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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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92화
92화
“조금 아는 사이네.”
“조금 아는 사이로 구룡성 일을 도와주러 온다? 흠, 그 양반은 남 일 도와주는 것이 취미인가 보군요.”
호연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와 손발을 맞추기 싫으면 싫다고 하게. 그럼 따로 움직이게 할 테니까.”
그 일은 이무환도 바라지 않았다. 따로 노는 사람이 있으면 귀찮은 일이 그만큼 많아지니까.
“누가 싫다고 했나요?”
“그럼 어떻게 할 건가?”
“그가 혼자 옵니까?”
“우선은. 그에게 세 명의 제자가 있다고 했으니, 그들도 들어올 거네.”
역시 혼자가 아니다.
‘호연청, 정말로 준비를 단단히 해놨구나. 뒤에다 그런 자를 숨겨놓았다니. 또 어떤 자가 있을지…….’
이무환이 조금 풀어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단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하나 그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그에게 무조건 모든 걸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그 점은 이해 바랍니다.”
“물론이네. 짧은 시간에 바람을 일으켜 잠풍련의 위세를 잠재운 자네가 아닌가? 내 어찌 자네의 공을 모르고 그에게 무조건 협조하라고 하겠나.”
말은 그럴듯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게 또한 말이었다.
이무환은 처음의 표정으로 돌아간 채 찻잔을 잡았다.
‘흐흠, 이제 십마까지 구룡성으로 몰리는 건가?’
잠풍련과 제삼의 세력과 천마교. 그리고 구유마도 석치상에 이어, 명부신사 헌원숭까지 관여된 판이다.
또 누가 온다 해도 놀랄 게 뭐 있을까?
‘이러다 십존까지 오면 천하가 구룡성이라는 먹이를 두고 싸우게 될 텐데, 그것참 볼만하겠군.’
이무환은 그렇게 단순히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젠장,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시기를 음모가 난무하는 이곳에서 보내야 하다니. 으이그, 좌우간 도움이 안 되는 아버지라니까.’
하지만 수천 리 밖의 아버지를 원망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가 고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단주.”
“그렇게 하게. 아! 그리고 자네에게 도움이 될 충고 하나 하지.”
충고? 웬 생뚱맞은 충고?
“해보시죠.”
호연청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이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멀어지는 게 여인이라네. 어지간하면 그 소저와 한방을 쓰게나. 남의 눈치 보느라 따로 지내지 말고.”
“됐네요!”
이무환이 빽! 소리치고는 홱, 몸을 돌려 쿵쿵, 소리가 나도록 걸어갔다.
‘저 양반이 누구 속 긁을 일 있나?’
뒤에서 호연청이 실실 웃는 것도 모른 체.
‘어린 친구라 역시……. 좋으면 좋다고 할 것이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광룡대에 들어서자 종리난경과 유군명이 다가왔다.
종리난경이 뭔가를 해냈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총대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도 할 말이 있어. 다 모이라고 해.”
회의실로 사람들이 모이자 이무환이 종리난경을 바라보았다.
“먼저 말해봐.”
종리난경이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총대주께서 말씀하신 약초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무환이 대답 대신 차를 후루룩 마셨다.
그게 허락이라 생각했는지 종리난경이 말을 이었다.
“외성의 백초방이라는 곳이 있는데, 작년 십이월, 그곳을 통해 구엽초를 대량으로 매수한 자가 있습니다.”
“그래?”
“게다가 그곳으로 양귀비가 몰래 들어온 정황도 포착했습니다. 그것을 구엽초와 함께 잠풍련에 넘겼는지, 아니면 단순 아편쟁이들에게 팔고 있는지가 확실치 않아 결정적인 증거를 수집하는 중입니다.”
“좋아, 증거가 나오면 바로 보고하도록. 그 즉시 놈들을 칠 테니까.”
“예, 총대주!”
생각보다 빨랐다. 원령초의 경우를 생각해 닷새 정도를 잡았는데 이틀 만에 찾아낸 것이다. 종리난경이 한 건 했다는 생각을 할 만했다.
이무환이 종리난경이 앉은 후에도 입을 열지 않자 남궁산산이 슬며시 물었다.
“오빠, 왜 모이라 한 거예요?”
이무환이 남궁산산을 째려봤다.
“두 가지 할 이야기가 있어서. 킁! 그중 하나는 곧 구룡성에 들어와서 우리와 손발을 맞출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 말인즉, 올 사람이 구룡성의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거기다 이무환이 그 말을 미리 일러줄 정도라면 보통 사람 또한 아니라는 말이었다.
무설강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누군데 자네가 신경 쓰는 건가?”
이무환이 그의 이름을 툭 던졌다.
“명부신사 헌원숭.”
“…….”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졌다.
남궁산산마저 눈을 홉뜨고 이무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천중십마 중 한 사람인 헌원숭요, 오빠?”
“그래, 바로 그다.”
무설강이 침음성을 길게 흘리며 입을 열었다.
“으음……. 그가 왜 구룡성에 들어와서 우리와 함께 움직인단 말인가?”
“호연 단주가 청한 것 같습니다.”
‘아니면 본래부터 연관을 맺고 있었든지.’
그 말은 일단 보류했다. 나중에 상황을 봐서 해도 될 테니까.
헌원숭이 들어왔을 때의 심각성을 인지한 사람은 남궁산산과 무설강뿐이 아니었다. 제갈신걸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오면 본성이 시끄러워질 거요. 아마 잠풍련 놈들이 때를 만난 듯 수룡단을 성토할 것이오.”
분명 그러겠지.
그러나 이무환은 한마디로 그 염려를 일축했다.
“그가 구룡성의 사람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문제는 바로 그 점이었다.
그가 구룡성의 사람이 되면, 수룡단에서 그를 구룡성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트집 잡을 수도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기세 싸움이 될 것이고.
성주를 뽑는 날을 보름가량 앞둔 마당. 호연청은 그런 변화를 노리는 듯했다.
“그렇게 된다면 승부의 결과는 오리무중에 빠지겠군.”
무설강이 한마디 하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때 이무환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러분에게 내가 개인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이오.”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이무환을 향했다.
왜 저렇게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여나 궁금한 표정을 한 채.
이무환이 힘 있게, 똑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분명하게 사실을 밝힙니다만! 나와 꼬맹이는 그냥 오빠 동생 사이오!”
누가 뭐랬나? 왜 저렇게 목에 힘을 줘?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든 말든, 이무환은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결코, 연인 사이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때였다.
“흑!”
남궁산산이 벌떡 일어나더니 방을 박차고 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이무환이 어깨를 으쓱 올리며 말을 맺었다.
“그럼 믿어줄 거라 믿고…….”
하지만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도둑놈! 나쁜 놈! 어떻게 저렇게 순진한 여인을 울려!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뒤늦게 그들의 눈빛이 지닌 뜻을 눈치 챈 이무환이 다급히 말했다.
“아, 저 꼬맹이에게 속지 말라니까요! 무 형님! 어제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습니까?”
무설강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
“제갈 형! 아직도 모르겠소? 저 꼬맹이가 얼마나 음흉한지?”
제갈신걸이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훈계조로 입을 열었다.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오, 총대주.”
미칠 일이었다.
그때 영호승과 막위와 혁수린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번에 보니까, 얼굴에 입술 자국이 여기저기 있던데, 요즘은 동생하고도 그런 장난을 하나?”
“나는 침상에 같이 누워 있는 것도 봤어.”
“저도요.”
이마에 열이 올랐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저, 저것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때 엽상이 종리난경에게 속삭였다. 다 들리도록.
“그저께인가? 아프지 않게 해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말이지…….”
이무환이 손을 저으며 빽! 소리쳤다.
“다 나가! 빨리 나가! 빨리!”
우르르, 광룡대원들이 나가면서 이무환을 힐끔거렸다.
그런 말에 속을 줄 알았냐는 듯, 측은하다는 눈빛이 역력했다.
사람들이 다 나가자 이무환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부 여우같은 꼬맹이한테 홀렸어. 전부…….”
이무환은 찻주전자를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쿵! 소리가 나도록 찻주전자를 내려놓은 그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제길, 이러다 완전히 코 꿰이는 거 아냐?”
그 시각.
회의실을 나간 사람들은 남궁산산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궁산산이 준 주머니를 하나씩 들고 나왔다.
은자 열 냥이 든 주머니를.
마지막으로 제갈신걸이 나오며 말했다.
“소저, 언제든 말만 하구려. 우리가 도와줄 테니까.”
“고마워요, 제갈 공자님. 미리 말씀드려 놓기를 정말 잘했어요.”
남궁산산이 조신하게 고개를 숙이며 생긋 웃었다.
‘헤헤헤. 미안해, 오빠야. 내가 한발 빨랐어.’
2
백초방은 외성의 남문 거리에 있는, 구룡성에서 제일 큰 약초상이었다.
전면의 커다란 이층 건물과 뒤쪽에 나란히 있는 세 채의 단층 건물로 이루어진 백초방은, 하루 종일 드나드는 사람들만도 수백 명이나 되었다.
주인은 백이.
나이 칠십이 다된 그 노인은 화룡단 약재당주 백문호와 친척간이라는 소문도 있었는데, 수룡단이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백문호가 백이의 칠촌 조카였던 것이다.
하기에 백초방을 조사하는 종리난경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백초방의 전격적인 조사 이전에, 평복을 한 수하들을 보내 내부 상황을 먼저 살핀 것도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이었다.
길 건너편 주루 이층에서 백초방을 살피던 종리난경은 수하가 다가와 자리에 앉자 조용히 물었다.
“백이 노인은 안에 있나?”
앞에 앉은 수룡육대의 일호가 즉시 대답했다.
“출타한 것을 보지 못했으니 안에 있을 것입니다. 확인하기 위해 수하들이 들어갔습니다.”
“누가 들어가 있지?”
“현재 팔호와 구호, 둘이 들어가 있습니다. 나머지는 백초방 좌우와 후방의 길목에서, 혹시라도 도주하는 자가 있을지 몰라 대기 중입니다.”
그때 세 사람이 제법 빠른 걸음으로 백초방에 다가가더니,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꿔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종리난경과 일호는 대화를 나누느라 그들의 얼굴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얼핏 그들을 본 종리난경이 물었다.
“응? 방금 들어간 자들은 누구지?”
일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창틀에 가려져서 사람이 들어간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속하는 보지 못했습니다.”
종리난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복장은 평범했지만, 그들이 등에 멘 기다란 보따리는 도검의 길이와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백초방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 테니까.
종리난경은 안에 들어간 수하가 일 각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
“무슨 일입니까?”
얼굴이 긴 장한이 묻자 백이 노인이 대답했다.
“며칠 전부터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있네. 그래서 불렀지.”
장한의 눈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누군지 알아보셨습니까?”
“오늘도 세 번에 걸쳐 두 사람씩 번갈아 들락거리더군. 해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수룡단인 것 같네. 자네를 직접 오라 한 것도 그 때문이야.”
단순한 감시자라면 자신을 부를 것도 없다.
하지만 수룡단이라면 이해가 갔다.
“놈들이 왜……?”
“지난번에 보낸 양귀비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그 일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것이 자네들에게 갔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지만, 들어온 것을 아는 사람은 몇 명 있다네.”
장한은 잠시 생각하고는 결심을 굳혔는지 나직이 물었다.
“누구누굽니까?”
종리난경은 백초방으로 들어가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먼저 들여보낸 수하 둘은 안에 없었다.
얼핏 본 세 사람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더 안쪽에 있는 모양입니다.”
일호가 말했다.
종리난경도 같은 생각을 하고 백초방의 안쪽 건물로 가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