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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90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8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90화

 

90화

 

 

 

 

 

 

 

 

그렇게 한 시진이 더 흘렀다.

 

다행히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자시의 북소리가 성문에서 울릴 때까지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깔깔거리다가 지친 남궁산산이 속옷만 입은 채 이무환의 침상 속에서 잠들어 있는 시각. 

 

세 사람은 하늘에 감사하며 지붕을 박찼다.

 

살 것 같았다.

 

 

 

5

 

 

 

금모산의 방은 금정전의 이층 중앙에 있었다.

 

방에는 이무환 혼자만 들어가기로 하고, 무설강과 제갈신걸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무환은 경비들의 눈이 소홀한 틈을 타 이층의 처마를 연기처럼 흘러갔다. 그러고는 들창문을 소리없이 열고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방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을 뿐이었다.

 

위치는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상태.

 

이무환은 죽 늘어선 대들보 위를 먼지 하나 건들지 않고 움직였다.

 

그때였다. 반쯤 지나가는데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삼경. 대부분이 잠든 시각.

 

이 시간의 대화 종류는 둘 중 하나다.

 

부부간의 사랑 넘치는 대화, 아니면 음모(陰謀).

 

내력으로 최대한 목소리를 차단하는 걸로 봐서 지금 상황은 후자였다.

 

이무환은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잘하면 덤으로 괜찮은 선물을 챙길 수 있을 것 같군.’

 

아니나 다를까, 곧 수상한 이야기가 들렸다.

 

“일단 그들의 요구에 응하겠다고 했소.”

 

조금 젊은 듯 느껴지는 목소리에 칼칼한 목소리가 묻는다.

 

“일단 그들의 요구에 응하겠다고 했소.”

 

조금 젊은 듯 느껴지는 목소리에 칼칼한 목소리가 묻는다.

 

“너무 빠르지 않겠소?”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위험하오.”

 

“음……. 하나 위험한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멀고, 놈은 바로 옆에 있소. 내가 오죽했으면 그들과 손을 잡으려 하겠소?”

 

“언제쯤 답변이 올 것 같소?”

 

“열흘쯤 걸릴 거요.”

 

“하긴 장사(長沙)까지 갔다 오려면…….”

 

“그러니 그대는 힘을 모으는 데만 주력해 주시오.”

 

“알겠소, 자세한 것은 그때 가서 상의합시다.”

 

“그러지요. 그럼 조심해서 가시오.”

 

다행히 오늘은 쥐새끼가 다리를 기어오른다든지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무환은 들보를 타고 방을 벗어났다.

 

‘잠풍련의 놈들인가?’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워낙 말을 조심해서 하는 바람에 상대의 지위를 알 수는 없었지만, 결코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은 아닌 듯했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긴 해도 얻은 부수입 또한 적지 않았다.

 

잠풍련인지 아닌지 몰라도, 놈들이 내분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장사’와 ‘열흘’이라는, 심상치 않은 의미가 담긴 말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자부터 잡아 족치고 싶었지만, 지금은 놔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열흘이 지나면 그 말의 의미를 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

 

‘흥! 열흘간만 살려주마. 그동안 밥 많이 처먹어라. 저승길 가는 데 배고프지 않게.’

 

 

 

금모산의 방에서는 빛 한 점 새어 나오지 않았다. 유등도, 촛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이무환은 금모산의 방에 이르자 천장에 구멍을 뚫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당연히 컴컴했다. 심지어 창문도 막아놨는지 밖에서 타오르는 횃불의 빛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방 안의 광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이무환은 침상이 있을 법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얀 뭔가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순간, 하얀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이무환의 입이 저절로 쩍 벌어졌다.

 

‘세상에! 저게 사람이냐?’

 

거상(巨象) 금모산에 대한 정보는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수룡단의 정보에 의하면, 그는 금정전을 거의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초상도 십 년 전 것이 전부였다.

 

그때도 살이 많이 찐 상태였다. 무려 이백오십 근이라는 근수가 적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보이는 살덩이는 적어도 오백 근은 되어 보였다. 정말 침상 위에 있는 물체가 사람이라면.

 

‘저걸 어떻게 다그치지?’

 

어이없는 걱정이 앞섰다.

 

북해의 해표(海豹)인가 뭔가가 사람 서넛 합친 것만큼 크다 했는데, 적어도 그 정도는 될 듯했다.

 

머리에 찐 살만 해도 자신의 몸통만 했다.

 

속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괜히 오른팔을 택했다는 후회마저 들었다.

 

‘왼팔로 할 걸.’

 

그렇다고 그냥 물러갈 수는 없는 일.

 

금모산의 인생이 불쌍하긴 하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이무환은 소리 나지 않게 천장을 뜯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일각.

 

이무환은 음파를 차단한 채 금모산을 공격했다.

 

“귀신이 왜 나를 때린단 말이냐?!”

 

금모산이 우는소리를 하며 징징 댔다.

 

그럴수록 이무환의 손이 매섭게 금모산을 후려쳤다.

 

한 대 맞을 때마다 금모산의 거대한 덩치가 들썩였다.

 

“뭐? 귀신? 에라이, 더 맞아라!”

 

그랬다. 상대가 귀신이라 부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안 그래도 변장이 마음에 안 들어 죽겠는데 뭐? 귀이이시시인? 에라이!’

 

금모산은 말 한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적어도 스무 대는 더 맞았다. 그리고 우는지, 숨 쉬는지 모를 기이한 소리를 쉬지 않고 뱉어냈다.

 

“헤엑, 헤엑, 허어엉, 왜, 왜, 허어엉, 그만…….”

 

이무환은 손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금모산을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거 혈도가 제압되어야 뭘 어떻게 하지.’

 

죽이자니 순진한 사람 죽이는 거 같아 그렇고, 살려두자니 찝찝했다.

 

그런데 금모산이 물었다.

 

“정말… 귀신이 아닌 사람이란 말이냐?”

 

“내가 어떻게 귀신으로 보인단 말이야?”

 

그때였다. 살 속에 파묻혀 실처럼 보이던 금모산의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번뜩였다.

 

“그러니까, 사람새끼가 귀신처럼 위장하고 내 방에 들어와서 나를 때렸단 말이지?”

 

‘이 돼지보다 더 돼지 같은 자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왜 갑자기 사람이 변한 거야?’

 

이무환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금모산을 바라보았다.

 

순간, 금모산의 통나무 같은 팔이 허공을 휘저었다.

 

휘잉!

 

생각보다 강력하고 빨랐다.

 

쿵!

 

이무환이 만압회를 펼쳐서 쳐냈는데도 잠깐 주춤했을 뿐, 다시 팔을 휘둘렀다.

 

“아, 진짜! 뭐 이딴 게 다 있어?”

 

귀신이라며 벌벌 떨더니, 사람이라니까 죽일 듯이 덤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무환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금모산의 공격에는 막대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만일 방이 크지 않았거나, 벽이 다른 곳에 비해 두세 배 더 두텁지 않았다면, 자신이 음파를 차단했어도 소리가 외부로 새어나갔을지 몰랐다.

 

게다가 축 늘어진 살가죽이 어찌나 질긴지 이무환의 공격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초, 단순한 공격에 상대가 타격을 받지 않자 이무환이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순간 새파란 번개가 두 손에서 뻗어나갔다.

 

쿠르릉! 쩌저적!

 

“커윽! 어헉!”

 

그제야 금모산의 두툼한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십여 번의 바위를 가루로 내버릴 타격에도 비틀거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몸으로 밀어대는 바람에 이무환이 뒤로 밀릴 지경이었다.

 

은근히 화가 났다. 살덩이에게 밀리다니!

 

‘오냐, 이놈! 어디 한번 해보자!’

 

이무환은 후려치는 권장에 회(回)의 구결을 첨가하고 소용돌이처럼 진기를 휘돌렸다.

 

그 모습을 본 금모산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뭔가 불안감을 느낀 듯했다.

 

“아, 안 돼!”

 

찰나였다. 이무환의 쌍권이 금모산의 두툼한 배를 파고들었다.

 

엄청난 살거죽이 그의 권에서 뻗친 소용돌이에 휘말려 쐐기처럼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꺼어어어어!”

 

금모산이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실 같은 눈을 부릅떴다. 그래 봐야 여전히 신월 정도의 넓이밖에 안 되었지만.

 

어느 순간!

 

찌지직! 퍼억!

 

가죽이 찢겨지는 소리가 나더니 질펀한 핏물이 금모산의 배에서 흘러나왔다.

 

이무환은 멈추지 않고 금모산의 몸을 파고든 주먹을 더욱 강하게 비틀었다.

 

우두둑!

 

몸속의 뼈가 부서지며 이탈되는 소리가 들렸다.

 

“꾸어어어!”

 

금모산의 비명도 더욱 커졌다.

 

마침내 이무환은 회자에 탄(彈)자결을 섞어 금모산의 몸을 밀어냈다.

 

쾅!

 

굉음과 함께 금모산의 오백 근 몸뚱이가 침상 위로 나가떨어졌다.

 

금모산의 몸무게에 이무환의 내력마저 더해지자, 침상이 요란한 비명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려앉았다.

 

쾅! 우지끈!

 

동시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 소리냐? 무슨 일이야?”

 

“거상님의 방에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이무환은 몰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침상 위에 나동그라진 금모산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려 삼십여 초를 연속으로 쏟아내고서야 금모산을 쓰러뜨렸다.

 

금모산이 조금만 더 버텼다면 자신이 포기하고 되돌아갔을지 몰랐다.

 

‘후와! 정말 괴물이 따로 없군.’

 

칼이 있었다면 조금 더 빨리 끝냈을지 모른다.

 

자신이 칼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강하다는 것만으로도 이무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각 부에 이 정도의 고수가 몇 명 정도씩은 있을 터. 보다 신중하지 않으면 구룡을 쌍룡으로 만들기 전에 자신이 땅에 묻힐지도 모른다.

 

이무환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 천광뇌공지를 일으켰다.

 

“그대가 금화산의 오른팔이라는 점을 원망해라, 금돼지!”

 

찰나, 번쩍! 두 줄기 벼락이 뻗어나가더니, 구멍이 뚫린 아랫배를 통해서 심장을 관통했다.

 

“크억!”

 

오백 근의 거대한 살덩이가 풀썩 뛰어올랐다 떨어졌다.

 

동시에 엄청난 피분수가 아랫배에서 뿜어졌다.

 

그사이 이무환은 천장을 통해 방을 빠져나가고,

 

쾅!

 

방문이 부서지며 십여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거상 어르신!”

 

“허억! 숙부!”

 

“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금모산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입을 달싹였다.

 

“꺼어어……. 얼굴 하얀, 모, 못생긴… 귀신이…….”

 

 

 

이무환은 금정전을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금룡전으로 갔다.

 

밖으로 나갈 줄 알았던 이무환이 금룡전으로 향하자 무설강과 제갈신걸이 황급히 뒤쫓아 갔다.

 

<어딜 가려고 그러는가?>

 

<금룡전.>

 

<뭐라고? 그건 너무 위험하네!>

 

무설강이 대경해서 전음으로 소리쳤다.

 

금룡전은 금룡왕 금화산의 거처다. 아홉 명의 호법과 네 명의 장로가 버티고 있는 곳. 게다가 금화산을 지키는 수신호위 수십 명이 감싸고 있는 곳이었다.

 

제아무리 이무환이 강하다 해도, 그곳에 침입해서 금화산을 치려는 계획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무환은 금화산과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혼자 그곳에 뛰어들 정도로 무식하지도 않았고.

 

이무환은 금정전의 소란으로 인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자 뒤쪽으로 돌아갔다.

 

<두 분은 이곳에 남아서 접근하는 자들을 처리해 주쇼. 한 사람만 만나보고 곧 나올 테니까.>

 

이무환의 전음이 동시에 두 사람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무설강과 제갈신걸은 이무환이 금룡전을 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휴우, 하긴 그렇게 무식할 것 같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저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거야?’

 

마침 금정전의 소란으로 인해 주위의 경비가 소홀한 상황. 두 사람은 몸을 날려 처마 근처에 몸을 숨겼다.

 

그 틈에 이무환의 신형은 이층의 처마 사이로 사라졌다.

 

 

 

‘하나, 둘, 셋…….’

 

기둥을 세던 이무환의 눈이 일곱 번째 기둥에 이르러 번뜩였다.

 

그는 재빨리 천장을 뜯고 아래로 내려갔다.

 

몇 번 뜯다 보니, 소리 나지 않게 빨리 뜯는 방법까지 터득해서 더욱 빨라졌다.

 

‘쩝, 이것도 몇 번 해보니까 바로 느는군.’

 

“웬 놈이냐?”

 

그때 방의 주인이 소리쳤다.

 

이무환은 대답 대신 몸을 날렸다.

 

희미한 유등불 아래서 몸을 날리는 이무환은 영락없는 귀신, 딱 그 모습이었다.

 

방 주인은 대경해서 뒤로 물러나며 더듬거렸다.

 

“귀,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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