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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88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광룡기 88화

 

88화

 

 

 

 

 

 

 

 

창백한 표정. 참담한 자괴감에 이를 악문 그는 당악이었다.

 

그가 다가오자 이무환이 반겼다.

 

“어이, 당씨. 마침 잘 왔어. 의술에 대해 알지? 당가 사람들은 의술도 잘 안다고 하던데.”

 

“조금 알고 있소. 비켜보시오.”

 

이무환이 비키자 당악이 단우경의 상처를 싸맨 옷자락을 풀었다.

 

상처가 난 곳을 살펴보는 그의 눈초리가 가늘게 떨렸다.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지켜봤다. 여차하면 나서서 자신의 실력을 뽐낼 작정이었다.

 

그런데 혈의인들이 몰려오는 기세를 대하고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단우경이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도와주기만 했어도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당악은 그때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솔직히… 나는 너무 두려웠소.’

 

상대는 검강을 자유자재로 쓰는 절정의 고수가 아닌가. 게다가 눈빛을 보니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끼어들면 틀림없이 죽을 것 같은 기분. 미친놈의 검이 자신의 심장을 뚫을 것 같았다.

 

당악은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났다. 움직여 주지 않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싸움이 끝났다.

 

참담해진 그는 부끄러워서 낯을 들 수가 없었다. 

 

당악이 겨우 이 정도에 불과했다니!

 

그때 단우경이 쓰러졌다.

 

당악은 자신을 추스르고 억지로 발을 떼어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마침내 하나 생긴 것이다. 사람이 쓰러지고 난 후에야.

 

비참했지만, 그거라도 해줘야 일 푼이나마 자신이 용서될 거 같았다.

 

‘응?’

 

상처를 바라보던 당악이 고개를 숙이고는 고약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리고 조금 떼어서 먹어보기까지 하더니 이무환에게 물었다.

 

“이 고약… 어디서 난 겁니까?”

 

영호승 등이 어색한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길거리 약장사에게 샀다고 하면 당악이 비웃을 것 같았다.

 

그때 이무환이 자랑하듯이 말했다.

 

“구룡성의 외성에서 약장수에게 샀지.”

 

“설마… 길거리 약장수 말입니까?”

 

“맞아. 좋다고 해서 샀어. 한 묶음에 한 냥짜리를, 다섯 묶음에 네 냥 줬지. 그 정도면 싸게 산 거지 뭐.”

 

영호승 등은 저 멀리 장강이 펼쳐진 곳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남궁산산조차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이무환과 고약을 번갈아 바라보던 당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당히 좋은 비법으로 만들어진 고약이군요. 약초의 배합이 잘못되면 엉터리 약이 될 수도 있는데, 약초의 배합이 잘되어서 아주 좋은 고약이 되었습니다. 일단 외상이 덧나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장강을 바라보던 네 사람이 일제히 홱 고개를 틀었다. 남궁산산도 고개를 들었다.

 

엉터리 약이 졸지에 명약이 되었다. 

 

당호민의 손자인 당악의 말이니 믿어도 되지 않을까?

 

손을 가슴에 대고 품속의 고약을 쥔 막위가 뒤로 물러나더니, 한쪽에 주저앉아서 다친 다리에 고약을 꺼내 붙였다. 혁수린이 옆구리를 움켜쥐고 슬그머니 그 옆에 앉았다.

 

막위가 고약 두 개를 넘겨주었다.

 

영호승과 혁수린은 어색한 표정으로, 피가 덕지덕지 묻은 단우경의 고약을 몇 개 집어 들었다.

 

그때 고약을 떼어내고 상처를 살피던 당악이 악다문 입을 다시 열었다.

 

“저…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소만……. 앞으로 이분은 오른쪽 팔로 무공을 펼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소.”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당악을 쳐다보았다.

 

당악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힘줄이 두 치 정도, 엄청난 검기에 가루가 되어버렸소.”

 

꼭 자신의 잘못 때문에 그리된 것 같았다. 자기가 조금만 도와줬어도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서 더 미안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단우경의 오른손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일단 조부님께 보였으면 싶소. 지금 바로 갑시다. 이곳의 흔적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이무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영호승을 바라보았다.

 

“멋쟁이, 꼬맹이 데리고 따라가. 나는 쥐새끼들이 더 있는지 알아보고 갈 테니까.”

 

한겨울의 북풍보다 더 싸늘한 바람이 사람들의 옷깃으로 스며들었다.

 

“예, 총대주.”

 

 

 

수하점으로 돌아간 지 이각 후.

 

단우경의 상태를 세밀하게 살펴본 당호민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악이가 잘 본 것 같네. 오른팔로 무공을 펼칠 수는 없겠어. 내가 몇 가지 약을 줄 테니 그걸 꾸준히 먹이고 붙이게. 무공을 펼칠 수는 없어도 일반인처럼 사용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거야.”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이무환은 무심한 표정으로 혈의인에 대해 말해주고, 말미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제 생각에는, 그들이 마단을 복용한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으으음,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군.” 

 

“당 어른께선 그들이 정말 마단을 완성했을 거라고 보십니까?”

 

당호민은 이마를 찡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완성품은 아닌 것 같네. 일개 수하들에게 복용시킨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시험을 해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이무환도 그 점이 의문이었다. 마단이 넘쳐날 정도로 많지 않은 이상 일개 수하에게 복용시킬 리 없었다. 

 

“미완성 마단을 수하에게 복용시켜서 시험을 해봤단 말씀이군요.” 

 

“현재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네. 조금 더 연구해 볼 테니 가서 기다리게나.”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글쎄, 최대한 빨리 알아보긴 하겠네만, 시간은 자신할 수가 없군.”

 

“알겠습니다. 기다릴 테니 알게 되는 대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3

 

 

 

쾅! 와장창!

 

분노한 황의청년이 탁자를 부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야? 다 죽었다고?”

 

무릎을 꿇은 회의인이 고개를 숙인 채 마저 보고를 올렸다.

 

“속하가 직접 싸움이 일어난 곳을 수색해 봤습니다만, 정황상 모두 죽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암혈조장 만옥이 왼팔이라면, 눈앞에 있는 자는 오른팔과도 같았다.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차라리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좋으련만.

 

“제길! 제기랄!”

 

황의청년은 씩씩거리며 남쪽 창문 밖의 마룡부 쪽을 바라보았다.

 

‘혹시 마단이 엉터리였던 것 아냐?’

 

그럴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열여덟 명의 암혈조가 모두 전멸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직속 별동대인 암혈조의 능력은 서너 명의 장로와 대등했다. 마단이 제대로 작용했다면 적어도 그 배의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암혈조가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전멸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광룡이 구룡의 부주들만큼 강하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사형이 혹시 나를 물 먹이려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신도연풍, 그 음흉한 인간은 웃으면서 자신의 목에 칼을 박을 수 있는 자니까.

 

한 번 의문을 품자, 의문이 의문을 새끼 쳤다.

 

‘이러다 사형에게 뒤통수 맞는 것 아냐?’

 

그럴지도 모른다. 그는 전부터 자신을 못마땅해 하지 않았던가.

 

‘어쩐지 순순히 내 의견을 받아들인다 했더니……. 흥!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줄 알아? 어디 두고 보자, 신도연풍!’

 

황의청년은 이를 갈았다.

 

지금쯤 신도연풍은 웃고 있을지 몰랐다. 자신의 발톱이 빠진 것을 즐기면서.

 

그러나 자신의 손발은 암혈조만이 다가 아니다.

 

자신에게는 신도연풍이 모르는, 심지어 사부조차 모르는 힘이 있다. 최후의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으려 했던 힘이.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는다면 어쩔 수 없었다. 금룡부의 힘을 대놓고 동원할 수 없는 이상, 그들의 힘을 끌어들이는 수밖에.

 

“회영, 장사에 좀 다녀와야겠다.”

 

흠칫한 회의인이 고개를 반쯤 들었다.

 

황의청년, 금철종이 천천히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해.”

 

 

제6장. 지붕 위의 세 남자

 

 

 

 

 

 

 

1

 

 

 

이무환은 그날 석양이 지기 전에 구룡성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들이 광룡대에 들어가자, 여유 있는 표정으로 정원을 거닐며 제갈신걸과 이야기를 나누던 무설강이 굳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영호승 등 네 사람의 표정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아본 것이다.

 

“의당으로 가서 치료받아.”

 

이무환이 영호승 등을 의당으로 보내자 무설강이 물었다.

 

“무슨 일 있었나?”

 

얼굴은 돌처럼 생긴 사람이 눈치 하나는 빨랐다.

 

“약간 다툼이 있었수. 일단 들어가죠.”

 

이무환에게 약간의 다툼이면, 다른 사람에게는 큰일이 벌어진 거와도 같았다.

 

무설강과 제갈신걸은 더 묻지 않고 이무환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일각이 흘렀다.

 

소식을 들었는지 엽상과 종리난경과 유군명이 이무환을 찾아왔다. 그들은 이무환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고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이미 단우경과 광기에 찬 혈의인에 대한 말을 영호승에게 들은 터였다. 물론 약초에 대한 것도.

 

얼마나 지났을까, 이무환이 엽상에게 물었다.

 

“눈발, 말 들었어?”

 

“예, 총대주.”

 

“그놈들, 어디에 속한 놈들인지 내일 해가 지기 전까지 알아놔.”

 

“알겠습니다.”

 

“분명 도룡부나 금룡부에 숨어 있던 놈들일 거야.”

 

“신룡부나 마룡부일 수도…….”

 

“아니, 그놈들은 아냐.”

 

“하지만 약초를 가로채고 표국 사람들을 죽인 것은 마룡부가 유력하지 않습니까?”

 

“꼬맹아.”

 

이무환이 부르자 남궁산산이 대신 설명했다.

 

“그래서 아니라는 거예요. 완성품도 아닌, 미완성의 물건을 시험하겠다며 자신들의 아까운 수하를 희생시킬 멍청이가 아니라면요.”

 

마룡부의 신도연풍은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있는 자다.

 

심지어 혁천기에게도 중요한 것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자가 괜찮은 수하 열여덟 명을 희생시키며 미완성품인 마단을 시험할 리가 없었다. 꼬리가 잡힐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더구나 신룡부는 안개 속에 몸을 감추고 움직이는 자들. 더욱더 가능성이 없었다.

 

엽상은 남궁산산의 말뜻을 이해하고 즉시 대답했다.

 

“즉시 조사에 착수하겠습니다.”

 

그러자 이무환이 하나 더 물었다.

 

“그리고… 도룡부와 금룡부주의 오른팔이 누군지 알아?”

 

“예? 예. 도룡부주 구자천의 오른팔은 절음도 두강헌이고, 금룡부주 금화산의 오른팔은 그의 아우인 금모산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엽상이 의아한 눈으로 이무환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사실을 이무환이 알고 있나?

 

그때 이무환이 온기 없는 눈빛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원한은 백배로! 그게 내 신조야. 단우경의 오른팔을 못 쓰게 만들었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줘야 하지 않겠어? 안 그래, 눈발?”

 

수하의 오른팔을 못 쓰게 만들었으니, 구룡성 부주의 오른팔을 못 쓰게 만들겠다?

 

엽상이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감에 은근히 가슴이 뛰었다.

 

“아주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총대주.”

 

아부성 짙은 발언에 엽상을 힐끔 쳐다본 이무환이 종리난경과 유군명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종리 대주와 유 대주는 구룡성과 무창에 원령초 말고 특이한 약초가 대량으로 몰래 유통된 것이 있는지 알아봐. 특히 양귀비와 구엽초의 유입에 대해서 말이야.”

 

“예, 총대주.”

 

엽상에 이어 종리난경과 유군명마저 나가자 이무환은 무설강과 제갈신걸을 직시했다.

 

“당분간 두 분이 저와 함께 움직여야겠습니다.”

 

영호승 등은 한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단우경은 한 달 이상 걸릴 것 같고.

 

더구나 전보다 더 거칠고 힘든 일을 앞두고 있었다. 그 일을 하기에는 무설강과 제갈신걸이 제격이었다.

 

두 사람도 흡족한 표정으로 눈빛을 빛냈다.

 

같이 다니다 보면 이무환의 진짜 능력을 확인할 기회가 올 것이다.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바라던 바네. 그러잖아도 몸이 근질거렸는데, 잘됐군.”

 

“말만으로도 피가 끓는군요.”

 

어째 자신보다 더 설칠 것 같은 분위기. 이무환은 차를 들이켜면서도 입 안이 찝찝했다.

 

‘저러다 사고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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