!’
게다가 적은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뒤에서 두 사람이 소리 없이 달려들었다.
종리난경은 홱 몸을 돌리고는, 뒤에서 달려드는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지 않았다.
얼굴이 말처럼 긴 놈은 자신보다 한 수 위의 고수였다. 나머지 두 놈 역시 적어도 삼십여 초는 겨루어야 승부가 날 고수였다.
시간을 끌면 이곳에서 죽는다.
그걸 안 이상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수하들의 복수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따다다당!
두 사람의 도를 양쪽으로 튕겨낸 종리난경은, 찰나간의 틈이 보이자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때 서늘한 느낌이 등 뒤로 전해졌다.
‘놈이다!’
몸을 날리던 종리난경은 날아가던 그대로 몸을 뒤집으며 검을 휘둘렀다.
순간 검을 휘두르던 종리난경의 눈이 부릅떠졌다.
상대의 도첨에서 한 자가량의 도강이 쭉 뻗어 나오는 것이 보인 것이다.
콰광! 쩡!
검과 도가 부딪치며, 종리난경의 검이 한 자가량 부러졌다.
그 충격에 그녀의 몸이 한쪽으로 튕겨나갔다.
‘크읍!’
내부가 연이어 진탕되자 숨이 막혔다.
부러진 칼날이 가슴과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제법 깊게 훑고 지나갔는지 통증과 쓰라림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나머지 두 놈이 다가오고 있었다.
종리난경은 부러진 장검으로 바닥을 밀치고는, 그 힘을 이용해 약초 더미 뒤로 몸을 날렸다.
얼굴이 긴 장한은 흠칫하며 들고 있던 도를 던졌다.
퍽!
약초 더미를 뚫은 도가 종리난경의 허벅지를 깊게 베고 기둥에 박혔다.
약초 더미로 인해서 등을 향했던 도의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종리난경은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입을 억지로 틀어막은 채, 높게 쌓여 있는 약초 더미를 장한 쪽으로 무너뜨렸다.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뒷문을 향해 돌진했다.
덜커덩!
문이 부서질 듯이 열리며 그녀의 몸이 나동그라졌다.
“잡아 죽여!”
뒤에서 말대가리 같은 놈의 악쓰는 소리가 들렸다.
무너진 약초 더미가 놈들의 발길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찰나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면 삶과 죽음이 엇갈리기에 충분했다.
종리난경은 젖 먹던 힘마저 끌어올려 다시 한번 신형을 날렸다.
허벅지 살이 쩍 벌어져서 다리가 끊어질듯 아팠다. 그러나 설령 다리가 잘리더라도 살아나가야 했다.
천만다행으로 담장이 멀지 않았다.
그녀는 세 장한이 건물을 나설 즈음 담장을 넘어갔다.
얼굴이 긴 장한은 종리난경이 담장을 넘는 걸 보고는, 뒤를 쫓으려는 수하들을 제지했다.
“놔둬라. 정말 지독한 계집이군. 내부가 진탕되어서 한 걸음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텐데 끝까지 도망가다니.”
그가 어찌 알까. 그 정도 상태에서도 비무를 반 시진 이상 더 할 수 있는 여자가 종리난경이라는 것을.
그때 맨 뒤쪽 건물에서 백이 노인이 나왔다.
“어찌 되었나?”
“계집 하나가 도망쳤소.”
“저런!”
“너무 걱정 마시오. 놈들은 절대 당신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없을 테니까.”
백이 노인은 불안한 표정으로 얼굴이 긴 장한을 쳐다보았다.
“정말 그럴까?”
“물론이오. 당신이 말한 세 사람도 조금 전에 수하들이 모두 죽였지 않소?”
“그거야 그렇지만…….”
백이 노인이 머뭇거리며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얼굴이 긴 장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순간이었다.
얼굴이 긴 장한이 손을 쭉 뻗더니 백이 노인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억! 왜……?”
우두둑!
얼굴이 긴 장한은 대답 대신 백이 노인의 목뼈를 그대로 부숴 버렸다.
“당신마저 죽었는데, 저들이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어찌 알겠소?”
털썩!
백이 노인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지자 얼굴이 긴 장한이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종리난경은 담장을 넘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두 채의 건물을 더 지나서 또 하나의 담장을 넘었다. 그제야 골목이 나왔다.
쿵!
골목 밖에서 주위를 살피고 있던 수룡육대의 대원은 그녀가 담장을 넘어와서 쓰러지자 정신없이 달려왔다.
“대주!”
종리난경이 억지로 목을 쥐어짜 말했다.
“어서… 단으로…….”
3
종리난경이 죽기 직전의 몸으로 업혀오자 엽상이 방방 떴다.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
“시끄러……. 총대주는?”
“그 인간이 어디 있는 줄 내가 어떻게 알아? 누구냐니까!”
덜컹!
그때 문이 열리고 이무환이 남궁산산과 함께 들어왔다.
“그 인간 여기 왔어, 눈발.”
“흡!”
엽상이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이무환은 그를 보지도 않고 종리난경에게 물었다.
“백초방에서 당했어?”
“예, 총대주…….”
이무환이 엽상을 꼬나보았다.
“뭐 해? 빨리 가보지 않고!”
엽상이 대답도 않고 달려나갔다.
뒤이어 영호승, 막위, 혁수린, 무설강, 제갈신걸이 우르르 들어왔다.
“뇌고자, 당신이 가서 눈발 좀 도와주쇼.”
이무환은 제갈신걸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자, 사람들을 방에서 쫓아냈다.
“여자 속살 보고 싶은 사람만 남아.”
그 말에 사람들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남은 사람은 종리난경의 상처를 봐주고 있는 남궁산산과 이무환뿐.
그때, 품에서 고약을 꺼낸 남궁산산이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오빠도 종리 언니 허벅지 살 보고 싶어요?”
“아니?”
“그럼 뭐 해요? 빨리 나가요!”
종리난경은 응급처치가 끝나자 의당으로 보내졌다.
이각가량이 지나자 엽상과 제갈신걸이 돌아왔다.
“백초방의 주인이 충복 셋과 함께 죽었습니다.”
엽상의 말에 이무환이 턱을 괴고 눈을 좁혔다.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 죽였나 보군.”
“저, 그런데 화룡단의 백문호가 백이의 시신을 가져가서, 일단 백초방의 사람들은 그냥 놔둔 채 일호와 팔호, 구호의 시신만 수룡단으로 옮겼습니다.”
“그래? 꼬맹아, 가보자.”
때로는 죽은 사람도 말을 하는 법이다. 남궁산산은 시신이 하는 말을 누구보다 잘 알아듣는 사람이었다.
이무환은 남궁산산을 대동하고 사람들과 함께 시신이 안치된 의당 지하로 향했다.
남궁산산은 세 사람의 시신에 난 상흔을 보자마자 연결 고리를 찾아냈다.
그녀는 자신이 찾은 단서를 말하기 전에 이무환에게 물었다.
“알아보겠어요, 오빠?”
이무환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또 그 작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